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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짝꿍인 백작부인이 고등핵교 동창의 혼사에 가는 날이었다. 이런 날은 혼자 잘 놀아야 하는 날이다. 보온병에 끓인 물을 담고, 믹스커피 봉지랑 이것 저것 주전부리를 베낭에 쑤셔넣고 길을 나섰다. 많이 늦어버렸지만 가을풍경을 담으려던 북한산을 오르려 북악터널 쪽으로 갔다. 국민대학교 교문을 지나자마자 왼쪽으로 좁은 길을 접어들면 조그만 절집인 삼봉정사로 오르는 소롯길이 나온다. 처음가는 길이라 절집 마당에 있던 보살할머님께 형제봉 오르는 길을 물었다. 절집 뒷편을 가리키며 말씀하셨다. "저~기 보이지? 왼쪽으로 가면 돼... 밥을 안 먹었으면 공양하고 가~" 고맙게도 처음 보는 중생에게 이러신다. "아이고 보살님 감사합니다. 조금 전에 먹고 나왔습니다... 그나저나 풍경이 아직도 아름답군요!" 그랬더니 얼굴 가득한 주름을 활짝 피시며, "며칠 전만 해도 대단했어! 지금은 잎이 많이 저버렸네" 절집 뒤로 돌아가니 산을 둘러 친 철망에 '샛길 출입금지' 푯말이 있었다. 그러나 산길로 들어가는 문은 열려 있었다. 언덕을 조금 오르니 나무들은 벌써 옷을 거의 다 벗었다. 거친 바람이 불어 겨우 달려 있던 이파리들이 떨어지며 이리저리 날렸다. 낙엽수들은 추운 겨울에 이파리에 양분도 주어가며 잎세포가 얼지 않게 해야하는 데 그럴 수가 없으니 모두 제 몸에서 떼내어 버리는 것이다. 제 몸뚱이 하나 살기도 힘든 계절이 온 것이다. 추워가는 계절에 사람들은 제 살기 위해서 두터운 옷을 하나 둘 껴입기 시작하는데, 낙엽수들은 무성했던 이파리들을 떼내어 버리는 것이다. 그러고는 한겨울 눈바람 속에서 벌거숭이 裸木으로 버티는 것이다.
숲은 이제 얼마 없으면 흰 눈에 덮힐 것이다. 白雪粉粉한 눈밭 군데군데 푸른 솔들이 저들 홀로 푸르다고 자랑할 터인가! 낙엽수가 계절따라 옷을 갈아 입기로서니 지조가 없다는 말은, 사람들이 하는 문학적 표현일 뿐이다. 상록수는 낙엽이 지는 낙엽수에 비해 세포액의 농도가 높기 때문에 겨울에도 얼지 않고 버텨내는 것이라고 한다. 그런데 상록수의 세포액 농도가 항상 높은 수준을 유지하는 것은 아니다. 여름에 조사하면 상록수도 낙엽수와 별반 차이가 없다. 단지 겨울에만 높은 상태를 보이는 것이다. 이렇듯 자연은 신비해서 같은 숲속의 나무라해도 살아가는 모양을 똑같이 만들어 놓지는 않았다.
어쨌거나 11월의 북한산은 올라 갈수록 삭막했다. 천주교에선 11월을 慰靈聖月이라 한다. 이 세상을 떠난 영혼들을 위해 기도하는 달이다. 이 세상을 힘들게 살아가야 하는 영혼을 위로하는 11월이기도 하다. 죽음이란 우리의 삶과 떼어놀 수 없는 것이기에... 매년 11월 2일이 되면 성당에서는 아직 제 자리를 찾지 못한 채 연옥의 고통 속을 헤매고 있는 영혼들이 어서 淨化되어 복된 나라로 들어가기를 기원하는 미사를 올린다. 11월의 山은 적막하여 慰靈의 마음을 갖게 하는것이다. 산길을 걸으며 생각했다. 기도했다. 연옥의 고통과 이승의 고단한 길을 헤매는 가련한 영혼들을 생각하며 기도했다. 내가 기억할 수 있는 저 세상의 영혼들...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순례의 길을 걷듯 걸었다. 때론 한숨을 쉬며 참회도 했다. 삼봉정사~형제봉~대성문~대남문~문수사~구기계곡을 따라 걸었던 북한산의 11월 숲길은 그랬다.
순례자의 기도 - 이해인 저무는 11월에 한 장 낙엽이 바람에 업혀 가듯 그렇게 조용히 떠나가게 하소서
그 이름 사랑이신 주님 사랑하는 이에게도 더러는 잊혀지는 시간을 서러워하지 않는 마음을 주소서
길에서 만난 이들은 모두가 손님일 뿐 아무도 내 최후의 행방을 묻는 주인 될 수 없음을 알아듣게 하소서
그 이름 빛이신 주님 한 점 흰구름 하늘에 실려가듯 그렇게 조용히 당신을 향해 흘러가게 하소서
죽은 이를 땅에 묻고 와서도 노래할 수 있는 계절 차가운 두 손으로 촛불을 켜게 하소서
해 저문 가을 들녘에 말없이 누워 있는 볏단처럼 죽어서야 다시 사는 영원의 의미를 깨우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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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북한산 어느 코스인가요?
국민대~삼봉정사~형제봉~대성문~대남문~문수사~구기계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