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잘
못된 만남--ROTC 하사인 OP장의 한숨 소리>
흔히들 잘 못된 만남을 가리켜 “외
나무 다리에서 원수 만난다”라는 표현을 쓴다. 원수라고 까지야 말해서는 안되지만, 여하튼 나로서는 만나서는 안될 사람을 만난 꼴이 되었다. 며칠 있다가 OP장의 교대가 있었다. OP장이란 OP 경계를 위해서 보병 수색 중대에서 증강된 일개 분대 가량의 병력이 올라와서 주야로 경계를 하게 되는데, 그 책임자를 OP장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새로 부임한 OP장은 K 대학을 나온 ROTC 하사였다. 우리가 대학을 나오는 1963년도 졸업자에게는 “국가 고시”라는, 말하자면 하나의 국가에서 실시하는 졸업을 위한 교양 과목 시험이라고 할
수 있다. 불행하게도 이 시험에 합격하지 못하면, ROTC 훈련을 받아도 임관을 시키지 않고, 하사로 복무하게 하였다. 정확한 숫자는 알 수 없지만, 그래도 상당수의 사람들이 하사 복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하필 그 중의 한
사람을 전방 산
꼭대기에 있는 OP에서 만나게 된
것이다. 분대원들은 한 사람 빠짐없이 주야 교대로 OP 경계 임무를 서야 하지만, OP장은 특별히 할 일이 없었다. 그래서 그는 낮에도 준비해 가지고 온 술을 마시는 것이 그의 일과였다. 몇 번
말을 해 볼가 하고 생각하였으나, 그도 괴로운 것을 잊으려고 그러는데, 공연히 붙고 있는 불에 휘발유를 끼엊는 꼴이 될가봐 가만히 놔 두었다.
거기다가 소위 봉급은 공무원 4급 을에 해당되는 4천 5백 5십원 가량을 받았는데, 당시 하사는 고작 800원에 불과 하였다. 그러니 없는 돈에 술을 사먹는 팔자인데, 거기다가 같은 대학 졸업자로서 계급이 높다고 뭐라고 말을 보탤 수가 없었다.
얼마를 지나자, 내가 성격이 까다롭고, 원리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으로 보였던지, 낮에 술 마시는 일은 삼가고 있었다. 그는 숙소에만 들여 밖혀 있었다. 책을 읽는 것도 아니고, 또 가끔 밖에 나와서 사냥도 하지 않었다. 만사가 그에게는 싫은 것 같이 보였는데, 특히 사람 만나는 것을 피하는 것 같았다. 참으로 딱하고, 딱한 일이었다. 나도 뭐라고 위로의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저 그가 마음 편하게 지내기를 바랄 뿐이었다. 아마 하사의 복무 기간은 장교의 복무 기간보다 길지 않었나 생각된다. 여러모로 볼
때 마다, 그도 괴롭고, 나도 괴로운 때가 많었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