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전쟁반대 이야기 1]
파란 대문 집 큰오빠
우리 집에는 지금 못된 사람들이 들어와 행패를 부리고 있습니다.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아당겨 마당에 나동그라지게 했어요. 아버지를 눕혀 신발을 신은 발로 아버지 얼굴을 짓밟아요. 내 동생이 울음을 터뜨리니 시끄럽다면서 몽둥이로 때렸습니다. 몽둥이에 얻어맞았으면 더 크게 울어야 할 텐데 오히려 울음은 그쳤어요. 아니, 조금도 움직이지 않아요. 죽어, 죽은 걸까요? 나는 무서워 동생에게 가 볼 수도 없어요. 벌벌 떨면서 광에 숨어 있어요. 아, 마을 사람들. 마을 사람들은 모두 어디에 있는 걸까요? 제발 누가 와서 우리 식구를 좀 도와주었으면……. 마을 사람들은 멀리 있지 않아요. 바로 우리 집 건너건넛 집 앞뜰에 다들 모여 있어요. 잔치를 벌였거든요. 다들 모여 윷판을 벌이고, 한쪽에서는 씨름판을 벌였어요. 한 쪽에는 가마솥을 걸어두고 돼지를 삶고 있어요. 마음속으로 외칠 뿐이에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우리 집에 들어온 사람들은 못된 짓을 멈추지 않습니다. 그러다가 귀청을 울리는 소리, 이게 무슨 소리지? 총소리였습니다. 아버지 얼굴이 터져 피범벅이 되었어요. 피와 살과 뼈가 한데 엉겨 범벅이 되었어요. 도와주세요, 제발! 이웃집에 모인 사람들은 이 소리를 못 들었을까요? 아니요, 못 듣지 않았을 거예요. 못 듣기는커녕 지금 우리 집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처음부터 다 알고 있었거든요. 저 못된 사람들이 내 동생을 때려죽인 것도, 우리 어머니 머리채를 잡아당기고, 우리 아버지 얼굴을 발로 밟는 것도 다 알고 있었어요. 바로 옆집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사람들은 그저 잔치를 벌여요. 좋은 옷을 입고, 좋은 음식을 차리고, 풍악을 울리면서 흥에 겨워 넘실거리고 있어요. 우리 집에서 일어나는 일을 뻔히 다 알면서 모른 척 하고 있는 거예요. 아니, 그 가운데에 몇 집 사람들은 지금 이 못된 사람들 곁에 와 있기도 하고요. 지금 어머니를 발로 차는 저 오빠는 파란 대문 집 큰오빠, 몽둥이를 들고 우리 집을 때려부수고 있는 언니는 시장터에 사는 언니예요. 물론 옆집 잔치판에는 파란 대문 집 식구와 시장터의 언니네 형제들도 다 놀러와 있지요. 흥에 겨워 놀고 있어요. 왜 지금 이웃집에서 잔치를 벌이는 사람들은 우리 집에 벌어지는 일을 모른 척 하고 있을까요? 왜 우리와 다정한 이웃이라던 사람들이 한 편으로는 우리 식구를 죽이면서 한 편으로는 저토록 흥에 겨워 웃을 수 있을까요?
이 마을 사람들은 참 이상하지? 누가 보아도 어처구니없는 일, 그런데 아저씨가 보기에는 말도 되지 않는 저 모습이 지금 우리 모습 그대로인 것 같아. 이라크라는 나라, 아마 모르는 아이는 없을 거야. 비행기가 불을 뿜어 미사일을 떨어뜨리고, 탱크가 대포를 쏘아대고, 군인들이 사람들을 죽여대는 전쟁터. 어제 하루 사이만 해도 일흔 다섯 명이나 죽였어. 전쟁이 시작한 뒤로 모두 사만 명이 넘게 죽었다지. 혹시 어떤 동무들은 이제 이라크 전쟁은 끝난 줄 생각했는지도 몰라. 왜냐하면 얼마 전부터는 텔레비전에서도 그 곳의 전쟁터 소식이나 다친 사람들 모습을 거의 보여주지 않고 있으니 말이야. 정말 나빠. 세상의 온갖 일은 다 보여주면서 가장 억울하고, 가장 슬픈 사람들의 이야기는 쏙 빼놓고 보여주지 않다니.
요즘 올림픽이 있었지. 요사이 아저씨는 텔레비전만 켜면 온통 들리는 올림픽 이야기에 정말 마음이 어지러웠단다. 아니, 어지러울 뿐 아니라 무서웠어. 한 쪽에서는 밤이고 낮이고 미사일의 불꽃이 저토록 많은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 온 세계 사람들은 아테네에서 터지는 축하의 불꽃, 폭죽만 보면서 흥겨워하고 있다는 게 말이야. 아테네는 이라크라는 나라와 그리 멀지도 않아. 바로 이웃한 나라. 한쪽에는 미사일의 불꽃이 사람들을 죽이고 있는데 바로 건너편에는 축제의 불꽃으로 잔치를 벌이고 있어. 그러니 아까 위에서 들려준 마을의 이야기와 뭐가 다를까? 생각해 보렴. 만약에 우리 나라에 침략군이 들어와 서울과 광주, 부산, 대전, 인천을 모두 쑥대밭을 만들어 다 죽이고 있는데 온 세계 사람들은 일본과 같은 가까운 이웃 나라에 가서 폭죽을 쏘며 잔치를 벌이고 있는 모습. 신문이건 텔레비전 뉴스건 아니면 그런 것에만 푹 빠져 있는 사람들이건 이 땅에 벌어지는 끔찍한 일들 대해서는 누구하나 관심을 보이지 않고, 바로 그 이웃에서 벌이는 축제에만 들뜬 마음을 함께 하고 있다면 말이야. 얼마나 서러울까, 얼마나 원망스러울까? 게다가 지금 우리 나라는 그냥 모른 척 하는 것만도 아닌 걸. 침략군대를 보내 못된 짓을 하고 있는 바로 그 나라니까. 그러니 결국 우리는 한 손에 피를 묻혀 사람들을 죽이고 있으면서 그건 영 모른 척 하는 채 잔치의 불꽃에만 흥겨워하고 있는 꼴이나 다름이 없어. 저 위에서 말한 파란 대문 집 식구나 시장터 언니네 식구와 하나도 다르지 않아. 그러니 이 얼마나 뻔뻔하고 부끄러운 일일까? 이라크 사람들을 위해서도, 우리를 위해서도 어서 빨리 우리 군대를 되돌아오게 해야만 해. 그리고 어서 전쟁을 끝내야 해. 아무런 잘못 없는 어린 동무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려주어야 하니 이 또한 마음이 아파. 하지만 지금은 너무 슬픈 마음에 이 이야기밖에 할 수가 없구나. 미안하다, 얘들아. (2004년 8월 27일 파병철회를 바라는 단식 열 아흐레 째 박기범 아저씨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