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1년 11월 3일 자 매일신보 2면 집회란. 손가락 두 마디쯤 되는 3단 단신 하나가 실렸다.
대종교청년회가 이날 저녁 7시 관철동 우미관에서 개천경절 기념 대강연회를 연다는 예고다.
연제와 연사는 셋.
종교와 인생에 송진우,
군생의 희환에 박일병,
대종교에 권덕규.
총독부 기관지가 무심하게 흘려보낸 이 짧은 단신이, 백 년 뒤에 읽으면 1920년대 초 경성 지식 사회의 단층을 그대로 찍어낸 횡단면이 된다.
그해 개천절, 곧 음력 10월 3일은 양력으로 11월 2일이었다. 나철이 1909년 중광 이후 경축일로 세운 날이고, 1919년 상해 임시정부가 국경일로 삼은 날이다.
강연회는 그 이튿날 저녁에 열렸다. 제천의 상달 명절을 하루 지내고, 이튿날 밤 극장을 빌려 대중 앞에 서는 구성이다. 장소가 우미관이라는 점도 가볍지 않다.
1912년 관철동에 문을 연 이 극장은 수용 인원이 천 명에 이르는, 조선인 관객이 밤마다 모여들던 종로의 명소였다. 활동사진 변사의 목소리가 울리던 그 무대에 개천절 기념 강연이 올라간다.
이른바 문화통치기, 집회와 결사의 숨통이 아주 조금 트인 틈을 대종교청년회가 정확히 비집고 들어간 장면이다. 교단의 제의(祭儀)가 극장의 대중 집회로 번역되는 순간이라 해도 좋다.
연사 셋의 면면은 더 흥미롭다.
첫 연사 송진우는 두 달 전인 그해 9월, 주식회사로 개편된 동아일보의 3대 사장에 갓 취임한 참이었다. 3·1운동을 모의한 48인의 한 사람으로 서대문감옥에서 한 해 반 옥고를 치르고 나온 지 일 년 남짓.
민족주의 우파 언론의 새 수장이 취임 직후 오른 대중 강연 무대가 개천절 기념식이었다는 사실은, 이 시기 개천절이 특정 교단의 행사를 넘어 민족운동 진영이 함께 쓰는 시간이었음을 시사한다.
둘째 연사 박일병은 이 무대에 가장 깊이 발을 담근 사람이다.
보성전문을 마치고 대종교에 입교한 뒤 와세다에서 역사와 철학을 공부한 그는 당대에 청년웅변가로 불렸고, 대종교청년회 회장을 지냈다.
그런데 이 사람의 이후 행로가 예사롭지 않다. 이듬해 무산자동맹회 결성에 참여하고, 1925년 조선공산당에 입당하며, 1926년 6·10만세운동 관련 2차 검거로 투옥된다. 그 검거 사건에서 취조 중 고문으로 숨진 박순병이 그의 아우다.
훗날 사회주의 운동사의 한 장을 쓰게 될 인물이, 1921년 이 밤에는 개천절 강단에서 '군생의 희환'을 말하고 있었다. 뭇 생명의 기쁨이라는 연제에서 홍익인간의 교의를 읽을 수도 있고, 민중이라는 말이 아직 익기 전의 사회적 감수성을 읽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민족주의와 사회주의가 갈라서기 전야의 공기, 그 미분화 상태가 이 넉 자 연제에 응축돼 있다.
셋째 연사 권덕규는 주시경의 제자다.
조선광문회에서 최초의 우리말 사전 원고인 말모이 편찬에 참여했고, 이 강연 꼭 한 달 뒤인 12월 3일 조선어연구회 창립에 이름을 올린다.
조선어학회의 전신이자 맞춤법통일안과 큰사전으로 이어지는 어문민족주의의 본류가 바로 여기서 발원한다. 그 사람이 개천절 무대에서 맡은 연제가 '대종교' 석 자였다.
국어학과 국사와 단군 신앙이 한 사람 안에서 국학이라는 이름으로 겹쳐 있던 시대의 초상이다.
주시경이 1910년 '한나라말' 에 남긴 문장, "말이 오르면 나라도 오르고, 말이 내리면 나라도 내리나니라"가 이 계보의 강령이었다면, 권덕규의 그날 강연은 말과 나라 사이에 한배검의 개천을 놓는 작업이었던 셈이다.
그러니 이 단신을 세 사람의 우연한 동석으로만 읽으면 사료를 절반만 읽는 것이다.
언론 민족주의,
초기 사회주의,
어문 국학.
1920년대 조선 사상 지형의 세 물줄기가 개천절이라는 하나의 시간, 우미관이라는 하나의 공간에 모였다. 물론 강연회 한 번을 사상적 연대의 증거로 부풀릴 수는 없다.
송진우는 이후 물산장려운동과 민립대학설립운동의 한복판으로, 박일병은 무산자동맹회와 조선공산당으로, 서로 다른 길을 걸어간다. 그러나 갈라서기 전에 같은 단상에 섰다는 사실 자체가 기록할 만하다.
몇 해 뒤 민족협동전선 신간회가 시도할 일을, 이 밤의 우미관은 조직 없이 먼저 보여주고 있었다. 그리고 그 단상을 마련한 쪽이 대종교였다.
오늘의 달력으로 돌아온다. 현행 국경일에 관한 법률 제2조는 다섯 국경일을 정하는데, 그 가운데 둘이 10월에 있다.
3일 개천절과 9일 한글날.
하나는 그날 밤 무대를 만든 교단이 지켜온 날이고, 다른 하나도 그 교단과 셋째 연사가 평생을 바친 길 끝에 놓인 날이다.
개천을 기념하는 날과 말과 글을 기념하는 날 사이의 엿새는, 관철동 극장의 저녁 7시에서 그리 멀지 않다. 안타깝게도 현재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는 국경일이 바로 개천절과 한글날이다.
매일신보 구석의 3단 단신은 그렇게, 가장 작은 활자로 가장 긴 이야기를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