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을 위한 청소년의 세계]
지은이: 공감 대화 전도사 김선희
친구를 갈구하는 아이들
작년에 담임했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에게 고민을 물었더니 ‘친구 관계’가 1순위였다. 공부나 성적, 진로, 부모님과의 갈등, 이성 친구 등이 이어지는 고민거리였는데, 학업 압박이 가장 무거운 짐일 것이라는 나의 선입견과 달리 아이들은 친구 관계를 가장 어려워했다. 개인 상담을 해 보니 초등학교 시절 왕따를 당한 경험이 있는 아이도 꽤 있었고, 언어폭력, 신체 폭력 가해자였던 아이도 있었다. 친구는 중요하고 필요하다 생각하지만 좋은 친구 되기는 서툰 모습이었다. 아직 성장 중이니, 나와 다른 타인을 존중하며 건강하게 관계 맺기를 배워가길 기대하며 작년 한 해를 보냈는데, 돌아보니 유난히 힘든 한 해였다.
무엇이 힘들었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오랜 시간과 많은 관심,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갈등 해결법이 자진 전학일 수 밖에 없는 현실이 나를 낙심하게 했다. 전학 결정까지는 아니지만, 여전히 갈등 중에 있는 시한폭탄 같은 관계 서너 개를 앞에 두고 ‘나는 이 아이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고민하지만 답이 보이지 않는다. 그 와중에 새로운 상황이 발생하고 나는 허겁지겁 문제에 끌려다녔던 것 같다.
학생들끼리 갈등이 생기면, 대부분 자체적으로 해결하지만, 갈등을 안고 교사를 찾아오기도 한다. 교사는 관련된 학생들을 따로 또 같이 불러서 이야기를 듣는다. 충조평판(충고, 조언, 평가, 판단)을 삼키느라 가슴이 답답 더부룩해지는 고비를 여러 번 넘겼지만, 당사자 학생의 하소연은 끝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럴 때 나는 아이에게 이 갈등을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달라고 요청한다. “상대 아이를 혼내 주세요.”, “다시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해주세요. 제 말을 안 들으니 선생님이 대신 해주세요”, 하기도 하고 “그냥 담임샘이 알고만 있어 주세요.”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구나. 그런데 선생님이 할 행동 말고 OO이가 할 수 있는 행동은 무엇이 있을까?”
라고 마지막 질문을 던지면 그제야 “사과해요, 다음에는 먼저 욕을 하지 않아요, 어깨빵을 하면 안 돼요, 참아요, 친구에게 친절하게 말해요.” 등의 방법을 제시한다.
“오~, OO이가 그런 방법을 생각했구나. 선생님 생각에도 OO이가 그렇게 하면 상황이 나아질 것 같아. OO이가 용기를 내 실천해볼까?”
대화가 여기까지 오면, 절반의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 아이가 현 상황을 해결하기 위해 스스로 힘을 내 행동하겠다고 했으니 성공이다. 그런데 그 성공이 절반 짜리 인 이유는 오래지 않아 그 아이나, 상대방 아이가 비슷한 상황을 들고 다시 나를 찾아오기 때문이다. 개중에는 이 절반의 성공에도 이르지 못하고 끝까지 남 탓만 하는 경우도 있다. A가 그런 경우였다.
내가 없는, 나를 잃어버린 아이
A는 개인적으로 나와 가장 많이 만난 학생이었다. 면담이 잦았던 다른 학생 몇 명은 학생인권부를 거쳐 결국 전학을 갔는데 A는 그 경계선을 왔다갔다하며 남아 있다. A는 여러 친구와 갈등 상황을 만들었는데 유독 B를 자주 언급했다. B가 자기에 대해 뒷담화를 했고, 비웃었고, 놀렸고 자신과 친한 친구를 뺏어갔다며 찾아왔다. B를 불러 따로 또 같이 내용을 확인해보면 대부분 A의 추측이고 느낌이었다. 오히려 A가 B의 뒷담화를 하고, 비웃고, 어깨빵을 하고, B의 친구를 독점하려고 했었다. 그런 상황을 함께 이야기하면 A는 인정하고, 사과하고 생각을 바꾸겠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A는 비슷한 상황을 들고 나를 찾아오기를 반복했다. 친구에게 주목받고 싶은 욕구가 많은 A는 친구가 많은 B를 부러워했고, B가 자신의 친구를 뺏어갔다며 울기도 여러 번 했지만, 실제를 살펴보면 친구들 사이에 말을 옮기고, 없는 말로 이간질하고, 외모를 비하하는 별명으로 놀리고, 거친 욕설을 하고, 수십 번의 전화로 친구를 불편하게 하는 당사자는 A였다. A와 친하게 지내려던 친구들도 자신의 불안 때문에 제어가 어려운 A와 거리를 두었다. 몇 몇 학생들이 찾아와 A에 대한 불편을 이야기하기도 했고 B가 찾아와 A를 고발하기도 하다. 친구들이 자신에게 거리를 두면 둘수록 A는 B를 더 미워했고 친구들을 괴롭혔다. 모든 것이 B가 꾸민 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A야, 네가 친구들과 잘 지내고 싶은 마음이 크구나. 어떻게 하면 너도 친구가 많아질까? 친구가 꼭 많아야 좋은 건가? 친구가 없으면 어떤 점이 나쁠까? 너는 친구 B가 부럽니?”
하고 물으면 아니라고 한다. B는 나쁜 아이인데, 친구들이 모른다고 말했다. B가 자신에 대해 나쁜 말을 퍼뜨려서 친구들이 자기를 오해하고 그래서 자신은 어떤 친구도 사귀지 못할 처지인데, 왜 도움을 주지 않냐며 울었다.
“A야, B가 그런 말을 한 적 없다는 건 믿어주자. 그리고 네가 진짜 멋진 모습을 보여 주면 너에 대한 소문은 사라질 것이고 너의 진가를 발견한 친구가 다가오지 않을까? 너무 조급해하지 말고 너와 잘 맞는 친구를 천천히 찾아보는 건 어때?”
당장 친구를 원하는 아이에게 이런 말은 도움이 안 되겠지만 달리 해줄 말이 없었다. 아이와 면담 후 부모님의 도움을 청했다. A의 어머니는 첫 통화에서는 상당히 협조적이었다. A의 초등학교 때 일과 가정에서 동생과의 일을 이야기하시며 집에서도 잘 이야기해보겠다고 하셨다. 두 번째 통화에서는 A가 친구 문제 때문에 학교 가는 것을 너무 힘들어한다고, 자기와는 대화가 잘 안 되니 학교에서 잘 도와달라고 했다. 세 번째 통화에서는 이런 상황이 귀찮은 듯 했다. 상담 도중 아이가 심하게 울어 연락을 한 것인데, 어머니는 의례적으로 “네~~, 네~~.”할 뿐이었다. 가정에서 이야기해보시고 전화 주시라고 했는데, 예상대로 전화는 오지 않았다. 어머니의 무력감에 공감하면서도 서운한 마음을 밀어낼 수 없었다.
학부모와 교사의 연대
작년에 중학교에 입학한 아이들은 2020년 COVID-19라는 초유의 사태를 맞아 초등학교 3학년 시기에 학교가 아닌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받았다. 4학년 때도 집에서 온라인 수업을 많이 했고 5학년 때는 등교했지만 마스크를 쓰고 개별 칸막이를 한 책상에서 모둠 활동 없이 공부했다. 급식 시간에도 칸막이 속에서 혼자 조용히 빨리 밥을 먹어야 했다. 이 특수한 경험이 아이들의 성장에 큰 영향을 주었음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한 연구에 따르면 코로나19로 인해 초등학생의 국어, 수학 수준이 7~10% 정도 낮아졌고, 저학년, 저소득 가구, 보호자(중 여성) 학력 수준이 낮은 가구의 학생들에게서 부정적 영향이 더 크게 나타났다고 한다. 아울러 아이들의 사회성 발달과 장기적 성과에도 부정적 영향이 발견되었다. (한성민. (2022). COVID-19가 학습 및 생활에 미친 영향: 초등학생 중심으로. 응용경제, 24(2), 55-85.) 현재 초,중,고 학생들은 학교라는 공동체 속에서 사회성을 배울 3~4년의 시기를 놓쳤다. 그 결과를 학교 현장에서 매일 경험하고 있다. 학력 저하도 걱정이지만 사회성 발달 부족은 앞으로 더 어려운 문제를 야기할 것이 분명한데 가정과 학교에서 각자 고군분투하는 현실은 참으로 안타깝다. 학부모와 교사가 머리를 맞대고 우리 아이를 살릴 방법을 함께 찾아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