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의 본당 이야기를 한 달에 한 번씩 전하는 ‘우리 본당을 소개합니다’ 연재를 시작합니다. ―편집자 |
“우리 애들이 더 좋아해요. 어릴 때 이런 걸 못 보고 자랐으니, 씨앗에서 싹이 나는 걸 신기해하죠. 수확한 채소로 음식을 만들어주면 너무 좋아해요.”
여든다섯 살 강순분 할머니의 주름진 손이 한 뼘 길이로 자란 열무 싹을 알뜰하게 솎아냈다. 솎아낸 싹은 왼손에 든 비닐봉지로 직행한다. 알싸한 열무향이 배어 있는 어린잎은 양념장에 바로 무치거나 쌈으로 먹으면 여름 내 지친 입맛이 돌아온다.
싱글침대 크기 정도의 작은 텃밭에선 강 할머니의 텃밭 자랑이 끊이지 않는다. 열무를 심기 전에는 상추와 고추를 심어서 여름 내내 아주 잘 따다 먹었다고 한다. 강 할머니는 “건강만 허락한다면 날마다 오고 싶다”면서 서울에 살면서도 손으로 흙을 만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했다. 그는 우면동성당(주임 백광진 신부)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열두 농부 중 한 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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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면동성당 텃밭에서 농사를 짓는 강순분 할머니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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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볕이 기지개를 펴던 지난 8일, 서울의 남쪽 끝 서초구 우면동에 위치한 우면동성당을 찾았다. 곧게 뻗은 널찍한 도로 양옆으로 페인트 냄새가 채 가시지 않은 아파트 단지와 오래된 주택들이 이룬 작은 동네가 공존하는 신도시. 우면동성당은 그 한가운데서 낮은 동네 뒷산을 옆구리에 끼고 아담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우면동성당이 친환경 본당으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한 데에는 숲을 바로 접하고 있는 주변 환경도 한 몫을 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강 할머니가 사랑해마지않는 텃밭은 성당 마당에서 성모상 왼편으로 난 짧은 산책로와 이어진다. 본래 마을 주민이 소유한 사유지이지만, 텃밭을 가꾸던 주인이 나이가 많아 더 이상 농사를 짓지 못하고 풀이 무성해졌던 것을 6년 전부터 성당 신자들이 개간해 무상으로 쓰고 있다. 15평 남짓한 땅을 12개로 나눠 매년 봄에 본당 사무실에서 선착순으로 농부를 모집한다. 올해엔 경쟁률이 1:1.5로 높았다.
텃밭을 맡은 신자들은 1년 동안 각자 원하는 작물을 계절별로 심고 가꾼다. 토란 줄기가 튼실하게 자란 밭이 있는가하면, 고구마 잎이 보랏빛으로 물들어가는 밭이 있고, 부지런히 배추와 무를 심어 김장을 준비하는 밭도 있다. 사람들 입맛이 제각각인 것처럼 밭에 심은 작물도 제각각이다.
텃밭만으로도 우면동성당은 자연과 많은 것을 주고받는 것 같은데, 보물찾기 하듯 성당 구석구석을 살피면 지구를 위한 본당 신자들의 노력을 발견하게 된다. 우선 우면동성당에는 일회용품이 없다. 김광섭 사무장은 “혼인성사 피로연에서 외부 업체가 종이컵을 사용하는 때 말고는 본당 내에서 일체 일회용품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사무장의 책상 위에 놓인 물 컵도 그렇고, 성당에서 무언가를 마시는 사람들의 손에는 모두 스테인리스 컵이나 다회용 플라스틱 컵이 들려 있었다.
성당 마당에 돋은 잔디밭과 화단에는 제초제를 사용하지 않고, 꽃에 해를 가하는 풀 이외에는 잡초도 뽑지 않는다. 쓸모가 없어 보이는 잡초라도 하느님이 창조한 자연의 일부라는 생각에서다. 제초제를 뿌리지 않는데다가 풀이 많으니 모기와 다른 벌레가 많아지는 것이 불편하지만, 신자들 사이에선 이것도 ‘즐거운 불편’ 중 하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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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면동성당 전경. 교육관(오른쪽)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가 설치되어 있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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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면동성당은 전력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늘여가고 있다. 3년 전 성당 내 조명을 효율이 높은 LED 전구로 바꿨다. LED 전구는 구입 가격이 높은 편이지만, 형광등에 비해 효율이 40% 이상 높고, 수명은 5배 이상 길다. 전력 사용은 백열등(60W)에 비해 약 85%, 삼파장(30W)에 비해서는 약 50%의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올해 봄에는 성당 교육관과 사무실 건물 지붕에 태양광 발전기를 설치했다. 전체 설치비용 6천만 원 중 50%는 정부에서 보조금을 받았고, 나머지 절반은 우면동성당이 부담했다. 신자 수 3천 명의 작은 규모의 성당으로서는 만만치 않은 비용이다. 아직 태양광 발전기를 사용한 지 3달째라 절감 효과나 전기료 감소가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히 가늠할 수 없다. 초기 투자비용을 전기료로 보전하려면 몇 년이 걸려야 할지도 정확히 계산하기 어렵다.
그러나 김 사무장은 “전기료를 절약했다는 의미보다는, 원전에서 전기를 생산해 서울에 오기까지 중간에서 피해를 보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일을 줄이는 효과가 더 의미 있다고 생각 한다”고 말했다. 우면동성당은 태양광 발전기에 이어 성당 내 에어컨을 없애고 전력 사용량이 적은 에어쿨러를 설치해 이번 여름 더위를 나기도 했다.
이날은 마침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조해붕 신부)가 우면동성당에서 ‘푸르름 잔치’를 여는 날이기도 했다. 미사에 참석한 신자들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태양열 조리기로 삶은 계란을 나눠먹고, 핵발전소 위치를 다트로 맞추는 게임에 참여하고, 자연에 해가 없는 모기 퇴치제를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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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일 우면동성당에서 열린 ‘푸르름 잔치’에서 청소년들이 자전거 발전기로 빙수를 만들고 있다. ⓒ한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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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당 마당 한 켠에서 자전거 발전기의 페달을 돌리던 이석영 사목회 총무는 “주임신부님께서 환경보호에 아주 적극적이시다”면서 “사실은 신부님이 화장실에서 화장지도 사용하지 않으신다는 소문이 돌았던 적이 있다”고 슬며시 본당의 공공연한 비밀을 폭로했다. 소문의 진상은 확인할 길이 없지만, 자동차를 소유하지 않고 잡초도 쉽게 뽑지 못하는 백광진 주임신부의 환경 사랑이 본당 신자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준 것은 분명하다.
이 총무는 “환경문제에 대해 신자들의 생각이 조금씩 변하고 있다. 작은 것부터 몸소 실천하는 사람들이 주변에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을 “전등을 안 끄는 습관 때문에 30년 간 아내에게 혼나고 있는 사람”이라고 소개하면서도, 냉장고 자주 열지 않기, 컴퓨터를 사용하지 않을 때 꺼놓기, 콘센트 뽑기 등을 실천하려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면동성당에서 1년 전 세례를 받은 새내기 신자 이명신 씨는 푸르름 잔치에서 핵발전소 다트 부스를 진행하면서 “원전이 이렇게 많은지 몰랐다”고 놀라워했다. 그는 “처음엔 미사 봉헌하는 게 좋아서 내가 편할 때 와서 미사 봉헌하고 기도하려고 성당에 나오기 시작했는데, 신앙생활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면서 “성당 아이들이 환경에 대해 많은걸 배우고 즐거워하는걸 보니 오늘같은 자리에 참여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성당 마당에서 시끌벅적한 잔치가 치러지는 동안 백광진 신부는 만남의 방에서 손수 원두커피를 내려 신자들을 대접하고, 주일학교 아이들과 앉아 양초로 강아지 모양을 만들고, 어른 신자들과 인사를 나누느라 누구보다도 분주했다. 신자들이 두고 간 커피 잔을 설거지하는 백 신부에게 다가가 친환경 본당의 비결이 무엇이냐고 물었더니 “몰라요. 신자들이 하는 거니까”라는 간결한 답이 돌아왔다.
취재를 마치고 성당 문을 나서면서 돌아보니 우면산 자락이 성당을 포근히 감싸 안고 있는 듯 보였다. 산의 모양새가 마치 소가 편히 누워 잠든 모습을 닮았다 해서 ‘우면산(牛眠山)’이라 이름 붙여진 그곳에서 소의 단잠을 깨우지 않으려는 목동처럼 그들의 공동체가 오래도록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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