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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람브라 궁전의 추억 3)
왕궁의 입구는 메수아르 정원이라는 곳으로부터 시작된다. 그곳의 방에서 왕은 집무를 보았다고 한다. 들어서려 하자 표를 보더니만 표에 적힌 시간을 가리키며 시간이 지났다고 뜻밖에 안내원이 제재를 한다. 당황하였다. 그렇다면 8시 반 부터 9시까지라는 것이 이곳의 입장시간을 의미하였단 말인가. 통 사정을 해도 들어주지를 않는다. 오가지도 못하고 쭈삣거리며 입구에 그냥 서있었다. 어정쩡하게 그렇게 서있는 것이 안 되어 보였는지 자기 매니저가 저쪽에 있으니 가보라며 건물 하나를 가리킨다. 특별 허가라도 받아 오란 뜻 같다. 우리는 지정한 곳에 다다라 매니저를 찾았지만 매니저 같은 사람은 보이지도 않는다. 그 정해진 시간이라는 것이 그것인줄 내 어찌 알았으랴. 이곳까지 와서 못보고 간다면 억울해서 어쩌나 싶어 타들어가듯 바싹 마른 입술이다.
시간은 자꾸 가는데 매니저 같은 사람은 도시 보이지 않는다. 할 수없이 앞에서 왔다 갔다 하는 청소부 같은 여자한테 표를 보여주었다. 그러자 뜻밖에도 그녀는 씩 웃으며 맞은편에 보이는 건물 뒤로 가라고 손짓을 한다. 이것은 또 왜일까 싶다. 말이 안 통할 것 같아 무작정 표를 들이 밀었는데 대뜸 알아들었다는 듯 하는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는 곳으로 바삐 발을 옮겼다. 뒤편에 관리사무소가 또 있나 했는데 사무소는 없고 왕궁의 출구가 바로 보인다. 그쯤 알 것 같았다. 말 잘해서 뒤로 들어가라는 것이다. 들어가라는 안내원 손짓에 고맙다고 고개를 숙여 인사를 꾸뻑했다. 하이! 땡큐! 하고 고맙다는 시늉을 해도 되었을 것인데 꽤 당황하였던 모양이다.
그렇게 들어가자니 기분이 이상하다. 옛날 뒤로 학교를 들어간다 하는 보결이란 것이 있었는데 바로 우리가 그 짝인 것 같다. 들어와 다행이고 한번 훑어 입구 쪽부터 다시 시작하니 오히려 더 찬찬히 곳을 드려다 볼 수 있게도 되었다. 그래도 입구 쪽에서 마주한 입구 안내원은 안 마주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초입엔 얼씬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메수아르의 방으로부터 시작하여 아라야네스 중정이란 곳으로 나왔다. 커다란 직사각형의 연못 양옆에 아라야네스(천국의 꽃)가 심어져있어 명명된 정원이라 한다. 정면에 가늘고 우아한 석주가 지탱하는 7개의 아치가 있으며 그 앞에 붉게 빛나는 높이 45m의 코마레스 탑이 연못과 더불어 공간의 우아함을 연출한다. 건축가들은 이 곳 건물에서 강건함이나 웅장함을 말하지 않는다. 곱게 화장한 숙녀이지 건장한 남성을 연상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가만 서서 하늘을 바라보았다. 안달루시아의 푸른 하늘이 잔잔한 수면 위에 드리워 시대를 초월한 절대적인 정적을 만들며 엄숙하게 한다. 한 시대가 가고 또 다른 시대가 지났음에 무던히 참고 견딘 건물이 그저 고맙단 생각이다. 어쩌면 때 지난 건물은 가엾은 처량한 존재일 뿐 가는 시간이 엄숙한 것인지도 모른다. 오히려 긴 긴 세월 주인 잃고 떠나지도 못하는 존재로서 주인 보낸 세월이 야속하다 해야 할 것은 아닐까 모르겠다. 이 한 없이 수련한 건물이 그러하듯 우수를 전하여 그 시대 눈물지며 떠났다는 이슬람 왕을 다시 생각나게 한다. 그러자니 그곳 엄숙한 정경이 연출한 것은 바로 한 시대의 아픔이었다는 생각도 들고 만다. 그곳에서 탑 쪽을 향하니 소형 배 밑바닥을 닮은 방(바르카의 방)이 나오고 연이어 장대한 홀이 펼쳐진다. 이곳은 왕궁에서 가장 넓은, 직사각형의 방으로, 대사의 방이라하는 곳이다.
여러 나라 사절들의 알현 등 공식 행사가 있었던 곳이다. 천장의 상감 세공. 벽의 석회 세공. 벽면을 장식한 아술레호(그림타일)는 물론 바닥에 이르기까지 정교하기 그지없는 아라베스크 문양의 일대 파노라마에 감탄을 금할 수 없다. 탑의 동․북․서쪽은 발코니로 사크로 몬테 언덕이나 알바이신 지구가 모두 내다보인다. 그곳을 지나 드디어 왕궁 관람의 하이라이트, 사자의 중정 앞에 섰다. 이 정원, 그리고 정원을 에워싸는 몇 개의 방과 시설은 왕의 사적 공간이라 한다, 왕 이외의 남자들은 출입이 금지된 할렘이다. 이곳을 통틀어 사자 궁전이라고 부른다. 중정은 124개의 가느다란 대리석 기둥이 에워싸고 있다는데 기둥머리를 아치로 연결한 모든 벽면에는 도저히 인간의 힘으로 만들었을 것 같지 않은 정교하고 유려한 석회 세공이 빈틈없이 입혀져 숨 막히게 한다. 어쩌면 이토록 바늘 한 코 들어설 자리도 없이 세밀하고 완벽하게 꾸밀 수가 있을까.
중앙에 정원 이름의 유래가 된 사자의 샘이 자리 잡고 있다. 12마리의 사자가 받치고 있는 커다란 원형 분수이다. 이슬람에서는 우상을 금지하지만 10세기경부터 서서히 그런 금기가 풀어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보이는 사자 상도 그 한 예일 것이다. 중정 남쪽에 있는 아벤세라헤스의 방과 북쪽에 있는 두 자매의 방은 각각 둥근 천장의 모카라베라는 종유석 장식으로 모두를 탄복시키고 발걸음을 못 옮기게 한다. 정원의 동쪽은 천장에 10인의 왕이 묘사된 왕의 방이 있는데 한창 공사 중이라 들여다 볼 수는 없었다. 나오는 길에 나는 그 찬란하고 영롱한 빛의 색채를 담아가기 위해 눈을 몇 번이고 감고 그 장면을 떠올렸으며 모카라베는 너무나 아쉬워 되돌아가 다시 들여다보고 와야만 했다. 이 참 그들의 특징 있는 것들을 대충 추리면 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무엇이라 해도 그 궁전의 멋과 우아함은 장식 미에 있다. 이슬람 교리에 맞게 인물이나 동물을 소재로 하지 않는 대신 나누나 꽃, 과일 아라비아 문자 등이 이용되는데 이를 아라베스크 문양이라 한다. 이곳은 그런 문양을 이용해 천장이나 벽에 칠 세공을 하였으며 문에도 조각을 장식하였다. 하지만 통행로는 타일로 마감을 해 손 타는 것을 줄였다. 그들의 것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그들 습성대로 양탄자에 누운 상태에서 시선을 비교적 아래로 시작하여 바라 봐야 한다. 나도 곳에서 쪼그리고 앉아 내부를 바라보았더니 또 느낌이 틀리다. 채광이 오묘하게 퍼져 신비스러움을 더하는 것만 같다. 이는 그들의 소재에서 얻으려하였던 느낌의 상상과도 잘 부합된다. 가만 아라베스크 문양으로 장식된 천장을 바라다보거나 벽을 보면 큰 우주의 세계에 들어온 상상이나 돌고 도는 어지럼증을 유발한다.
그것이 바로 리드미컬한 반복으로서 나타낸 아라베스크 문양의 전형으로서 여타 조형적 예술과의 차이가 아니겠는가 싶다. 시선을 구속하려 하지 않고, 흐르는 물이나 밀밭에 몰아치는 바람 혹은 내리는 눈송이, 또는 굴뚝위에서 보이곤 하는 불꽃들을 볼 때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상상의 세계로 향하게 하며, 사고와 상상의 모든 제한과 집중으로부터 우리의 시선을 자유롭게 한다. 즉 아라베스크는 우리내부에서 어떤 고정관념이 아닌, 단지 존재상의 상태, 내부 생명력과 조합된 평온한 느낌을 생기게 해준다. 그러니까 아라베스크는 주관과 의식간의 교차와 상상에 그 기원을 둔 추상적 예술이며, 자각의 교훈에 따르는 예술이라 할 수 있다. 아라베스크는 그 묘목의 파종으로부터 성장했고, 완벽하게 표현된 형태와 빈 공간으로 남겨진 것들 사이에서의 균형이라는 순수한 리듬의 법칙에 따른다.
이 궁전의 아라베스크는 추상적인 야자 잎을 기하학적 문양으로 짜 맞춘 꽃들과 조합되었으며, 불꽃, 자스민 꽃의 개화 그리고 눈송이 모양은 신묘한 수학의 영원한 멜로디와 함께 어우러져있다. 더욱이 종교적 시구의 구절이 문양들 내에 흩뿌려지거나 뒤얽혀있으며, 뾰족한 아치는 마치 촛불이 피어오르는 것처럼 형상화 하였다. 어우러지기도 하고 펼쳐나가기도 하는 기하학적 장미와 별들은 이슬람 정신의 정수를 그대로 반영한다. 장미와 별들은 모든 공간, 존재, 우주의 중심인 ‘신성한 진실(divine reality)’을 표현하는 가장 고결한 상징이며, 다른 어떤 물건 혹은 존재도 이 신성함에 근접할 수 없으며 다만 그 이미지에 근접할 뿐이다. 그런 까닭에 이것은 무한을 향하여 중심에서 또 중심으로 반영되어졌으며 존재의 통일은 두 가지 방식으로 레이스 문양에 표현되었다. 이러하듯 표현된 아라베스크의 추상적인 형태로 인하여, 이 예술적인 형태는 때때로 “비인간화”라는 말로서 언급되어지나, 사실 아라베스크는 인류에게 우리의 존엄성을 측정할 틀을 제공하고 있다고 보아야한다.
이 왕궁의 치장 벽(STUCO)은 이슬람 예술의 정수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투코가 무른 매질이라는 사실은 더 튼튼한 재료가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깎아내려선 안 된다. 축조공은 벽체에 돌을 사용하는 것을 배제하고, 벽돌이나 나무, 석고 등을 사용해 공기가 흘러 유해한 요소를 흡수하고, 습한 계절의 불유쾌한 변화에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여 장식하는 편을 택하였다. 일종의 항아리가 숨을 쉬게 하는 것과 같은 이치를 말한다. 그러면서도 경제성이나 작업의 속도적인 측면의 이유도 어느 부분은 작용되었다. 짐작하겠지만 스투코 작업(치장 벽토)은 돌에 비하여 융통성 있는 작업으로 보수하기도 더 쉽다. 그런데 그들이 벽체에 사용한 무늬가 무엇을 상징하는지에 대해선 파인애플이나 몇몇의 식물을 제외하고는 판독하기가 어렵다. 그 외 종종 자주 반복되어 사용한 것이 조개껍데기 같은 것들인데 이는 통상 물의 상징을 의미하며 이는 이슬람이 아니고서도 기독교에 이르기까지 항상 생명과 다산 그리고 정화의 의미로서 취급되어 사용되던 것이다.
이 왕궁의 두 자매 방에서 본 Mocarabes(종유석)은 거의
환상이라 할 것이었다. 보석이 주렁주렁 열려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은하계가 장엄하게 펼쳐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작게 보아서는 벌집을 형상화
한 것도 같이 보인다. 무슬림의 전통에 의하면, 히라에 있는 유명한 동굴에서 대천사 가브리엘로부터 직접 얻은 코란에서 마호메드는 영감을 얻었고,
그 동굴은 그가 그의 적으로부터 도망을 위한 피난처였다고 전한다. 거미줄은 그의 추적자로부터 그를 찾기 어렵게 만들기 위해서 신비롭게 동굴
입구에 뒤덮여 있었고, 그 후로 부터 이 동굴은 무슬림의 순례여행을 위한 중요한 장소가 되어 왔다. 이 성지순례에 기인하여, 종유석은 중요한
장식의 요소가 되었고, 종교적인 함축이 스며들었으며, 전 세계 이슬람들을 통하여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전통이 되었다. 그러기에 종유석의 사용은
이슬람 세계에서는 아주 넓게 사용되고 있으며 , Isphahan 같은 도시에서 아주 훌륭한 건축적인 광채가 빛나는 단계에 까지 이르게 한 천장
모습이 있기도 하다.
이 왕궁의 천장은 이슬람 목공의 최고정점을 보여준다. 7개의 동심원과 화려한 종유석 돌기로 둘러싸인 지붕은
8,017개의 나무 조각으로 엮여있다고 한다. 대단한 정교함이고 이를 반듯하게 차려 옷을 입혀 모양을 낸다 싶으니 참으로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것만 보면 천체를 들여다보는 것 같다. 그 천장에 새겨진 7개의 동심원과 화려한 종유석이 모두들 아름답다 말하지만 종교적 의미가
담겨져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지 싶다. 나 역시도 돌아와 그 휘황찬란한 형상에 대해 조금이라도 알아보자 하여 얻은 지식이다. 원래 이
천장에 사용된 색상의 순서는 하얀 색, 붉은 색, 호두 색, 옅은 초록, 다시붉은 색에 녹색 그리고 마지막으로 또 다른 붉은 것이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한다.
천장을 지지하는 골격 둘레에는 “7개의 천국을 창조한 자는 자비로운 것을 창조하는데 어떤 불화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하는데 이 글귀는 우리에게 천장이 이슬람 믿음의 일곱 천국을 나타낸다는 것을 설명하고 있음을 알게 해 준다.
이 지구 중심적 관점은 평평한 지구를 별들과 은하수를 지탱하는 생명의 나무뿌리에 묻혀 진 낙원으로 둘러싸인 7개 천국으로 시각화 하였다.이
믿음은 대천사 가브리엘과 함께 예언자가 백마를 타고 천국에 이른 전설의 여행에서 기인한 것이라 한다. 이 일곱 천국은 Ibn Abass에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다고 한다. 처음 에머랄드를 만들고, 그다음 붉은 진주, 그다음 루비, 네 번째로 백은, 다섯 번째로 금, 여섯 번째로 백
진주, 마지막으로 밝은 빛을 만들었으며 Mocarabe 돌기는 천국을 나타낸다.
참으로 오묘한 느낌을 담아낸 천장이 아닐 수 없다. 저런 뜻이 담긴 천장인 줄 내가 어찌 생각이나 했겠는가. 나는 요즘 여행은 아는 만큼 값지고 뜻이 있다는 말을 실감한다. 새로운 분야의 것을 파고들다 보니 어렵기는 하지만 그래서 알게 되는 재미가 제법 있다. 아람브라 궁전의 추억이 될 만한 길잡이 공부에서 시작한 책이 자꾸 쌓여 그 새 20권에 가깝고 자꾸 생기는 호기심은 밤잠을 설치게 한다. 덕분에 알아둔 것도 꽤 많다. 이탈리아에 왜 유독 명품이 많은 것인지 의아하게 생각하였었는데 지난여름 로마를 다녀와서 그 의문의 반쯤은 해갈이 되었다. 그들의 지갑이나 핸드백의 디자인이나 가구 제품의 구성은 클래식하면서도 독특하여 세련되고 참신하다. 번뜩이는 추상이지만 결코 그 추상은 상상에서 얻어진 것만은 아니란 것을 알 것 같았기 때문이다. 가꾼 문화적 환경이 소중하다는 것을 그래서 절실히 느낀다. 그래서 우리 고유의 것 또한 예사로이 볼 것이 아니란 생각을 하게도 된다. 어쨌거나 아람브라 궁전이 내게 멋진 추억과 지식을 남겨주어 뜻 깊고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