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
1445년에 피렌체에서 태어난 보티첼리는 그때 피렌체를 지배했던 메디치가의 지배 사상을 따랐다. 인간은 신이 만들었으므로 신에게로 인도하는 신비로운 통로가 인간이다. 인간의 모습에는 천상적인 이상(이데아적인 모습)과 세속적인 모습이 조화롭게 어울려 있다고 했다. 보티첼리가 그린 비너스 상에도 이상적인 모습과 세속적인 모습이 잘 조화되었다고 보았다.
1485년 경에 메디치가의 주문을 받고 그린 ‘비너스의 탄생’은 그리스 신화를 소재로 삼았다. 사랑과 미의 여신인 비너스가 태어난 지 얼마 안 되어서 거대한 조개껍질에 실려 해안가로 밀려오는 장면을 그렸다. 신화에 의하면 티탄족 크로노스가 아버지 우르노스를 거세하여 잘려진 성기를 바다에 던졌다. 바다에 거품이 일어나면서 비너스가 태어났다. 비너스는 조개를 타고 키르로스의 파포스에 도착했다고 한다. 그 순간을 그린 것이다.
조개가 해안에 도착할 수 있도록 두 명의 바람의 신이 입으로 바람을 불어주고 있다. 해안에는 봄을 의인화한 젊은 여인 플로라가 꽃문양이 수놓인 원피스로 비너스를 감싸려 하고 있다. 신화를 그리는 것은 주로 장식적인 목적이었다. 그러나 보티첼리에게 비너스 탄생을 주문한 후원자는 당시에 유행했던 신플라톤주의와 결합시키려 했던 최고의 지식인 집단이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그려진 비너스의 탄생은 영적인 속성과 감각적인 속성을 잘 조합하여 이상적인 인간상으로 표현했다.
그림의 구도를 보면 비너스를 영적인 속성과 인간 본성의 사이에 두었다. 왼편에는 서로 껴안고 있는 두 여인이 있다. 감각적인 속성의 표현이다. 생식력의 상징을 주변에 흩날리는 꽃으로 표현했다. 오른 쪽 여인은 순결한 여인상으로 표현했다. 비너스는 우아와 고상함의 전형이다.
보티첼리의 작품은 선적으로 표현하여 우아함을 드러내는 것이 특징이다. 보티첼리의 그림이 섬세한 이유는 짧은 기간이나마 금세공업자에세거 도제생활을 하였기 때문이다. 인물상들은 조금은 길어진 감이 있다. 보티첼리의 인물상에는 예외 없이 감미로움과 멜랑코리한 분위기가 감돈다.
보티첼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미술에 나타난 기법들, 원근법이라든지 하는 데는 관심이 없었다. 자신의 작품에 신비적이고, 내세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도록 했다.
그림을 좀 더 상세히 들여다 조가비 아래에 출렁거리는 물은 물거품에서 탄생했음을 보여준다. 아프로디테라는 이름도 아프로스(거품)에서 유래했다. 그래서 여인의 육체미는 거품처럼 덧없다고 해설하는 사람도 있다.
오른쪽에서 비너스를 맞이하는 인물의 달의 여신 루나의 딸들 중 한 명인 호라이 이다. 계절의 신인데 여기서는 봄을 상징하는 신으로 그려졌다.
르네상스 인본주의적 이상에 부합하는 이 작품은 세련미의 극치를 보여주는 우아한 형태가 조화를 이룬다. 보티첼리는 선의 리듬을 이용하여 우아하게 표현했다. 선의 흐름은 예술에서 가장 음악적인 요소가 강하다. 고대 조각이 무표정하다면, 보티첼리의 여인상은 우수에 젖어 있다.
보티첼리의 비너스는 비록 선의 멜로디로서 자연의 원초적인 충동을 초월한 경지까지 끌어 올렸다. 그러나 감각의 지배도 거부하지 않고 있다. 비너스의 육체에 나타나는 유연한 흐름은 어떤 환희를 나타내는 상형문자와도 같다. 이처럼 여인상의 관능적인 성격은 보티첼리의 다른 그림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보티첼리의 여인상은 레오나르드 다 빈치나 나파엘로의 여인과는 다르다. 르네상스 고전주의 화가들이 엄격한 사실주의로 그린 여인들은 조금 딱딱하여 매혹적인 여인이기보다는 어머니상으로 느껴진다. 보티첼리는 여인의 목을 비현실적으로 길게 그렸고, 왼쪽 어깨의 기울기는 해부학적으로 불가능한 각도로 그렸다. 사실적인 표현보다는 미적인 표현을 더 우선하였다. 여성적으로 표현하려 했다.
보티첼 리가 여인을 아름답게 그린 이면의 이야기도 전해온다. 보티첼리는 피렌체 최고의 미녀인 사모네타를 보았다. 사모네타는 이미 피렌체의 최고의 권력자이고, 보티첼리의 후원자인 메치치 가문의 줄리아노의 정혼녀였다. 감히 사랑을 말할 수 없는 사람이었으나 끙끙거리면 참다가, 도저히 참을 수 없었어 사랑을 고백하기로 마음 먹었다. 그때는 사모네타는 이미 폐결핵으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이후로 보티첼리의 그림은 그녀가 모델이 되어서 나타났다. 그래서 최고의 아름다움으로 표현하려 했으므로 비사실적인 표현을 했다고 한다.
매혹적인 여인상을 그린 이 그림은 종교기관(성당이나 수도원 등)을 장식하는 그림일 수는 없다. 메디치가의 시골 별장 건물을 장식하기 위해서 그렸다고 한다. 이것은 부르주아지 계급이 이미 사회의 지도자 계층으로 떠올랐음을 의미한다. 메디치 가문은 상인 출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