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발/김승희
딸아, 보아라,
엄마의 발은 크지,
대지의 입구처럼
지붕 아래 대들보처럼
엄마의 발은 크지,
엄마의 발은 크지만
사랑의 노동처럼 크고 넓지만
딸아, 보았니,
엄마의 발은 안쪽으로 안쪽으로
근육이 밀려
꼽추의 혹처럼
문둥이의 콧잔등처럼
밉게 비틀려 뭉그러진 전족의
기형의 발
신발 속에선 다섯 발가락
아니 열 개의 발가락들이
도화선처럼 불꽃을 튕기며
아파아파 울고
부엉부엉 후진국처럼 짓밟히어
평생을 몸살로 시름시름 앓고
엄마의 신발 속엔
우주에서 길을 잃은
하얀 야생별들의 무덤과
야생조들의 신비한 날개들이
감옥창살처럼 종신수로 갇히어
창백하게 메마른 쇠스랑꽃 몇 포기를
弔花조화처럼
우두커니 걸어놓고 있으니
딸아, 보아라,
가고 싶었던 길들과
가보지 못했던 길들과
잊을 수 없는 길들이
오늘밤 꿈에도 분명 살아 있어
인두로 다리미로 오늘밤에도 정녕
떠도는 길들을 꿈속에서 꾹꾹 다림질해 주어야 하느니
네 키가 점점 커지면서
그림자도 점점 커지는 것처럼
그것은 점점 커지는 슬픔의 입구,
세상의 딸들은
하늘을 박차는
날개를 가졌으나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날지 못하는구나.
세상의 어머니는 모두 착하신데
세상의 여자들은 아무도
행복하지 않구나.....
===============
김승희 시인님께서 태어나신 1950년대에는
한국에서 여성이 직업을 갖기가 매우 어려운 시대였지요.
"엄마의 발"이라는 이 시를 통해서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정체성을 잃어가는 여성,
즉 딸에게는 자유롭게 살아가기를 희망하는 시인의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초등 6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여로"라는 연속극을 흑백 TV로 보며
많은 어머니들의 눈물을 흘리게 했지요.
추석이나 설날에 음식은 당연하게
여성들의 몫이라는 것에서
세상이 변하여 서로 서로 도우며
함께 준비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 어머니들의 일이 대부분이기에
편하게 쉬어야 하는 연휴가 더 분주한 날들이지요.
쉬어 가시며 한가위 준비하시고,
온 가족이 도란 도란 옛 이야기도 하시면서
즐겁고 흥이 넘치는 날 되시기를 빕니다.
=적토마 올림=
첫댓글 김승희 시인님에 대한 검색을 간략하게 적어 봅니다.
1952년 광주에서 태어난 김승희는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의 박사 과정을 수료한다.
『문학사상』 편집부 등에서 일한 바 있는 그는 1995년에 들어 미국으로 건너간다.
그는 1996년부터 1997년까지 캘리포니아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에서,
1998년 한 해 동안은 같은 학교 어바인 캠퍼스에서 한국 문학을 강의한다.
1999년에 귀국한 그는 현재 서강대학교 국문과 명예 교수로 재직중이며,
2021년 청마문학상을 수상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