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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眞如의 法無礙에 譬喩함
譬如眞如가 於法無礙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周行一切호대 而無所礙하며 譬如眞如가 爲衆法眼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能爲一切衆生作眼하며 譬如眞如가 性無勞倦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修行一切菩薩諸行호대 恒無勞倦하며 譬如眞如가 體性甚深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其性甚深하며 譬如眞如가 無有一物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了知其性이 無有一物하며 譬如眞如가 性非出現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其體微妙하야 難可得見하며 譬如眞如가 離衆垢翳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慧眼淸淨하야 離諸癡翳하며 譬如眞如가 性無與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成就一切諸菩薩行하야 最上無等하며 譬如眞如가 體性寂靜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善能隨順寂靜之法하며 譬如眞如가 無有根本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能入一切無根本法하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법에 걸림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곳에 두루 다녀도 걸림이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여러 가지 법의 눈이 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의 눈이 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이 피로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 보살의 모든 행(行)을 수행(修行)하면서도 항상 피로함이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體性)이 매우 깊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그 성품이 매우 깊으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한 물건도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그 성품이 한 물건도 없음을 알 것이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이 출현하는 것이 아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그 자체가 미묘하여 볼 수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때를 여의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지혜의 눈이 청정하여 모든 어리석음을 여의었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이 더불어 같을 이가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보살의 행을 성취하여 최상이므로 같을 이가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고요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고요한 법을 잘 따르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근본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온갖 근본이 없는 법에 들어가느니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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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眞如)의 법무애(法無礙)에 비유(譬喩)함 : 수승하게 흐르는 진여의 덕의 열 가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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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어법무애(於法無礙)인달하야 : 어법에 무앤달하야. 이것도 무애인달이라고 읽지 않는다. 컴퓨터에 ‘ㄴ달하야’ 라고 전환이 잘 안되어서 토를 잘 못 단 것이다. 무앤달하야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주행일체(周行一切)호대 : 일체 세계에 두루두루 돌아다니되
이무소애(而無所礙)하며 : 아무 것도 걸릴 바가 없다. 철저히 선행을 한다면 그 사람이 뭐가 걸리겠고 어디 간들 걸릴 것이 있겠는가. 그 사람의 선행은 다이아몬드 덩어리처럼 빛이 난다. 어디를 가더라도 환영을 받는다. 여기서 부르고 저기서 부르고 곳곳에 다 환영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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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위중법안(爲衆法眼)인달하야 : 여러 법의 눈이 되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능위일체중생작안(能爲一切衆生作眼)하며 : 일체 중생의 안목이 된다.
선근이 일체중생의 안목이 되는 것이다.
하늘을 찌르는 고준한 선(禪)도리는 아무 소용이 없다. 선행은 바로 옆 사람에게 미치는 일이고 일체 중생, 일체생명에게 영향을 끼치는 일이다. 그래야 그것이 진정한 안목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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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성무노권(性無勞倦)인달하야 : 성품에 하나도 수고롭거나 게으름이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수행일체보살제행(修行一切菩薩諸行)호대 : 일체 모든 보살행들을 수행하되
항무노권(恒無勞倦)하며 : 항상 노곤함이 피곤함이 없다. 수고롭거나 게으름이 없다는 말이다. 진정한 선행에 무슨 게으름이 있겠는가. 진여자체도 마찬가지만 진정한 선행에는 그런 것이 있을 수가 없다. 참 좋은 표현이다.
‘우리의 오온과 육근이 오로지 나다’ 라고 집착하고 사는 우리의 차원에서는 얼른 납득이 가지 않는 말이다. 그러나 여기서 한 생각만 돌이킨다면 이런 것들이 전부 우리들의 살림살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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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또 비여진여가
체성심심(體性甚深)인달하야 : 체성이 깊고 깊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기성심심(其性甚深)하며: 그 성품이 매우 깊으며. 선행보다 더 깊은 상태는 없다.
아무리 고준한 이야기를 해봐야 손에 잡히는 것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뭔가 드러나야 되고 손에 잡히는 것이 있어야 한다. 만 생명을 위해서 진정한 선행을 베푸는 일이 십회향품이니까 이런 내용들이 꽉 차서 여러 수백 수천 번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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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무유일물(無有一物)인달하야 : 한 물건도 없듯이 진여 진여하지만 그 어떤 고정불변하는 실체로써의 한 물건이 없다.
불교에는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여기에 한물건이 있으니 머리도 없고 꼴도 없고 형상도 없고 이름도 없다’ 등등 한물건에 대한 별별 설명들이 다 있다.
그런데 진여는 한물건도 없으면서 한 물건도 없는 것으로써 물건을 삼는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하면 여러분들이 한마디도 안놓치고 다 듣는다. 뭐가 그렇게 하는가? 바로 진여자성이 하는 것이다. 진여가 하는 것이니 그러면 진여를 내놔 봐라 하면 없다. 없는 것으로써 진여는 몸을 삼는다.
무아(無我)로써 위아(爲我)라. 진여는 아가 없는 것으로써 참나를 삼는 것이다.
위파사나 같은 초기불교 하는 사람들은 죽었다 깨놔도 못알아 듣는 말이다.
무아로써 위아다. 아(我)가 없는 것으로써 아를 삼는 것, 이것이 대승불교와 소승불교의 설명의 차이고 안목(眼目)의 차이다.
이 공간에 생명체가 수억만 수조의 생명체가 꽉 차있다는 사실 요즘 사람들은 다 안다.
온갖 미생물이 꽉 차 있다. 오늘 같이 이렇게 따뜻한 날씨에 물 한 그릇만 떠놓고 한 3일만 지나 보면 미생물이 부화를 하고 몸뚱이가 확대된다. 전혀 눈에도 안보이던 것들이 한시간 한시간 지날 때마다 몇 십 배 몇 백배로 불어난다. 그 미생물이 몸으로 불어나서 오늘날 우리 사람 몸이 불어나듯이 불어나는 것도 금방 여기서도 확인가능한 일이다. 그렇게 확실하게 있는 것을 어떻게 없다고 할 수 있겠는가. 진여를 두고 하는 비유로써는 너무 그 비유가 미약하지만 쉽게 이해하는 한 방법으로써 그런 이야기도 가능하다는 것이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요지기성(了知其性)이: 그 성품이
무유일물(無有一物)하며: 한 물건도 없음을 요지한다. 한 물건도 없는 것으로써 물건을 삼는다. 전체를 삼는 것이다.
이런 것은 우리 대승불교에 심취하고 대승불교의 눈을 가진 사람들에게는 너무 근사하고 신기한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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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성비출현(性非出現)인달하야 : 그 성품이 어디에 나타나지 아니한다.
진여 진여하지만 진여가 ‘내가 진여입니다’ 하고 딱 부러지게 어디 나타나는 일이 없다. ‘내가 진여입니다’‘이것이 진여입니다’ 하고 나타나는 일이 없다. 성품의 출현이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기체미묘(其體微妙)하야 : 그 체가 미묘해서
난가득견(難可得見)하며: 난가득견이다. 무엇을 가지고 선근이라고 하는가? 아무리 선행을 많이 했다 하더라도 또 그것을 하나하나 분석해서 찾아들어가 보면 선행이라고 할 것이 없다. 예를 들어서 누가 손으로 돈을 한 일억을 잡고 가난한 사람에게 건네줬다면 손이 선행인가? 돈이 선행인가? 받는 사람이 선행인가?
범행품에서 우리가 공부했다.
범행을 다 그런 식으로 이야기 했다.
무엇이 청정한 행이냐? 계(戒)를 받을 때 우리가 이야기 하고 외우고 하는 것이 범행이냐? 그야말로 1억을 내가 누구에게 건네줬다면 1억을 잡은 내 손이 선행인가? 돈다발이 선행인가? 저쪽에서 받는 사람이 선행인가? 그걸 가지고 그 사람이 좋은 데 쓰는 것이 선행인가? 그 무엇도 선행의 실체는 없다. 그러면서 꽉 차 있는 것이 또한 선행이다. 여기는 없는 입장으로 이야기를 하고 있다.
그 성품이 한 물건도 없으며 또 미묘하여 가히 얻어보기가 어렵다고 하였다. 어떤 실체가 없으니까 얻어보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다. 또 너무 크게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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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이중구예(離衆垢翳)인달하야 : 이중구옌달하야 여러 가지 때와 눈가림, 눈 어둡게 하는 가림을 떠났듯이, 진여가 그런 것이 있을 까닭이 있겠는가? 때와 눈을 가리는 일들이 있을 수가 없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해서
혜안청정(慧眼淸淨)하야: 지혜의 눈이 청정해서
이제치예(離諸癡翳)하며: 어리석음과 가림, 우리 마음을 가리고 있는 것을 다 떠났다.
선근에는 선행에는 그런 장애가 있을 수가 없다. 우리가 조금만 생각해 봐도 진정한 선행에는 어떤 장애도 있을 수가 없고 어떤 어둠이나 어떤 때도 있을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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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성무여등(性無與等)인달하야 : 성품이 더불어 같을 이가 없는 것과 같이, 오직 진여만이 진여일 뿐이다. 그 외 다른 것과 비교해서 비슷하다고 이야기 할 수가 없다.
내가 지난 시간엔가 그런 말을 했다. 우리 진여자성이 위대하기는 한데 이 진여자성을 두 개를 가지고 있다손 치더라도 선행하는 것과는 비교를 못한다. 진여가 두 개가 있다 하더라도 선행 하는 것 보다는 못하다. 진여를 두 개나 가지고 있더라도 선행이 없으면 말짱 황이고 아무 쓸모없는 것이다. 진여불성을 일만 개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선행을 하지 아니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그것을 깊이 생각해야 된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성취일체제보살행(成就一切諸菩薩行)하야 : 일체 모든 보살행을 성취해서, 선근회향은 일체 모든 보살행을 성취해서
최상무등(最上無等)하며 : 더불어 가장 높다. 그래서 더불어 같을 이가 없다. 최상무등이다. 가장 높아서 같은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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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체성적정(體性寂靜)인달하야: 체성이 적정하다. 고요하다. 진여의 체성은 고요해서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선능수순적정지법(善能隨順寂靜之法)하며 : 적정한 법을 잘 능히 수순한다.
진정한 선행은 세상 떠들썩하게 그렇게 선행하는 것이 아니다. 적정지법을 잘 능히 수순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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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무유근본(無有根本)인달하야 : 진여는 근본이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능입일체무근본법(能入一切無根本法)하니라 : 능입 일체 무근본법이니라. 선근회향도 근본이 없는 법에 능히 들어간다
계속해서 진여를 비유해서 선근회향을 이야기 했는데 진여의 공능만 딱 추려가지고도 아주 좋은 논문이 될 수가 있고 진여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다.
또 선근회향이라고 하는 내용만 추려서 선근회향에 대해서 설명을 해도 아주 훌륭한 설명이 된다. 진여에 대한 설명 선근에 대한 설명 이 두가지 설명이 아주 뛰어난 내용이라고 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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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에 대한 설명으로, 금강경 오가해 일물서(一物序) 서문에서는 ‘유일물어차(有一物於此)하니’ 라고 하면서 여기 말하는 진여, 진여자성, 한물건, 한마음에 대한 명문으로 설명을 했다.
또 서산대사의 선가귀감에도 ‘유일물어차하니’ 이렇게 시작한다.
그런 글들이 아주 많다. 선사들이 특히 그 한물건을 가지고 논다. 평생 한물건 가지고 노는 것을 보고, 완주가(翫珠歌) 완주음(翫珠吟)이라고 해서 그 구슬을 완상한다, 가지고 논다고 하였다.
우리의 진여불성을 심주(心珠)라고 지칭한 것이다.
완주음, 완주가라고 하는 유명한 시형식을 빌어서 표현한 선사들의 글이 참 좋은 것이 많다. 그 한물건에 대한 이해는 아주 해박하고 스스로 체득한 것들이다. 체득하지 아니하면 그런 소리가 안나온다. 완벽하게 체득해야 그런 설명이 나오는데 내가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보니 그런 글들도 한쪽에 좀 미진한 부분이 있다. 보살행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늘 이야기 한다. 화엄경 불교 또 가장 우수한 대승불교는 보살행 불교다. 보살행을 위주로 하는 불교다. 그런 입장에서 보니까 옛날에는 그냥 좋다고만 했지 거기에 대한 어떤 이견은 없었는데 지금 화엄경을 공부하고 보니 ‘아 그거 한 편 좋은 점은 있지만은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정말 언제나 필요한 것은 선근회향이다’라는 생각이 든다. 항상 필요한 것은 선행과 보살행이다. 무엇보다도 보살행이 제일 필요로 한 것이고 보살행을 위주로 해야 가장 바람직한 불교다.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나는 그런 입장이 되었다. 선불교가 정신적으로나 소견으로나 고준하기는 하지만 보살행이 결여되어 있다.보살행이 조금 있다고 해도 그저 백분의 일, 천분의 일 정도 있을까 말까 하게 표현되어서 아쉽다.
초기불교는 말할 것도 없다. 초기불교는 순전히 출가해서 자기 한 몸 잘 다스리는 불교이니까 그에 대해서는 일찍이 대승불교에서 크게 비판을 받은 바도 있으므로 재차 이야기 할 것은 없다.
그러나 보살행은 쉽지 않다. 참 어렵다.
참선은 우리가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도 있고 위빠사나 호흡 관찰하는 것도 얼마든지 이야기 할 수 있어도 ‘단 돈 만원 네 돈을 시주해라’라고 한다면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니까 대승불교가 어려운 것이고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근래에 동남아에 우물을 파주고 자전거를 갖다 주고 학용품을 사주고 학교를 지어주고 하는 일들을 너무 고맙게 생각하고 그런 것이 진짜 불법이고 보살행이다 라고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아프리카에 근래 들어 사막화가 급속도로 되어 간다. 땅이 사막이 되어서 일년에 없어지는 마을이 몇 개씩이나 된다. 우물을 팠는데 물이 안나오니까 마을이 딴 데로 옮기면서 없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생활이 어려운 곳이 많다.
우리 한국 불교도 그런 것에 눈을 뜨고 도우려고 하는 보살들이 근래에는 많이 있다.
참 좋은 현상이다.
그래 그러면 너는 무엇을 했느냐?
나는 법공양을 위주로 하고 근년에는 한 4-5년 전부터 <연탄불공회>를 부르짖어서 작년부터 연탄불공회가 시작하고 잘 돌아가고 있다. 요즘은 연탄을 많이 때지 않는 계절이니까 돈이 들어오는 대로 모아서 연탄이 많이 필요한 가을부터 초겨울에 연탄을 사서 배달을 하는 일을 하려고 생각하고 있다. 나 혼자 힘으로는 태부족한 일들이지만 그런 것을 도외시해서는 그 또한 아무리 입으로 보살불교 대승불교를 하더라도 역시 소승불교에 그치고 만다는 생각이 든다.
스님들은 아무리 작은 절을 운영하고 있더라도 그 지역사회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일을 해야 된다. 특히 부처님 오신 날을 맞이하면서 부처님 오신 뜻은 바로 지역사회에 내 손이 미치는 곳에, 조금이라도 내 도움을 필요로 하는 곳을 돕고 사는 일이고, 이것이 진정 부처님 오신 뜻을 세상에 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해야 된다. 그것이 바람직한 불교이고 대승불교다.
(11) 眞如의 體性無邊에 譬喩함
譬如眞如가 體性無邊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淨諸衆生호대 其數無邊하며 譬如眞如가 體性無着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畢竟遠離一切諸着하며 譬如眞如가 無有障礙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除滅一切世間障礙하며 譬如眞如가 非世所行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非諸世間之所能行이며 譬如眞如가 體性無住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生死가 皆非所住며 譬如眞如가 性無所作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所作을 悉皆捨離하며 譬如眞如가 體性安住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安住眞實하며 譬如眞如가 與一切法으로 而共相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與諸菩薩로 聽聞修習하야 而共相應하며 譬如眞如가 一切法中에 性常平等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於諸世間에 修平等行하며 譬如眞如가 不離諸法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盡未來際토록 不捨世間하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그지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청정케 하는 그 수효가 그지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집착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필경에 일체 모든 집착을 멀리 여의었느니라.
비유컨대 진여는 장애할 것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의 장애를 소멸하였느니라.
비유컨대 진여는 세간에서 행할 바가 아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에서 능히 행할 바가 아니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머무름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생사의 머무르는 바가 아니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이 지은 것이 아니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온갖 지은 것을 모두 떠났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체성이 편안히 머물 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진실한 데 편안히 머무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법과 서로 응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보살들의 듣고 익히는 것으로 서로 응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법에서 성품이 항상 평등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에서 평등한 행을 닦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법을 여의지 아니하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미래제(未來際)가 다하도록 세간을 버리지 아니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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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眞如)의 체성무변(體性無邊)에 비유(譬喩)함 : 섭수함이 없는 진여의 덕의 열 가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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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성이 무변하다 가이 없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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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유컨대 진여가
체성무변(體性無邊)인달하야 : 체성이 무변하야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해서
정제중생(淨諸衆生)호대 : 모든 중생을 청정하게 하되 훌륭하게 한다는 말이다.
기수무변(其數無邊)하며 : 그 중생 수가 끝이 없고 청정하게 하는 일 또한 끝이 없다.
그것이 진정한 선근회향의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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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체성무착(體性無着)인달하야 : 체성이 어디에 집착이 없듯이, 진정한 진여는 정말 집착이 없다. 우리의 조그마한 감정이 집착을 잘하지 진여는 그렇게 집착을 안한다. 집착을 안하도록 되어 있다. 집착하면 원만하지가 않고 집착하면 넓고 크지가 못하다. 대방광불이 안된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필경원리일체제착(畢竟遠離一切諸着)하며 : 끝까지 일체 집착을 널리 떠난다. 진정한 선근회향은 집착을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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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무유장애(無有障礙)인달하야 : 장애가 없듯이, 진여는 장애가 없다. 시간에 장애가 없고 공간에 장애가 없다.
이 몸뚱이는 밧줄로 천 개 만 개 묶이고 쇠사슬로 묶여도 몸은 장애를 받지만 진여는 장애를 안 받는다. 몸을 장애하면 할수록 우리 진여는 더 자유로와져서 훨훨 난다.
아무리 구속해 봐도 그렇다. 그런 이치를 알고 우리가 사람을 상대해야 된다.
무조건 윽박질러서 구속하려고 하면 더 훨훨 날아가 버리고 더 잘 날아간다. 그것이 진여가 본래 가지고 있는 공능이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제멸일체세간장애(除滅一切世間障礙)하며 : 일체 세간 장애를 다 제멸해 버린다. 소멸해 버린다. 진정한 선근회향은 장애가 있을 수가 없다. 아예 장애가 떠나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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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비세소행(非世所行)인달하야: 세상의 행할 바가 아니듯이, 그러면 세상에 행할 바는 무엇인가? 오온 육근이다. 오온 육근으로 된 우리 아(我)의 아집(我執) 이것이 세상의 행할 바이고 진여는 그렇게 행할 바가 아니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비제세간지소능행(非諸世間之所能行)이며 : 세간의 능히 행할 바가 아니다. 진정한 선근은 세속적인 것을 훌쩍 떠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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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체성무주(體性無住)인달하야 : 체성이 처한 바가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일체생사(一切生死)가 : 일체 생사마저도
개비소주(皆非所住)며: 모두가 머무는 바가 아니다. 진여는 말할 나위 없이 생사를 훌쩍 떠나있고 선근회향도 역시 그렇다. 선근을 얼마나 높이 이야기 하는가? 없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고 진정으로 참된 선근회향은 진여와 같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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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성무소작(性無所作)인달하야 : 성품이 조작이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일체소작(一切所作)을: 일체 소작을
실개사리(悉皆捨離)하며 : 실개사리한다. 일체 소작을 다 떠났다. 조작배기가 있을 까닭이 없다. 조작배기가 있으면 진정한 선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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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체성안주(體性安住)인달하야: 체성이 안주하고 있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안주진실(安住眞實)하며: 진실에 안주한다. 진정한 선행은 진실하다. 거기에 무슨 조건이 있고 무슨 대가가 있고 무슨 뒤에 바라는 것이 있겠는가. 이것을 뻔히 서로 알면서도 ‘대가가 없다’고 그렇게 발뺌하는 것에는 웃음마저 안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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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 비여진여가
여일체법(與一切法)으로: 일체법으로 더불어
이공상응(而共相應)인달하야 : 함께 서로 잘 어울리듯이, 진여가 어울리지 않는 데가 없다. 물과 기름은 따로따로 돌지만 진여는 물에도 어울리고 기름에도 어울리고 불에도 어울린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저 작은 미생물하고도 어울리고 저 멀고 먼 태양의 수천 수만 배 더 큰 저 멀리 은하계에 있는 별들 세계에까지도 함께 어울린다.
멀리도 어울리고 가까이도 어울리는 것이 진여가 가지고 있는 공능이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여제보살(與諸菩薩)로 : 여제보살로
청문수습(聽聞修習)하야: 청문이 수습하야
이공상응(而共相應)하며: 모든 보살로 더불어 그 선근을 청문하고 또 닦아서 서로서로 응한다. 진정한 선근은 어울리지 않는 데가 없다. 그 어떤 사람에게도 다 어울린다.
자제공덕회 이야기를 또 하게 되는데 우리는 북한에 얼마나 많이 갖다 주는가?
그런데 그 사람들이 우리한테 무슨 감사장 하나 보낸 바가 없다.
자제공덕회에서 북한에 얼마나 잘했기에 대만의 자제병원에 가면 북한에서 메인홀에 천하 사람들이 다 보라고 그것도 불상으로, 부처님의 자비가 온 우주를 다 비춘다고 하는 형상을 모자이크로 만들어서 메인홀에 모셔놓았다.
진정으로 선근회향을 하면 그 어디에도 안통하는 데가 없다.
우리는 늘 교육받기를 ‘북한을 나쁜 놈 죽일 놈 살릴 놈’ 하지만 진정으로 선근회향을 한 번도 거기에 한 적이 없다. 늘 조건을 가지고 선행을 했다. 무엇을 줘도 항상 조건을 가지고 했다. 소를 오백마리 오천마리 끌고 올라간다고 야단법석을 떨어도 거기에는 저의가 있고 조건이 있었다. 그러니 줄 때만으로 끝나는 것이다.
그런데 자제공덕회에서는 아무 조건없이 지금 우리가 공부하는 이러한 사상에 맞게 보시를 하였으니까 북한 사람들이라 하더라도 감동을 하는 것이다.
진정으로 선행을 하면 안통할 수가 없다.
뭔가 제대로 안통하면 ‘아 이거 뭐가 끼었다’‘사가 끼었다’‘마가 끼었다’‘무슨 사심이 끼었다’라고 보면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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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일체법중(一切法中)에 : 일체법 가운데
성상평등(性常平等)인달하야: 성품이 항상 평등하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어제세간(於諸世間)에 : 모든 세간에
수평등행(修平等行)하며 : 평등한 행을 닦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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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 진여가
불리제법(不離諸法)인달하야 : 모든 법을 떠나지 않듯이, 진여가 그 어디에도 떠난 바가 없다. 온 우주 법계에 있는 일체법에 다 함께 하고 있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 하야
진미래제(盡未來際)토록 : 미래제가 다할 때까지
불사세간(不捨世間)하니라 : 세간을 떠나지 아니한다.
(12) 眞如의 畢竟無盡에 譬喩함
譬如眞如가 一切法中에 畢竟無盡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於諸衆生에 廻向無盡하며 譬如眞如가 與一切法으로 無有相違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不違三世一切佛法하며 譬如眞如가 普攝諸法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盡攝一切衆生善根하며 譬如眞如가 與一切法으로 同其體性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與三世佛로 同一體性하며 譬如眞如가 與一切法으로 不相捨離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攝持一切世出世法하며 譬如眞如가 無能暎蔽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世間이 無能暎蔽하며 譬如眞如가 不可動搖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一切魔業이 無能動搖하며 譬如眞如가 性無垢濁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修菩薩行하야 無有垢濁하며 譬如眞如가 無有變易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愍念衆生하야 心無變易하며 譬如眞如가 不可窮盡인달하야 善根廻向도 亦復如是하야 非諸世法의 所能窮盡이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법에서 필경까지 다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중생에게 회향함이 다하지 않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온갖 법과 서로 어기지 않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삼세(三世)의 일체 불법(佛法)과 어기지 않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모든 법을 두루 포섭하였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일체 중생의 선근을 모두 포섭하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온갖 법과 더불어 그 체성이 같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삼세 부처님과 체성이 같으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온갖 법과 더불어 서로 떠나지 않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법과 출세간법을 섭수하여 가지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능히 덮어서 가려 버릴 수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간이 능히 덮어서 가려 버릴 수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동요하지 않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마군의 업(業)이 능히 동요할 수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의 성품에 때[垢]가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보살의 행(行)을 닦으매 때가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변역(變易)함이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중생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에 변역함이 없느니라.
비유컨대 진여가 다할 수가 없듯이, 선근의 회향도 그와 같아서 모든 세상 법으로 능히 다할 수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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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여(眞如)의 필경무진(畢竟無盡)에 비유(譬喩)함 : 모든 것과 다르지 않은 진여의 덕의 열 가지 비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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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일체법중(一切法中)에 : 일체 법 가운데
필경무진(畢竟無盡)인달하야 : 필경에 다함이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어제중생(於諸衆生)에: 어제중생에
회향무진(廻向無盡)하며: 회향이 다함이 없다.
그래서 밥 한 그릇 올려놓고 부처님께 절 삼배 하고 내려오면서 ‘온 우주 법계에 있는 모든 중생 자타일시성불도 하여지이다’하는 것이다. 모든 중생에 회향무진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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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여일체법(與一切法)으로: 일체법으로 더불어
무유상위(無有相違)인달하야 : 상이 서로 어김이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불위삼세일체불법(不違三世一切佛法)하며: 과거 현재 미래 그 어느 시대 어느 국토 어느 지역 어느 나라 어느 주의주장을 하는 나라라 하더라도 어기지 아니한다.
진정한 선근은 다 통하게 되어 있다. 과거 현재 미래 일체 불법을 어기지 아니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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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유컨대 진여가
보섭제법(普攝諸法)인달하야: 모든 법을 다 포섭하고 있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 하야
진섭일체중생선근(盡攝一切衆生善根)하며: 일체 중생의 선근을 다 포섭하고 있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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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여일체법(與一切法)으로: 일체 법으로 더불어
동기체성(同其體性)인달하야: 그 체성을 같이 하듯이, 일체법과 같이 있다.
일체법이 그대로 유정무정 유형무형 유상무상 그 모든 것이 진여가 스며있지 아니한 것이 없다. 동기체성인달하야
선근회향(善根廻向)도: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 역부여시하야
여삼세불(與三世佛)로 : 삼세부처님으로 더불어
동일체성(同一體性)하며 : 동일한 체성이다.
선근회향이 그대로 부처님이다. 선행을 잘 하면 그대로 부처님이다.
신부들의 교과서라고 하는 ‘천국의 열쇠’라는 소설을 내가 어릴 때 읽었다.
나쁜 일을 해도 하나님만 믿으면 천국에 간다는 주의주장과 하나님은 모르더라도 선행을 잘한 사람은 천국에 간다는 주장을 가지고 오랫동안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고민할만 하다.
나쁜 일을 좀 해도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사람은 천당을 보장해 놨다고 지금도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천국의 열쇠라고 하는 그 소설에서도 천국에 들어가는 열쇠가 과연 무엇이냐?
하나님을 믿는 것이냐? 아니면 선행을 하는 것이냐? 하는 주제를 다루었다. 그것이 신부들의 교과서다. 거기에서 그렇게 많은 논란을 일으키는데 결론은 ‘선행을 하면 천국에 들어간다. 선행이 천국의 열쇠다’ 하고 결론을 내렸다.
믿는 것이 아니고, 선행이 하나님이다. 양심이 있는 신학자들은 그렇게 이야기를 하고 있다.
여기도 삼세제불로 더불어 동일체성이다. 선근회향은 삼세제불로 더불어 동일체성이다.
부처 불(佛)자를 하나 몰라도 상관없이 선행을 하는 그는 이미 부처다.
이런 불법을 우리가 배워야 된다. 자나 깨나 이런 사상과 이런 이론 속에서 우리가 살아야 된다. 삼세제불로 더불어 동일체성이다. 선근회향이 그렇다. <천국의 열쇠>라는 소설의 주제와 딱 맞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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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비여진여가
여일체법(與一切法)으로 : 여일체법으로 더불어
불상사리(不相捨離)인달하야 : 서로 일체법과 떨어져 있지 않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섭지일체세출세법(攝持一切世出世法)하며: 세상법이나 출세간법이나 전부 다 포섭하고 있다.
공산주의든 민주주의든 진실로 조건 없는 선행을 하면 전부 포섭해서 가질 수 있다.
괜히 저의를 가지고 뭘 주고 조건을 걸고 하니까 지금까지는 한 번도 안통한 것이다.
한번이라도 조건없이 정말 무심으로 여기에서 이야기 하듯이 한 번 줘 봤느냐, 대만에는 그 작은 나라 작은 단체에서 그렇게 진정으로 아무 조건없이 주니까 받는 사람들이 감동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어야 한다.
진여가 일체법으로써 서로 떠나지 않듯이 세출세법을 전부 포섭해서 가진다. 요즘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부분이 참 좋은 법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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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무능영폐(無能暎蔽)인달하야 : 진여를 덮어 가릴 만한 것은 이 세상에 없다. 영폐라는 말은 덮어서 가린다는 뜻이다. 진여에게 그런 것은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일체세간(一切世間)이 : 일체세간이
무능영폐(無能暎蔽)하며: 무능영폐이니라.
이 세상 그 무엇도 진정한 선행을 무시하거나 가리거나 없앨 수 없다. 영폐할 수 없다. 과연 화엄경이다. 이런 말도 다른 경에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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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불가동요(不可動搖)인달하야 : 아무 동요 할 수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일체마업(一切魔業)이 : 일체 마구니의 업이
무능동요(無能動搖)하며 : 무능동요니라.
어떤 마구니의 업도 진짜 진정한 선근 회향은 그를 어찌하지 못하고 동요하지 못한다.
예컨대 석가모니 부처님이 좌선하고 있을 때 처음에 별의별 마가 와서 부처님을 방해하려고 했지만 어찌 하지 못하였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에 그런 것이 나온다. 팔상성도에 마구니를 항복받았다는 수하항마상은 있어도 성도상(成道相)은 없다. 수하항마상 녹원전법상이라 마구니를 항복받고 바로 법을 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그런 것도 우리가 깊이 한 번 생각해 볼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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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성무구탁(性無垢濁)인달하야 : 성품에 때나 더러움이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수보살행(修菩薩行)하야 : 보살행을 따라서
무유구탁(無有垢濁)하며: 때나 더러움이 아무것도 없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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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비여진여가
무유변역(無有變易)인달하야: 변역이 없다. 진여가 변역이 있을 까닭이 없다.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민념중생(愍念衆生)하야: 중생들을 불쌍히 여겨
심무변역(心無變易)하며 : 마음에 변역이 없다. 그것이 진정한 선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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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여진여(譬如眞如)가: 비여진여가
불가궁진(不可窮盡)인달하야: 불가궁진인달하야 진여는 다할 수 없듯이
선근회향(善根廻向)도: 선근회향도
역부여시(亦復如是)하야: 역부여시하야
비제세법(非諸世法)의: 모든 세간 법에
소능궁진(所能窮盡)이니라 : 능히 다할 바가 아니더라. 어찌 다할 수 있겠는가.
진정 조건없는 선행이라면 영원히 빛나는 것이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 하더라도 조건없는 선행은 영원히 빛난다. 진정 무주상보시는 영원히 그 공덕이 있다. 예를 들어서 억만어치를 보시를 해도 주상보시면 그것이 얼마 안가서 소진되지만 1만원을 보시해도 진짜로 무주상으로 했다면 그 만원 보시한 공덕은 영원히 간다. 그런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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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조그마한 감정이 집착을 잘하지 진여는 그렇게 집착을 안한다. 집착을 안하도록 되어 있다. 집착하면 원만하지가 않고 집착하면 넓고 크지가 못하다. 대방광불이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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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根廻向..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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