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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대댁 손자 글방 스크랩 휴가 넷째 날-경주(상)
오대댁(병연) 추천 0 조회 77 08.08.07 11:03 댓글 2
게시글 본문내용

 

2008-08-04 월요일

 

며칠 간 비 내린 뒤끝에 하늘은 맑게 개였는데,

날씨는 찌는 듯하여 한 낮 불어 오는 바람에도

훅하고 열기가 치밀어 오른다.

 

포항 숙소에서 눈을 뜨니 5시 반이 조금 넘었는데 더 잠이 오지 않는다.

놀면 뭐하나 싶어 일어나 샤워를 하고 이 날 답사를 시작했다.

아침은 경주역 앞 해장국 집에서 먹을 생각인데, 지도를 보니 포항에서

경주 들어가는 길목에 양동 마을이 있어 거기부터 들르기로 했다.

 

 

양동(良洞)마을

 

양동 마을에 들어서니 6 채 못되었다.

필자의 외가가 경주라서 이 동네에 대하여 자주 들었는데

한자로 양동(良洞)이지만 보통 부르기는 양자월이다.

끝의 과 같은 말이 아닐까 짐작하나 뭐 책임 질 수 있는 건 아니다.

조선 시대 양동을 양좌동이라고 했으니 양자월을 한자화한 것 같다.

 

양자월-양동에는 원래 경주 손씨네가 살았는데 조선 전기 여주 이씨가

외가를 찾아 들어 온 이래 손(), () 두 성()이 살게 되었다.

 

사위가 처가에서 살고, 외손이 외가에서 크는 것을 요즈음 관념으로는

덜 좋게 보겠으나 조선 초()까지만 해도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일가 집성촌이 생기는 것은 상속제도 곧 적장자 단독상속과 관련이 있다.

딸 아들 차례에 구별 없이 똑 같이 재산을 분배하고 또 사위, 외손으로

집안을 이어나가는 일이 무시로 생기면 자연히 한 마을에 여러 성씨가

있을 수 밖에 없지 않나?

 

우리나라 집성촌(集姓村) 역사는 대개 적장자(嫡長子) 단독상속이 본격화

되는 조선 중기 이후부터다. 조선 중기 이전 분재기(分財記)를 보면

딸 아들 모두 같이 나누는 중서자 균분상속(衆庶子 均分相續)이었다.

 

양자월 동네 여주(驪州 또는 여강(驪江) 이씨 집안에서 회재 이언적(晦齋

李諺迪 1491-1553) 선생이 나왔다. 회재는 영남 사림파의 종장(宗匠)이다.

곧 포은 몽주, 야은 길재, 점필재 김종직 등으로 이어지는 도맥(道脈)

회재를 거쳐 퇴계에 이르러 완성된 것이다. 광해군 때 문묘에 배향되니,

문묘배향(文廟配享)이란 제사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은 정도가 아니라,

당시 국가 이데올로기 계통 한 중심에 서 있다는 뜻이다.

 

 

양동 마을 갈 때는 아침 식전에 잠깐 보리라 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야무진 꿈인가를 동네에 발을 들여놓자 마자 깨달았다.

 

 

위 사진은 한 골짜기를 찍은 것인데 이런 골짜기가 여럿 있다.

그러니 제대로 보자면 하루 통째로 비워야 할 것 같다.

마을 전체를 카메라로 한 번에 잡을 재간이 없어 항공사진으로 본다.

 

 

 

안동 하회 마을이 평지에 늘어서 있다면,

경주 양동 마을은 이 골 저 골 위 아래로 빼곡하게 들어섰다.

 

 

 

위 사진은 마을 입구에 있는 한 비탈을 찍은 것이다.

 

민속마을로 소문나서 버려버린 대표적 사례가 하회마을이 아닐까 한다.

가 보면 핫팬츠에 쓰레파 신은 남녀가 이 집 저 집 아무데나 기웃거리고

집집마다 국수에 부침개를 팔고 있어 온 동네가 음식 냄새로 진동을 하며,

물이 돌아드는 강가 모래 밭에는 라면 봉지에 찌게 국물이 묻혀있다.

70년대 초 양반마을 하회에 대한 기억이 있는 필자는 눈을 감고 싶을 지경이다.

 

양동 마을에도 식당이 몇 개 들어섰다.

 

 

 

아직은 괜찮고 또 관광객이 목 축이고 입 다실 곳도 있어야 한다.

문제는 너무 많아져 먹자 골목에 민박촌이 되는 것이 아주 잠깐이란 점이다.

 

 

위 사진은 강학당에서 심수정으로 내려가는 길인데,

갓 쓴 선비가 금방이라도 걸어 나올 듯하다.

이렇듯 여기는 아직 조선조 사대부의 체취가 남아있다.

양동 마을 어르신네들이 이 분위기를 지켜 주기를 부디 바란다.

 

이쯤에서 다음에 하루 내서 찬찬히 보리라 기약하고

양동마을을 떠나 아침 먹으러 갔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니.

 

 

경주 해장국

 

경주역 근처 팔우정 삼거리에 해장국 거리가 있다.

 

 

 

 

이런 집들이 죽 늘어 섰는데 맛은 평준화 되어 있지 않을까 한다.

경주식 해장국은 콩나물에 묵과 묵은 김치를 다시 국물에 넣고 끓인다.

 

 

 

 

 

 

 

이게 경주 명물이라는데

경주 토박이 집안에서 시집 온 필자의 어머니는-외가의 뿌리를 좇아 올라가면

알천양산촌장 (신라 6촌 중 하나) 알평(謁平) 공까지 닿아 있을 것이다-

우리 형제들에게 왜 해주지 않았을까?

 

아무튼 경주 왔으니 아침 한 끼 할만 하고 값도 헐하여

4천 원 밖에 하지 않으나 두고두고 못 잊을 정도는 아니다.

 

 

 

황남빵

 

팔우정 해장국거리에서 조금 내려가니 경주명물 황남빵집이 있어 들렀다.

 

 

 

그냥 빵집인 줄 알았더니 굉장히 커서 접수하면 번호표 받고 기다려야 할 정도다.

위를 잘라낸 덕에  수시로  염치불구 먹어야 하는 필자는 이 황남빵으로

이날 간식도 하고 집에 와서 냉동실에 얼려 놓고 틈틈이 꺼내 녹여 먹는다.

 

 

 

석장동 암각화

 

경주 관광지도를 보니 동국대 근처에 석장동 암각화가 있다고 써 있다.

이번 답사에 암각화라면 아예 뿌리 뽑을 생각으로 가 보기로 했다.

그런데 관광지도에는 있으나 네비는 찍어도 나오지 않는다.

할 수 없이 동국대 병원을 목표로 가면서 길 가를 유심히 살폈지만 표지판이 없다.

 

동국대 부근 약국에서 길을 물으니 다행히 알고 있다.

가르쳐 준 대로 한길에 차를 세워두고 들판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

개울을 건너고 철길에 올라서니 기차가 빽하고 달려 든다.

황급히 맞은 편 언덕에 붙어 오르지만 억센 풀과 잡목에 가로 막힌다.

 

이건 아니다 싶어 다시 나와 큰 길 따라 두리번 거리며  조금 더 걸으니

그제야 길 가에 석장동 암각화라고 조그맣게 서 있다. 표지판은 모르는

사람을 위하여 중간 중간에 세워야지 마치 아는 사람만 보라는 듯하다.

 

이제 오솔길을 따라 묘지를 몇 개 지나 강가 절벽이라고 짐작되는 곳을

찾아 가니 암각화가 나온다.

 

 

 

현장에 있는 해설판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이 곳은 경주 시가지의 북서쪽으로 서천과 북천이 합쳐져 형산강을 이루는

곳으로 애기청소 라고 부른다. 그 위쪽에 조선시대에 금장대라는 정자가

있던 곳으로 경주팔괴(慶州八怪) 중 하나인 금장낙안(金丈落雁) 에 해당한다.

이 절벽 중턱 바위를 파낸 곳에 암각화가 새겨져 있다”

 

반구대, 천전리, 암장동 세 곳 모두 앞에 강 또는 내가 흐르는 깎아 지른

절벽에 그림이나 글씨를 새겼다. 암각화들을 어떻게 발견하게 되었는지

그 경위는 모르나 이런 공상을 해 본다.

 

발굴한다고 둘러대어 연구비 타내고는 돈 나온 김에 천렵국 끓이기 좋은

물가 너러바위에 둘러 앉아 한 잔 하다 보니 이상한 그림이 있어

이게 뭘까 고민하다가 연구가 시작된 것으로.

 

아무튼 암각화 있는 곳은 필자같이 땀을 뻘뻘 흘리며 가서 볼 것이 아니라

하나 같이 술판 벌이기 딱 좋은 곳에 있다.

 

 

 

 

위 사진은 석장동 암각화에서 형산강에 걸린 다리-동대교(동국대 가는

다리라고 붙인 이름 같다)를 본 것으로 그 반대 위치 곧 카메라 위치가

암각화가 있는 곳이다.

 

 

 

방패모양이라고도 하는 검파형(劍把形) 이외에 사람얼굴. 돌 칼, 돌 화살촉,

꽃무늬, 사람발자국. 짐승, 배 등 30 여 점의 매우 다양한 그림이 등장한다.

그림은 작은 편에 속하고 선 쪼으기와 선 갈기 수법을 주로 사용하고 있다.

청동기 시대 것으로 보이며 풍요와 다산을 기원하던 신앙의례의 장소로 추정된다.

현장안내판에서

 

 

 

석장동 암각화 있는 곳 항공지도

 

이쯤에서 마치고 이날-넷째 날 남은 답사와 사진,

황룡사와 분황사, 괘릉 보고 요석궁에서 점심 먹고

복원하는 월정교 현장 지나 경주 박물관 간 이야기는

글 꼭지를 달리 잡아 올리기로 한다.

따라서 이번 편에 을 붙인다.

 

낮에는 돌아 다니고 밤에 매일 3백장이 넘는 사진을 정리하고

답사기 쓰려니 휴가 때가 사무실 나갈 때 보다 더 바쁘다.

 

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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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8.08.07 22:36

    첫댓글 지역마다 특색이있어서 좋습니다 구경과먹거리는 꼭 필요하지요?황남빵에 군침이도는군요?뫼셔갑니다 전용공간으로요 그리고 궁금하시면 바르게방 한번 들려주십시요^-^늘 감사합니다,乃

  • 08.08.08 07:53

    휴가 잘 보내고 계시는군요 글 잘봤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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