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제12화 술탄의 도시 이스탄불을 찾아서 -2018년 10월 16일-
파르테논 신전 근처의 아테네 Divani Palace Arcopolis Hotel에서 늦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아테네공항으로 가서 터키 이스탄불 행 비행기를
1시단 30분 쯤 타고 이스탄불에 도착하니 11시 30분이 었다
우린 버스를 타고 이스탄불의 돌마바흐체 궁전으로 갔다
1890년 술탄 압둘하마드 2세의 때 만든 시계탑으로 윗면 사방에는 왕실 상징의
문장들이 조각되어 있으며 27M나 되는 시계탑이었다
돌마는 꽉 찼다는 뜻이고 바흐체는 정원 이라는 뜻이니 꽃으로 꽉 들어찬
정원이라는 뜻으로 넓은 정원이 정말 아름답게 꾸며져 있는 궁전이다
바다를 메워 만든 궁전이라 넓은 정원이 아름답다
돌마바흐체 궁전( Dolmabahçe Sarayı)관람이다
오스만 제국의 번성기인 18세기 31대 술탄 압들 마지드황제가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뽄떠 지은 유롭풍의 궁전이다 오스만 문화의 걸작품이다
세계에서 제일가는 궁전을 건축하기 위하여 왕실 건축가들을 총 동원하여
오스만 양식을 배제한 순 서유럽 양식인 바로크 식과 로코코 식을 혼합한
양식으로 1854년 완공하었으며 특히 실내 장식은 프랑스의 디자이너들이
설게 시공하였다고 한다
궁전의 특이점은 모든 장식품들이 Set로 어우러져 있다는 것이 좀 특이 하였다
실내 장식은 오스만 제국이 약탈하여 보유한 세계 각국의 보물들은 물론
서방 각국으로 부터 받은 축하 선물과 최고급 양탄자와 수입한 물품들로
채워져 있으며 지하 1층 지상 2층의 구조에는 방이 285개나 되고 홀도 43개
되며 목욕탕도 증기탕까지 6개나 된다고 한다
이렇게 막대한 건축비를 들여 만든 궁전 때문에 국가 재정이 파탄 나게 되어
600년이 넘게 유럽을 지배했든 대 제국 오스만 투르크의 몰락을 가져 왔다고
한다
1856년부터 역대 술탄 왕족들이 사용한 궁전이며 터키 건국의 아버지 케말장군도
대통령시절 이곳을 자주 사용했으며 이곳에서 1938년 서거 할 때까지 집무실로
사용한 곳이다
그를 기리기 위하여 이곳의 모든 시계는 그가 사망한 9시 5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무스타파 케말 장군은 1818년 오스만이 지배하든 그리스의 데살로니카에서
태여 났다
재능아 뛰어나 완벽하다는 뜻의 ‘케말’을 별명을 얻어 무스타파 케말로 불리고
군사대학을 졸업하고 장교가 돤 후 1915년애는 전투 지도자라는 파샤라는 별명을
얻어 케말 파샤로 불리기도 했으며
제1차 세계 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이 나자 오스만제국은 1919년 연합군에
의해 제국이 해체 되려하자 외국의 영토는 포기하더라도 자국의 고유 영토만은
지켜야겠다는 터키 독립전쟁(Turkish War of Independence)을 결성하였으나
술탄 왕조는 연합국의 꼭두각시가 되려하자 무스타파 케말은
1922년 연합군과 대치하여 승리한 후 1923년에는 술탄 제도가 폐지된 터키의
합법 정부로 인정받는 로잔 조약을 체결하여 국민투표로 1923년 초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