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 온 다음날 태화강엘 나가 보았다. 하늘은 어두운데 순간순간 햇빛이 나는 게 걸을 만했다. 며칠 사이 강 가 풀들이 한층 이들이들 윤이 난다. 며칠간 비끝의 햇살이라 사람들이 제법 다닌다. 건너편 산 빛깔은 어두운데, 햇살을 받으니 따갑다.
대숲에 들어서니 금방 서늘해진다. 앙증맞게 달려오는 아이가 귀엽다. 우리 애들이 저럴 때가 언제였던고? 이제는 벌써 저런 아이를 낳아 기를 나이가 돼 버렸으니.... 손자 손녀의 재롱이 보고 싶은데, 도무지 하늘을 볼 생각을 않는다.
한쪽 옆에서는 대숲 납량 축제를 한다고 대숲 속에 천막을 치고 섣부른 처녀귀신 탈을 걸어 두곤 하는데, 이곳은 그냥 들어서기만 해도 서늘하다. 여름이 없는 곳이다.
이게 무슨 꽃인진 몰라도 태화강변에는 이 꽃이 많다. 벌렌제 뭔지 한 놈이 저도 햇빛 쬐러 나온 모양이다. 모처름의 일광욕을 방해하는 게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카메라를 멀리 두고 줌만 당겨 보았다.
역시 강변에 핀 이름 모를 꽃이다. 자줏빛을 살짝 띈 분홍이 소박하면서도 참 정겹다. 너무 짙은 원색은 눈길을 끌긴 해도 정이 잘 가지 않는다. 그 옛날 순정이 아름답던 시절, 지금은 그저 기억 속에 아련하고 옛 노랫가락 속에서나 한번씩 만나는 빛깔이지만, 내게 익숙한 빛깔이다. 사라져 간 우리의 세계가 이 꽃 빛깔 속에 아련히 남아 있다.
태화강변엔 이렇게 한껏 화사한 빛깔의 꽃들도 있다. 자신의 아름다움을 당당히 드러내는 요즘의 젊은 처자들 같은 모습이다. 그저 환한 미소로 바라볼 뿐... 가까이 접근이 어렵다. 재빨리 셔터를 누르고는 물러서 나왔다. 황홀할 만큼 곱지만 나와는 세대가 다른 처녀 아이들을 보는 느낌이다.
멀리 구름 아래 문수산이 보인다. 강 가운데 토사가 쌓여 섬을 이루고, 그 섬들에는 어김없이 버드나무 종류의 나무들이 자란다. 나는 저 나무들이 참 보기 좋다. 봄철이면 축축 늘어진 가지를 물에 담그고,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는 품은 그윽한 정취가 있어 좋다. 한국의 물 가에는 어디나 저렇게 늘어지는 버들이 있었다. 그 옛날 우리 학교 뒤편의 연못에도 그런 버들이 있었다. 학교를 헐기 전 한번 와서 보니 버들은 다 뽑아버리고 하늘 향해 쭉쭉 뻗은 나무들을 심어놨는데... 그걸 보고는 문화적 안목이 사라져 가는 세태를 한탄했었다. 이제는 그도저도 다 없어져 버리고 두레원이 들어서 버렸지만...
한국의 시냇가, 연못 가, 강 가에는 늘어진 능수버들이 있어야 한다.
태화강을 가로지르는 삼호교 밑에서 본 풍경이다. 강 가에 서면 언제나 건너편이 아름다워 보이는 법이다. 건널 수 없는 강일 때는 그 아름다움이 한층 더하는 법이다. 울산에 온 지도 벌써 서른 세 해... 저 물살 속에 숱한 삶의 사연들, 아쉬움들 다 흘려 보내고 그저 속절없이 세월이 갔다.
강 가운데 버들섬에는 백로나 황새 같은 새들이 모여 산다. 여러 종류의 새라고들 하는데.. 나는 통 구분을 못 한다. 큰 날개를 천천히 펼치며 날으는 품이 점잖고 우아하다. 적지 않은 나이를 먹었으면서도 저만한 품새 하나 몸에 익히고 살지 못하니 사람이란 참 보잘것 없는 존재다. 그나마 강을 벗하고 살 수 있으니 작은 위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