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짓‥거짓‥거짓‥끊임없이 관객을 비웃다.
깊은 주름의 노인이 고개 숙인 청년에게 우아한 문어체로 침울하게 말한다. “슬픔으로부터 도피하려 하지 마라. 슬픔이 널 찾아낼 테니까.” 그들이 사는 마을은 첫눈에도 정상은 아니다. 해는 좀처럼 비치지 않으며, 마을 주민들은 대부분 이 노인과 청년처럼 슬픔에 젖은 얼굴로 천천히 말하고 느리게 걷는다. 그리고 발을 들여서는 안 되는 깊은 숲과 스산한 안개에 감싸여 있다.
이 영화가 〈식스 센스〉와 〈언브레이커블〉과 〈싸인〉의 M. 나이트 샤말란의 작품임을 모르는 관객이라도 이들의 슬픔이 초현실적 존재와 연관돼 있을 것이라고 쉽게 짐작하게 된다. 마을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입밖에 꺼내서도 안되는 존재”가 있음을 가르치며 그 존재가 이 마을을 휘감은 슬픔과 불안의 근원임을 암시하기 때문이다.
〈빌리지〉는 〈식스 센스〉와는 달리 혹은 〈사인〉과 마찬가지로 처음부터 자기의 수수께끼를 또박또박 읽어주고 시작하는 영화다. 입밖에 꺼내서도 안 된다는 그 존재의 정체는 무엇일까.(아래 내용에는 미리 알게 됨으로써 이 영화를 보는 재미가 반감할 수 있는 정보가 포함됩니다.)
마을의 지도자 워커(윌리엄 하트)가 바란 건, 그리고 그와 함께 이 마을에 정착한 사람들이 바란 건 상처로부터의 도피였다. 최후에 밝혀지는 사실은 그들은 소중한 가족의 일원을 악랄한 범죄로 잃은 뒤, 세상을 등지고 외딴 마을에 자신들을 유폐시켰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아이들이 사악한 저 너머의 세계와 영원히 만나지 못하도록 시대를 되돌린 뒤 공포의 신화를 조작했다. 그들의 소망은 판타지를 사는 것이다.
이 마을의 딜레마를 짐작하기란 어렵지 않다. 무엇보다 문명의 악을 거부하는 순간 문명의 선도 포기하는 것. 시력을 잃어가는 아이를 보고도 치료를 하지 않았으며, 상처로 죽어가는 아이를 보고도 약을 구하지 않는다. 더 근본적으로는 순수를 위해 거짓을 사는 것. 이 딜레마의 공동체는 거짓과 비겁을 모르는 해맑은 남녀의 사랑에 의해 도전받는다.
〈빌리지〉는 이 딜레마를 배가된 거짓으로 해결한다. 바리데기 설화처럼 버림받은 딸이 공동체의 영웅이 되는 신화적 서사를 더함으로써, 다친 청년은 회복하고 조작된 공동체 신화는 도리어 강화된다. 그러나 〈빌리지〉의 진짜 거짓은 그들이 거짓임을 자인하는 조작된 신화가 아니라, 그들이 진실한 표정으로 말하는 언어들이다.
마을 어른들이야말로 슬픔으로부터 도피한 자들이며, 그들이 말하는 순수는 종교적 구원이나 휴머니즘과 무관한 자기 방어일 뿐이다. 이 영화의 가장 큰 거짓은 눈먼 딸이 “나, 이제 돌아왔어”라고 말하는 마지막 장면이다. 마을사람들의 벅찬 표정과 서정적인 음악으로 사랑과 진실의 위대한 승리처럼 치장되는 이 결말은 그들의 거짓이 더욱더 큰 거짓 없이는, 또한 조작된 신화로 고통 받는 자의 희생 없이는, 지탱될 수 없음을 자백하는 순간이다.
〈빌리지〉는 바로 그 지점에서 자기비평적인 영화로 다시 읽힌다. 〈빌리지〉의 표면상의 감동을 자아내는 노스탤지어, 퇴행적 판타지, 유아(唯我)적 언어에 대한 집착과 그것의 신화화는 대중영화의 오랜 속성이다. 대중 서사의 신화 구축과 그 유지의 메커니즘을 스스로 전시하는 〈빌리지〉는 거짓 눈물로 관객을 홀려놓고는 돌아서서 비웃는 잔인한 광대 같다.
- 허문영 영화평론가 -
<수정>
1. 감싸여 → 둘러싸여
표준어 오류< 사투리 관련 오류 > : 여기에 표기된 단어는 정확한 지방은 알 수 없으나 사투리나 극소수 집단에서만 쓰이는 단어입니다.
2. 안되는 → 안 되는, 되지 않는
표준어 오류 : 부정을 뜻하는 말에 쓰는 '안'은 부사이므로 뒤에 오는 말과 띄어씁니다. 또한 '아니하다'의 준말인 '않다'는 '-지 않다'의 구성으로 쓰여 행동이나 상태를 부정합니다. 띄어쓰기에 주의하여 '안 된다'라고 쓰든지 '되지 않다'라고 쓰도록 합니다. 또한 연이어 나오는 의존 명사나 동사는 각각을 단어로 인정하여 띄어씀이 바릅니다.
“손에 피 묻힌자 살아 못 돌아가리” 정글속 죽은자들의 메시지 속뜻은
오래된 이야기. 네 사람이 길을 잃었다. 해는 지고, 길을 잃고 헤매다가 텅 빈 교실을 발견했다. 여기서 밤을 새우기로 하고 짐을 풀었는데, 너무 무서워서 한 사람씩 교실 모퉁이에 서서 상대방이 등을 치면 달려가서 앞사람 등을 치는 놀이를 밤새 하기로 했다. 그들은 밤새 그 놀이를 하면서 두려움을 달랬다. 그리고 아침이 와서 교실을 떠났다. 그런데 불현듯 깨달았다. 그 놀이는 네 사람이 할 수 없는 놀이였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더 많은 그 한 사람에 관한 이야기가 공수창이 시나리오를 쓰고 처음 연출을 한 〈알 포인트〉의 우리 곁의 무시무시한 두려움이다. ‘줄리엣이 은밀히 로미오(Romeo)를 찾으러 간다’는 실종자 구조 군사작전 약자를 뜻하는 알(R) 포인트 지역은 좌표 63도 32분, 53도 27분, 호치민시 서남부에서 150킬로미터 떨어진 캄보디아 접경의 옛 프랑스 휴양지다. 여기에 파견된 18명의 한국군이 실종되고, 끊임없이 부대로 구조요청 무선이 날아온다. 1972년 1월30일 일요일, 최태인 중위(감우성)를 지휘관으로 열 명, 혹은 아홉 명의 수색소대를 파견한다. 여기는 밤에는 어둠뿐이며, 낮에는 안개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 곳이다. 이 영화는 그로부터 일주일 동안의 이야기이다.
물론 이런 이야기의 오랜 원본은 조지프 콘래드의 〈암흑의 핵심〉이고, 영화에서의 가장 야심적인 버전은 코폴라의 〈지옥의 묵시록〉이다. 어쩌면 최 중위와 그의 소대가 머무는 (이제는 폐허가 되어버린) 프랑스 휴양지는 〈지옥의 묵시록, 리덕스〉에서 복원된 대목에서 빌려온 아이디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공수창은 같은 이야기를 갖고 정반대의 목적지에 다다른다. 콘래드(와 코폴라)는 과잉이 되어버린 제국주의와 대면하지만, 공수창은 블랙홀을 만난다. 거기에는 사실상 아무도 없다. 텅 빈 장소, 그러나 거기에 와서 그들은 필사적으로 무언가를 찾아야 한다. 객관적인 제로와 술래잡기가 시작되면서 거기서 마주치는 것은 전쟁의 현실로부터 역사의 실재에로의 추락이다. 그들은 역사 속에서 매장할 수 없는 죽은 자들의 귀환과 마주하고, 궁극적으로 그들 자신도 그 일부가 된다.
그 필연성, 그것은 프랑스 군대의 기나긴 지배, 그 뒤를 이어 상륙한 미군의 침략, 그리고 그들과 함께 도착한 한국군의 군화 아래의 시간을 압축한 듯한 이 기괴한 폐허의 휴양지가 그들의 목적지인 줄 알았는데, 사실은 뒤집힌 데자뷔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이 찾아야 하는 미션은 그들 자신의 주검이다. 혹은 그들이 죽을 때 그들의 미션은 완수된다. 그러나 그들은 전쟁이라는 현실의 구멍이 되기 때문에 그들을 메우기 위하여 새로운 부대의 도착을 기다려야 한다. 전쟁과 역사는 그렇게 술래잡기를 계속 할 것이다.
미안하게도 이 모든 것이 물론 뻔하다. 시나리오작가 출신이라고 믿을 수 없게 단조로운 인물 구성과 느슨한 이야기는 종종 지지부진하고, 역사를 압축한 옛 휴양지는 큐브릭의 〈샤이닝〉을 떠오르게 만든다. 실내에서 벌어지는 죽고 죽이는 자멸극은 타란티노의 〈저수지의 개들〉에서 이미 본 것이며, 정글은 종종 식물원을 거니는 것 같다. 하지만 공수창은 겁이나 주고 비명을 지르려고 이 영화를 만든 것이 아니다. 소녀들이 비명 경쟁을 벌이고, 소리만 시끄럽고, 하여튼 과거로부터 꾸역꾸역 기어 나와서 말이 안 되는 트라우마를 하소연하는 올해 여름 한국영화의 새로운 장르인 (〈링〉의) ‘사다코 자매들’ 연작이라고 불릴 만한 한심한 목록 안에서 〈알 포인트〉는 거의 유일하게 동시대의 두려움과 마주하려는 용기를 지닌 영화다. 알 포인트 입구에 써 있는 글귀, 손에 피 묻힌 자, 살아서 돌아가지 못한다. 그건 지금 우리에게 간절하게 보내는 메시지다. 정글에서 역사를 보았다면 사막에서는 실재를 마주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이 영화의 죽은 자들이 시간을 가로질러 우리에게 보내는 통신이다. 그리고 그 죽어 가면서 도움을 청하는 비명소리가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인 까닭이다. 코러스. 손에 피 묻힌 자,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이다.
- 정성일 영화평론가 -
<수정>
1. 묻힌자 → 묻힌 자
표준어 오류 : 관형사형 어미 다음에 오는 명사나 의존명사는 띄어써야 바릅니다.
2. 정글속 → 정글 속
띄어쓰기 오류 : 다음 명사와 결합한 단어는 복합 명사로 보기 어려우므로 띄어 써야 바릅니다.
3. 죽은자들의 → 죽은 자들의, 사자들의
표준어 오류 : 관형어와 명사는 띄어써야 합니다. 이때 '죽은 자'를 한자어로 '사자'로 표현할 수도 있습니다.
4. 공수창이 → 공수 창이
띄어쓰기 오류 : 띄어쓰기 오류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5. 간다'는 → 간다'라는
문장부호 오류 : 강조하는 말이나 지정하는 말에 쓰거나 대화나 직접 인용 또는 간접 인용에 쓰는 문장 부호인 큰따옴표("")나 작은따옴표('')는 뒤에 오는 조사나 어미와 붙여씁니다.
6. 미션은 → 임무는
순화 용어 : 외래어보다는 순수 우리말이나 한자어로 된, 우리가 자주 쓰는 말을 사용합시다.
7. 자멸극은 → 자멸 극은
띄어쓰기 오류 : 띄어쓰기 오류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시스템이 띄어쓰기를 잘못 교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에 주의하셔서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8. 티란티노의 → 티란 티노의
띄어쓰기 오류 : 기 오류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시스템이 띄어쓰기를 잘못 교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에 주의하셔서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9. 같다. 하지만 공수창은 → 같다. 하지만, 공수창은
문장부호 오류 : 문장 첫머리의 접속이나 연결을 나타내는 말(접속부사 또는 연결을 나타내는 부사어) 다음에는 반점을 씁니다. 예) 결국, …… 그럼에도 불구하고, …… 다만, …… 먼저, ……. 다음으로, …… 바라건대, …… 보건대, …… 뿐만 아니라, …… 살피건대, …… 생각건대, …… 기록에 의하여 살펴보면, …… 아무튼, …… 원심판결 이유에 의하면, …… 첫째, ……. 둘째, …… 하지만, …… 한편, …… 다만, 일반적으로 쓰이는 접속어('그러나, 그러므로, 그리고, 그런데'와 이에 대응하는 '이러나, 이러므로, 이런데') 뒤에는 쓰지 않음이 원칙입니다.
10. 트라우마를 → 트라 우마를
띄어쓰기 오류 : 띄어쓰기 오류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시스템이 띄어쓰기를 잘못 교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에 주의하셔서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11. 사다코 → 사다고
한글 맞춤법 오류 : 접미사 '-하다'가 줄어든 꼴은 용언의 활용 형태가 부사로 전성된 것으로서 '-하다'의 활용형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소리나는 대로 적어야 합니다. 이때 앞 음절의 끝소리가 *무성음이면 '-하'가 줄고 앞 음절의 끝소리가 *유성음이면 '-ㅏ'가 줄어 다음 소릿값에 [ㅎ]이 이어져 소리납니다.
<연인>
장이머우의 ‘무협’ 낭만은 파시스트적 매혹일뿐
“장이머우가 이렇게 되는 건 필연적인 일입니다. <붉은 수수밭>이나 <홍등>에서 이미 그런 변화의 과정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장이머우가 <영웅>같은 블록버스터를 찍는 것은 이상할 게 하나도 없습니다. 장이머우는 영웅이 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예술영화로는 영웅이 될 수 없기 때문에 또 다른 영웅이 되려는 것입니다. 장이머우는 이런 가치관, 그 중에서도 할리우드의 오스카 콤플렉스가 무척 심한 것 같습니다. (중략) <영웅>은 영웅이 되기 위해 노예가 되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베이징 지하전영 세대인 지아장커는 중국 영화 제 5세대인 장이머우의 <영웅>에 대해서 맹렬한 적개심을 보였다. 나도 거기에 동의한다. 그건 일종의 변절이다. 그런데 장이머우는 거기서 더 나아가고 있다. 그의 두 번째 무협영화 <연인>은 거의 점입가경이다. 장이머우의 시나리오는 부분적으로 <무간도>를 연상케 하는 ‘언더커버’의 반전(의 반전)이 계속되지만 따분하게도 이미 눈치 챈 다음이며, 중국 산수화에 기댄 풍경들은 <와호장룡>을 연상케 하면서 그에 미치지 못한다. 어쩌면 제작자 빌 콩은 장이머우에게 곽재용의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의 시나리오를 보여주었을지도 모른다. (지루하게 반복되는 ‘바람’의 운명론) 게다가 정소동의 무협액션 장면들은 (<매트릭스>의) 원화평의 ‘따분한’ 카피 버전이다. 그러나 그 어느 대목에서도 넋을 빼앗거나 심금을 울리지 못한다. 이제는 인정을 해야 한다. 장이머우는 무협영화에 재능이 없다. 그런데도 그걸 하고 싶어한다. 그건 무협영화라는 이 장르가 신화적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거기서 장이머우는 신화를 새로 쓰고 다시 창조해내는 영웅이 되고 싶어한다. 혹은 영웅을 찾아 나선다.
장이머우는 정확하게 홍콩 무협영화가 신화의 죽음을 선언한 그 자리에서 다시 시작한다. 사실상 왕자웨이가 질서를 잃은 플래시백의 기억과 스펙터클, 김용과 SFX, 세트와도 같은 모래사막 위에 세워진 한 채의 객잔에서 <동사서독>을 만들었을 때 무협영화는 거기서 끝난 것이었다. 그 다음은 후일담이다. 홍콩의 쉬커(서극)는 그 전통을 리메이크하거나(<칼>), 대만의 리안은 회고하였다(<와호장룡>). 그러나 중국의 장이머우는 반복한다. ‘어떤’ 의미에서 <영웅>은 <동사서독>에 역사를 부여한 원형이판본이고, ‘그런’ 의미에서 <연인>은 <와호장룡>의 시대를 거슬러 올라간 동어반복이다.
왜 그럴 필요가 생겨난 것일까? 중국어권 영화에서 무협영화는 미국에서 서부극과 같은 장르이다. 서부극은 결국 미국 자본주의의 신화이며, 남북전쟁의 선악의 도덕이며, 이민자들의 거짓 역사이다. 무협영화는 중국 본토에로의 향수이며, 사회주의 중국 ‘이전’의 추억이며, 망명의 신화이다. 그러므로 이 신화는 절대적으로 타자의 담론이 일으키는 소란이다. 그러나 그것을 중국에서 만들 때 무협영화는 역사의 거짓 건설이며, 신화의 (이데올로기로서의) 역사화가 된다. 장이머우는 지금 중국 인민들에겐 신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혹은 중국어권 문화의 거대한 통일에로의 욕망을 겨냥한다. 장이머우의 변절은 우스꽝스럽지만 그것은 위험한 제국주의가 꿈꾸는 무아지경의 자기최면술이다. <연인>의 낭만주의는 정확히 그 자리에 있다. 그 미학적 낭만주의는 파시스트적인 매혹이다. 발터 벤야민의 경고이다.
- 정성일 영화평론가 -
<수정>
1. 매혹일뿐 → 매혹일 뿐
문법 오류 : `뿐`은 `의존명사`와 `조사`의 다른 역할로 사용됩니다. 의존명사 `뿐`은 `다만 어떠하거나 어찌할 따름이다' 라는 뜻입니다.
2. <영웅>같은 → <영웅> 같은
한글 맞춤법 오류
3. 지하전영 → 지하번영
철자법 오류
4. 영화 제 → 영화제
순화 용어 : 일부 명사 뒤에 붙여 '제도', '방법', '제사', '축제' 또는 '약'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로 보아 붙여씁니다.
5. 눈치 챈 → 눈치챈
철자법 오류 : 이 단어는 의미가 굳어져 항상 한 단어로 쓰는 말이니 쓸데없이 띄어쓰지 않도록 합니다.
6. 원화평의 → 원화 평의
띄어쓰기 오류 : 띄어쓰기 오류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8. 객잔에서 → 객 잔에서
띄어쓰기 오류 : 띄어쓰기 오류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도 있고 시스템이 띄어쓰기를 잘못 교정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에 주의하셔서 다시 한번 살펴보십시오.
9. 동사서독 → 동사 서독
띄어쓰기 오류 : 한글맞춤법에 따르면 복합명사 내의 명사 사이는 띄어쓰는 것이 원칙입니다. 하지만, 긴 복합명사 내의 명사 사이를 모두 띄어 쓰면 오히려 읽기 어려워질 수 있습니다. 따라서 긴 복합명사는 의미에 따라 적합하게 띄어쓸 수 있게 허용합니다. 따라서 접두사 앞의 명사나 접미사 뒤의 명사는 띄어 써야 합니다.
10. 원형이판본이고 → 원형이 판본이고
띄어쓰기 오류 띄어쓰기 오류입니다. 같은 단어라도 문맥에 따라 띄어쓰기를 다르게 해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