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산님의 댓글에 대해 댓글란에 답문을 드리기에는
그 분량이 많기에 따로 답글란을 만들어서 글을 씁니다.
1983년에 처음으로 역학(이기오행법, 명리학)에 입문
하였지만
* 한국구성학회 '카페 앨범' 코너 - "1983년에 시작한 역학공부
노트" (2014.1.1字) 제하 글 참조
구성학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구성학 책들을 몇권 접하기
시작한 것은 비파 월드컵 경기가 있었던 해(2002년) 바로
전년도이므로 2001년부터 구성학에 관심을 가지고 책들을
탐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미 작고하셨고 일본의 구성학을 우리나라에 도입하여
구성학으로 유명한 분이셨던 배성현 선생의 구성학 책
이외에 구성학 분야에 이름이 별로 나 있지는 않았지만
책을 출간했던 분들의 구성학 책들을 몇권 더 읽었습니다.
그러나 책만으로는 그 내용이 빈약하고 책을 읽고 습득한
지식만을 바탕으로 궁리하고 연구하는 것만으로는 역학을
공부하는 목적을 이루기 어려웠기 때문에 후에 구성학을
활용한다는 선생들을 찾아 다니며 사사를 받았습니다.
구성학 책들을 접하고 나서 2002~2003년(2년)간 4명의
구성학 선생들을 만나 짧게는 두달 길게는 3개월을 사사
받았는데 처음에 인연을 맺었던 선생들은 그 이름을
기억하지 못하겠고 뒤늦게 인연을 맺은 분이 문길여 선생
그리고 그보다도 더 뒤늦게 가장 나중에 인연을 맺은 분이
한인수 선생이었습니다.
문길여 선생으로부터 3개월간 매회 2시간씩 12회 사사
받았고 한인수 선생으로부터 2개월간 8회, 매회 2시간씩
총 16시간을 사사받았습니다(통상 역학 사사는 주 1회
이루어지는 것이 관례) 한인수 선생의 연세가 이제 70 이
넘으셨으니 지금은 그때보다 많이 연로하셨으리라 생각
됩니다. 활력있는 그때의 그 성품 그대로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사사를 받은 선생의 관법(觀法)을 그대로 계승하여
학맥을 잇게 되면 사제관계로 이어지게 되지만 전혀
다른 별개의 관법, 전혀 다른 별개의 학리(學理)로
발전하게 되면 두세달 동안 잠깐씩 만났던 그 여러명의
구성학 선생들을 모두 스승이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요
각 선생들이 구성학을 어떻게 활용하여 실전 통변을
하는지에 대한 개론(槪論) 수준의 안목을 얻기 위해
잠깐 스쳐간 인연 이상의 특별한 의미는 없습니다.
그러나 한인수 선생께서 “이창우가 제자로 삼아
달라며 큰절을 올렸다” “자신의 집에서 새벽 두시까지
매달리며 제자로 삼아줄 것을 애걸복걸하여 겨우
제자가 되었다” 는 등 있지도 않았던 소설에 가까운
날조된 사실들을 마치 무슨 무용담이라도 되는 듯
인터넷 공간에 올라 오도록 한 것에 대해 화가 났던
것입니다.
저는 구성학, 명리학, 기공수련 등을 계기로 저를
훨씬 뛰어 넘는 훌륭하신 분들과 도반의 인연을 맺을
기회가 많았습니다.
해인사 승가대학 교수를 지내시고 티벳에서 고행수련
을 하시면서 ‘환생자’라는 칭호를 얻으시고 그 지역
불자들과 스님들로부터 크게 존경을 받고 계시고
한국과 티벳 양쪽에서 불법을 설(說)하시며 중생제도에
힘쓰고 계시는 지엄 큰스님. 이분께서는 고행수련을
워낙 오래 하신 연유인지 이 분의 몸속을 투시해 보면
허리 주변으로 많은 사리들이 축적되어 있습니다.
학문적으로도 불교철학을 깊이 연구하셔서 중국
난징대학에서 종교학 석.박사학위를 받으시고
남 다른 높은 법력으로 우리나라 많은 신도들로
부터도 존경받고 계신 지엄 큰스님.
안심정사 주지스님으로서 젊은 시절부터 고도의
수행생활을 전개하셨고 종교철학을 깊이 탐구
하시어 원광대학교에서 종교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하시는등 수행과 교학(敎學)을 겸비하시고
광범위한 선교를 위해 국내 4개 사찰을 세우시고
불교방송, 불교TV 에서 불법을 설(說)하고 계시는
법안스님.
이외에도 일일이 다 거론할 수는 없지만 문화계,
종교계, 역술계, 법조계, 한방.양방 의료계의 많은
훌륭한 분들께서 저와 도반의 인연을 맺어
주셨습니다.
위에 언급해 드린 지엄스님께서는 2012년에 구성학과
기공수련으로, 법안스님께서는 2013년에 구성학으로
저와 도반의 인연을 맺어 주셨습니다.
학식과 수행과 법력 그리고 훌륭하신 인품을 겸비하신
분들께서 학식면에서, 수행면에서 한참 뒤떨어져
있는 저를 방문하셔서 학연을 맺어 주신데 대해
감사할 따름입니다. 제가 감히 이런 분들을 ‘제자’라고
호칭할 수 있겠습니까. 비록 기공수련이나 역학 분야
에서 제가 조금 더 눈이 앞서 뜨였기에 저의 강의실에
모시기는 하였으나 어찌 감히 이런 분들에게 제가
‘제자’라는 호칭을 쓸 수 있겠습니까.
꼭 이런 분들이 아니더라도 나이가 저의 아들뻘 되거나
조카뻘 되는 도반들도 있습니다. 이렇게 어린 도반들에게
조차 제가 그들을 ‘제자’라고 불러 본 적이 없습니다.
그저 다만 저와 함께 정진하는 도반들로 여길뿐이며
대화에서 조차 반드시 존대하고 있습니다.
제가 한인수 선생에게 화가 난 것은 2개월 남짓한
사사를 받았기로니 내가 자신에게 큰절까지 올리면서
한인수 선생의 자택에서 새벽 두시까지 머물며
애걸복걸 애원하여 어렵게 제자로 받아 들였다는...
있지도 않았던 날조된 사실이 버젓이 인터넷 공간에
올라오게 하였다는 것입니다. 평소 자신에게 구성학을
배우거나 상담을 받고 간 여러사람들에게 이러한
날조된 사실을 얼마나 많이 말해 왔으면 그말이
네이버 블로그(바닐라 젠의 탐구생활)의 운영자의
귀에까지 들어갔겠느냐는 말입니다.
내가 한인수 선생에게 "좀 겸손하시라"는 말까지는
감히 하고 싶지 않습니다. 없는 말을 지어내지는
말라는 뜻으로 화가 났던 것입니다.
어차피 이창우 구성학의 이론은 그야말로 이창우
저 자신이 이룩한 전혀 다른 체계의 구성학 이론으로서
제가 잠깐 거쳐갔던 4명의 선생들의 이론은 아닙니다.
그런데 마치 내가 자신의 이론을 계승한 직계 제자라도
되는 듯... 거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제가 큰절까지 하며
새벽 두시까지 제자로 삼아 달라며 애걸복걸 매달렸던
것인양 소설을 써대니 제가 좀 화가 났던 것입니다.
그러나 해당 블로그의 운영자께서 오류가 있었음을
감안하여 그 글을 조속히 삭제하는 매너를 발휘해
주셨으니 이젠 다 끝이 난 일입니다. 어차피 저는
공직자로서의 삶, 역술인으로서의 삶에 뒤이어
그리 머지 않은 시기에 새로운 삶의 여정을 계획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역술계에는 큰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화가 좀 났을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