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증법적 실천 개념
[포이어바하에 대한 테제들]는 맑스의 철학사상이 그 씨앗의 형태로 일정하게 요약되어 있는 최초의 문건이다. 엥겔스는 새로운 세계관의 천재적인 씨앗이 깃들어 있는 최초의 문건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맑스의 [포이어바하에 대한 테제들]의 전체적인 구성 체계는 4개 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그것은 맑스 철학 자체의 포괄적인 구성 체계이기도 하다.
첫째, 제1테제부터 제3테제까지는 종래의 관념론과 유물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맑스 자신의 변증법적 유물론의 토대를 제시했다.
둘째, 제4테제부터 제7테제까지는 포이어바하에 대한 보다 직접적인 이해를 통해 새 변증법적 유물론의 내재적 비판 근거를 제시한다.
셋째, 제8테제부터 제10테제까지는 역사적 유물론으로서의 사회형식에 대한 관점의 근거를 제시하고자 한다.
넷째, 제11테제는 철학 곧 보편적 학문으로서의 그 세계관의 근거가 어디에 있어야 하는가를 정형화하여 제시한다.
Ⅰ.변증법적 유물론의 철학적 토대: 관념론과 유물론 비판
1.제1테제
이제까지의 모든 유물론(포이~의 유물론까지 포함하여)의 주요 결함은 대상과 현실, 그리고 감성을 단지 객체의 형식 아래서만, 또는 직관의 형식 아래서만 파악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감성적인 활동으로는, 즉 실천으로는 파악하지 못한 것인바, 이를테면 주체적으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따라서 활동적인 측면이 유물론과는 반대로 관념론에 의해-물론 현실적이고 감성적인 활동, 그 자체를 알지 못한 관념론에 의해- 추상적으로 전개되기에 이른다.포이어바하는 감성적인 객체들을 필요로 한다. 그러나 그는 인간의 활동 그 자체를 대상적인 활동으로 파악하지 못한다.
맑스에 의하여 대상으로서의 현실, 또는 감성은 단순히 소여되어 있는 것으로서의 객체가 아니다. 대상, 즉 현실이 인식 대상ㅇ로 소여되어 있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가 감성적인 인간활동의 산물, 곧 실천의 산물이란 것을 맑스 이전의 유물론은 간과하고 있었다. 때문에 대상, 즉 현실은 인식대상으로서 객체로만 파악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보다도 주체의 활동인 실천의 산물로서 소여된다고 하는 주체와 객체의 변증법적인 연관적 인식대상이 문제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과학이 탐구하는 대상으로서의ㅣ 자연마저도 인간과 무관한 대상이 아니라 인간의 노동이나 창조활동 및 생산활동 속에, 그리고 보다 넓은 영역으로서의 상업이나 산업 속에 포함되어 있는 자연일 뿐이다.
포이의 관념론 비판은 주체에 대한 객체의 감성적 관계를 복권시키려는 데 있다. 감성적 객체에 대한 관념론의 탈권은 포이어바하에 의해 극복되지만, 그럼에도 그는 인간활동 그 자체를 대상적 활동으로 파악하지 않는다.
대상적 활동은 대상에 대한 주체의 감성적 활동이며, 정신이나 의식을 산출하고 지배하는 대상에 있어서의 활동이다. 그러나 주체의 대상적 활동에 있어서 주체의 의식과 정신이 대상의 산물이고 대상에 의하여 지배되는 반영이라면 주체의 자발성과 능동성은 어디에 있는가? 맑스는 물질적 대상의 필연성에 의하여 현실 변혁의 객관성을 파악한다. 그러나 그는 혁명적 실천을 그러한 객관성의 수동적 활동으로 보지 않는다. 이북의 주체철학이 제기하는 의식성에는 맑스철학에 있어 실천개념의 능동성과 수동성 사이의 변증법적 통일에 대한 해석의 차이와 관련된다. 주체철학는 사람의 본질적 속성으로서 의식성에 의한 실천의 능동성을 강조하고자 한다.
제2테제
대상적인 진리가 인간의 사유에 속하는가, 속하지 않는가 하는 문제는-즉 이론의 문제가 아니라 실천적 문제이다. 인간은 실천속에서 진리를, 즉 자신의 사유의 현실성과 위력을 다시 말해 그 자신의 차안성을 증명하지 않으면 안된다.
모든 이론이 실천적 제약하에 놓여 있음을 말한다. 실천을 담보하지 못하거나 담보해 낼 수 없는 이론이 환상적임은 물론이다.
진리의 구체성은 감성적 대상에서 실현됨으로ㅓ써 그 현실성과 위력으로 나타나며, 실천은 진리의 구체성에 이르는 사유와 대상간의 물질적 과정이다. 사유나 의식이물질을 산출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이 사유나 의식을 산출한다. 엥겔스는이것을 물질의 근원성이라고 부른다. 즉 정신이나 의식이 근원적인 것이 아니라 물질,또는 자연이 근원적인 것이다.
엥겔스에 의하면 포이 는 속류유물론 또는 기계론적 유물론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했지만, 완전히 벗어날 수 없었다.
이론과 실천 간의 계열적 과정은 실천에 의한 이론화의 과정과 이론으로부터 실천으로 나아가는 변증법적 과정이 있다. 이론의 실천적 검증은 이 두 계열적 과정을 포괄한다. 검증이나 증명은 이론의 작업에 해당되는 것 같다. 그러나 실천의 이론에 의한 검증과 증명은 다시금 실천에 의한 변증법적 통일에 의해서만 검증되고 증명된다. 왜냐하면 실천만이 진리의 현실성과 위력을 매개해낼 수 있는 과정적 운동이기 때문이다.
맑스는 감성적 직관에 의하여 파악되는 대상으로서 인간의 기초적 생활조건을 규정한다. 그것은 물질적 대상이며 인간의 물질적 생활조건이다. 따라서 감성적 직과나은 단순히 인식 이론적 사유 기능에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고 그 자체 감성적 대상과의 물질저교섭, 또는 소재적 교섭과정이다.
노동은 무엇보다도 인간과 자연 사이의 한 과정이며, 즉 인간이 그 자신의 자연과의 물질적 교섭을 자기자신의 고유한 행위를 통하여 매개하고규제하며 통제하는 한 과정이다. 인간은 하나의 자연적 체력으로서 자연소재 그 자체와 마주하게 된다.
헤겔의 소외 개념에 대한 맑스의 비판은 추상적 사유에 대립되는 인간본질의 대상화로서 물질적 대상성을 지적한다. 소외는 맑스에 의하면 무엇보다도 인식론적으로 감성적 직관과 결부되어 있는 현실적 대상성의 상실이며, 또한 실천적으로는 노동의 부정적 측면이 지배하는 인간의 대자화로서 물질적 교섭과정의 파탄인가 하면, 공동체적인 인간적 본질의 보편적인 착취와 결부된다.
맑스에 의하면 인간에 있어 감각의 형성 자체가 이제까지의 세계사 전체가 이룩한 노동의 결과이다.
제3테제
환경의, 그리고 교육의 변화에 관한 유물론적 학설은 환경이 인간에 의하여 변화되어야 하고, 교육자 자신이 교육되어야 한다는 것을 망각하고 있다. 따라서 이 학설은 사회를 두 부분으로-그 두 부분 중의 한 부분은 사회를 초월하여 있는 바-나누어 분리하지 않으면 안된다.(오언처럼)
환경의 변화와 인간 활동의 변화와의, 또는 자기변화의 합치는 오직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될 수 있고, 합리적으로 이해될 수 있을 뿐이다.
순수한 의미의 자연환경은 역사과정에서 끊임없이 사회적 환경에 포섭되어 왔고, 역사 그 자체가 인간의 주동적 사회화 과정이라면 자연환경이 어떤 태고적 순수 형태의 ㅣ선재성으로 존립하고 있어 인간에게 소여되고 있을 뿐이라는 상상은 인식ㅇ론적 대상성을 규정할 때 오류에 빠진 근거이다. 따라서 맑스에 있어 환경은 단순히 자연적 환경에만 머물러 있는 것이아니고 동시에 사회적 환경으로도 이해되며 혁명적 실천은 이런 ㅎ사회적 환경에서 교육되는 진리 검증의 변증법적 통일을 담보한다. 때문에 교육이 환경의 요소기는 하지만 그 교육은 주어진 환경의 요소를 떠나 교육주체가 교육되었던 전승적 의미 이상의 현실적 실천활동이 동시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교육 주체와 교육대상의 변증법적 통일에 있어서만 올바로 파악ㅇ될 수 있다.
환경과 교육에 대한 객관주의적 규정은 공상적 이상사회론에서 흔히 저지르는오류이다. 환경과ㅑ 교육의 변화는 이미 인간주체가 개입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환경과 교육의 변화 자체가 인간 산물이기도 하겠기 때문이다. 인간이 환경과 교육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환경과 교육이 인간에 의하여 변화된 산물이기도 ㅗ한다.
변화된 환경이 인간활동을 변화시키는 것만아니라 인간의 변화된 활동이 환경을 변화시키며, ㅇ이와 같은 모순의 동시성이 바로 혁명적 실천으로서만 파악되고 합리적으로 이해된다. 교육도 마찬가지. 인간이ㅣ 교육을 변화시킬 때 그와 같은 교육변화 속에서 인간 그 자신이 변화되는 교육을 받게 되는 것이다. 교육을 변화시키는 혁명적 실천, 그것이 동시에 교육자 자신이피교육자이기도 한, 곧 교육되어지는 과정이기도 하다.
환경의 변화에 따라 인간활동이 변화하는 것만이아니라 환경을 변화시키려는 인간활동의 변화 그 자체가 이미 자기 변화를 가져오며, 그와 같은 두 2변화의 동시적ㄷ인 합치는 관념에 머무르지 않는 현실적이고도 물질적인 실천으로서만 가능하다.
이북의 주체철학은 상대적으로맑스의 객관주의를 비판한다. 주체철학에서ㅓ 인간은 환경세계의 주체(주인)이며, 인간의 사상의식은 주체의 요구를 방향짓는 출발점이다.
주체철학은 유일적인 주체의 철학이며, 변증법적 유물론과는 일정하게 구별된다. 주체철학은 맑스의 혁명적 실천 개념에 있어 주체 곧 주관ㄷ적 능동성을 강조한다. 그런 주관적 능동성이 주체철학의 자주성,창조성,의식성으로서 주체성을 구성하는 중심 내용이 된다.
맑스는 인간본질이나실체가 결코 사회적 교류형태들을 떠나 있는 것이 아니며, 자연환경이나 사회환경을 응집하고 있는 사회3적 교류형태들 또는 사회의 ㅣ물질적 교류형태들이야말로 인간본질의 실재적 근거이다. 그래서 맑스 후반에 정치경제학4에 몰두한 배경이다.
맑스에 의하면 기존의 유물론은 환경과 교육을 변증법적으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질적 환경이 의식을 형성하는 기초라는 것만 파악할 뿐이었다. 따라서 거기에는 의식이 혁명적 실천에로 나아가는 전환을 망각하고 있으며, 그와 같은 전환은 수동적이면서 또한 동시에 능동적인 ㅣ자각의 실천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