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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47:28
세상은 외모모 관계를 설정합니다. 갑과 을로 계약을 맺고, 대우와 처우를 결정하지요. 당시 애굽 세상에서 가축을 치며 사는 일은 비천함을 자처하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백성들은 세상의 기준이 아닌 신앙의 기준으로 사는 이들입니다. 신앙의 기준을 따른 삶이란 무엇인가? 공주야! 지위와 부와 감각적 쾌락을 좇는 세상에서 하나님의 나그네 된 백성으로 산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세상을 거슬러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좇는 삶을 살아야 한다.
The world establishes relationships with mothers. They sign contracts between A and B, and decide on treatment and treatment. Back then, beating livestock in the world of Egypt was a self proclaimed vulgarity. However, God's people live by the standards of faith, not the standards of the world. What is a life based on the standards of faith? Princess! In a world that pursues status, wealth, and sensual pleasure, it is difficult to live as a wanderer of God. Nevertheless, you have to live a life that goes back to the world and pursues the values of the kingdom of G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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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질적 욕망을 부추기는 문화가 거세질수록 성도의 아이덴티티를 지키고 살아가야 할 것이다. 죽은 줄 알았던 아들을 22년 만에 살아서 만난 야곱은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을 만큼 기뻤다. 이는 집 나갔다 돌아온 아들을 버선발로 뛰어가 마중하는 탕자 아버지의 감격이며(누가15:20) 제 길로 가던 잃은 양을 찾고는 벗과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벌이는 목자의 기쁨과 같을 것이다(누가15:6). 죄인이 주께 돌아와 생명을 억을 때 하늘 아버지도 이렇게 기뻐할 것이다.
The stronger the culture that encourages material desires, the more we should protect the identity of the saints. Jacob, who met his son, who he thought was dead, after 22 years of living, was so happy that he could not afford to die. This is the emotion of the father of the prodigal son who runs to meet his son after leaving home (who 15:20) and will be the same as the joy of the shepherd who finds the lost sheep on his way and calls his friends and neighbors to have a feast (who 15:6). Heavenly Father will be so happy when sinners return to the LORD and suppress their l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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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스스로 한 일은 모두 그르쳤지만, 하나님의 신실하심으로 그는 하나씩 회복되고 있다. 요셉은 오래전부터(45:10) 가족들을 고센 땅에 정착시키고 싶었다. 고센이 유목하기에 좋은 땅이며 목축을 가증이 여기는 애급 사람과 따로 살면서 고유한 신앙을 보전할 수 있어서다.이 애급은 영원한 거처가 아니라 엔젠가는 떠나야 할 곳이기에, 탈출하기에 유리한 변방 고센은 더 없이 좋은 입지다. 가족 사랑과 언약에 대한 바른 인식,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등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결정한 곳이 바로 고센(라암세스)이다.
Everything Jacob did on his own was wrong, but with the faithfulness of God, he is recovering one by one. Joseph has long wanted to settle his family in the land of Goshen (45:10). It is because Goshen is a good land for nomadic life, and he can preserve his own faith by living separately from those who consider herding false. This class is not an eternal residence, but a place where Engenga has to leave, so Goshen on the outskirts, which is advantageous for escaping, is a good location. It is Goshen (La Amess) that was decided by harmonious harmony of family love, right awareness of the covenant, and insight into the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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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대제국의 왕 바로에게 들어갈 때 축복하고 나갈 때 축복한다. 그는 하나님에게 요셉을 복의 근원으로 삼아 이 나라에 복주고 계심을 보고 있었다. 자기 힘으로 복을 빼앗고 움켜쥐려던 젊은 날은 험악한 세월을 가져다주었지만,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을 때 그는 복의 사람이 되고 있다. 이제 바로가 아무리 풍요로운 땅을 준다 해도, 그는 애급에 속하지 않을 것이고, 비록 죽음 너머까지 이어진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며 나그네로 살기로 한다. 성도는 세상의 판단 기준 앞에서 믿는 이들은 어떤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하는가?
Jacob blesses Pharaoh, the king of the great empire, when he enters and leaves. He was blessed by God with Joseph as the source of his blessings to this country. The young day, when he tried to take away and grab blessings on his own, brought about harsh years, but when he recognizes God's sovereignty, he is becoming a blessed man. Now, no matter how rich Pharaoh gives, he will not belong to mourning, and even if it extends beyond death, he will live as a wanderer, looking at God's promise. What kind of mindset should believers live in front of the world's standards of judg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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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은 왜 고센에 있기를 자처했을까?
야곱이 왜 자기의 나이가 얼마 못 된다고 했을까?
왜, 험악한 세월이라고 했을까?
나는 나그네 인생을 후회하지 않게 잘살고 있는가?
내 기근과 목마름은 무엇인가?
나는 세상의 화려함 앞에서 아직도 초라함을 느끼는가?
나는 왜 빚을 지었는가, 빚지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
Why did Joseph claim to be in Goshen?
Why did Jacob say he was not old?
Why, it's a terrible time?
Am I living well so that I don't regret my life as a wanderer?
What are my famine and thirst?
Do I still feel shabby in the face of the glamour of the world?
Why did I get into debt, what do I do to avoid being in deb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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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요셉을 만나다(28-34)
a.부자 상봉:28-30
b.요셉이 파라오와의 만남을 준비시킴:31-34
야곱의 가족이 파라오를 만나다(1-10)
a.요셉의 형제들이 파라오를 만남:1-6
b.야곱이 파라오를 만남:7-10
요셉이 야곱의 가족을 돌보다(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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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 유다를(28a)
요셉에게 미리 보내어(28b)
자기를 고센으로(28c)
인도하게 하고(28d)
다 고센 땅에 이르니(28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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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수레를 갖추고(29a)
고센으로 올라가서(29b)
아비 이스라엘을 맞으며(29c)
그에게 보이고(29d)
그 목을 어긋맞겨 안고(29e)
얼마 동안 울매(29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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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이(30a)
요셉에게 이르되(30b)
네가 지금까지 살아 있고(30c)
내가 네 얼굴을 보았으니(30d)
지금 죽어도 가하도다(30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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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그 형들과(31a)
아비의 권속에게 이르되(31b)
내가 올라가서(31c)
바로에게 고하여 이르기를(31d)
가나안 땅에 있던(31e)
내 형들과(31f)
내 아비의 권속이(31g)
내게로 왔는데(31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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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은 목자라(32a)
목축으로 업을 삼으므로(32b)
그 양과 소와 모든 소유를(32c)
이끌고 왔나이다. 하리니(32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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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33a)
당신들을 불러서(33b)
너희의 업이(33c)
무엇이냐 묻거든(33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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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들은 고하기를(34a)
주의 종들은(34b)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34c)
목축하는 자이온데(34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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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와 우리 선조가(34e)
다 그러하나이다. 하소서(34f)
애급 사람은(34g)
다 목축을(34h)
가증이 여기나니(34i)
당신들이 고센 땅에(34j)
거하게 되리이다(3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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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바로에게 가서(1a)
고하여 가로되(1b)
나의 아비와 형들과(1c)
그들의 양과 소와(1d)
모든 소유가(1e)
가나안 땅에서 와서(1f)
고센 땅에 있나이다. 하고(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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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들 중(2a)
오인을 택하여(2b)
바로에게 보이니(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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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3a)
요셉의 형들에게(3b)
묻되(3c)
너희 생업이 무엇이냐(3d)
그들이(3e)
바로에게 대답하되(3f)
종들은 목자이온데(3g)
우리와 선조가 다(3h)
그러하나이다. 하고(3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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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또(4a)
바로에게 고하되(4b)
가나안 땅에(4c)
기근이 심하여(4d)
종들의 떼를 칠 곳이 없기로(4e)
종들이 이곳에(4f)
우거하러 왔사오니(4g)
청컨대 종들로(4h)
고센 땅에(4i)
거하게 하소서(4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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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5a)
요셉에게 일러 가로되(5b)
네 아비와 형들이(5c)
네게 왔은즉(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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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급 땅이(6a)
네 앞에 있으니(6b)
땅의 좋은 곳에(6c)
네 아비와 형들로(6d)
거하게 하되(6e)
고센 땅에(6f)
그들로 거하게 하고(6g)
그들 중에 능한 자가(6h)
있는 줄을 알거든(6i)
그들로 나의 짐승을(6j)
주관하게 하라(6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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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7a)
자기 아비 야곱을 인도하여(7b)
바로 앞에 서게 하니(7c)
야곱이(7d)
바로에게 축복하매(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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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가(8a)
야곱에게 묻되(8b)
네 연세가 얼마요?(8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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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9a)
바로에게 고하되(9b)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9c)
일백 삼십 년이나이다(9d)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9e)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9f)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9g)
험악한 세월을(9h)
보내었나이다. 하고(9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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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이(10a)
바로에게 축복하고(10b)
그 앞에서 나오더라(10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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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이 바로의 명대로(11a)
그 아비와 형들에게(11b)
거할 곳을 주되(11c)
애급의 좋은 땅(11d)
라암세스를(11e)
그들에게 주어(11f)
기업을 삼게 하고(11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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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 아비와 형들과(12a)
아비의 온 집에(12b)
그 식구를 따라(12c)
식물을 주어(12d)
공궤하였더라(12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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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과 요셉의 상봉_Jacob and Joseph's Reunion_
고센에 정착한 가족들_families settled in Goshen._
바로를 축복하는 야곱_Jacob Blessing Pharaoh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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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평생 야곱을 옹호하시더니 결국 성화에 성공하신 주님, 내가 이 땅에 나그네로 살면서 어디에서 떠나고 무엇을 내려놓아야 할지 늘 생각하는 성도가 되게 하옵소서. 간혹 이해가 잘되지 않아도 주님께서 주권으로 결정하신 것이 내게 최상인줄 믿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리에
서지 않게 도와주옵소서.
O LORD, who has defended Jacob all his life and succeeded in the torch-lighting. I live on this land as a traveler, where to leave and what to put down. Be the saint you always think of. Even if I don't understand sometimes, the Lord...I trust that the decision of sovereignty is the best thing for me and help me not to stand against God.
2026.5.24.sun.Clay
신학 비평//
왜 야곱은 애굽의 중심이 아니라 변방 고센을 택했는가? 야곱의 마지막 여정은 아이러니합니다. 평생 복을 붙잡으려 몸부림치던 사람이 이제는 애굽의 최고 권력자 앞에서 두 번이나 “축복”하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창세기 후반부의 야곱은 더 이상 빼앗는 사람이 아니라, 흘려보내는 사람입니다. 젊은 날 그는 복을 움켜쥐려 했고, 늙어서는 자신이 받은 복의 통로가 됩니다. 바로 앞에서 떨지 않고 축복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제 야곱이 세상의 질서보다 하나님의 주권을 더 크게 보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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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센은 단순한 목초지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거리두기’의 공간이었습니다. 애굽은 화려했습니다. 풍요로웠고 체계적이었으며, 세계 제국의 중심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셉은 가족을 중심부에 두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중심에 가까울수록 동화되기 쉽기 때문입니다. 문명은 사람을 편리하게 만들지만 동시에 정체성을 지워버리기도 합니다. 그래서 요셉은 일부러 변방을 택합니다. 고센은 가난한 자리 같지만 사실은 ‘신앙 보존 구역’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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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외모와 지위와 연봉으로 사람을 분류합니다. 갑과 을, 성공과 실패, 중심과 주변으로 나눕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는 다릅니다. 성경은 끊임없이 묻습니다. “너는 어디에 속한 자인가?” 애굽의 중심에서 인정받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언약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고센은 불편하지만 안전했고, 초라하지만 거룩했습니다. 야곱이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험악하였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그는 단순히 고생했다는 의미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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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은 자신의 인생 전체가 ‘붙잡으려다 깨어진 역사’였음을 뒤늦게 고백하는 것입니다. 형을 속였고, 라반에게 속았고, 자식을 잃었고, 도망쳤고, 두려움 속에 살았습니다. 인간적으로 보면 실패와 우회의 연속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그런 야곱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험악한 세월”은 하나님의 부재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야곱의 자아를 깎아낸 시간에 가까웠습니다. 젊은 야곱은 축복을 ‘소유’하려 했지만, 늙은 야곱은 축복을 ‘신뢰’하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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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이제 그는 애굽의 좋은 땅을 받아도 거기에 영혼을 심지 않습니다. 그는 압니다. 여기는 영원한 본향이 아니라는 것을. 여기서 신앙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신앙은 세상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속하지 않는 방식’으로 사는 것입니다. 돈을 벌 수는 있지만 돈이 정체성이 되면 안 됩니다. 성공할 수는 있지만 성공이 구원이 되면 안 됩니다. 화려함을 사용할 수는 있지만 거기에 영혼을 저당 잡히면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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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왜 아직도 세상의 화려함 앞에서 초라함을 느끼는가? 왜 빚을 지었는가? 내 기근과 목마름은 무엇인가? 나는 나그네 인생을 후회 없이 살고 있는가? 이 질문들은 단순한 경제 문제나 감정 문제가 아닙니다. 사실은 “나는 어디에 속하고 싶은가?”라는 존재의 질문입니다. 현대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우리를 애굽의 중심으로 부릅니다. 더 좋은 집, 더 좋은 차, 더 높은 자리, 더 젊은 외모, 더 강한 비교 우위. 그러나 성경은 때때로 고센을 선택하라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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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느려도, 조금 덜 화려해도, 영혼을 잃지 않는 자리를 택하라고 말입니다. 야곱은 결국 죽음 앞에서야 깨달았습니다. 인생은 소유의 길이 아니라 귀향의 길이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성도의 위대함은 세상을 정복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세상 속에서도 끝내 하나님 나라의 언어를 잃지 않는 데 있습니다. 애굽 한복판에서도 자신을 “나그네”라고 부를 수 있는 용기, 바로 그것이 신앙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