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금설교 비평
CBS 저널이 매주 월요일 마련하는 설교비평 시간입니다.
지난 12월 2일에 CBS 저널 설교비평에서는 말라기 3:7-12의 십일조 문제와 관련된 한 설교비평을 했었는데요.
그 방송이 나가자, 많은 분들이, 신약에서의 헌금관에 대해서도 다루어 달라는 요청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바로 신약에서의 재물관과 헌금관을 바탕으로,
잘못된 설교와 올바른 설교의 사례를 제시하고 비평하는 시간을 마련했는데요.
지금 전 기윤실 건강교회운동본부 총무를 지낸 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성기문 교수가 자리했습니다.
Q. 지난 달에는 말라기서의 십일조와 관련된 설교를 비평하셨는데,
오늘은 신약성경에 나타난 헌금관을 바탕으로 설교비평을 하시겠다고?
A. 신약성경에서 헌금문제는 생각보다 많이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은 바울의 헌금관을 중심으로 다루어 보려고 한다. 바울의 헌금관도 지난달 구약 십일조 설교비평에 결론지은 것처럼 "나눔과 교제"라는 측면에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한국교회의 헌금관은 신도들이 물질적으로 더 헌신하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물질환원주의 혹은 신앙계량주의가 문제라고 본다. 즉 하나님의 은혜와 신자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화하여 물질적인 복으로 환원하고 그것으로 신자의 신앙상태를 평가한다는데 문제가 있다고 본다.
Q. 구약의 "십일조"를 마치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의 절대적인 척도로 삼는 경우도 문제지만, 하나님이 기독교인들에게 바라시고 요구하시고 주시는 바가 물질적인 풍요로 제한되는 것도 문제라는 말씀. 다시 한번 명심해 보아야 할 것 같은데. 오늘 다룰 주제가 바울의 헌금관이라... 특별히 바울의 헌금관을 다루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리고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다루게 되나?
A. 물질적인 풍요에 대한 설교자들의 강박관념은 바울의 헌금관에 대한 설교자들의 이해에서도 발견된다. 바울의 헌금관에 대한 이해가 중요한 것은, 그것이 비록 문제가 있긴 하지만, 한국교회가 바울의 헌금관을 다루는 구절들에 근거하여 한국교회의 헌금관을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특별히 고린도전서 16:1-4과 고린도후서 8-9장과 관련된 설교들을 분석해 보았다.
Q. 실례를 살펴보기 전에, 바울의 헌금설교에 대한 배경을 간단하게 짚고 넘어가야 청취자들의 이해가 쉬울 것 같다.
A. 바나바와 바울이 다소에서 만나 안디옥에서 1년간 사역을 하고 있을 때, 예루살렘에서 안디옥으로 온 선지자들 중에서 아가보라는 사람이 유대지방에 큰 흉년이 있을 것을 예언하였다. 글라우디오 황제때 그 예언이 성취되었다. 이방 기독교인들이 예루살렘에 있는 기근에 처한 성도들을 돕기 위해서 능력이 되는 한도 내에서 부조금을 보내기로 결정하고 돈을 모아서 바나바와 바울을 통하여 유대지방 장로들에게 보냈다(행 11:27-30; 롬 15:25-27).
그 와중에 발생한 사건이다. 디도에서게 받은 헌금의 진척상황은 썩 낙관적이지 못한 형편이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바울이 고린도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헌금을 마무리하도록 강권(强勸)하기도 그렇고 자발적인 마음에 무작정 기다릴 수도 없는 노릇이고 가난한 마케도니아교인들은 이미 과도한 헌금을 낸 상태고 부유한 고린도의 신앙공동체들은 아직도 주저하고 있는 상태이며, 곧 디도와 다른 사람들이 헌금을 수금(收金)하려고 갈 상황에 행해진 바울의 권면(advice)이다.
Q. 어느 정도 윤곽이 잡히는 것 같다. 이제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설교자들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대부분의 설교자들은 바울이 예루살렘의 성도들의 가난에 대하여 구제하고 공평케 하는 헌금 혹은 연보(捐補)를 말하고 있다는 점은 감추고, 즉 연보의 정신과 실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으면서, 한국교회가 하나님께 열심히 헌금을 해야 한다는 것만 강조하고 물질적인 복을 받기 위해서 헌금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설교자들은 "교회내에서 성도가 어떻게 물질적으로 교제하고 나누는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Q. 우선 이에 대한 한가지 예로, 경상남도 창원의 Y교회 J목사님의 2002년 11월 17일자 설교의 경우를 살펴보자.
(설교인용)
어느 부모든 자식이 부요하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더하십니다. 로마서 10장 12절에 말씀하십니다.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이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예수님께서도 우리가 부요하기를 원하십니다. 고린도후서 8장 9절에 말씀하십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할렐루야!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피 흘리신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우리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채찍에 맞으신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과 저를 부요케 하시기 위해 가난한 목수의 아들로 오신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요하기를 원하십니다. 성령님께서는,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부요하기를 원하십니다.
A. 우리말 성경번역이 모호해서 그런데, 롬 10:12의 의미는 "하나님이 자신을 찾는 자들 모두에게, 인종적인 차별(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없이 관대(寬大)하게 구원을 베푸신다" 혹은 "구원을 아끼지 않으신다"는 의미일뿐, "하나님을 찾는 모든 자들이 물질적으로 부유(富有)하게 되기를 원하신다"는 의미가 아니다. 즉 이 표현은 관대, 혹은 관용으로 번역되어야 옳다.
또한 고후 8:9의 경우에, 그리스도의 "가난해지심"과 고린도 교인들의 물질적으로 "부유함"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이것은 오히려 상징적인 대조다. 본문은 그리스도께서 성육신(成肉身)하셨을 뿐만 아니라,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목숨까지도 희생하신 것처럼 부유한 고린도교인들은 "가난한" 예루살렘교인들을 위해 희생적으로 구제헌금을 하였던 마게도니아 교인들의 경우처럼 구제헌금에 있어서 마땅히 희생적이어야 한다는 의미일 뿐이다. 성경은 부유한 자가 가난한 자들을 위한 책임과 의무를 갖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으며, 그리스도인이 부자가 되는 것 자체에 대해서 축복(祝福)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다.
Q. 같은 설교자의 설교인용입니다.
(설교인용)
그러나 우리는 에베소서 1장 11절 말씀대로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役事)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우리가 기업을 하는 것은 수입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기업인 우리가 억만 원을 벌어도 그것을 다 바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십분의 일만 바치라고 하셨는데, 그것마저 떼어먹으면 하나님께서 그 기업에 투자하시겠습니까?
Q. J 목사님은 에베소서 1장 11절에서 나오는 "기업"을 일반 기업(企業)의 목적이 이윤창출인 것처럼 하나님의 기업인 우리도 수입을 창출해야하는 것처럼 말하는 것 같군요.
A. 이 본문에서의 "기업"은 조상으로부터 받은 유산(遺産)을 의미하는 "기업"(基業, 터 기 일 업)이지, 회사를 의미하는 "기업"(企業, 도모할 기 일 업)은 아니다. 즉 유산으로서의 기업은 물려주는 사람에게 전적으로 달려있는 것이며 물려받는 사람의 노력과는 무관한 것이지만, 회사의 경우에는 운영자가 얼마나 최선을 다하느냐에 성사(成事)가 달려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하나님이 우리를 예정하시고 선택하사 우리를 자신의 상속분(相續分)으로 삼으셨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지, 그리스도인들이 무언가 이윤과 소득을 창출해 내야하는 사람들로 만드셨다는 의미는 아니다.
Q. 아주 극단적인 예를 우리가 살펴본 것 같다. 본문에 대한 바른 설교의 예도 있는 것 같은데 먼저 들어보고 이야기를 나누도록 하자.
최 홍준 목사(부산 호산나교회) "심고 거둠의 법칙"(2001/1/28)
A.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씨뿌림의 비유를 통한 교훈에 대한 설교자들의 이해다."많이 뿌린 자는 많이 거둘 것이며". 이 말은 "교회에 열심히 헌금하면 많은 복을 받을 것이다"라는 일반적인 교훈이 아니다. 자신의 재물을 털어서 가난한 성도를 도우면, 남들을 도운만큼 하나님이 더 복을 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최홍준 목사님의 경우에 본문의 전후상황에 대한 언급이 거의 없어서 바울의 헌금관에 대한 설명보다는 하나님의 심고 거둠의 법칙으로 일반화하는 경향이 있어 보이지만, 그래도 하나님이 원하시는 물질관에 대한 바른 이해를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Q. 결론은?
A. 교회의 헌금은 70-80% 이상이 경상비로 쓰인다고 합니다. 주로 교회에서 요구하는 특별헌금, 혹은 임직감사헌금 등은 주로 교회당 건물을 수십 수백억 들여서 새로 건축하거나 주차장을 사거나 다른 용도의 부지나 건물을 매입 혹은 건축하는데 쓰인다. 성경의 교훈과 교회적인 요구와는 상관없이, 목회자들의 개별적인 야망에 의존한 과시성 사업이나 개교회주의적, 교회성장주의적 목적에 사용하거나 심지어는 담임목회자 개인의 유익을 위해서 사용되기도 한다.
바울은 성도를 섬기는 구제헌금을 내는데 있어서도 많이 내도록 명령하는 것이 아니라, 권면(勸勉)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울은 이것을 은혜의 나눔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성도를 섬기는 구제를 선교로, 봉사로, 사역으로, 교제라고 부른다. 성도들의 재물의 나눔과 공유는 자발적인 헌신에 의해서 가능한 것이었지, 억지로 행해진 것은 아니다. 신약성도의 나눔과 교제는 성령의 인도하심과 교제와 헌금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본다. 그렇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시급한 것은 강요와 물질적 축복의 약속이 아니라, 깨닫게 해주시는 성령의 역사로 성도와 이웃에 대한 우리의 완악한 마음이 열리도록 기도하는 일과 깨닫게 해주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Q. 지난달에 이어 두차례 다루어진 한국교회의 재물관과 헌물관에 대한 설교비평의 결론을 바울이 디모데에게 교훈한, 디모데전서 6:17-19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너는 세상재물로 부자(富者)인 신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교훈하라: "돈 때문에 자만하지 말고 정결하지 않은 재물에 소망을 둘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의 행복을 위해서 필요한 모든 것을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 부자들은 선한 일을 하고 선행하는데 부자가 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고 항상 기꺼이 공유하는 자가 되라." 이것이 참된 생명만을 소유하기 원하는 자들이 미래를 위하여 선한 재화를 모을 수 있는 방법이다(딤전 6:17-19).
출처http://biblefactory.tistory.com/103[biblefacto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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