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한울소리 47 ( 강의 내용 3. 원시한글이 있었다는 실증)
공무원 연수원에서 강의하는 동영상 캡춰중

4) 원시한글 가림토(加臨土, 또는 加臨多)의 창제
한글을 쓰는 사람이 한글이 만들어진 원류에 대해서 모른다면 말이 될것 같은가?
한글은 세종대왕이 재 창조와 정리는 했지만 만들지는 않았다는 사실은 세종의 말씀 자방고전(字倣古篆)이나 최만리 상소문 또는 먼저 ㅅ 의 예에서 보듯 너무 많다.
따라서 처음에 유기(留記)에서 말하는 ㄱ ㄴ ㄷ 등 신지신획(神誌神劃)이 만들어 지고 세월이 흐르자 급속도로 인구가 늘고 문물이 발달하면서 말이 많아지게 되니 신획(神劃)이라는 참글(眞書)만 가지고는 의사가 소통되기 어려웠다. 그리하여 먼저 말한 제 삼세 밝달임금 가륵(嘉勒) 재위 46년(B.C.2181) 경자이년(庚自二年) 천제는 삼시랑 을보륵에 명하여 정음 38자를 만들어 이를 가림토(加臨土) 또는 가림다(加臨多)라 하니 이것이 바로 원시한글이 되는 것이다.
* 근거문헌
(庚子二年 時俗尙不一方言相殊雖有象形表意之眞書十家之邑語多不通百里之國字難相解於是命三郎乙普勒讚正音三十八字是爲加臨土其文曰..... 檀君世記)

그러니까 이 글자들의 기본모델이 바로 천부인 원방각(圓方角-ㅇ ㅁ △ )으로 만든 글자이며 따라서 이 ㄱㄴㄷ...ㅎ 속에는 엄청난 철학을 내포하고 있는 글자이므로 우리의 말과 글자가 우연히 세월이 흐르면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동시에 만들어 졌다는 증거가 들어있다. 이 내용도 단군세기와 소도경전 본훈에도 기록되 있다.
이는 참으로 인류학계에서 기절초풍을 할 정도의 사건이다. 우리 한글과 같은 과학적 글자가 만들어진 것도 기적인데 그것도 그 글자 속에는 하늘과 땅과 사람을 상징하는 말과 글자가 의도적으로 동시에 만들어지다니... 이는 정말로 그 근간이 되는 천부인 세 개가 아니었으면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다. 여기에 대한 근거는 아래에서 설명된다.
* 실물 가림토
1) 산동성 환대(山東省 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옛 한글)- 길림시 송호상 교수의 증언 - "동이민족 논설중 일부"
“산동성 환대(山東省 桓臺)시에서 발굴된 가림토문자{加臨土文字(옛 한글)는 조선의 한글이 세종대왕의 발명이 아님을 증명하고 있으며, 지하 6m 깊이에서 발굴된 녹각에 새겨진 ㅅ ㅈ × ㅜ 등의 가림토문자는 탄소측정결과 거금 3850년 전의 것으로 확인하였으니, 환단고기의 '가림토 문자가 4000년 전에 있었다'고 하는 내용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외 가림토 사진 다수

* 서안의 반파 유적지 글자.


아랫것은 신지녹도문 하나의 ‘나

아랫것은 노골적인 가림토, 또는 현재의 ㅈ인데, 원시한글 가림토가 있다 하면 쌍지팡이를 들고 일어나며 그 가림토의 흔적을 내놔보라고 글쓴이를 공격하던 국문학자들이 보았으면 좋겠다.

다음은 [신지녹도문 진본 천부경]에서 말하는 ‘일곱’에서 말하는 사내 아들들.

신지녹도문 일곱의 일
위 점은 어디든지 가서 다른 부족의 늙은 애배를 이기고 가족을 일구어야 하는 아들들 이고 아래점은 애비를 이기고 새로 들어올 사내를 기다리는 딸 들

5. 명마산 글씨바위

二자가 아니고 제물을 올린다는 上 자 갑골문


사내를 기원한 한글 가림토 ㅅ


아들을 기원한 신지녹도문 아홉의 업구렁이 그림

[신지녹도문] 하나 둘 셋 ...열중 아홉의 ‘아’

아들을 기원한 명마산 석각의 아홉의 ‘아’ 그림

이외 명마산 석각본 글씨는 셀 수도 없이 많다.
6. 명마산 글씨 바위란?
경북 경산시 와촌면 강학리 명마산 중턱에서 한글의 원형이라는 학설이 제기된 가림토(加臨土) 문자로 추정되는 바위글이 발견돼 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주민들이 오래전부터 '글바위'로 불러온 이 바위에 새겨진 글꼴은 훈민정음과 가림토 문자의 관계에 대한 수수께끼를 풀 수도 있는 중요한 열쇠가 될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경산시 향토문화연구협의회 예대원(62·경산시 사동·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 회장은 "이곳 평면 바위와 부근의 세로바위(가로 180cm·세로 340cm) 2곳에서 발견된 상형문자에 가까운 글꼴이나, ㅅ ·ㅈ·ㄴ 등의 형태를 띤 한글 자모로 미뤄볼 때 훈민정음의 원형인 가림토 문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고 이 기사가 부산일보에까지 나 학계에 보고되었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그저 아이들 장난으로 치부, 아무런 성과가 없었고 따라서 예대원씨도 그후 아무런 연구도 없었다.
이에 글쓴이가 현지 탐사해 본 과 깜짝 놀랐다.
그 이유는 그 글씨바위에 써져 있는 글씨는 최소한 2.000~2.300년 것으로 첫 조선이 망하고 천제국 이었던 신한(辰韓)의 유민들이 마한으로부터 한반도 남단 동쪽 땅을 조금 얻어 신라를 세웠다는 것이 삼국유사 최치원 편에 나오는데 이때 유식한 선비들은 모두 경주로 가고 풍각쟁이, 사당패, 백정 각설이 패 등은 물도 별로 없는 대구 동쪽의 명마산 기슭에서 그들 나름대로 터를 잡았던 걸고 보여 진다.
그러나 그들은 고향을 잊지 않으려고 북쪽이 병풍 같은 바위아래 당시 그들이 쓰던 금문, 가림토, 신지녹도문등으로 글자를 새겨 놓고 그들 나름대로의 천제를 지낸 것 같은데 그들은 아마 바위에 글자를 새기는 도구도 시원치 않았을 것이며 또 그들은 글자 새기는 전문가가 아니니 명마산 글자는 매우 조잡하기 짝이 없다.
따라서 이 글자들을 감정한 지금 학계의 감정위원들은 금문이나 신지녹도문, 그리고 가림토등을 전연 해독할 줄 모르니 이것을 어떤 애들의 장난으로 알고 무시하여 우리의 상고사와 우리 글자의 발달사가 쓰여 있는, 남한에서는 유일한 귀중한 유물이 지금도 비바람에 그대로 마모 되고 있다.
그러나 글쓴이가 보기엔 그 조잡한 글씨 일망정 그곳에 새겨진 글자는 분명 당시 그들이 쓰던, 위에서 말한 금문이나 신지녹도문, 그리고 가림토로 적은 것으로 보아 이는 어느 유물보다 더 우리 상고사를 정확하게 실증한다고 본다.
이를 글쓴이는 인근에 사시는 독자님들과 그곳에 찾아가 확인하고 그간 싸였던 흙을 긁어내는 등 청소를 한 다음 그들이 했을 것을 추정하여 그들 식으로 천제를 지내고 사진을 찍어왔는데 여기에 제시되는 글자나 그림은 이 글에 해당되는 것만 약간 실렸으니 명마산 글자의 전체를 보려거나, 다 자세히 보시려면 글쓴이 카페 게시판 [한겨레 산하] 1189 번부터 1192 까지 보시라.
7. 명마산 글씨 바위의 특징
1) 새긴 시기는 최소한 신라 초이니 대략 2.100 ·~2.300년 전일 것이다.
2) 신지녹도전자와 가림토의 어머니 신지신획과 금문을 혼용 하던 시대, 한반도에는 한자나 가림토 조차 없던 시기의 글자를 한반도에 흘러 들어온 유민들이 그대로 썼다
3) 이 암각은 누게 에게 보여주기 위해 새긴 것이 아니다. 즉 광개토대왕비나 어떤 충신열사의 전적비 등과 같이 후세에 누구에게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4) 새긴 장소가 마치 젯상 같이 북쪽에 병풍 같은 벽 바위가 있고 그 아래 젯상 같은 암반이 있는데 그 젯상 암반에 글자가 새겨져 있으니 그 제상 위에 글자 한자를 새겨 놓고 그 위에 술이나 음식물을 올려놓은 다음 복을 빈자리로 본다.
5) 그 위에 장군석 이라는 남근석이 있음으로 환웅과 연관된 문자가 많다.
6) 암각전문가가 새긴 것이 아니라 당시 천민들 아무나 새겼으므로 매우 조잡하다.
7) 글자의 배열이 상하 좌우가 있는 것이 아니라 새기는 사람들이 아무렇게나 앉아 새겼다.
8) 일시에 새긴 것이 아니라 수백 년에 걸쳐 남이 쓴 글씨위에 덧대기로 새긴 것도 많으니 꼭 대학가 술집의 낙서판 같다.
9) 새긴 연장도 별똥별 쪼가리나 흑요석, 그리고 그 후 무쇠 징으로 새겨졌다.
10) 좁은 바위 위에 여러 사람이 글자를 새기다 보니 아주 작을 글자가 많다.
11) 글자 그림들이 빽빽이 새겨 젖으나 너무 마모된 글자, 그림이 많아 해독하기 힘 든다.
8. 명마산 바위가 중요한 이유
이상 이 명마산 글씨바위는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한글이 어떻게 만들어 젔나 하는 의문을 푸는 열쇄인 동시 왜 우리는 우리 글자 가림토를 쓰지 못하고 중국 한자에 매달려 왔는가 그 이유가 밝혀진다.
즉 우리는 그림글씨 금문이 있었지만 그 외 신지녹도문이나 원시한글 가림토를 만들어 썼다.
그러나 신지녹도문은 신의 글자였음으로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는 천제 지낼 때 이외에는 쓰지 않았고 가림토 역시 명마산 글씨바위에서 보듯 가림토, 신지녹도문, 갑골문등을 혼용해 썼음으로 차라리 원시 한자 갑골문 쓰는것 보다 복잡해 한자에게 눌렸다고 본다.
따라서 명마산 글씨바위는 우리 민족의 역사까지 다시 써야할 귀중한 유산으로 우리의 국보는 물론 유네스코에 보고하여 인류문화유산으로 보전해야할 귀중한 유산으로 본다.
그러나 이런 유물은 우리 한반도에는 아직까지 없었고 외국에만 있었다.
우리 민족은 [진본천부경] 하나 둘 셋 ...열 이나 ㄱ ㄴ ㄷ ...ㅎ 속의 뜻을 밝히는 [천부인 ㅇ ㅁ ㅿ]을 떠나서는 한시도 살 수 없음으로 이 글은 자주 보내질 것인데 하느님 소리만 나와도 싫어하는 카페가 있을 것이니 계속 읽거나,누구에게 말 하고 싶은 분은 천부경.net 치고 들어와 준회원만 되어도 전체 메일을 받아보게 되고 글쓴이 카페 [천부경 한울소리]에는 전에 써진글들이 모두 있다.
천부경.net
http://cafe.daum.net/chunbuinnet - 우리 -
첫댓글 정말 좋은 정보이자 소중한 정보입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