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한 사람이 항상 제 시간에 오는 것은 아니다. 어떨 때는 나보다 일찍 오지만 어떨 때는 나보다 늦게 온다. 어떤 사람은 시간을 꼭 맞춰서 오지만 어떤 사람은 거의 항상 30분 이상 늦게 나타난다. 길이 막히는 날도 있고 시간 계산을 잘못하는 날도 있다. '약속 시간 정확하게 지켜준다'는 문구가 객차 안에 붙어 있지만, 그러나 요새는 전철도 자주 사고를 낸다. 대체로 시간을 지키기가 지키지 않기보다 어렵다. 누구나 늦을 수 있다. 내가 늦을 수도 있고, 나와 약속을 한 사람이 늦을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는 언제나 기다리는 사람이 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한다.
기다리는 사람이 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은 기다리는 시간에 대비하여야 한다는 말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시간은 그 누군가에게 미리 주어버린 시간이다. 대비하지 않은 자에게 이 시간은 막무가내이고 지리멸렬하기 짝이 없는 시간이다. 왜냐하면 그 시간은 이미 자기 시간이 아니기 때문이다. 사실은 그 자리에 나오기 전부터 시간에 대한 권한을 상실해버렸다고 하는 편이 사실에 가깝다. 가령 우리는 오후 늦게 약속이 잡혀 있는데도 아침부터 자기를 위한 시간을 갖지 못하고 빈둥거리기도 한다. 시간을 앞당겨서 내주어버렸기 때문이다. 그 사람과 같이 쓰기로 하고 미리 떼어놓은 시간을 혼자 쓰자니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것이다. 사정이 그러니 약속 시간이 지나도 오지 않는 사람을 기다리면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겠는가. 아무것도 없다. 대비하지 않았다면.
기다리는 사람이 사업상의 파트너나 친구나 선배일 경우도 마찬가지지만, 만약 애인이라면, 그것도 만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이제껏 알아낸 것에 비해 아직 알아내지 못한 것이 훨씬 많은 사이라고 한다면, 충분히 알지 못하기 때문에 더 간절하고 끌리고 한다면, 아직 신뢰보다는 의심이 더 지배적인 감정이라고 한다면, 그래서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시구가 자기 고백처럼 입에서 맴도는 단계라고 한다면, 그 그리움, 그 보고싶음이 실은 불신과 의혹의 교묘한 위장에 다름 아니라는 사실을 아직 깨닫지 못했거나 부러 깨닫고 싶지 않은 상태라고 한다면, 그 시간의 막무가내의 지루함을 무슨 수로 무찌른단 말인가.
그런 시간의 길이를 생각해보라. 1분이 한 시간보다 길다. 10분은 거의 미치게 만든다. 시간처럼 실존적인 것이 있을까. 시간은 시계의 눈금 속에 갇히지 않는다. 어떤 시간은 길고 어떤 시간은 짧다. 어떤 시간은 무겁고 어떤 시간은 가볍다. 어떤 시간은 견딜 만하고 어떤 시간은 견디기 어렵다. 예를 들면 사귄 지 10년쯤 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과 이제 한 달 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시간이 같을 수 없다. 10년 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은 좀 늦어도 그다지 안절부절못해 하지 않는다. "길이 막혀? 그럼 다음에 보지 뭐." 큰 동요 없이 이렇게 말할 수 있다. 한 달 된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도 그럴 수 있을까? 그런 사람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경우는 아니다. 만난 지 한 달 된 애인은 본질적으로 아직 믿을 수 없는 사람이다. 보고 싶어한다는 것이 그 불신과 의심의 증거이다. 보고 싶으면 보고 싶은 만큼, 간절하면 간절한 만큼 믿지 못하고 있다. 내 눈 앞에 없으면 어디서 무얼 하는지 의심스럽기 때문에 보고 싶어하는 것이다. 애인은 본질적으로 의심하는 관계이다.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이 유독 견디기 어려운 까닭이 이로써 분명해졌다. 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며 오지 않는 애인에게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닐까를 걱정하는 사람이 아주 없다고 할 수 는 없지만 대체로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그보다 우선 하는 것은 오지 않는 애인에 의해 허비된, 자기 시간의 부피이다. 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는 동안 1분은 한 시간처럼 길어지고 평생처럼 늘어난다. 애인이 나타나지 않는 그 1분 동안 우리는 천 가지 경우의 수를 헤아리고 만 가지 감정의 기복을 겪는다. 사람은 그다지 이타적인 존재가 아니다. 다는 아니지만, 사람은 빈번하게 자신의 이기적 욕망을 이타적 동기 속에 교묘하게 은폐한다.
그러니 대비하여야 한다. 애인은 약속 시간에 늦을 수 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야 할 때가 있다. 그런데 어떤 대비? 약속 장소는 카페거나 영화관 앞이거나 공원 벤치일 것이다. 그 모든 경우에 가능한, 유일하다고 할 수는 없어도 가장 그럴 듯한 대비책은 가방 속에 한 권의 책을 넣어 가지고 나가는 것이다.
가능하다면 시간의 흐름을 의식하지 않을 정도로 재미있는 책이 좋다. 너무 어렵거나 복잡한 책은, 그렇지 않아도 견디기 힘든 시간을 속수무책으로 만들어버릴 가능성이 있다. 연애소설은 읽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자칫 잘못하면 감정의 불길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다. 감상을 자극하는 말랑말랑한 수필집도 말리고 싶다. 감정은 가슴에서 끓고 있는 것으로 족하다. 머리를 쓰게 하고 사건의 인과관계를 따지게 하는 추리소설이 어울리지 않을까. 예를 들면 토머스 해리스의『레드 드래건』이나『양들의 침묵』. 추리소설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지적인 성찰을 유도하는 에세이는 어떨까? 미셀 투르니에의『예찬』이나『짧은 글, 긴 침묵』.
그런데, 토머스 해리스든 미셀 투르니에든, 그 책들이 아무리 흡인력이 있다고 해도, 애인을 기다리는 사람의 눈에 글자들이 들어올까. 그러니까 그 책들이 오지 않는 애인을 기다리는 그 지루한 시간에 대한 방비책이 될 수 있을까. 오차 범위 내에서 말할 수 있는 답이 나에게 있다.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에 읽는 책은, 어떤 책이든 뇌에까지 전달되지 않는다. 눈에서 뇌에까지 이르는 길이 너무 멀고 험해서 가지 못한다. 책을 읽되 잘 읽지 못한다. 그런데도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에 책을 잘 읽을 수 있다면, 당신은 덜 간절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다. 아니, 더 그럴듯한 진단은, 간절함의 단계를 벗어났다. 이제 당신은 보다 더 잘 읽을 수 있게 될 것이다. 조금 있으면 소지할 책에 대한 까다로운 구별도 불필요해질 것이다. 그리고, 당신의 애인은 점차 의심의 대상이 되지 않거나 의심할 가치가 없는 대상이 되어갈 것이다. 믿음이 돈독한 사이가 되거나 무미건조한 사이가 되어갈 것이다. 그리고, 돈독한 믿음과 무미건조함이 한 몸에 붙여진 다른 이름이라는 걸, 당신이 너무 둔하지 않다면, 곧 알아차리게 될 것이다.
첫댓글애인을 기다린다는 것...예전에 친구 집에 갔을 때 그 친구가 자신의 남자 친구한테 전화가 올 때가 되었다며 기다리는 걸 봤어요.그게 참 부러웠었죠. 난 그런 일이 없었으니...그리고 지금의 남편은 나에게 전화를 거의 안하고 내가 했었어요.왜냐면 우리 엄마가 늘 먼저 받았었고,엄마는 우리 사이를 몰랐으니까요.그리고...얼마 전에 애인이라고 하기엔 좀 뭐 하고...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려 본 적이 있었습니다.집에서..."어디 가지 말고 있어.내가 곧 전화할게."이렇게 말하고 나중에 다시 전화올 때까지 난 기다리기보다는 누군가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주었다는 데 대해 행복해 했고 그 시간을 즐겼어요.지금은 그럴 일도 없지만.
첫댓글 애인을 기다린다는 것...예전에 친구 집에 갔을 때 그 친구가 자신의 남자 친구한테 전화가 올 때가 되었다며 기다리는 걸 봤어요.그게 참 부러웠었죠. 난 그런 일이 없었으니...그리고 지금의 남편은 나에게 전화를 거의 안하고 내가 했었어요.왜냐면 우리 엄마가 늘 먼저 받았었고,엄마는 우리 사이를 몰랐으니까요.그리고...얼마 전에 애인이라고 하기엔 좀 뭐 하고...누군가의 전화를 기다려 본 적이 있었습니다.집에서..."어디 가지 말고 있어.내가 곧 전화할게."이렇게 말하고 나중에 다시 전화올 때까지 난 기다리기보다는 누군가가 내게 그런 말을 해 주었다는 데 대해 행복해 했고 그 시간을 즐겼어요.지금은 그럴 일도 없지만.
2가지를 알았습니다. '그리움, 그 보고싶음이 실은 불신과 의혹의 교묘한 위장'이라는 것과 '애인을 기다리는 시간에 책을 잘 읽을 수 있다면, 내가 덜 간절하다'는 걸. 그렇다면 기다리는 동안 책을 읽어야 하나, 읽지 말아야 하나 그게 고민이네요.^^
절친한 선배는 약속시간에는 항상 30분 이상 늦기가 일쑤고 건망증이 심해서 약속시간도 잊기가 부지기수 입니다.그래서 늘 확인 전화를 여러번 해주어야 합니다.이렇게 어렵게 만나는 사람을 기다리는 것은 내가 너무 좋아하기 때문입니다.이유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