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3년생 조선의 최영우 : 남방포로감시원, 그 5년의 시간>
-최양현, 최영우 지음/효형출판 2022년판/223page
남자와 역사
1
1940년대 제국주의 일본이 소위 ‘대동아전쟁’을 치르며 점령한 남방(인도차이나 반도 및 인접한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지역)에 ‘포로감시원’이라는 직업으로 파견될 때만 해도 ‘최영우’는 비록 식민지 치하의 젊은이에 불과했지만 꿈도 많고 건강한 여느 평범한 청년과 다를 바 없었다.
남방에서 ‘포로감시원’의 생활을 한 지 3년여의 시간이 흐르고 그 새 일본은 전쟁에서 패배하며 연합국 미군에 항복하게 된다. 일본의 항복 이후, 인도네시아에 주둔했던 연합국의 일원인 네덜란드군은 조선인 ‘포로감시원’들에게 일체 집합 명령과 구금조치를 시행했다. 청년 최영우는 하루아침에 전쟁범죄자 신분으로 전환되며 당시 싱가폴에 있던 창이형무소에 구금된다.
2
꿈과 희망이 있어서 미래를 설계하고 그 꿈을 실현해나가기 위해 꿋꿋하게 자신의 삶을 펼쳐나가는 청년의 삶은 아름답다. ‘최영우’도 그런 삶을 비록 식민지 치하이긴 했지만 1940년대에 살고자 했다.
‘최영우’는 다소 빗나간 낭만이기는 했지만 ‘포로감시원’의 일을 위해 부산에서 2개월간 군인 훈련을 받게 되고, 이후에는 수십 척(당시 ‘포로감시원’으로 채용된 조선 젊은이는 약 3천 명 정도 되었다고 한다)의 대형 수송선에 나누어 타고 먼 바다로 긴 여행을 시작한다.
사이공, 싱가폴을 거쳐 도착한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의 오랜 식민지 치하로 처음 이국에 발을 들여놓은 ‘최영우’에게는 유럽식 주택가와 휴양지를 틈나는 대로 방문하는데 마치 새로운 선진 문물을 답사하는 느낌도 들게 했다.
‘최영우’는 그곳 위안소도 출입하게 된다. 위안소에 처음 간 날 위안소 안에 있는 대부분의 여자가 조선에서 끌려온 처녀라는 사실을 알고 충격과 분노를 금하질 못한다. 그는 일면 식민지 조선의 열혈 청년이었던 것이다.
‘최영우’는 포로감시원으로 봉급도 받고 남방 현지에서 일본 군인에 준하는 대우를 받으며 한가한 날에는 자유롭게 주둔 국가를 관광 다니기도 하고, 이 모든 일을 마친 후에는 공부를 좀 더 해보는 꿈에 젖어 현지에서의 힘든 일상을 하루하루 이겨나갔다.
3
이 책은 저자인 ‘최영우’가 일본제국의 ‘포로감시원’으로 남방에서 근무하다 일본군이 항복하고 난 다음 갖은 고초 끝에 귀국해서 한국에 살다가 말년에 이르러 자신의 과거를 정리한 기록물이다. 그 기록물을 외손자인 최양현 씨가 오랜 시간 개인 서재에 보관해오다 2012년에 재발견하게 되고, 각종 사료와 친척의 증언을 토대로 일부 재구성해 이번(2022년)에 출판하게 되었다.
4
우리는 책을 읽는다. 그리고 책을 읽는 이유는 많다. 많은 이유 중에는 다음과 같은 것도 있다. 인간의 한평생은 너무 짧아서 내가 미처 살아보지 못하는 수 많은 인생 중 어떤 인생을 책의 주인공을 통해서 한 번 살아보는 것, 느껴보자는 것이다.
우리는 이 책 <1923년생, 조선인 최영우>를 통해 문학의 허구가 아닌 지나간 우리 역사 속에서 한 시대를 살아낸 어느 젊은이의 기구하고도 파란만장한 삶을 한 번 살아보게 된다. 그의 평이한 문장을 따라 그가 살고 걸었던 궤적을 따라가는 것이다.
저자가 말년에 회고 형식으로 무덤덤하게 적어간 탓에 읽기에 아무런 무리가 없다. 재미있게 읽은 부분은 ‘최영우’가 ‘내선일체’ 교육을 받으며 자란 탓인지, 글을 적어나가는 데에 있어서 부담을 없애려고 그랬는지, 일본을 일부분 국가로 받아들이고 그들의 관점에서 현지에서 생각하고 행동해 나갔다는 점이 부분적으로 발견된다는 점이다.
5
우여곡절 끝에 고향으로 귀환한 ‘최영우’를 가족들은 처음에는 알아보지 못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은 얼마 되지 않아 ‘최영우’가 변했음을 알게 된다. 그토록 재기발랄하고 매사 적극적이었던 ‘최영우’는 매사 신중하며 소극적인, 우유부단한 면도 보이는 성격의 다른 사람으로 변했던 것이다. 역사가 인간의 삶을 안팎으로 바꾸어놓은 생생한 사례를 우리는 이 책에서 보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아픈 역사다.
(2023.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