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술년 시월 보름밤에 꿈같이 놀았던 것을 기록하다
작가: 만제 정치건, 번역: 인수 정용하 (원문출처:회최고)
금년 7월 16일 날에 선명한 달빛을 즐겁게 구경했던 기분이 아직 사라지지도 않았는데 문득 10월 보름날 다시 임고(지명) 아래에 임하여 마음 맞는 벗님들과 오래토록 즐겼다. 더욱이 핍박과 근심이 쌓이니 고기비늘 처럼 많았고, 세상사 괴로움은 사람의 숫자 만큼이나 넘치고도 넘치는데 이 밤에 마음속에 맺힌 회포가 솟구쳐 막걸리 수 주발에 물결이 일렁이고, 마음과 영혼이 기뻐하여 적벽가 한 수 읊으니 어려움은 저절로 세월 속에 묻혀간다. 일곱 나비가 환상계에서 몽롱하니 학은 멀리서 끌어당기고, 수레는 표연히 놀고 있는 면전을 방해하였다. 그리하여 옛 자취를 찾아 나서니 하천 입구에 위치한 천길 바위에는 떨어지는 물이 목메어 울고 있었다.
뼈골이 꼿꼿하며 그 높이가 만장(萬丈)이나 되어 교만하게 까지 보이는 언덕 바위는 마치 명주를 펼쳐놓은 듯 미세한 싸락눈이 쏟아지고 있었다. 날씨마저 쌀쌀해지자 바야흐로 외롭게 떠 있는 달은 교교하고 달빛 또한 저만치 떨어진 나뭇가지 끝에 야위어가고 있는데, 회오리바람이 아직 나무에서 이탈하지 못한 수개의 팽팽한 잎들을 가볍게 두드리고 있다. 차가운 기운에 이미 선양할 것을 결심했는지 이따금 나뭇잎들이 한숨을 쉬고 있었다. 만물이 또한 돕는지라 이른바 언덕의 신선인 강산과 바위가 자연의 이치를 터득하였는지 이를 바르게 가르치고 있었다.
사방을 둘러보다가 마침내 놀라서 떨쳐 일어날 즈음, 나그네 역시 지난 가을, 몽롱한 상태에서 서로가 손을 잡았던 일을 떠올렸다. 번갈아가며 부르는 나뭇잎의 노래는 슬펐다. 어찌 위로의 말로 어루만지지 않겠으며, 어찌 찾아보는 것이 온당하지 않겠는가? 그대가 진정으로 그대였었다면 나 역시 진정으로 나 자신이었기에 함께 걸으면서 전전했고, 임고 아래에서 휴식도하였다. 관례를 행하는 그대가 먼저 도착하였고 물가에 있는 높은 언덕에 올라 지난날을 회고하니 오늘밤 함께 만나는 것이 어찌 법도에 어긋난다고 할 수 있겠는가? 나는 절을 했고 꿇어 앉아 감사의 말을 했다. 그리고 지난 가을에 이미 계승한 나의 본보기를 말했다. 그런 후 덕망을 갖춘 자와 옛 예법에 따라 진실로 허물없이 행동했다. 그리고 그의 은근한 빼어남에 재차 복종했다. 그것은 황공(黃公:단풍잎을 지칭)의 뜻은 아니었다. 씨방(암술대 밑에 붙은 주머니)이라는 것이 편안하지 않는 것이 아니지만 논쟁을 하면서 시운이 변하고 바뀌는 것을 거론함은 가능하나 그것은 이미 슬픈 일이기도 했다.
우리는 고지식한 사람의 정직한 외고집을 좋아한다. 시경은 말한다. “지식인은 장차 갚아야할 사람이 복종할 수 있는 일에 잡품 팔기를 선호한다.”라고 그런 연유로 나는 신뢰라는 덕목이 아름답다는 것에 품을 판다. 아름다운 산과 맑은 물은 곧 우리들의 고귀한 삶터이며, 청풍명월은 우리에게는 옥 같은 보배인 것이다. 그것을 사용함에는 다하지 말아야하며, 취함에 있어서는 바야흐로 적의하게 하되 금지시키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한다면 기쁨을 맛볼 것이다. 천하 만물은 변화의 파급으로 인하여 사라져가는 것이다. 본디 마구간은 청소하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말(言)을 피하면서 스스로 웃고만 있는 것은 장차 여러 가지 먹이를 베풀어 주어야하기 때문인데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썩은 냄새에 함께 맡겨져 배를 채워주는 것에 있다. 무책임한 범주 밖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것은 우리들의 위태로운 행위 중에 유일하다는 것을 남자들은 익히 알고 있다.
그리고 잠시나마 임시로 본보기 삼아 앙모하다보면 더욱이 그것에 달관할 것이다. 세 가지가 곤궁하면 마음이 여섯 가지 욕정으로 더럽혀져 환각상태가 되어 우리들은 보고 듣는 것이 총명하지 못하게 될 것이며 손과 발에게 거동을 맡기지 못할 것이다. 어찌 사물이 상하지 않겠으며, 이를 구하지 않겠는가? 비방하는데 품을 팔았으니 이미 핍박한 것인데, 우리들은 말한다. 남자가 성정(인정과 성질)을 한 번 맡겼으면 깨우침에 대한 정도를 체크해 보아야 한다고, 이미 금닭이 떠나갔다면 아침의 제왕은 재촉하며 시키는 일에 응하라고 말할 것이다. 나는 빛나는 명성을 지닌 채 멀리까지 나아가고 싶다. 그것을 병행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나그네와 더불어 계속하여 수천 년을 대화하였다는 황대도인(주자가 지은 무이구곡가에 등장하는 신선)의 꿈은 길을 잃고 원통해 할 것이다. 꿈속의 말에도 깨달음이 있다. 꿈이란 없는 것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다만 여러 개의 두루마리에 필사한 언덕경치를 책상 위에 올려놓고 토론을 해보아라. 언덕을 배운 후에 언덕에서 풍유를 즐기니 어찌 학문이 두텁다고 하지 않겠는가.
말하던 차에 특별히 다시 참견해보면 우리네 꿈(희망)은 겉으로는 비슷하나 근본적으로 모두가 다른 것이기에 심상한 것이다. 이미 그러하기에 가진 것이 없더라도 학문에 대한 처방을 받을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처지를 반성해보면 진실한 인연도 언젠가는 떠나갈 것이고, 아름답게 보내려는 심상함 또한 가능할 것이다. 그것의 대강(大綱)을 주해(註解)하여 글과 말로써 조물주의 뜻을 낮은 소리로 피력해보면, 여치(곤충의 일종)의 회포가 길면 인간들이 웃고, 학이 저녁에 날아들지 않는 것은 우연이나 한 가닥 기쁨이 교합하면 신선 사는 구역으로 그것이 되돌아오는데, 여백을 남긴 하늘에는 천년의 차가운 달이 떠 있어 장차 수많은 밤을 머무르려는 인연을 다시 계승하는 것은 옥 같은 누각(조옹대를 지칭)에게는 훗날의 일이런가.
*본 작품은 포은 정몽주선생의 방손이신 작가께서 선생의 출생지인 경북 영천(임고)소재 포은서원 입구에 위치한 조옹대(포은선생의 옛 낚시터)에서 추야서정을 읊은 것으로 그 내면에는 소동파의 적벽부를 염두 하시고 주변의 자연에 대하여 마치 포은선생의 영혼을 대하듯 대화하거나 근간에 변화하는 세태 및 자신의 신상주변에 대한 느낌을 옛 현인의 흔적이 머무는 곳을 찾아 사색하며 자신을 성찰하고 위로하는 독백의 형태로 묘사하였음(본 작품과 바로 앞의 작품은 소동파의 ‘후 적벽부’와 ‘전 적벽부’의 관계로 연결시켜 볼 수 있음).
■壬戌十月望夜夢遊記
是歲七月旣望之淸賞未了將以十月望復遊臨皐之下適客永嘉而迫憂叢鱗鱗苦海津津丁是夜襟懷轖佶自難消遣乃酌醪數椀浪讀後壁賦一遍心神怡曠柒蝶幻界遙鶴導駕飄然抵前遊而尋舊跡川喉鳴咽水落千仞巖髓骯髒地縮萬丈微霰綐零而成凍孤月方皎而觸光又彼木末之枯而未脫者數葉澎澎然戞飇而鳴寒噫時旣嬗矣物亦援矣坡仙子所謂而江山石可復識者政指是也遂四顧愕奮之際前秋客亦以夢至相握而葉互歌而悲曰胡爲乎徠胡然乎遌子眞子耶我眞我耶携步轉轉秉興而憩臨皐之下椰冠子先到於泆臺之上顧而同今夜之會何其脫乎余趨而拜跪而謝曰訪余之敎旣有承於前秋而後長者行實無愆於古禮慇懃再枉倘非黃公之有意於子房者歟否否只可論盈虛說與悲已也且吾固知子之誠好我也詩曰知子之好之雜佣以報之子將服余佣而信脩姱乎佳山麗水卽吾之錦林也淸風明月是吾之瑗琚也用之以不竭取之以無禁其方適意而爲悅也天下萬物無以易之及其旣廠未有不洒然自笑辟言之飮食雜陳於前而要之一飽同委於臭腐夫孰知吾之行臬惟其無媿於中無責於外而姑寓寫仰又達觀乎三空六塵之幻化耳目聰明非吾之有也手足動靜非吾之役也何求乎物何傷乎已迫以佣誦吾言一任子之情性則度有覺矣已矣去哉金鷄告晨帝應催使余欲躡跡而進邈乎其不可並也與客更唑話幾千載荒臺道夢倀恨而悟乃夢中之言夢者而他無所稽只有案上坡景數卷寫於乎後坡之學坡遊者盖學多矣而特再入吾夢似非尋常也然旣無的受文訣且反處失眞緣雅付之尋常亦可也記其大略僁以詞曰造物志兮蟪懷長至人笑兮鶴入夕缺其遇也悅御一陣閬風其迫也空餘千載寒月要將數夜之宿緣更續玉樓之後日
만제 정치건 선조의 문집 "회죄고" 원본 사진(건과 곤 2권임) *좌측 "농천 유고"는 증조부 정진벽 선조의 문집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