成均館과 成均館大學校의 발 자취
성균관(成均館)의 역사
고려와 조선 때 나라에서 세운 최고의 학부
①고려 때 918년부터 943년 사이의 태조 연간에 경학(京學)을 설치하였고, 992년(성종 11년 국자감(國子監)이라 개칭하였다. 1275년(충렬왕 1)에는
국학(國學)이라 하였으며,1298년(충렬왕 24)에 성균감(成均監)이라 하다가, 1308년(충렬왕 34)에 성균관으로 개칭. 1356년(공민왕 5)에 국자감,
1362년(공민왕 11)에 다시 성균관으로 개칭하였다.
②조선 때 1392년(태조 1)에 숭교방(崇敎坊) 즉 지금의 명륜동(明倫洞)에 성균관 건물을 짓고, 유학을 강의 하는 명륜당(明倫堂)과, 공자(孔子) 이하 유성(儒聖)들을 모신 문묘(文廟)와, 유생(儒生)들이 거쳐하는 재(齋)를 두었다. 태종은 성균관을 운영하기 위한 기금을 조달하기 위하여 학전(學田)이라고 하는 땅과 경기도 연안의 섬 및 전라도 연안의 어장 등을 하사 하였 으며, 많은 노비를 지급하였다. 성종 때에 향관청(享官廳)과 전경각(奠經閣=도서고, 圖書庫)를 증설하여 성균관의 규모가 완성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종 때 과거를 보던 비천당(丕闡堂)이 세워졌으며,계성당(啓聖堂)은 숙종 때 세워졌다. 성균관에 입학할 수 있는 사람은 생원(生員)이나 진사(進士)에 한했으며, 그 수가 부족하면 4학(四學)의 생도 중에서 보충하였다. 입학 인원은 2백 명이었으나 영조 때에는 120명이었으며, 조선말에는 백 명으로 줄었다. 1887년(고종 24)에 성균관을 경학원(經學院)이라 개칭했으나 1895년(고종 32) 을미개혁 때 다시 성균관으로 환원하였다. 일정(日政) 때에는 경학원으로 부르고 명륜전문학교(明倫專門學校)를 병설하였으며,
해방 후에는 성균관대학교(成均館大學校)로 개칭하였다.
관원으로는 총책임자로 지관사(知館事 : 홍문관 대제학이 겸임)를 두고 그 밑에 동지관사(同知館事 : 겸직) 1명, 전임관원으로 대사성(大司成 : 정3품) 1명, 좨주(祭酒 : 정3품) 2명, 사성 (司成 :종3품)1명, 사예(司藝 : 정4품) 2명, 사업(司業 :정4품) 1명, 직강(直講 : 정5품) 4명, 전적(田籍 : 정6품)13명, 박사(博士 : 정7품)3명, 학정(學正 : 정8품)3명, 학록(學錄 : 정9품) 3명, 학유(學諭 : 종9품) 3명이 있었다. 이 중 박사 이하는 정원 외에 봉상시(奉常寺)의 관원과 사학(四學)의 훈도(訓導)가 겸직한 것이 있었다.입학 유생의 정원은 200명으로 생원이나 진사의 자격이 있는 자라야 했으나 부족할 경우에는 사학의 생도 중에서 보충하였다. 뒤에 경비 부족 으로 영조 때는 정원을 120명, 조선 말기에는 100명으로 한 일이 있다.
1398 ~ 1945
1398년 (조선태조7년):서울 동북방 숭교방(현 인문사회과학캠퍼스 위치)에 성균관을 설 립하다.
그 당시 국가 최고의 국립대학이며 이 정통을 계승한 대학이 바로 성균관대 학교이다.
1895 (을미년) : 칙령에 의하여 성균관에 3년제 경학과를 설치 하다.
역사, 지리, 수학 등 각종 강좌를 개설하고, 교수임명제와 입학시험제, 졸업시험제를 실시
할 뿐 아니라 학 기제, 연간 수업일수, 주당 강의시간수를 정하는 등 학제상
근대교육체제를 확립, 근대 대학으로 발족하다.
1910 : 한일합방 이후 성균관이 경학원으로 개편되다
1930 : 경학원안에 명륜학원을 설치하고, 다시 명륜전문학원으로 개편되다.
1939 : 명륜전문학교로 승격되다.
1939 : 명륜연성소로 개칭되다
1945 ~ 1952
1947. 9 : 학부 승격을 전제로 전문부와 예과 신입생 모집을 중지하다.
1948. 7 : 문학부와정경학부를 신설하고 문학부에 동양철학과,문학과(국문학전공,영문학 전공,불문학전공), 사회과학 정경학부에 법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 등 6개 학과 를 설치하다.
1948. 9 : 예과 2년 수료자는 학부 1학년에 진급시키고, 전문부 2, 3학년 수료자중 학부
진학을 희망하는 자는 각각 학부 1, 2학년에 편입학시키는 동시에 전문부 잔여
재학생을 전문부로 존속시키다.
1950. 9 : 6·25전란 당시 UN군의 수도탈환에 앞서 화재로 인하여 1,500여명을 수용하던
700여평의 교사와 7세기에 걸쳐 소장해온 70,000여권의 진귀한 고전서적이 회진되다.
1951. 10 : 1·4후퇴로 중단되었던 수업을 피난지인 부산시 부산고등학교 천막교사를
차용 하여 전시체제의 비상 야간수업을 개강하다.
1951. 12 : 교육법령에 따라 문학부를 동양철학과, 국문학과, 영문학과, 불문학과, 사학과 와 정경학부를 법률학과, 정치학과, 경제학과 등 8개 학과로 개편하다.
1952. 2 : 부산시 동대신동에 임시교사 3동을 신축, 이전하다.
1953 ~ 1963
1956. 2 : 金昌淑총장이 노령으로 은퇴하고, 李勳求박사가 제2대 총장에 취임하다.
1957. 10 : 제3대 총장에 李瑄根박사가, 이사장에 李明求박사가 취임하다
1957. 11 : 제1과학관 철근 콘크리트조 5층 연건평 1,570.6평을 준공하다.
1958. 1 : 유학사상을 중심으로 한국 및 동양문화를 연구하고 민족문화를 천명할 목적으로
대동문화연구원을 부설하다. 법정대학에 상학과를 신설하다.
1958. 3 : 주경야독하는 학생에게 대학의 문호를 개방하고자 제2부(야간부)를 신설하고,
8개 학과(동양철학과, 국문학과, 영문학과, 사학과, 교육학과, 법률학과,
경제학과, 상학과)를 설치하다.
1958. 7 : 이사장에 趙東植박사 취임하다.
1958. 12 : 중앙도서관 철근 콘크리트조 5층 연건평 1,038평을 준공하다.
1959. 3 : 문리과대학에 독어독문학과와 법정대학에 경영학과를 신설하다.
1959. 10 : 법정대학 철근 콘크리트조 4층 연건평 1,154평을 준공하다.
1960. 3 : 법정대학 법률학과 내에 법률학전공, 행정학전공을 병설하고 제2부에 수학과를
증설하는 동시에 법률학과에 법률학전공, 행정학 전공을 병설하다.
1960. 4 : 제4대 총장에 卞熙瑢박사가 취임하다.
1960. 11 : 이사장에 李明世선생이 취임하다. 제2과학관 철근 콘크리트조 5층 연건평
1,307.5평을 준공하다.
1961. 3 : 제2부에 정치학과를 신설하고, 경제학부에 경제학전공, 경영학전공을 병설하다.
1961. 9 : 제5대 총장에 趙廣河박사가 취임하다.
1961. 10 : 성북구 도봉동에 운동장(야구장)부지 21,221평을 매입하다.
1962. 2 : 대학정비와 수반하여 제1부는 교육학과를 폐과하고 제2부는 사학과, 교육학과,
수학과, 행정학과, 정치학과를 폐과하다.
1962. 6 : 이사장에 李寬求선생이 취임하다.
1962. 7 : 대학본부 철근 콘크리트조 4층 연건평 1,271평을 준공하다.
1962. 12 : 제6대 총장에 徐斗銖박사가 취임하다. 도서관 옥상에 벽돌조 1층 12.6평의 천문대를 건치하다.
1963. 2 : 문교부의 대학정원 재조정에 의하여 경영대학이 법정대학에서 분리 신설되고,
각 학과내에 병설된 전공이 학과로 독립되는 동시에 제1부 교육학과가 복과되다.
1963. 5 : 이사장에 李源爀선생이 취임하다.
1963. 6 : 제7대 총장에 李丁奎선생이 취임하다.
1963. 7 : 이사장에 金斗鍾박사가 취임하다.
1963. 10 : 사립학교법 공포 시행에 따라 재단법인 성균관을 학교법인 성균관대학으로 개편
하다. (1963. 6. 26, 법률 제1362호). 참고 : 문화재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