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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11월 6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하나님께 사무엘을!
삼상1:19~28
<진짜로 드려진 아이>
우리가 전도하다보면 간혹 이렇게 대답하는 사람이 있어요!
“부모님이 나를 백일 불공 끝에 낳으시고, 내가 태어나자마자 절에다가 팔았습니다!”
우리 한국의 토속 신앙에도 이렇게 신 앞에 자녀를 헌신하는 관례가 있어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절에다가 팔았다!’ 아, 그러면 절에 가서 살아야지요?
‘절에 팔았다’고 하면서, 실제 그 사람은 평범하게, 부모 밑에서 자랐어요!
왜 그러느냐? 사주(四柱)를 적어서 갔다 바치고, ‘절에다가 팔았다!’
“이 아이는 백일 불공으로 얻은 아입니다. 절에 바칩니다!” 형식만 갖추는 거지요!
아무리 백일 불공으로 얻었지만, 진짜 절에다 ‘팔면’ 자식 낳은 재미가 무엇입니까?
‘그럴 거 같으면 아예 낳지를 않겠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의 정서입니다.
“아이를 낳고 싶습니다!” 이 기도는, ‘아이를 낳아서 기르는 수고를 하겠습니다!’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주고, 온갖 고난, 있더라도 ‘키우는 수고’ 감당하겠습니다!
물론, 자식 키우는 것, 고생만은 아니지요. 즐거움도, 보람도 커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어요!
또 집안의 대를 이어가고, 잘 키워서, 늙어 말년에 ‘자식의 봉양!’ 아, 이것도 받아야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녀를 갖기 원합니다!
그런데, 낳아서 젖 떼자마자 ‘다른 곳에 준다!’ 사람으로서 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부모 입장에서도 그렇고, 자녀 입장도 마찬가지예요. 자녀는 부모 품에서 자라야 하거든요!
그래서 한국의 토속 신앙! 백일 공을 들여 얻은 아들! 생년월일시 적어서 절에 갖다 줘요!
그리고 “팔았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런데 한나는 그렇지 않아요!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 자식을 못 낳는 고통 중에 간절히 기도했어요!
“저에게 아들을 주신다면, 그 아들, 나실인으로 하나님의 성전에 바치겠습니다!”
그 기도, 하나님이 들으시고 태를 열어주셨어요! 아들, 사무엘을 낳았어요!
젖을 뗄 때가 되었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은 서너 살까지 젖을 먹였어요. 사무엘이 세 살, 혹은 네 살이 되었어요!
(27~28절) “이 아이를 위하여 내가 기도하였더니 내가 구하여 기도한 바를 여호와께서 내게 허락
하신지라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하고 그가 거기
서 여호와께 경배하니라”
사무엘이 태어난 해, 태어난 달, 태어난 날, 시간! ‘사주!’ 이거 적어서 갖다 준 게 아니에요!
진짜로, 사무엘 데리고 성전에 갔어요! 성전에 가면 제사장 대제사장이 있습니다.
이들이 성전에 살면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집전합니다.
사무엘을 그들에게 온전하게 바칩니다. 바치고 나면, 자식 얼굴, 맘대로 못 봐요!
왜요? 하나님께 드려진 자식이다!
한나는 천신만고 끝에 얻은 아들! 하나님께 드렸어요! 대충 하지 않았어요, 온전히 드렸어요!
이 이야기를 읽을 때 어떤 생각이 들어요?
“한나, 그 여자, 참 독하다!”
“어린 사무엘, 불쌍하다! 어린 것이 무슨 죄냐?”
“하나님을 그렇게 섬겨야 한다면, 내가 예수 믿는 거, 다시 생각해야겠다!”
“꼭 이렇게 해서, 하나님을 섬겨야 되느냐?”
이런 생각이 들어요! 그렇지요?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가 솔직한 감정을 드러내야 돼요! 거짓 없는 마음에서 출발해야 하나님을 만날 수 있어요!
<세 가지 관점>
오늘 본문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관점은 세 가지입니다.
① 사무엘을 성전에 바친 한나는 어떤 어머니냐?
② 부모 품을 떠난 사무엘은 불쌍하지 않냐?
③ 이런 일들에 하나님은 어떻게 섭리하시느냐?
이 세 가지 중에서 뒤엣것부터 말씀드립니다!
첫째, 하나님은 어떻게 섭리하시는 분인가?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쓰심’으로 일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다스리실 때, 사람을 들어서 쓰세요! “하나님은 사람을 들어 쓰십니다!”
이 땅의 죄인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부르셨어요!
하나님은 메소포타미아 ‘우르’지방에 살고 있는 아브라함!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아! 네가 고향을 떠나라! 내가 가리키는 곳, 가나안으로 가라!”
이 말씀에 순종하냐, 불순종하냐? 아브라함의 자유예요!
아브라함이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이 그때부터 아브라함을 쓰십니다!
거부하면요? 하나님이 안 쓰십니다!
사람들은 누군가로부터 쓰임을 받는 존재입니다.
오늘 예배하는 여러분! “나를 누가 쓰고 있는가? 누가 나를 부리는가?” 한 번 생각해 보세요!
직장에 취업한다는 것은 “나를 써 줄 회사를 찾습니다! 제발 나를 써 주십시오!” 이거예요!
만약 취업 안하고, 창업한다! “내가 이런 제품을 만들테니까, 이 제품 써 주세요!”
식당을 개업했어요! 내가 음식을 만들겠습니다. 내가 만든 이 음식 먹어보세요! 제발 써 주세요!
사람은 누군가로부터 쓰임을 받아야 돼요. 쓰임 받지 못하는 사람! 그래서 “쓸모없다!”
“저 사람 참 쓸모 없는 사람이야!” 그러지 않습니까?
‘나를 써 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면 곤란하지요!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를 써 주는 곳! 부지런히 찾아 다녀야 합니다!
지금 나는 누가 써 주고 있느냐?
세상 사람들이 나를 써 준다! 홍익인간! ‘나는 세상을 이롭게 하는 사람이에요!’
하나님이 나를 써 주신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사람인 줄 믿습니다!
세상을 이롭게 하는 일도 중요합니다. 그 일에도 쓰임을 받아야 해요!
그러나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이거 얼마나 매력적인 일입니까?
하나님이 나를 써 주신다니! 이보다 더 큰 영광! 어디에 있습니까? ~ 없어요!
세상보다 하나님이 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됩시다!”
창세기로부터 사무엘상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은 어떤 사람들을 쓰십니까?
아까 말씀드린 아브라함! 하나님이 쓰셨어요!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요셉! 하나님이 쓰셨어요! 7년 흉년을 구제하십니다!
모세! 애굽에서 노예로 사는 이스라엘! 구출해내셨어요!
여호수아를 들어 쓰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사사를 들어 쓰심으로 외적을 물리치게 하십니다.
모압 지방에 사는 이방 여인 룻! 룻을 불러 왔어요! 보아스의 아내가 되어 오벳을 낳았어요!
오벳은 이새를 낳고, 이새는 다윗을 낳았더라!
하나님은 이렇게 섭리하시는 분인 줄 믿습니다!
둘째입니다! 사무엘은 불쌍한 인물인가?
젖 떼자마자 엄마 떨어진 사무엘! 불쌍해요, 안 불쌍해요? ~ 한번 들어보십시오!
이스라엘 역사! ‘사사 시대’에서 ‘왕정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입니다.
여기에 사람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이 누구를 쓰십니까?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평범하게 태어나 부모 품에서 응석받이로 자란 인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마도 이 시기에 비범한 사람이 필요하다! 그렇게 생각하셨어요!
그게 누구냐? ~ 사무엘입니다.
사무엘은 서너 살 때, 부모 품을 떠나,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이제 앞으로 보시겠지만, 사무엘은 성전에서, 아이 때부터,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요!
하나님은 일찍부터 사무엘을 훈련시킵니다!
부모 품에 응석받이로 자라야 할, 그때부터 엄격한 성전에서 자랐습니다!
왜요? ~ 하나님이 쓰시겠다!
똑같은 집을 지어도, 이 집을 하나님이 쓰시겠다!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똑같은 하루를 보내도, 똑같은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이 쓰시는 인생! 얼마나 영광입니까?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이거 내가 쓰겠다!” 이런 음성 들릴 때가 있습니다.
“너의 오늘 하루! 내가 쓰겠다!” 이렇게 말씀할 때가 있어요!
어떻게 하십니까? “세상 일이 더 바빠요!” 거부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이 쓰실 수 없어요!
아멘! 순종할 때, 하나님이 나를 들어 써 주십니다! 할렐루야!
만약 대통령이 나에게 “당신이 장관자리 하나 맡아 주십시오!” 대단하지요! 가문의 영광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내가 사무엘! 너를 써야 되겠다!” 할렐루야!
사무엘은 하나님이 쓰십니다! 가문의 영광뿐 아니라, 온 인류 구원의 영광인 줄 믿습니다!
우리는 주로 세상에서 쓰임을 받고 삽니다.
회사의 사장으로부터 쓰임을 받아요!
내가 만든 제품의 소비자들로부터 쓰임을 받아요! 물론 여기에도 하나님의 소명이 있어요!
그러나 하나님의 직접적인 쓰임을 받을 수 있는 기회!
그 기회를 놓지지 마시고 꼭 순종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지금 예배하는 저와 여러분!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있는 중입니다!
지금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쓰고 계세요! 그래서 예배가 중요합니다.
예배를 통해서 교회가 부흥될 수 있어요! 교회 하나를 바로 세우는 데 “쓰임 받는다!”
이거 대단한 겁니다! 이 자리에 아무나 옵니까? 오라고 해도 안 와요!
하나님이 쓰시겠다 하는데, 사람들이 거부합니다.
그러나 저와 여러분은 지금, 순종하고 쓰임 받고 있어요!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세요?
기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떠 올려 보세요!
나중에 천국 가서, 하나님 뵐 때, 오늘 저녁, 이 예배 이야기! 꼭 하세요!
예배 때 ‘우리가 지금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있다!’ 선포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기뻐하세요!
사무엘이 불쌍한 아입니까? 축복 받은 아입니까? ~ 엄청난, 대단한 축복!
사무엘이 어려서부터 그 축복! 누리고 있어요! 할렐루야!
사무엘이 받은 복의 백분지 일, 만 분지 일이라도, 우리가 받아야 할 줄로 믿습니다!
세 번째, 사무엘을 성전에 바친 한나는 어떤 어머니입니까? 비정한 어머니인가요?
‘한나’는 ‘브닌나’로부터 설움을 엄청 받았어요!
눈물로 세월을 보냈어요! 아이 낳지 못하는 설움! 이 설움이 어떤 설움이냐?
얼른 보기에는 브닌나로부터 핍박 받는 설움! 이것이 참 서글프지요!
또, 아들이 없으면 그 여자의 말년은 참으로 비참해요! 돌봐주는 사람이 없어요!
아이 낳지 못하는 설움이 어디 한두 가지입니까? 이루 말할 수 없지요!
한나는 그런 설움을 다 받으면서 살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나가 아이를 낳지 못해서, 진짜 서러운 이유! 따로 있어요! 그게 뭔지 아세요!
브닌나의 핍박? 아니에요!
남편 사랑? 아니에요!
자녀를 낳이 기르는 재미? 그것도 아니에요!
노후에 봉양해 줄 아들이 없어서?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뭐예요? ~ 그것은, 바로 이거예요!
“하나님 앞에서 나는 뭡니까?”
“나는 하나님께 의미가 있는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섭리하고 계신가요?”
하나님은 창조주이십니다!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만유(萬有)의 주재(主宰)’ 이 말씀은 온 세상, 모든 것의 주인 되시는 왕, 황제!
하나님의 소유 아닌 것이 하나도 없어요! 나도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께 나는 어떤 의미가 있는 여자입니까?
과연,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고 계십니까?
과연, 하나님은 지금 나를 섭리하고 계십니까?
한나에게는 이것이 중요했어요!
하나님!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고 계시다면,
하나님 앞에 제가 티끌만큼이라도 의미 있는 존재라면,
하나님! 제가 하나님의 피조물이고, 하나님이 기억하는 여인이라면, 응답해 주세요!
하나님께 나는 과연 의미가 있는 존재인가?
하나님은 우주만물의 창조주이십니다. 만유의 주재이십니다! 나도 그분의 소유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나를 생각해 주지 않는다면, 내가 그분께 아무런 의미가 없다면, 나는 무업니까?
나의 존재 가치가 과연 무엇입니까? 한나는 하나님께 이것을 확인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생명을 내놓고 기도했습니다.
(10~11절) “한나가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서원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여 만일 주의 여종의 고통을 돌보시고 나를 기억하사 주의 여종을 잊지 아니하시고 주의 여종에게
아들을 주시면 내가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의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이렇게 기도했어요! 기도 응답이 왔어요! 아들 사무엘을 낳았습니다.
아들 키우는 재미, 남편 사랑, 브닌나 앞에 체면 세운 것, 노후 걱정!
이런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생각해 주셨다!” 19절 끝에 있어요!
“여호와께서 그를 생각하신지라”
이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어요!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나를 섭리하고 계시는데, 하나님이 나를 들어서 쓰고 계시는 것, 확인했는데!
그럼 됐어요! 더 이상 바랄 거 없어요!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
아들 못 낳는다고 손가락질 받는 것, 이제 아무것도 아닙니다!
남편 사랑! 하나님 사랑에 비하면 새 발의 피입니다!
노후 봉양자 없는 것! 하나도 걱정이 안 돼요!
‘하나님이 나를 생각하고 계신다’ 확인했어요! 그럼 됐지 뭘 더 바래요?
그래서 한나는 젖을 뗀 사무엘! 하나님의 성전에 드립니다!
“하나님! 사무엘을 제 품에서 키우는 것보다, 더 크게 써 주옵소서!”
우리도 이런 믿음 가져야 될 줄 믿습니다! 할렐루야!
<맺음>
오늘 예배 하는 저와 여러분!
하나님이 한나를 생각하는 그 생각으로, 우리를 생각하고 계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생각하고 계십니다!”
“하나님이 나를 섭리하고 계세요!”
“하나님이 나를 들어쓰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이 땅에 보내셨어요! 그 예수님!
“예수님이 나 때문에 오셨어요!”
“예수님이 나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예수님이 나 때문에 부활하셨어요! 그러니 나도 부활합니다!” 아무 걱정 없습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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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멘~!!
이 설교말씀을 읽고 바라보는 관점을 넓히게 해준 깨달음을 얻게 해주셔서 감사해요~ 황목사님~! 앞으로 영양이 듬뿍인 설교말씀을 기대할께요^♡^
할렐루야~ 보연님 답글이 늦었어요! 그럼에도 꼭 읽어주시기를 바래요! 맞아요! 관점을 넓게 해 주는 설교입니다. 잘 보셨어요! 서너살 때 엄마 품을 떠난 사무엘을 인본주의적으로 보면 불쌍하지요! 그러나 하나님을 통해서 바라보면 그렇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이 사무엘을 크게 들어 쓰시기 위한 섭리였음을 알게 된답니다. 우리는 누군가로부터 쓰임을 받아야 하는데, 가장 영광된 쓰임이 뭘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쓰실 때입니다. 보연님도 하나님이 쓰시는 귀한 분 되시기를 기도합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