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1-20
내일 이맘때.... / 성경 벌레
유명한 쉴러(J. C. F shiller)는 그의 글 메시나의 신부에서 '인간은 내일 아침에 대해서 얼마만큼의 공포와 희망과 염려를 안가지고 있을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힐티'는 '내일은 시련에 대한 새로운 힘을 가져 올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저 유명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자기를 죽여 버리려고 하는 북조 이스라엘 왕 여호람과 그의 신복들 앞에서 [내일]이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맘 때'란 말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 '이 맘때'에 해당되는 히브리말 카에트( )는 '때'를 의미하는 에트( )와 전치사 '카'( )가 합성된 말로 '특수한 때'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Ⅰ.이 말은 '오늘의 아픔'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긍휼 선포입니다(6:24-33).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가 아람왕 벤하닷이 끌고 온 많은 군대들에 의해서 죽음의 포위를 당했습니다. 아람에 포위당한 사마리아성은 크게 굶주려서, 극에 달한 죽음의 위기에까지 이르러고 있었습니다.
그러한 사마리아 성의 비극을 표현하기를 나귀머리 하나에 은 80세겔이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미화 45불에 해당되는 가격입니다. 나귀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부정한 동물로 먹는 것이 금기되어 있었습니다(레11:4). 합분태 '사분의 일 갑'에 은 다섯 세겔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합분태'란 비둘기 똥같은 '여물지 않은 콩'을 말합니다. 이것이 미화로 3불이 되는 돈입니다(왕하6:25). 실로 엄청난 물가고(物價高)였습니다.
그리고 여인들이 자기의 자식들을 교대로 잡아 먹다가 싸움이 일어나 왕앞에 하소연을 하는 정도였습니다(왕하6:26-29). 이런 일들은 역사상에 실제로 많이 있었습니다. 1316년, 영국에서 일어난 대기근 때에 사람들이 자기 링자식, 개, 쥐, 비둘기 똥을 먹었다고 하는 기록을 봅니다(포스트). 답답하고 분개한 이스라엘 왕은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목을 짤라 버리라고 그의 사자를 보내기에 이르러고 말았습니다(왕하6:31).
왕이 엘리사에게 그토록 노한 이유는, 전에 포로로 잡은 아람의 군대들을 엘리사가 후대하여 다시 돌려 보내주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때 왕은 아람의 군대를 치려 했으나, 엘리사는 그 일을 만류하고, 저들을 살려 보낸일이 있었습니다(왕하6:21-23).
이 때 엘리사는 그 성의 장로들로 더불어 함께 있었습니다. 엘리사는 자기의 목을 베라고 명한 여호람을 가리켜 '이 살인자의 자식'이라고 하였습니다(왕하6:32).
마침내 왕명을 받은 그의 신하들이 엘리사의 집 문에 이르렀고, 장로들은 문 앞에서 그들을 제지하느라고 실랑이를 벌이고 있을 때였습니다.
이 때 여호람 왕이 그 자리에 뒤쫓아 왔습니다. 그리고 엘리사에게 이르기를[재앙이 여호와께로부터 나왔으니 어찌 더 여호와를 기다리리요](왕하6:33)하고 그는 살인성(殺人性) 섞인 불평을 토했습니다. 재앙이 여호와께로 말미암았다고 하는 왕의 말은 옳았습니다. 그런데 그 재앙이 자신의 죄와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죄가 아니고, 아람군을 살려 보내어 준 선지자 엘리사의 죄라고 단정하고, 그를 죽이려 한것은 이중 삼중의 죄가 된 것입니다.
이 때 여호와의 말씀이 왕 앞에 서있는 엘리사에게 임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 을 들을지어다 가라사대 내일 이맘때 사마리아 성문에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고 하였습니다(왕하7:1).
그렇다면 내일 이맘때 물가가 폭락을 하고, 내일 이맘때는 사마리아 성중에 살길이 생긴다는 엘리사의 예언입니다. 이것은 아람에 애워 쌓여 죽음에 이른 사마리아인들에게 하나님이 베푼 긍휼의 선포입니다. 죽음에 대한 생명의 선포입니다. 절망에 대한 소망의 선포였습니다.
Ⅱ. 이 말은 미래를 소망으로 치료하는 복음입니다. 말하자면 미래에 대한 소망의 메세지였습니다.
7장 1절에 [내일 이맘때에 사마리아 성문에서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여기 한 스아는 한 에바 1/3에 해당되는데, 리터법으로 환산하면 약 7.33미터에 해당됩니다. 이 때 왕을 모시고 있던 한 장관은 엘리사에게 도전하기를 [여호와께서 하늘에 창을 내신들 어찌 이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하였습니다.
엘리사는 그에게 답하기를 [네가 네 눈으로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고 하였습니다.
그 때 성문 어귀(밖) 문둥이 네 사람이 있었는데, 저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가 이리 죽으나, 저리 죽으나, 일반일바에야 아람군대에 들어가서 항복을 하자살려주면 살것이고, 죽이면, 죽음을 따르자고 하고, 황혼에 일어나 적진의 막사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7:3-4).
아람 군대의 막사에 도착한 네 문둥이는 그 막사에서 엄청난 사실을 목도했습니다. 그 수많은 군대가 진을 쳤던 자리에는 한 사람의 군인도 없었습니다. 저들은 네 문둥이가 황혼에 일어나 아람의 군대가 있는 곳으로 출발할 때(7:5), 같은 그 황혼의 시간에 모두 일어나 그 장막과 말과 나귀를 버리고, 짐을 고스란히 그대로 두고 살기위하여 화급히 도망치고 말았습니다(7:7).
그 분명한 이유를 7장 6절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하셨으므로 아람 사람이 서로 말하기를 이스라엘 왕이 우리를 치려하여 헷 사람의 왕들과, 애굽 왕들에게 값을 주고, 저희를 우리에게 오게하였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저들의 귀를 흔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의식과 판단작용을 흔들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의 마음을 흔들어 버리고 공포와 불안과 죽음의 위협으로 가득채워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저들로 하여금 전황(戰況) 파악을 혼미하게 해 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람 군대 전부를 그렇게 흔들어 버렸습니다. 저들이 얼마나 급했는지 모든 것을 다 버려두고, 몸만 도망치도록 만들어 버렸습니다.
적군의 진중에 도착한 네 문둥이는 그 장막 안에서 먹고, 마시고, 은과 금과 의복을 가지고, 감추는 등 정신없이 야단을 피웠습니다.
그러던 중 네 문둥이들도 큰 깨달음을 받았습니다.
저들이 서로 말하기를 [우리의 소위가 선치 못하도다 오늘은 아름다운 소식이 있는 날이어늘 우리가 잠잠히 있도다 만일 밝은 아침까지 기다리면 벌이 우리에게 미칠 것이니 이제 떠나 왕궁에 가서 고하자]고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마침내 이 소식은 밤중에 왕궁까지 전달되었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왕은 신복들에게 이러한 정보는 아람군의 계책이라고 의심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신복 중에 한 사람은 아직 성중에 남아있는 말 다섯필을 이용하여 정황을 정탐하자고 제의하였습니다. 그 정탐의 결과는 사실이었습니다. 그 다음날 아침에 백성들은 적진에 나아가 저들이 버리고 간 여러 군장비와 의복과, 금과 은과, 음식물을 풍성하게 노략하였습니다. 바로 그 날 사마리아 성에는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이 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이 되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말씀과 같이 된 결과입니다(7:16).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지금 [내일 이맘때]라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이 예언은 오늘의 아픔을 치료하는 하나님의 긍휼의 선포라고 하였습니다. 그 아픔은 사마리아 성이 아람의 군대에 애워싸여 있다는 죽음의 공포입니다.
그 일로 인하여 백성은 죽음의 위기를 만났고, 이스라엘의 산성인 엘리사의 목숨은 왕의 진노에서 시간을 다투고 있었습니다.
이 때 하나님은 '내일'(tomorrow)이란 시간을 가지고 저들이 만난 비극을 치료 하였습니다. '내일 이맘때'란 시간적 표현을 통하여 저들의 악을 제지하였습니다.
그러나 내일이 없는 한 장관(7:2)은 엘리사를 도전했고, 하나님을 불신앙하였습니다. 그는 불신앙의 사람이었고, 절망을 선동하는 패망자였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는 그에게 저주를 선언하였습니다.
[내 눈으로(내일) 보리라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하리라](7:2)고 하였습니다.
과연 엘리사의 예언대로 그는 그 내일이 오늘이 되었을 때 이 사실을 보았으나 그것을 먹지 못하고 죽어버렸습니다. 그는 성문에서 백성이 저를 발로 밟아 죽여 버렸습니다. 이 말을 성경은 두번이나 반복하고 있는 사실에 유의해야 합니다(7:17, 20).
결국 미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에 불신앙하는 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말하자면 내일이 없는 자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이 없이 오늘을 절망으로만 씹고 있는 자는 망합니다. 그는 역사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그런가하면 내일 죽으리니, 오늘 먹고 마시고 즐기자하는 현실지상주의자는 망하고 맙니다. 이 죄는 죽기까지 사하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사22:13-14).
그러나 내일이 있었던 성 밖의 네 문둥이는 살았습니다. 저들은 죽음을 밑천으로 행동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결과 저들도 살고, 이스라엘도 살렸습니다. 저들은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하여 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말타고 정탐하러 나갔던 다섯 사람도 내일이 있었습니다. 저들은 저들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예언)을 역사의 현장에서 직접 목도하고, 확인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 여호람 왕은 오늘의 난국 앞에서 우왕좌왕하였습니다. 그런자는 언제나 역사 앞에 선진(先進)을 할 수는 없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죽이려고 하였습니다. 그는 네 문둥이가 전하여 준, 복음을 듣고도, 의심하여 아람 군대의 계책이라고 하였습니다(6:31, 7:12). 그는 오늘도 아니고, 내일도 아닌자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에 의하여 그리고 네 문둥이에 의해서 그리고 말타고 나갔던 다섯 사람의 정탐군에 의해서 내일의 축복을 맞이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내일은 하나님이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쓰시는 '내일 이맘때'라고 하는 시간은 당신이 하신 말씀(엘리사의 예언) 성취에 정확하게 적중하도록 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하신 말씀을 성취에 성실하십니다. 능하십니다. 그래서 그날밤에 '아람의 군대'의 도망작전을 하나님이 친히 감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의 귀를, 저들의 생각을 저들의 마음을, 그리고 저들의 몸과 의식구조까지 흔들어 놓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다른것이 생각나지 않도록 하고, 오직 도망쳐서 살아야 되겠다는 공포의 마음만 가득채워 주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여호와의 말씀 같이 되었다](7:16)고 하였습니다. 내일의 하나님의 역사와 축복을 불신앙하던 장관은 여호와의 말씀같이 죽었습니다(7:17, 20).
이스라엘에게는 여호와의 말씀같이 '생명의 내일'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약속하신 말씀대로 되기 위하여 '내일'을 준비하였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20 년 년종주일을 맞고 있습니다. 우리 경향인 모두는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현대판 아람군대 속에 애워싸여 살았습니다. 무신론, 유물론, 진화론, 자연신론, 불가지론, 이원론, 우상숭배 그리고 온갖 유형 무형의 현대판 아람의 세력들 속에 우겨쌈을 당하고 살았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깨어지지 않고, 건재(健在)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내일 이맘때'라고 하는 축복의 미래, 소망의 미래, 창조적 미래를 받고 있습니다. 세상끝날까지의 복음선교의 미래를 받고 있습니다. 세상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신다고 하는 내일의 보장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끝날에 '영화'라고 하는 엄청난 내일을 기업으로 받고 있습니다. 아니 '경향 새 성전'이라고 하는 '내일 이맘때'를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처럼 '오늘과 내일과 모레'에는 우리는 우리의 가야할 길을 가야합니다. 약속되어 있는 20 년을 향하여.......
펴온 글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