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전 1 : 4 - 예수 안에서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인하여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바울이 여기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라는 문구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의 은혜가 일반적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영역 안에서 특정하게 주어진다는 것을 말하기 위함이다.
따라서 본 절의 의미는 바울 사도가 고린도 교회 성도들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그 은혜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드린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란 무엇을 말하는가? 바울 사도가 가르치는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적 의미를 살펴보자.
1]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엔 크리스토 예수)라는 말은 바울의 서신에 164회나 나타나며 옥중 서신(獄中書信)에 특히 많다.
본서에서도 11회나 쓰였다(2, 4절, 3: 1. 4: 10, 15, 17, 15: 18-19, 22, 31).
2] 너희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은혜(恩惠, Grace)의 원어 '헨'은 '하난'(불쌍히 여기다, 아랫사람에게 호의를 베풀다)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시 4: 3)와 고생하는 자(시 6: 2)를 지켜 주시고 인도해 주시는 사랑, 은총, 긍휼 등을 의미한다.
* 시 4: 3 -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 시 6: 2 -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 창 30: 27 -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 출 33: 12 - 모세가 여호와께 아뢰되,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그렇지만 이것은 하나님의 본성이 곧 사랑과 긍휼, 공의임을 뜻하는 '헤세드'(렘 9: 24)와는 달리 먼저 은혜를 받는 자가 경건하며 의로운 자여야 한다는 조건이 있어야 하는 단어이다.
* 렘 9: 24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여기서 우리는, 비록 하나님의 강권적인 사랑이 없다면 구원 얻을 자가 아무도 없다는 것은 분명하나 그 같은 사랑에 대한 인간 측의 적극적인 반응과 노력이 함께 있어야 함을 알 수 있다.
* 롬 3: 10-12 - 10 기록된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11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12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 계 3: 20 -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1) 구약에서의 은혜
구약에서 은혜를 의미하는 단어는 ‘헨’(창 6: 8, 에 5: 8, 잠 3: 34, 전 10: 12)과 ‘라하밈’(rahamim)과 ‘헤세드’(창 20: 13, 창 24: 12, 출 15: 13, 룻 2: 20, 렘 32: 18, 단 1: 9, 욘 2: 8) 등이다.
① ‘헨’은 하나님께서 경건한 자와 고통당하는 자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말한다.
* 시 4: 3 -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 시 26: 11 - 나는 나의 완전함에 행하오리니 나를 속량하시고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 시 6: 2 - 여호와여 내가 수척하였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여호와여 나의 뼈가 떨리오니 나를 고치소서.
* 시 25: 16 - 주여 나는 외롭고 괴로우니 내게 돌이키사 나에게 은혜를 베푸소서.
② ‘라하밈‘은 죄를 용서받는 것을 의미한다.
* 출 34: 6 -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 시 51: 3 - 무릇 나는 내 죄과를 아오니 내 죄가 항상 내 앞에 있나이다.
③ ‘헤세드’는 인자한 하나님의 본성을 말한다.
* 시 112: 4 - 정직한 자들에게는 흑암 중에 빛이 일어나나니 그는 자비롭고 긍휼이 많으며 의로운 이로다.
* 렘 9: 24 -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나 여호와는 사랑과 정의와 공의를 땅에 행하는 자인 줄 깨닫는 것이라. 나는 이 일을 기뻐하노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단어는 ‘헨’(hen)인데, 이것은 원래 ‘상급자가 하급자에게 보여준 호의’를 뜻하는 말이었다.
구약에서는 신약에서처럼 분명하게 은혜에 대한 개념이 드러나지 않는 것 같지만, 은혜는 분명히 구약에도 나타나고 있다. 특별히 아브라함과 이스라엘의 선택과 그의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인내에서 드러나고 있다.
또한, 은혜에 대한 분명한 표현은 모세에게 하나님이 자신을 계시하신 것에서 발견된다.
* 출 34: 6-7 - 6 여호와께서 그의 앞으로 지나시며 선포하시되, 여호와라. 여호와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라. 7 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리라. 그러나 벌을 면제하지는 아니하고 아버지의 악행을 자손 삼사 대까지 보응하리라.
(2) 신약에서의 은혜
헬라어 ‘카리스’(charis)는 일반 헬라어에서는 사람을 끄는 매력 또는 아름다움(잠 1: 9), 친절한 혹은 호의적인 태도(눅 4: 22), 어떤 친절에 대한 감사를 의미했다.
* 잠 1: 9 -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 사슬이니라.
* 눅 4: 22 - 그들이 다 그를 증언하고 그 입으로 나오는바 은혜로운 말을 놀랍게 여겨 이르되, 이 사람이 요셉의 아들이 아니냐?
헬라인들은 이 단어를 좋아했으며 다른 사람으로부터 보상이나 호의를 기대하지 않는 관용을 표현하기 위해 이 단어를 자주 사용했다.
그 후 그리스도인들은 이 단어를 ‘선물’이라는 의미를 나타내기 위해서 곧 우리를 용서해 주시고 구속해 주시는 ‘구원의 선물’이란 뜻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즉 구속적인 사랑을 말하는 데 사용되었고, 특별히 바울은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말할 때 사용했다.
* 롬 5: 8 -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은혜는 죄인에게도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 엡 2: 4-5 - 4 긍휼이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
은혜는 긍휼보다 좀 더 적극적이다.
* 딤전 1: 2 - 믿음 안에서 참 아들 된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 딤후 1: 2 -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편지하노니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바울은 그의 서신서 마지막을 대부분 “하나님 아버지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로부터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딤전 1: 2)라고 기록했다.
은혜의 본질적 의미를 살펴보자.
롬 3: 20-21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 율법 대신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율법으로 구원 얻을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로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란 하나님의 의로우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을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신적 성취(동적 사역)를 의미함을 알아야 한다. 곧 칭의(Justification)를 뜻한다.
또한 롬 3: 2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칭의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구속(Atonement, Redemption)은 헬라어로 <뤼트로시스>인데,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한 몸에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우리 대신에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죄가 용서받고 하나님과 화목케 된 것을 말한다.
그렇다면 만일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으심이 없다면 인류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따라서 인간이 용서받으려면 누군가 죄가 전혀 없는 존재가 인간을 대신하여 죄의 삯을 지불해야 만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속전(Ransom)의 원리이며, 헬라어로는 <안틸뤼트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담에게 속한 모든 인류는 죄인 아닌 자가 없으므로 남을 위해 대속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는 것이다. 즉,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존재이므로 남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자격조차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의 죽으심을 통하여 인류를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풀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
그리스도께서 온 인류의 죄를 한 몸에 다 지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아담에게 속한 인류에게 임한 사망의 저주를 풀어주셨다. 그리스도께서 아담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신 것이다.
곧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죄의 삯을 받으시는 하나님의 공의와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모두 만족시키신 분이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다.
3]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바울은 다른 편지에서와 마찬가지로 인사말에 이어 수신자들을 위한 감사를 드린다.
* 롬 1: 8 - 먼저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에 관하여 내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 빌 1: 3-7 - 3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5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6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너희가 내 마음에 있음이며 나의 매임과 복음을 변명함과 확정함에 너희가 다 나와 함께 은혜에 참여한 자가 됨이라.
* 골 1: 3-8 - 3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감사하노라 4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5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6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 도다 7 이와 같이 우리와 함께 종 된 사랑하는 에바브라에게 너희가 배웠나니 그는 너희를 위한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요 8 성령 안에서 너희 사랑을 우리에게 알린 자니라.
혹자는 본서에서의 감사는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을 비난한 본서의 내용에 비추어 보면 풍자적인 면이 있다고 한다. 그러나 바울은 될 수 있는 대로 격려와 칭찬을 자주 하곤 했다(Morris).
비록 고린도 교인들의 삶에 많은 결함이 나타났을지라도 그들은 다른 고린도 시민들과는 명백한 차이가 있었음이 분명했다(Lightfoot).
따라서 바울은 진정으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항상'에 해당하는 헬라어 '판토테'(*)와 '감사하노니'(*, 유카리스토)는 현재형으로 쓰여 바울의 계속적이고 규칙적인 기도 생활을 시사한다.
바울은 그가 가르쳤던 교회들을 위해 정규적으로 중보의 기도를 드렸다.
* 엡 1: 16 - 내가 기도할 때에 기억하며 너희로 말미암아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 빌 1: 3 -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원문에는 본 절의 첫머리에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는 열거될 수 있는 모든 영적인 축복들이 하나님의 선물이자 그분에게서만 유래하는 것임을 암시해 준다(Grosheide).
항상 감사하는 것은 구원받은 성도의 바른 모습이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살전 5: 18).
하나님을 알지 못했던 때에는 감사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항상 감사할 수 있게 되었다. 성도가 항상 감사할 수 있는 까닭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주신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구원받았다는 사실과 거기에 내포된 복들을 생각하면 감사할 것밖에 없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셔서 우리를 보살피신다는 것은 가장 큰 복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사의 이유이다.
비록 역경의 현실 가운데서라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성도는 절대 실패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모든 일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기 때문이다.
* 롬 8: 28 -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 3: 20-21에서 '율법의 행위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으며, 율법 대신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였다. 따라서 '하나님의 의'는 율법으로 구원 얻을 수 없는 인간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나타난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는 하나님의 의로우신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죄를 용서하시고 인간을 의롭게 만들어 주시는 신적 성취(동적 사역)를 의미함을 알아야 한다.
또한, 롬 3: 24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가 되었다고 하였으므로, 인간을 의롭게 하시는 칭의는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진다.
그리스도의 대속이 없다면 인류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말씀이다. 롬 6: 23에서 죄의 대가는 사망이라고 하였다. 모든 인간은 아담 안에서 모두 죄를 범한 자들이므로 롬 3: 23에서 모든 사람이 범죄하였다. 그 결과 롬 5: 12에서 아담에게 속한 모든 인류는 사망의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한 모든 인간이 죽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지만, 그들을 무조건 용서하실 수가 없다. 따라서 인간이 용서받으려면 누군가 죄가 전혀 없는 존재가 인간을 대신하여 죄의 삯을 지급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것이 속전(Ransom)의 원리이며, 헬라어로는 <안틸뤼트론>이라고 한다.
그러나 아담에게 속한 모든 인류는 죄인 아닌 자가 없으므로 남을 위해 대속할 수 있는 자가 아무도 없다. 즉, 인간은 누구나 자기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 할 존재이므로 남의 죄를 대신해서 죽을 자격이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오직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만이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대속을 통하여 인류를 죄와 사망의 저주로부터 풀어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