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걸어온 그녀
박경선
그녀가 내게로 왔다. 아동문학회 모임에, 그녀가 정 선생을 따라 나왔다. ‘어디서 봤더라?’ 여러 모임에 나갈 때마다 그날 참석하는 회원들의 연간 집에 실린 글을 찾아 읽고 가서 ‘선생님 글, 이 점이 좋았어요.’ 스치듯 한마디 하며 이름을 익혀가며 사는 게 내 취미였다.
그런데, 회원이 몇 안 되는 아동문학회에서 그녀를 신입회원으로 맞이하고 보니 친근감이 한 달음에 달아올랐다. ‘우리 다른 모임에서도 봤지요?’ 하며 서로가 확 껴안았다.” 가톨릭문인회와 영남수필회 회원이라는 공통점만 가지고도 그녀와 충분히 가까워졌다.
우리는 그 사실만으로도 좋은 친구를 만난 기쁨에 서로를 끌어안으며 행복해했다.
그 뒤 23년 그 어느 날, 그녀가 ‘맨발로’ 내게 걸어왔다. 대가족을 거느리며, 암과 투병하며 살아온 이야기를 조곤조곤 털어놓으며 성자같은 말을 했다.
“고통은 내면에 생수가 흐르도록 길을 열어주었어요.”
‘고통이 생수라니?’ 그녀는 시부모의 병시중뿐 아니라 시동생들의 병시중에 헌신했기에, 자신이 암 투명 중이었을 때, 대가족 또한, 모두 그녀의 투병에 헌신해 주더라는 이야기를 했다, 그 이야기 중에 초등학생 아들의 눈물 담긴 호소의 웅변 이야기가 가장 심경을 울렸다.
“학교에 갔더니 아들 녀석이 ‘엄마를 살려 주세요’하며 웅변을 해서 최우상을 받고 닭똥 같 은 눈물을 흘리더라고요. 담임선생님도 아들을 부둥켜안고 우는 걸 보며 도망쳐 왔지요. 그리고 다시 한번 삶에 용기를 내어봤어요. 살려고 별별 노력을 다 해봤지요. 어느 날 병원에 갔더니 주치의가 그러더군요. ‘지금 기적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암세포가 거의 소진 단계입니다.’ 신장암 말기 환자에게 찾아온 기적으로 살아났지요.”
이 이야기는 그녀의 『맨발로』라는 수필집에 담긴 이야기였다. 수필집에 담긴 그녀의 인생사를 읽으면서, 나는 그녀 등 뒤를 둘러싼 후광을 보았다. 그녀에게 찾아온 기적은 그녀가 품격있게 살아온 품격에 후광을 비춰주고 있었다.
그녀의 열정은 끝이 없었다. 동시 공부를 뒤늦게 해서 『깔깔깔』 이라는 동시집을 내었다. 그 동시집을 영어번역본으로 만들어서 미국 손주의 생일 선물로 들고 갔다 오더니, 오래 살았던 집을 리모델링해서 신혼집처럼 꾸몄단다. 그 영상을 보고 ‘어찌 이 나이에 저런 창의적 감각으로 저런 꿈같은 집을 꾸몄노?’하며 놀랐는데, 내가 놀란 입이 미처 다물리기도 전에, 그녀는 이번에 더 큰 일에 도전했다.
대한민국 전 국민이 보는 ‘세바시(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대학 9기 수료생으로 세바시에 강연하러 나왔다. <내가 맨발로 산책하는 이유>로 암 투병이 맨발로 연결되어 온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그녀는 내가 존경하는 철학자들 이름을 친구 이름처럼 불러내었다.
“니체는 위대한 생각은 걷는 동안 탄생한다고 했습니다”
그랬던가, 그래서 데카르트도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cogito ergo sum)며 걸었나보다. 그녀는 소크라테스를 ’산책하는 철학자‘라며 추켜세웠고, 루소가 산책한 이야기, 소로가 산책하며 자연과 연결되는 이야기를 가져왔다. 시간이 더 있었으면 칸트까지 데려왔을 것이다.
’걷기는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몸과 마음, 자연과 연결됩니다.‘며 맨발 걷기로 건강을 다지고 있는 본인의 사례를 담백하게 조곤조곤 이야기했다. ‘70 넘은 여인이 어찌 저 많은 철학자의 명언까지 다 외워 발표하노?’ 일상 속 단어 하나도 깜빡깜빡 잊어버려 ‘나 치매인가?’ 걱정하며 사는 내게는 도전의 아이콘(우상)이 되어 보였다. 그래서 아동문학회 연수회 때 그 이야기를 자세하게 한 번 더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내 부탁에 그녀는 연수 물을 성의껏 정리해 와 나눠주며 살아온 이야기를 덧붙였다. 도전하기를 좋아하다 보니 네이버의 ‘독서경영’이라는 모임에 참가해서 『부의 미래』라는 책에 감동 받아 전국에서 열리는 그 모임을 쫓아다니며 살아온 이야기도 나에게는 도전적인 자세였다. 세바시 출연 전에는 원고를 잊어버릴세라 냉장고나 화장실 벽에도 원고를 붙여놓고 외웠다니, 그 도전의 기운만 봐도 참! 대단하다.
그녀는 생각의 바다를 헤엄쳐 다니면서 더 깊은 세계를 탐구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한 마리 금빛 인어가 아닌가? 2025.3.4. 12매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