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러기상(奠雁床 전안상), 조선 19세기, 지름 41.0cm, 높이 28.6cm, 국립중앙박물관.
나무기러기(木雁 목안)=조선 후기, 높이 23.0cm,
기러기보=조선 후기, 비단에 자수, 42×48cm, 한국자수박물관.
국립전주박물관 ‘조선의 소반’ 특별전.
조선의 사회 조직과 질서는 유교(儒敎)의 예(禮)를 바탕으로 운영되었다.
따라서 국가와 왕실은 물론 민간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담은 의례(儀禮)가 시행되었는데
그 절차에 따라 소반이 사용되기도 하였다.
이 때 소반에 올리는 음식은 단지 먹고 마시는 용도에 한정되지 않고 의식의 의미와 상징이 더해졌다.
예를 들면 잔치에서는 축하나 경사의 뜻을 담고 제례(祭禮)에서는 조상(祖上)을 공경(恭敬)하고 추모(追慕)하는 의미를 담았던 것이다.
돌, 혼례(婚禮), 상례(喪禮)에서는 각 절차에 따라 그 의미를 담은 음식이나 물건이 올라갔는데 백일상, 돌상, 합환주상, 기러기상, 폐백상, 회갑상, 제사상 등과 같은 이름이 붙여졌다.
이는 음식의 종류를 지칭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각 의식절차를 상징하였다. 또 의례에 사용된 음식을 소반에 갖추어 담당자나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는 등 소반은 차림과 함께 나눔의
의미까지 상징하였다.
조선시대에는 신랑(新郞)이 신부(新婦)의 집으로 가서 혼례(婚禮)를 치렀다. 신랑이 신부의
집을 들어 설 때 처음 치르는 의식은 신부집 혼주(婚主)에게 기러기를 전하는 전안지례(奠雁之禮)이다. 신부집에서는 대문 안 적당한 곳에 멍석을 깔고 병풍을 펼치고 그 앞에 보자기를
덮은 작은 상을 놓고 신랑이 신부집에 들어서면 이 상 위에 기러기를 놓고 절을 하는 예를
치른다. 이 상을 기러기상 혹은 전안상이라고 한다.
기러기는 의리를 상징하는 동물로 원래 살아 있는 기러기를 사용하였지만 점차 나무로 만든 기러기를 사용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