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리산/화양구곡 가을나들이
<2011.11.5>
오늘은 AIP10기 가을 소풍날이다. 올해 봄 충주호 나들이에 이어 두번째 행사이다. 봄행사 때는 마침 해외여행계획이 잡혀있어서 참여치 못해 서운했었는데 이번엔 만사를
제치고 부부 참가신청을 했다. 김회장이 사전답사를 해 본 결과 원계획을 일부 수정하였
단다. 그래서 계획에 없던 속리산 법주사가 추가되었다. 법주사 코스도 많은 분들이
오랫만에 온다고 좋아들 했다. 필자는 재작년,작년에 이어 매년 오는 셈이지만 언제와도
좋은 곳이다.
28인승 고급관광버스에는 29명이 타서 운전석 옆 보조석까지 차지하여 만석을 이루었다.
여태껏 여행 중 가장 참가인원이 많다고 집행부는 좋아한다. 양재역 부근에서 8시정각에
떠난 버스는 일로 속리산을 향해 달린다. 고속도로 주변의 산하는 이미 만추의 계절에 맞
추어 울긋불긋한 컬러 옷으로 갈아입고 차창안에서 바라보는 지공어른들의 눈을 즐겁게
해준다. 비가 오면서 기온도 크게 내려갈 것이라는 예보로 우산은 물론 추울 것에 대비
두꺼운 옷을 준비해 왔으나 전혀 걱정과는 달리 여행하기에 최상의 날씨였다.
회장이 밤새 기도한 덕분이겠지? 여행에 날씨보다 더 중요한 게 없으니--
김밥과 물,과자와 과일 그리고 술까지 완벽하게 준비하여 배가 부른 것은 물론 계속 입이
심심치않게 해 주었다. 아침 김밥은 부녀회에서 준비한 것이라고--감사합니다.
술도 배려가 깊다. 맥주는 소변이 자주 마려우면 곤란하다며 안되고, 소주는 아무래도
도수가 높으니 찾는 사람이 적더라는 집행부의 판단에 복분자술과 소주에 홍초를 섞은
홍초주를 준비했다. 또 술 안드시는 분들 위하여 커피와 대추차도--
버스안 - 얘기도 많다.
정2품 소나무는 버스를 타고가며 본다.
법주사 가는 양쪽 상가길은 식당,가게,노점상으로 북적인다.
소나무숲과 잔디공원과 개울
시원한 폭포
대부분 단풍은 시즌이 지나 시들고 있지만 아직 빨간 정열을 내뿜는 놈도 있어서 눈요기는---
발걸음도 가볍다.
호서제일가람
속리산대법주사 현판과 일주문
10시40분경 목적지 속리산 입구 주차장에 도착했다. 차로 지나면서 정2품송을 바라본다.
조선조 세조가 속리산 법주사로 행차할 때 타고 있던 가마가 이 소나무 아랫가지에 걸릴까
염려하여 “연(輦)걸린다”고 말하자 소나무는 스스로 가지를 번쩍 들어올려 어가(御駕)를
무사히 통과하게 했다고 한다. 이런 연유로 세조는 이 소나무에 정2품(지금의 장관급) 벼
슬을 내렸다고 한다. 주차장에서 꽤나 긴 거리를 걸어서 법주사 경내로 향해 걷는다.
워낙 큰 사찰이라서인지 법주사입구까지 양쪽 긴 거리는 온통 상가와 노점상들로 북적
거린다.
상가길이 지나자 울창한 소나무와 숲 그리고 잔디공원과 개울이 이어지며 마치 심심산골
로 들어온 느낌을 준다. 단풍철이라 자연 빨간 단풍을 찾게 된다. 그런데 이미 이곳은 단풍
시즌이 지나간 듯 단풍나무 잎이 거의 말라 있었다. 그래도 섭섭해 하지 않도록 늦단풍 몇
그루가 빨갛게 치장하고 우리를 즐겁게 해 주었다.
드디어 법주사 일주문에 도착했다. "湖西第一伽藍" "俗離山大法住寺" 현판이 우람하게 서
있다. 湖西는 충청도를 의미하지만 어원으로 보아 호수 서쪽이란 뜻으로 풀이되며 두가지
설이 있다. 동국여지승람에 나오는 금강(錦江)의 명칭 중 호강(湖江)이 있어 湖江 서쪽지방
이라는 해석과 제천의 의림지(義林池)를 기준으로 湖水 서쪽지방이라는 해석도 있다.
속리산(俗離山)이라는 이름을 보라 ! 세속을 떠난 깊은 산골~ 지금은 전국에서 가장 많이
모여드는 관광지 중의 하나이니 俗離라는 이름 하고는 전혀 딴 세상이 되어 참으로 격세지
감이 있다.
법주사(法住寺)는~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의 본사이다. 553년(진흥왕 14)에 의신(義信) 조사가 창건했으며,
법주사라는 절 이름은 의신이 서역으로부터 불경을 나귀에 싣고 돌아와 이곳에 머물렀다
는 설화에서 유래된 것이다. 776년(혜공왕 12)에 금산사를 창건한 진표(眞表)가 이 절을
중창했고 그의 제자 영심(永深) 등에 의해 미륵신앙의 중심도량이 되었다.
그후 법주사는 왕실의 비호 아래 8차례의 중수를 거쳐 60여 개의 건물과 70여 개의 암자를
갖춘 대찰이 되었다. 고려 숙종이 1101년 그의 아우 대각국사를 위해 인왕경회(仁王經會)를
베풀었을 때 모인 승려의 수가 3만이었다고 하므로 당시 절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으며,
조선시대에 태조와 세조도 이곳에서 법회를 열었다고 전한다.
임진왜란으로 모든 전각이 소실된 것을 1624년(인조 2)에 벽암(碧巖)이 중창한 후 여러 차
례의 중수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존하는 건물은 1624년에 중건된 대웅전, 1605년
에 재건된 국내 유일의 5층 목탑인 팔상전, 1624년에 중창된 능인전(能仁殿)과 원통보전
(圓通寶殿)이 있고 이밖에 일주문·금강문·천왕문·조사각·사리각, 선원(禪院)에 부속된
대향각·염화실·응향각이 있다. 또한 법주사의 중심법당이었으며 장육상(丈六像)을 안치했
었다는 용화보전(龍華寶殿)은 그 터만 남아 있고, 이곳에 근대조각가인 김복진이 조성 도
중 요절했다는 시멘트로 된 미륵불상이 1964년에 세워졌다.1986년 이를 다시 헐고 1989년
초파일에 높이 33m의 청동미륵불상이 점안(點眼)되었다. 이밖에 국가지정문화재인 쌍사자
석등(국보 제5호)·석련지(石蓮池:국보 제64호)·사천왕석등(보물 제15호)·마애여래의상
(보물 제216호)·신법천문도병풍(新法天文圖屛風:보물 제848호)·괘불탱(보물 제1259호)
과 지방지정문화재인 세존사리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호)·희견보살상(喜見菩薩像: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38호)·석조(石槽: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0호)·벽암대사비(충청
북도 유형문화재 제71호)·자정국존비(慈淨國尊碑: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79호)·괘불(충
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19호)·철확(鐵鑊: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3호) 등이 있다.
금강장사가 수호하는 금강문
금강문에는 코키리를 탄 문수보살를 가운데 모시고 양옆을 두 금강역사가 지킨다.
천왕문에는 광목,증장,다문,지국 4천왕이 지켜 서 있다.
광목천왕(廣目天王)과 증장천왕(增長天王) 다문천왕(多聞天王)과 지국천왕(持國天王)
범종각
국보 제 55호 법주사 팔상전(捌相殿)
국보 제55호로 신라 진흥왕 의신조사가 절과 같이 건축하였고 1597년 정유왜란 때 불 타고
1605년 재건되었다. 지금의 탑은 1968년에 해체·수리한 것이다. 벽 면에 부처의 일생을
8장면으로 구분하여 그린 팔상도(八相圖)가 그려져 있어 팔상전이라 이름 붙였다.
대웅보전
대웅보전 안에 모시고 있는 삼신불(좌:노사나불 중앙:비로자나불 우:석가모니불)
대웅보전과 석등 앞에서
국보 제5호 쌍사자석등(雙獅子石燈)
국보 제64호 석연지(石蓮池)
보물 제1417호 희견보살상
보물 제916호 원통보전
원통보전 안에 모신 높이 2.8m의 금으로 입힌 목조관음보살상
금동미륵대불(金銅彌勒大佛)
석조(石槽)
보물 제1259호 괘불탱
철당간지주
적멸보궁
사리각
단체사진
마애여래의좌상(磨崖如來倚坐像)
마지막 불꽃
법주사의 가을
막걸리 한잔 하고 가세요
자유스럽게 법주사 경내를 돌아보았다. 국보인 팔상전,쌍사자석등,석련지와 대웅전,원통
보전,희견보살상,사천왕석등,마애여래의상 등도 눈여겨 관찰했다. 단체사진을 찍으려해
도 좀처럼 모여지지가 않아 일부만 사진에 남겼다. 자연관찰로겸 산책로를 끼리끼리 모여
걸었다.
AIP동기들은 오랜 모임의 덕분으로 모두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상가길 도중에 막걸리를
파는 한 식당 앞에 모였다. 감자전,파전을 안주 삼아 막걸리 한잔씩 마시고, 화양계곡 근처
인 점심식당으로 갔다. 호산죽염된장으로 유명한 특별한 음식점이다. 된장에 넣어 간을 하
고 구워낸 돼지불고기와 청국장,된장찌개 등 된장 음식이 주 메뉴였다. 식당 뒷마당에는 수
백개의 된장 항아리가 시선을 끌었다.
삼겹살된장 메뉴의 점심/ 된장간장유래비와 호산죽염된장집 간판/ 표지석/돌정승
점심후 오후 일정은 차로 20여분 거리에 있는 화양계곡이다.
화양동계곡은 원래 황양나무(회양목)가 많아 황양동이라 불렸으나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
곳으로 거처를 옮겨온 후로 중국을 뜻하는 화(華)와 일양내복(一陽來腹)의 陽을 따서 이름
을 화양동(華陽洞)으로 고쳤다고 한다. 1975년에 속리산 국립공원에 포함되었으며 청주에
서 동쪽으로 32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조선 중기에 우암 송시열선생이 이곳에 은거하면서 스스로 자신을 주자에 비유하여 주자
의 무이구곡을 본떠, 이곳 경치가 좋은 아홉곳에 이름을 붙이고 화양구곡이라 불렀다한다
화양구곡은 경천벽, 운영담, 읍궁암, 금사담, 첨성대, 능운대, 와룡암, 학소대, 파천 등 9곳
의 절경을 말한다.
충북의 괴산군은 높은 산과 깊은 골짜기를 많이 품은 고장으로 특히 계곡이 아름답기로 유
명하여 전국에서 가장 많은 구곡을 거느리고 있다. 선유구곡,쌍곡구곡,갈은구곡,화양구곡
등이 있는데 그 중에서도 화양구곡은 가장 이름난 명승지이다.
화양구곡 거리표
우리에게 보여주려고 마지막까지 남아있은 예쁜 단풍
화양구곡의 터줏대감 느티나무
계곡
즐거운 소풍길
운영담(雲影潭)
송시열 유적지
화양서원
양추문과 만동묘 오르는 가파른 계단
만동묘
암서재
화양구곡 표지석과 계곡
더이상 못가~
첨성대
능운대
채운사 가는길
운동장 같은 바위~
갈대있는 풍경
말을 세우고 걸어야--/각종 생활유물전시/성황당
※ 화양구곡 <제 1 곡> 경천벽 - 화양 제1곡으로 기암이 가파르게 솟아 있어 그 형세가 자연의 신비라고 나 할까 산이 길게 뻗히고 높이 솟은 것이 마치 하늘을 떠받치듯 하고 있어 경천벽이라 한다.
<제 2 곡> 운영담 - 경천에서 약 400m 북쪽의 계곡에 맑은 물이 모여 소를 이루고 있다.
구름의 그림자가 맑게 비친다하여 운영담이라 이름했다.
<제 3 곡> 읍궁암 - 운영담 남쪽에 희고 둥굴넓적한 바위가 있으니 우암이 효종대왕의 돌
아가심을 슬퍼하며 매일 새벽마다 이 바위에서 통곡하였다 하여 후일
사람들이 읍궁암이라 불렀다.
<제 4 곡> 금사담 - 맑고 깨끗한 물에 모래 또한 금싸라기 같으므로 금사담이라 했다. 읍궁 암 동남쪽으로 약간 떨어진 골짜기를 건너면 바로 금사담이다. 담애에 암서제가 있으니 우암선생이 조그만 배로 초당과 암제를 통하였다 하며 현재는 흙에 묻혀 옛모습을 찾기 어렵다.
<제 5 곡> 첨성대 - 도명산 기슭에 층암이 얽혀 대를 이루었으니 제5곡이다. 경치도 좋을 뿐더러 우뚝 치솟은 높이가 수십m이고 대아래 "비례부동" 이란 의종의 어필이 새겨져 있으니 이름하여 첨성대라 했다. 또한 평평 한 큰 바위가 첩첩이 겹치어 있고 그위에서 성진을 관측할 수 있다하여 첨성대라 한다.
<제 6 곡> 능운대 - 큰 바위가 시냇가에 우뚝 솟아 그 높이가 구름을 찌를 듯하여 능운대라 고 한다.
<제 7 곡> 와룡암 - 첨성대에서 동남쪽으로 1km 지나면 이 바위가 있다.궁석이 시내변에 옆 으로 뻗혀 있어 전체 생김이 마치 용이 꿈틀거리는 듯하고, 그 길이가 열길이나 되어 와룡암이다.
<제 8 곡> 학소대 - 와룡암 동쪽으로 조금 지나면 학소대이다. 낙낙장송이 오랜 성상의 옛 일을 간직한채 여기저기 서 있는데, 옛날에는 백학이 이곳에 집을 짓고 새끼를 쳤다 하여 이름을 학소대라 하였다.
<제 9 곡> 파 천 - 개울 복판에 흰 바위가 펼쳐 있으니 티 없는 옥반과 같아서 산수경관을 찾는 이곳에 오는 관광객은 누구나 이 넓은 반석 위를 거치지 않는 사 람이 없다. 학소대 북쪽으로 조금 지나면 이 반석이 오랜 풍상을 겪는 사이에 씻기고 갈리어 많은 세월을 새기고 있다.
몇명씩 무리를 지어 산책길에 나섰다. 아직도 타오르는 열정을 식히지 못하고 붉은 핏빛
을 뿜어내면서 피어있는 빨간 단풍이 일행을 반긴다. 이곳의 터줏대감이라는 느티나무도
개울 가에 웅장한 모습으로 버티어 서 있다. 계곡에는 물소리가 요란하다. 반석이 너무 좋
다. 넙직한 바위들이 즐비하다. 바위 위에 앉아 물놀이라도 하고픈 마음이다.
화양구곡 중 두번째인 운영담을 지난다. 구름雲 그림자影 못潭 이름만 봐도 풍경이 떠 오
른다. 송시열 유적지가 일행을 맞아준다. 조선중기의 유학자 사림정치이념의 대표격이며
예송논쟁의 주역이었던 우암 송시열이 은퇴하여 후학을 가르치던 곳으로 화양서원과 암서
재가 금사담을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 중국 명나라 황제 신종과 의제의 위폐를 모시
는 만동묘도 들러 본다. 일행은 다리 위에서 마지막 목적지 첨성대를 멀리서 보면서 쉬고
있었다.
일부는 더 멀리 가고 있단다. 사진 찍느라 뒤쳐졌던 필자는 부랴부랴 앞팀을 따라 붙었다.
6곡인 능운대를 카메라에 담고 조금 더 가니 계곡에 우리 일행이 물가에서 쉬고 있었다.
계곡 바위에서 몇몇 회원들의 사진을 남기고 돌아섰다. 마음 같아서는 9곡까지 가고 싶었
으나 일행의 스케줄에 맞추어야 하니--수년전 고교 동기생들이 야유회겸 갔던 대명산이
바로 옆이다. 당시 산정에 올라 내려다 보았던 너무나 아름다웠던 풍경이 아직 눈에 선하다.
되돌아 오면서 미처 보지 못햇던 장면과 풍경을 사진에 담았다. 버스 정유장 근처의 성황당
도 시선을 끌었다.
이로서 오늘 두 곳의 여정을 모두 마쳤다. 예정시간에 맞추어 서울로 향했다.
주말인데도 차는 잘 달린다. 의외로 막힘이 적었다. 뒷자리는 자연 술판이 벌어지게 마련
이다. 전회장이 저녁을 산다고 한다. 서울 양재동 출발지 근처 식당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세끼가 모두 외식이다. 소위 영식님 대접을 받을 좋은 찬스이다.
화기애애한 가운데 저녁식사를 하면서 오늘 하루 일정의 폐회를 선언했다.
즐겁고 행복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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