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육백서른세 번째
돈은 주조鑄造된 자유일까
사람들이 어떤 능력으로 살아가는지,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를 자주 묻습니다. 그러고는 어느 순간 무릎을 탁, 치며 ‘그래, 돈이야, 바로 돈이야!’ 그럴 수 있습니다. 누구도 돈의 위력을 부인하지는 못할 겁니다. 가톨릭에서 인정한 지혜 문학서 중 하나로, 하나님 안에서 지혜를 추구하고 전통 신앙을 지켜 나갈 것을 강조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집회서集會書에도 이런 말이 나옵니다. “부자가 헛발을 디디면 친구들에게 부축을 받지만, 궁핍한 이가 넘어지면 친구들에게 걷어차인다. 부자가 휘청거리면 많은 사람들이 도우려 하고 그가 허튼소리를 하는데도 그를 정당화한다.” 이게 세상인심이라는 말이지요. 그러니 돈, 돈타령을 하게 되는 겁니다. 도스토옙스키는 가난한 집에 태어나 평생 가난하게 살았던 모양입니다. 그의 작품 <죽음의 집의 기록>에 돈에 대한 정의가 나옵니다. “돈은 주조鑄造된 자유였으며, 그래서 자유를 완전히 박탈당한 사람들에게 돈은 열 배나 더 귀중한 것이었다. 만일 돈이 주머니 속에서 짤랑짤랑 소리를 내기만 해도, 비록 그것을 쓸 수는 없지만, 벌써 반 이상이나 위로를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돈이 있다는 것은 원하는 것을 얻을 자유가 있다는 뜻이지요. 그렇다면 돈과 자유는 정비례할까? 알렉산더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문답에 답이 있습니다. 철학자가 “그리스를 정복하고 나면 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소아시아를 정복하고 세계를 정복하고 나면 또 무엇을 하시겠습니까?”라고 묻자, 알렉산더가 “그러면 편히 쉬겠지요”라고 답하자, 디오게네스는 “그럼 지금 바로 쉬면 되지 않습니까?” 그랬답니다. 욕망에 묶여 안식을 얻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리 표현했을 겁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유를 누려야 후회하지 않게 된다고 일러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