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6화 옛 그림 읽기 4. 윤두서(尹斗緖 1668~1715)의 <자화상>
여기 마흔을 넘긴 한 남자의 초상화가 있다. 그것도 자기 얼굴을 자신이 직접 그린 자화상이다.
공재 윤두서 이분의 눈매는 상당히 매서워 첫인상만으로도 보는 이를 압도한다. 또 활활 타오르는 듯한 수염은 내면 깊은 곳으로부터 기를 발산하는 듯하다. 그렇게 작품을 계속 바라보노라면 점차 으스스한 느낌이 들고 결국은 어느 순간 섬칫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기까지 한다. (중간 생략)
그러므로 다시 한번 찬찬히 <자화상>을 살펴보기로 하자. 아무런 선입관이나 편견을 갖지 않고서 말이다. 인물은 정면상이다. 그러므로 정확한 좌우 대칭을 이룬다. 얼굴은 단순한 타원형이며 이목구비가 매우 단정하다. 좌우 대칭의 정면상은 입체감을 갖기 어렵다. 그러나 얼굴 전체에서 바깥으로 뻗어난 수염이 표정을 화면 위로 떠오르게 한다. 더하여 새까만 탕건 끝이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며 휘어져 있어 머리 전체의 볼륨을 요령 있게 시사한다. 그런데 극사실로 그려진 이 작품 속의 인물은 놀랍게도 귀가 없다. 목과 상체도 없다. 마치 두 줄기 긴 수염만이 기둥인 양 양쪽에서 머리를 떠받들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옥에 갇혀 칼을 쓴 인물처럼 머리만 따로 허공에 들려 있는 듯하다. 머리는 화면의 상반부로 치켜 올라갔다. 덩달아 탕건의 윗부분이 잘려져 나갔다. 눈에 가득 보이는 것이라고는 귀가 없는 사실적인 얼굴 표현뿐인데 그 시선은 정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다. 이러한 초상이 무섭지 않다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윤두서의 <자화상>은 우리나라 초상화 가운데서 최고의 걸작, 불후의 명작이라고 일컬어진다. 여기서 이 작품에 대해서 질문을 하나 던져보자. 도대체 작품 속의 인물이 윤두서라는 사실은 누가 어떻게 확인한 것인가? 화면상에는 이분이 누구인지 알려주는 글씨가 한 자도 없다. 윤두서에게는 아들 윤덕희(尹德熙, 1685~1776), 손자 윤용(尹容) 등 그림을 잘 그렸던 자손들이 있었다. 만약 현 작품이 다만 후손들의 입을 통해서만 공재 초상이라고 전해져 내려왔다면, 그 전문은 혹시라도 무정한 세월의 흐름 속에서 본의 아니게 잘못 전해진 것일 수도 있다. 더구나 작품에는 가로 접힌 글이 같은 간격으로 열일곱 줄이나 보인다. 이것은 작가가 종이를 둘둘 말아둔 상태에서 그대로 납작하게 눌려서 생긴 금이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완성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물론 족자로 표구되지도 않았다. 갑자기 작업이 중단된 채 오랫동안 여러 종이 뭉치 속에 섞여 있다가 뒤늦게야 후손들이 발견한 것일지도 모른다. (이하 생략)
(아래는 인터넷에서 퍼온 글입니다)
윤두서 자화상(尹斗緖 自畵像)은 조선의 화가 윤두서가 그린 자화상이다. 대한민국의 국보 제240호로 지정되어 있다.
날카로운 관찰력과 뛰어난 묘사력을 보여주는 이 그림은 안면의 붓질이 많이 몰리는 곳에서 어두운 분위기가 형성되어 보는 이로 하여금 양감을 느끼게 한다. 가는 선으로 처리된 수염은 안면을 보다 부각해서 예리하게 응시하듯 그려진 눈동자와 함께 강한 힘과 생기를 느끼게 하며, 거짓 없는 외모와 그의 정신 세계를 솔직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동양인의 자화상으로는 최고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디 상반신상이나 목탄으로 그린 도포 부분은 퇴색되어 잘 보이지 않는다. 자화상을 그린 윤두서는 호가 공재이며 윤선도의 증손자이고, 정약용의 외증조이다.
이 자화상은 1710년에 그려졌으며, 그림의 크기는 20.5 x 38.5c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