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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일주일 보고서 - 14차 <짧고 굵게>
14차 정산을 끝마쳤다.
이번 주는 선생님들께서 우리에게 돈을 주시려고 작심하신 주였기 때문에
다른 주보다 돈을 더 벌었다.
동신에 이번 주는 필수 과목의 양을 두 배로 늘리면 세 배의 값을 받을 수 있는 부스팅 위크였다.
난 독해와 일기를 선택했고, 4일 동안 하는 독해는 매일 4쪽씩, 매일 쓰는 일기는 2쪽을 썼다.
난 평소에 듣던 수업을 들으면서도 두 과목을 부스팅 했다는 결과물에 대해 만족하지만
그보다 내가 할 일을 한 방식에 대해 더 만족한다.
난 이번 주 할 일을 모두 침대가 아닌 매트에 앉아 북 위에서 끝냈다.
그것도 매일 말이다.
난 할 일이 생길 때마다 그 자리를 찾았다.
독해, 단어, 독후감, 토론 원고 등등 난 항상 같은 자리에 앉아서 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앉아있을 때면 일들을 최대한 집중해서 끝내자고 생각했다.
하루하루를 보내고 나니 난 느끼는 점이 있었다.
전보다 할 일을 하는데 시간이 덜 걸렸는데도 불구하고 불안감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매번 할 일을 끝까지 잡고 있으면서도 만족하지 못하고 끙끙댔는데
이번에는 짧게 시간들인 것들에 자신감이 들었다.
또한 시간이 없다는 생각이 많이 들지 않았다.
여유도 느끼면서 생활을 했던 것 같다.
그리고 수업이나 과제물 제출 시간을 앞두고 다들 과제를 끝냈냐는 말들을 한다.
나에게도 항상 누군가가 와서 “지원 형님 ~했어요?”라고 물어보았다.
나는 자주 “아니” 또는 “지금 하려고” 등의 대답을 했는데
이번 주는 그 질문에 “어 했어.”라는 대답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느꼈다.
‘내가 조금만 더 집중하고 할 일을 하면 누구보다 먼저 내 과제를 끝낼 수 있겠구나’
그저 생각날 때마다 자리를 깔고 앉았던 것밖에 다른 것이 없었다.
그런데 확실히 일을 하는 자세가 바뀌고 그 자세를 유지하다보니 마음가짐이 달라졌다.
그래서 정산이 끝난 지금, 내가 만약 독해 4쪽을 매일 자리에 않아 하지 않았다면
내 하루가 어떻게 되었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독해 4쪽을 하는데 리딩 테스트까지 준비하면, 약 1시간 40분 정도가 걸렸다.
내가 자리에 앉아 집중하지 않고 독해를 했다면
분명 더 많은 시간동안을 쓰면서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독해를 끝냈을 때에 그 후련함이 정말 좋았다.
그 뿌듯함과 후련함이 날 계속 그 자리로 이끈 것 같다.
사실 내가 그렇게 할 일을 하게 된 것은 준우와 준휘 덕분이다.
월요일 날 아침 준우가 자리를 먼저 잡고 앉아있는 것을 보고
나도 내 자리를 만들어 보자란 마음으로 따라 앉았다가
준휘까지 합류해서 할 일을 할 때마다 셋이 모였다.
서로 말을 맞추거나 약속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셋 중에 한 명이 앉아있는 것을 보면
자연스럽게 북을 가져와 자기 할 일을 했다.
직접적으로 돕는 것은 없었지만 그저 존재만으로 할 일을 하는데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래서 이번 주는 준우와 준휘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다.
할 일을 할 때 자리를 잡고 앉아있는 것은 당연한 것인데도
내가 이번 주 이렇게 큰 차이를 느끼는 것을 보면
나도 어지간히 앉아있는 습관이 안 들어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러면서 다른 때보다 훨씬 만족스러운 한 주를 보냈다고 느꼈기 때문에
앞으로도 쭉 자리를 지켜 나가볼 생각이다.
내가 자리 잡고 할 일하는 것이 습관이 될 때까지 말이다.
내가 이 습관에 대한 장점을 몸소 느꼈고
그 습관이 나에게 아주 좋은 영향을 줄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을 아주 짧고 굵게 쓴 경험이었다.
이번 주를 보낸 대로 다음 주도 엉덩이를 딱 붙이고 보내볼 예정이다.
정말 뿌듯했고 스스로 태도가 매우 만족스러웠던 일주일이었다.
2. 디베이트 <폭행당하는 사람을 보면 나설 것인가?>
나는 이 주제를 듣자마자 ‘당연한 것이 아니가’라고 생각했다.
답은 정해져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주제로 토론이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내 생각은 빗나갔다.
길에서 맞고 있는 사람을 보고도 나서지 않는 다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 나서야 한다고 생각한다.
왜냐면 그게 맞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맞는 행동이기 때문이다.
도덕적으로 길가에서 사람이 맞고 있다면 그게 어떤 이유에서라도 그 행위는 폭력이고,
사회에서 일어나지 말아야할 일이다.
그리고 입장을 바꾸어 생각을 해보자.
길에서 내가 맞고 있을 때 어떤 감정이 들까.
나는 무섭고 누군가 날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 같다.
내가 맞는 입장에서 이런 마음이 든다는 것은 분명 맞고 있는 누군가도 똑같이,
누군가가 자신을 도와주었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다들 한 번씩은 공포감이 들 정도로 맞아본 적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경험이 있다면 우리는 더더욱 지나갈 수 없어야하는 게 맞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우리가 사는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곳으로 만들고 싶다면
우리는 망설임 없이 그 상황을 막아야 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치안도 나는 시민 의식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불의에 두려워하지 않고 대응할 수 있어야
높은 시민 의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높은 시민의식이 곧 나라를 선진국으로 만들고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안전하고 건전하게 만들 것이다.
마지막으로 만약 사람이 맞고 있는 모습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는 사회라면
그 사회는 정말 가망이 없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남이고 나와 상관이 없다 해도
우리는 같은 세상에 살면서 남에게 관심을 가져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막상 내가 그 상황에 직면해있다면 나도 분명 두려움을 느낄 것이다.
그래서 난 그런 상황 속에서도 내가 맞다고 생각하는 행동을 하려면
스스로가 더 강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내가 강해져야 강자가 약자를 대하는 방법인 폭력에서 강자로 강자를 대하며
그 상황을 해결할 수 있을 테니깐 말이다.
그리고 다들 TV에서 나오는 ‘용감한 시민’,
뭐 이런 제목의 몰래카메라 방송을 본 적이 있었을 것이다.
배우들이 한 명을 따돌리고, 때리는 연기를 하고 있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행동을 찍는 것이다.
그리고 그 상황에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사람이 나오면 상황이 중지되고 인터뷰가 시작된다.
방송에서 그런 영상을 볼 때면
나는 항상 인터뷰를 하고 있는 사람처럼 용기 있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방송에서도 그런 영상을 보여주고 그 사람을 칭찬하는 이유도 그
런 사람이 많은 사회를 원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행동이 옳음에도 멋있는 사람이라고 생각이 든 이유는
분명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더 나은 세상을 바란다면 우리 스스로가 먼저 노력하는 것이 첫째일 것이다.
그러므로 난 ‘길에서 맞고 있는 사람 있으면 나서야 한다 or 아니다’라는 이번 주 토론 주제에 대해
'나서야 한다'는 입장이다.
토론을 하고 나서
토론이 불가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나서지 않는다’ 입장의 주장을 듣고 살짝 당황했고 말문이 막히기도 했다.
그러면서 반대 입장의 주장을 듣고 현실적인 부분에 대해 알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난 토론 전과 후의 입장이 똑같다.
왜냐면 난 그 상황에서 나서야 한다는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앞으로도 내가 맞다고 생각한 것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무소유> 를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Ⅰ
⓵ 모진 비바람에도 끄덕없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꿋꿋하게 고집스럽기만 하던 그 소나무들이 눈이 내려 덮이면 꺾기게 된다. 가지 끝에 사뿐사뿐 내려 쌓이는 그 하얀 눈에 꺾이고 마는 것이다. 깊은 밤, 이 골짝 저 골짝에서 나무들이 꺾이는 메아리가 울려올 때 우리들은 잠을 이룰 수가 없다. 정정한 나무들이 부드러운 것에 넘어지는 그 의미 때문일까. 산은 한 겨울이 지나면 앓고 난 얼굴처럼 수척하다.(운해목)
⓶ 우리들이 필요에 의해서 물건을 갖게 되지만 때로는 그 물건 때문에 적잖이 마음이 쓰이게 된다. 그러니깐 무엇인가를 갖는다는 것은 다른 한편 무엇엔가 얽매인다는 것이다.
⓷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얻을 수 있다는 말이 있다.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비로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것은 무소유의 역리이니까.
⓸ “용서란 타인에게 베푸는 자비심이기보다, 흐트러지려는 나를 나 자신이 거두어 들이는 일이 아닐까 싶다.”
⓹ 아름다움이란 떨림이요 기쁨이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순수한 모순)
⓺ 가득 들어찼기 때문에 기댈 만한 여백이 없어져버린 것이다.
⓻ 오늘 나의 취미는 끝없는 인내다.
⓼ 집착이 괴로움이 것을
⓽ 조금 늦을 때마다 너무 일찍 나왔군 하고 스스로를 달래는 것이다.
⓾ 남이 나를, 내가 남을 어떻게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단 말인가. 그저 이해하고 싶을 뿐이지. 그래서 우리는 모두가 타인.
⑪ 자기 나름의 이해란 곧 오해의 발판이다.
⑫ 그러고 보면 사랑한다는 것은 이해가 아니라 상상의 날개에 편승한 찬란한 오해다. “나는 당신을 죽도록 오해합니다.”일 것이다.
⑬ 누가 나를 추켜세운다고 해서 우쭐댈 것도 없고 헐뜯는다고 해서 화를 낼 일도 못된다. 그걸 모두가 한쪽만으로 보고 성급하게 판단한 오해이기 때문에
⑭ 온전한 이해는 그 어떤 관념에서가 아니라 지혜의 눈을 통해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 이전에는 모두가 오해일 뿐.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제길, 그건 말짱 오해라니까.
⑮ 바닷가의 조약돌을 그토록 둥글고 예쁘게 만든 것은 무쇠로 된 정이 아니라, 부드럽게 쓰다듬는 물결인 것을
⑯ 일상이 지겨운 사람들은 때로는 종점에서 자신의 생ㅇ르 조명해보는 것도 필요할 것이다.
⑰ 잘산다는 것은 결코 편리하게 사는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우선 우리는 보행의 반경을 잃은 것이었다. 그리고 차단된 시야 속에서 살았던 것이다. 걷는다는 것은 단순히 몸의 동작만이 아니라 거기에는 활발한 사고 작용도 따른다. 툭 트인 시야는 무한을 느끼게 한다. 그곳에는 수직 공간은 있어도 평면 공간이 없었다.
⑱ 도(둑) 선생이 다녀간 며칠 후 시계를 사러 나갔다. 이번에는 이무도 욕심내지 않을 허름한 것으로 구해야겠다고 작정,
⑲ 물건을 잃고 마음까지 잃을 뻔하다가 공수래 공수거이 교훈이 내 마음을 지켜주었던 것이다.
⑳ 우리 마음이란 미묘하기 짝이 없는 것이다. 너그러울 때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이다가 한 번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여유조차 없으니깐. 그런 마음을 돌이키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것이 내 마음이라면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㉑ 비가 올 듯한 무더운 날에는 돌담밖에 정랑(변소)에서 역겨운 냄새가 풍겨왔다. 그런 때는 내 몸 안에도 자가용 변소가 잊지 않느냐, 사라의 양심이 썩는 냄새보다는 그래도 낫지 않으냐, 이렇게 생각하면 아무렇지 않다.
㉒ ‘안다’는 것은 ‘행’에 비할 때 얼마나 보잘 것 없는 것인가.
㉓ 우리가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 죽음 쪽에서 보면 한 걸음 죽어오고 있다는 것임을 상기할 때, 사는 일은 곧 죽는 일이며, 생과 사는 결코 절연된 것이 아니다. 죽음이 언제 어디서 내 이름을 부를 지라도 “네”하고 선뜻 털고 일어설 준비만은 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나의 유서는 남기는 글이기 보다 지금 살고 있는 “생의 백서”가 되어야 한다.
책 속에 좋은 글귀들이 너무 많아서 저도 읽는 내내 마음이 따뜻해지는 것 같았습니다.
(다음 주에 나머지 글귀들을 마저 올리겠습니다.)
3. 일주일 보고서 - 15차 <나의 두 번째 이스탄불, 성공적> 난 7기 때 정산을 잘 못했다. 사실 ‘잘 못’한 정도가 아니라 아예 못했다고 하는 게 맞는 것 같다. 때문에 이스탄불에서도 역시 내 돈으로 딜라이트라던가 기념품을 살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비밀병기에서 내가 돈을 벌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곳 이스탄불에서 내가 원하고 원했던 악마의 눈을 샀다. 2년 전부터 갖고 싶었지만 사지 못한 그 한(?) 비슷한 뭔가가 마음 속에 박혀있었다. 하지만 이번에 해소되었다. 자본주의의 노예가 되고 싶지 않지만 돈을 쓰는 즐거움, 뭔가 소유하게 되는 즐거움은 정말 큰 것 같다. 이번 주에는 블루 모스크 사원과 돌마바하체 궁전에 다녀왔다. 블루 모스크에서는 여자들이 모두 히잡을 써야하기 때문에 입구에서 파란색 천을 받았다. 난 그 천을 뒤덮고 안을 구경하면서 이슬람 문화를 더 잘 느낄 수 있었다. 이슬람 문화에서는 성화가 금지 되어있다. 때문에 그림이나 모양 대신 캘리그래피와 아라베스크 무늬로 꾸며져있다. 아라베스크 무늬는 조잡스러운 것 같으면서도 한 데 모여있으면 참 아름다운 것 같다. 하지만 이번에 가보니 천장이 공사 중이었다. 제일 화려한 곳 중에 하나인데 난 2년 전 기억으로 만족해야 했다. 돌마바하체 궁전은 정말 말 그대로 ‘궁전’이었다. 생각해보면 내가 지금껏 궁전이라고 하는 곳에 많이 가보지 않은 것 같은데 이 곳은 저택의 수준을 넘어 왕족이 사는 ‘집’인데 시설 크기의 건물이었다. 안에 들어가 구경을 하는데 홀이 4~5개가 있었다. 그에 딸린 방들은 수 십 개가 되는 것 같았다. 나는 계속해서 ‘이런 집에서 살면 무엇을 할까?’, ‘청소하려면 날 잡고 한 달 정도는 해야겠다.’싶은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로 크로 넓었다. 이 궁전도 충분히 번쩍번쩍 했는데 찬희쌤께서 베르사유 궁전에 가면 왜 루이 16세가 목이 잘렸는지 알 수 있을만큼 화려하다고 하셨다. 그렇게 나는 이번 돌마바하체를 다녀오면서 다른 나라 궁전들도 한 번 가보고 싶단 생각을 하게 되었다. 사실 이번 주에 총 2번의 쇼핑시간이 있었다. 두 번째 때는 은재와 해인쌤과 함께 외출했는데 해인쌤이 음료를 사주시면서 같이 얘기할 수 있는 시간이 만들어졌다. 긴 시간은 아니었지만 너무 편하고 즐거웠다. 종종 이런 시간이 필요하겠단 생각이 들었다. 그 시간을 보내고 나서 하반하 생활에 대한 사기가 높아졌다. 이런 시간을 또 보낼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야겠다. 난 터키를 사랑한다. 난 이스탄불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바클라바라는 디저트가 정말 맛있기 때문이다. 딜라이트, 바클라바, 그리고 이름 모를 많은 것들을.. 보고만 있어도 정말 행복하다. 이곳에 Hafiz Mustafa라는 체인점이 있는데 다음에 또 다시 이스탄불에 온다면 디저트 살 돈을 따로 챙겨서 이곳에 들를 것이다. 다음 이스탄불을 방문할 때에는 꼭 디저트에 질려봤으면..! 찬희쌤이 가셨다. 무사히 귀국하셨다고 들었다. 3개월이라는 시간동안 찬희쌤이랑 같이 생활하면서 쌤의 멋있는 모습만 본 것 같다. 정말 소중한 시간이었다. 쌤은 한국에 가셨지만 하반하에서 못지 않은 영향력을 미치시며 사실 것 같다. 나는 내가 찬희쌤 나이쯤 되었을 때 찬희쌤만큼의 능력을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다. 찬희쌤은 나의 롤모델이시다. 쌤은 가셨지만 생활하면서 쌤 생각이 많이 날 것 같다. 찬희쌤의 앞길에 쌤께 모두 도움이 되는 일만이 펼쳐지길 간절히 바란다. 4. 스피킹 <당신이 판사라면 어떤 판결을 내리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여러분의 부모님을 병간호 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저는 경험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허리를 다치셨을 때였습니다. 식사하실 때, 화장실을 가실 때, 필요한 것이 있으실 때마다 저를 찾으셨습니다. 저는 그 일이 힘들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아버지께선 항상 “지원아 고맙다. 고맙다. 미안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아예 아무것도 못하실 정도로 편찮으신 아버지께서 이렇게 사는 것이 너무 고통스럽고 사는 게 사는 것 같지 않다고 말씀하실 때 저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저는 부모님과 자식의 입장을 모두 생각해봤습니다. 아버지께서는 어느 정도의 고통을 받고 계셨으면 그 말씀을 하셨을까 또 그 모습을 자식에게 보여야 하고 자식을 손을 벌려야 하실 때 어떤 마음이 드실까. 자식은 부모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때 얼마나 마음이 아플까 많은 것이 떠올랐는데요. 제가 만약 아버지를 죽인 자식이라면 괴로움이 들 것 같습니다. 하루하루 고통스럽게 사시는 부모님을 위해,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을 편하게 해드리는 길을 선택한 자식에게 형을 내릴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제가 판사라면 저는 그 자식에게 무죄 선고를 할 것 같습니다.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위한 편안을 위해서 내린 결정이고 자식 또한 부모님이 고통스러워하시는 모습을 보며 살인을 결정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헥 때문에 이 부분에서 정상참작을 해야 합니다. 그 결정은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를 위해 저지른 살인이었습니다. 피의자도 살인을 할 때 얼마나 슬펐을까요. 사실 저는 이 스피킹 주제에 대해 생각하며 떠오른 것이 있습니다. 바로 스위스에서는 가능한 존엄사 였는데요. 그 영상에 대해 자세히 아는 것은 없었지만 저는 평온한 상태에서 자신의 죽음을 선택하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 스 스로 자신의 죽음을 결정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만약 아버지의 입장이었을 때 병에 대한 고통과 자식에게 느끼는 미안함으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그 상황에서 죽음조차 제 스스로 선택하지 못한다면 누군가 절 죽여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 것입니다. 저는 자식의 살인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고 판단했습니다. 다른 삶들이 같은 상황에 있을 때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해봤는데요. 더 나은 선택은 두 사람 모두 고통 받는 것 밖에는 엇다는 결정이 났습니다. 살인 동기에 악의나 잔인성이 없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판단했습니다. 그러므로 전 무죄를 선고할 것이었습니다. 스피킹을 하고 나서 사실 전 이런 상황이 실제로 닥칠 것이라고 생각해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의 입장, 아들의 입장 둘 중 하나도 말이죠. 하지만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하면서 존엄사에 대해서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삶을 삶처럼 살지 못할 때 스스로의 죽음을 결심할 수 있다면 남에게 피해주지 않아도 되고 자신이 죽고 싶을 때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존엄사가 필요하다는 것을 이번 스피킹 주제를 쓰며 다시 느끼게 되었습니다. + <무소유> 를 읽으면서 인상 깊었던 구절들Ⅱ ㉔ 사색이 따르지 않는 지식을, 행동이 없는 지식인을 어디에다 쓸 것인가. ㉕ 얼마만큼 많이 알고 있는냐는 것은 대단한 일이 못된다. 아는 것을 어떻게 살리고 있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㉖ 맺힌 것은 언젠가 풀지 않으면 안 된다. ㉗ 일(직무)의 위대성은 무엇보다도 사람들을 결함시키는 점일 것이다. ㉘ “녹은 쇠에서 생긴 것인데 점점 그 쇠를 먹어버린다.” 이와 같이 이 마음씨가 그늘지면 그 사람 자신이 녹슬고 만다는 뜻이다. ㉙ 하루하루 나 자신의 입에서 토해지는 말을 홀로 있는 시간에 달아보면 대부분 하잘 것 없는 소음인 것이다. ㉚ 사람이 해야 할 말이란 꼭 필요한 말이거나 “참말”이어야 할 텐데 불필요한 말과 거짓말이 태반인 것을 보면 우울하다. ㉛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할 정도로 같이 있는 시간이 빨리 흐른다면 그는 정다운 사이일 것이다. 왜냐하면 좋은 친구하고는 시간과 공간 밖에서 살기 때문이다. ㉜ 우리는 또 무엇으로 친구를 알아볼 수 있을까. 그렇다, 말이 없어도 지루하거나 따분하지 않은 그런 사이는 좋은 친구일 것이다. 소리를 입 밖으로 내지 않을 뿐, 구슬처럼 영롱한 말이 침묵 속에서 끊임없이 오고간다. ㉝ 침묵이라는 여과 과정을 거쳐 오로지 “참말”만을 하기 위해서인 것이다. 침묵의 조명을 통해 당당한 사람들이 있다. 그런데 마땅히 입 벌려 말을 해야할 경우에도 침묵만을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미덕이 아니라 비겁한 회피인 것이다. ㉞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면서, 피로회복제를 마셔가며 그저 바쁘게만 뛰어다니려고 한다. 전혀 길들일 줄을 모른다. 그래서 한 정원에 몇 천 그루의 꽃을 가꾸면서도 자기네들이 찾는 걸 거기서 얻어내지 못하고 있는 거다. ㉟ 생야일편부운기, 사야일편부운멸, 삶은 한 조각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요, 죽음은 한 조각 구름이 스러지는 것이라고 여기고 있더라 ㊱ 따지고 보면, 본질적으로 내 소유란 있을 수가 없다. 내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온 물건이 아닌 바에야 내 것이란 없다. 어떤 이연으로 내게 왔다가 그 인연이 다하면 가버리는 것이다. 더 극단적으로 말한다면, 나의 실체도 없는데 그 밖에 내 소유가 어디 있겠는가. 그저 한동안 내가 맡아있을 뿐이다. ㊲ 그러나 남을 이해한다는 것처럼 어려운 거이 또 있을까. ㊳ 역겨운 거름 냄새가 뿌리를 거쳐 줄기와 가지와 꽃망에 이르면 달디단 5울의 향기로 변할 것이다. 대지의 조화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새봄의 흙냄세를 맡으며 생명의 환희같은 것이 가슴 가득 부풀어오른다. 맨발로 밟는 밭흙의 촉감, 그것은 영원한 모성이다. ㊴ 아름다움을 정치처럼 다수결로 결정한다는 것은 정말 우스운 일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흔히 아름다움이라면 거죽만을 보려는 맹점이 있어. ㊵ 어떤 시인의 말인데, 꽃과 새와 별은 이 세상에서 가장 정결한 기쁨을 우리에게 베풀어준다는 것이야. 그러나 그 꽃은 누굴 위해 핀 것이 아니고 스스로의 기쁨과 생명의 힘으로 피어난 것이래. 숲 속의 새들도 자기의 자유스런 마음에서 지저귀고 밤하늘의 별들도 스스로 뿜어지는 자신의 빛을 우리 마음에 던질 뿐이란 거야. 그들은 우리 인간을 위한 활동으로서 그러는 것이 아니라, 오로지 자기 안에 이미 잉태된 큰 힘의 뜻을 받들어 넘치는 기쁨속에 대고 지저귀고 빛나는 것이래. 그러니깐 아름다움은 안에서 번져 나오는 것야. 맑고 투명한 얼이 안에서 밖으로 번져 나와야 한단 말이다. ㊶ 네가 있음으로 해서 네 이웃이 환해지고 향기로워질 수 있는 그런 존재ㅏ 되어주기를 바란다. 소녀라는 말은 순결만이 아니라,, 아름답고 슬기로운 본질을 가꾸는 인생의 앳된 시절을 뜻한다. 너의 하루하루가 너를 형성한다. 그리고 멀지 않아 한 가정을, 지붕 밑과 온도를 형성할 것이다. 또한 그 온도는 이웃으로 번져 한 사회를 이루게 될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너의 “있음”은 절대적인 것이다. 없어도 그만인 그런 존재가 아니란 말이다. ㊷ 종교란 가지가 무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다. 가지로 보면 그 수가 많지만, 줄기로 보면 단 하나뿐이다. 똑같은 히말라야를 가지고 동쪽에서 보면 이렇고 , 서쪽에서 보면 저렇고 할 따름. ㊸ 인적이 미치지 않은 심산에서는 거울이 소용없다. 둘레의 모든 것이 내 얼굴이요 모습일 테니까. 일력도 필요없다. 시간 밖에서 살 테니까 혼기이기 때문에 아무도 나를 얽매지 못할 것이다. 홀로 있다는 것은 순수한 내가 있는 것. 자유를 홀로 있음을 뜻한다. 아, 아무것도 가진 것 없이, 어디에도 거리낄 것 없이 산울 림 영감처럼 살고 싶네. ㊹ 평화의 적은 어리석고 옹졸해지기 쉬운 인간의 그 마음에 있다. 그래서 평화란 전쟁이 없는 상태이기보다는 인간의 심성에서 유출되기 자비의 구현이다. - 이상 인상 깊게 읽은 무소유 글귀들이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첫댓글 지원 역시 글도 잘쓰고 나날이 발전하네~~ 그리고 전교 1등된거 축하하고💕 남은 시간동안도 무사히 잘 보내고 앞으로도 쭉쭉 좋은 모습 기대할께✨
지원양 전교1등 축하해요
울 딸 성실히 하루를 쌓아가고 좋은 사람들을 본받으며 값진 글귀 속에서 깨닫고 커가는 모습이 참 좋다. 올해는 울 지원이에게 참 많은 배움이 일어나는 해인 것 같지?
지금 네가 만들어가는 하루하루가 너의 삶의 든든한 밑받침이 되어줄거야.
스킨스쿠버 속에서도 숨은 삶의 보석을 찾아보렴~~^^
지원이가 읽은 책( 무소유) 꼭 읽어봐야 겠다는 생각이드네
책을 많이 읽고 읽는것으로 끝나는게 아니라 생각하며 마음속에 새기는 점 아주 훌륭하다^^
점점 박차를 가하며 앞으로 나아가고 있는 지원이 엄지척👍
오오ㅡ공부 자리를 만들어두는 건 참 좋은 일이지!!! 공부비결 하나를 체득했구나~~
자기자신에게 뿌듯함을 느끼는 순간이 참 좋은 듯! 그 힘으로 세상을 잘 살아가지요!
무소유에 이런 글 귀가 있었나 싶네요. 잘 읽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