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조희자]

    윤오월의 어둠이 산과 산 사이에 해동이를 낳았다. 장닭의 홰치는 소리보다도 먼저 산고에 몸을 틀었을 어둠은 지쳤는지 산 너머에서 몸을 누인다. 헝클어진 머릿결 바람이 가만히 쓸어주면 혼자서 치른 어젯밤 일은 깨끗이 잊었다는 듯 어둠은 햇살에 자리를 양보한다. 어린 햇살의 걸음마는 얼마나 부드러운지 풀잎들도 간지러워 몸을 일으키고 나무들도 강물도 기지개를 켠다. 창호지 문에 한 번 걸러진 결 고운 햇살로 눈을 비비고 댓돌 위 신발을 꿴다.

마당을 나서기가 무섭게 새 식솔을 늘인 장닭 한 마리가 달려든다. 내가 만만하게 보였는지 거만하게 걷는가 싶더니 푸드덕 날아올라 쪼일 듯 위협한다. 덩달아 암탉들마저 그 위세에 놀라, 온 마당을 우왕좌왕 댄다. ‘얕보이면 더한다. 피하지 마라.’는 아버지의 말씀을 되새기며 당당히 걸어보려 하지만 몇 걸음도 못 가 이내 울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어머니가 부지깽이를 던지고 나서야 녀석이 길을 터 준다. 그래도 화가 덜 풀렸는지 모가지를 아래위로 건들거리며 손 한번 봐 줄 모습으로 담장 위에서 한껏 굉음을 질러댄다. 뒤따라올까, 집 앞 강변까지 내달아 숨을 고른 후 세수를 하고 밤새 강물에 담가 둔 주전자를 꺼내 들고 집으로 온다. 주전자 안에는 다슬기가 저절로 새까맣게 달라붙어 있다. 싸리문 마당 안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 장탉이 제 가족을 거느리고 유유자적 모이를 줍고 있다.

평상시와 다르게 아침밥을 먹자마자 아버지와 어머니는 약속이나 한 듯 나와 두 살 아래 남동생을 밖으로, 자꾸만 내쫓았다. 아침부터 냇가에 나가서 놀라는 말씀에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생기고 있음을 느낀 나는 떼를 썼지만, 소용이 없다. 아버지가 눈을 한 번 부라리자 동생의 손을 끌고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날마다 노는 냇가의 다슬기잡이는 이내 시들했다. 엄마랑 아버지가 무얼 하려는지 궁금하여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동생의 손을 잡고 뒤뜰로 가서 뒷문 앞에 소리 죽여 섰다. 귀를 기울였으나 방 안에서는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동생과 둘이 손가락으로 뚫어놓은 창호지 문에 눈을 대려는 순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문이 벌컥 열린다. 혼쭐이 나겠구나 싶은 마음에 두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순간 무언가 들켜버린 듯한 어색한 미소를 띤 아버지와 울 듯 웃을 듯 알 수 없는 어머니가 나를 내려다봤다.

다시 집 밖으로 내몰렸다가 정오쯤 되어 돌아왔을 때다. 조그만 방 한 귀퉁이에 포대기에 싸인 못생긴 갓난아이가, 턱 하니 어머니의 옆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은은한 햇살이 창호 문을 통해 방을 비추고 있다. 우리 둘이 없어도 그 방은 참 평화로워 보인다. 잠이 깬 어머니는 아까의 일이 괜히 미안한지 오뉴월 햇살을 받은 조약돌 같은 따뜻한 아기 손을 잡아 쥐여주며 ‘고추는 없다.’ 하신다. 고추야 달렸든지 말았든지 내 알 바 아니지만, 고추 달린 바로 아래 동생은 무엇이 서러운지 목청도 좋게 울어댔다. 나도 동생처럼 울고 싶었다.

평소 부엌 출입이 드문 아버지는 뜨거운 김을 내 뿜는 가마솥 앞에 서서 연방 바쁘다. 솔가지를 꺾어 부엌 아궁이에 넣기도 하고 달구어진 가마솥을 행주로 한 바퀴 훔쳐내기도 한다. 저녁노을이 질 때면 왠지 잠깐 울고 싶던 기분이 그날은 대낮부터 마음을 죄어온다. 부엌문을 삐걱거리며 날 쳐다봐 주길 기다려도 아버지는 바라볼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몽당 빗자루로 봉당을 말끔히 쓴 후 부지깽이로 불 조절을 하고 난 아버지는 뜬금없이 고기를 잡으러 가자신다.

아버지는 물속 사냥꾼이셨다. 매끄러운 등에 날 태우고 두 손으로 목을 깍지 끼라 한 후 큰 바위 밑 소를 향해 서서히 헤엄을 친다. 한 손에는 노란 고무줄과 굵은 대나무로 당겨 쏠 수 있게 손수 만든 작살이 쥐어져 있다. 드디어 나의 머리가 물에 잠기면서 유영이 시작된다. 날 때부터 헤엄을 칠 수 있는 물고기처럼 이리저리 날쌔게 움직이며 바위 및 곳곳을 쑤시고 흔든다. 투명한 강물이 모래가 일면 더는 견딜 수 없는 뱀장어들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바로 그때 작살을 쏜다. 아버지의 작살 쏘는 솜씨는 정확하다. 숨을 쉬기 위해 잠시 고개를 내밀었다 다시 서너 번 잠수를 거듭하는 동안 노란 양은 주전자는 검은 뱀장어로 가득 찬다.

이즈음이면 몸에 한기가 든다. 떨며 있는 내 몸을 따뜻한 바위에 누이고 작은 조약돌 하나를 귀에 대어 주신다. 거짓말처럼 미지근한 물이 귀에서 흘러나온다. 아버지의 넓은 등에 업혀 집을 향할 때, 한 걸음걸음이 장단이 되어 들풀마저 알맞게 춤을 춘다. 이내 기분이 좋아진 난 엉덩이를 몇 번 실룩이다 지쳐 꿈길을 간다.

밥그릇이 딸각 부딪치는 소리가 들린다. 흔들어 깨우는 어머니 손길에 눈을 뜨니 벌써 저녁이다. 어슴푸레 비추는 늦은 햇살을 받은 밥상 위에는 뽀얀 국물이 가득 담긴 질그릇이 놓여 있다. 출산한 어머니를 위한 뱀장어국으로 차린 밥상은 가난한 지아비의 마음으로 풍성한 하례 상이 되었다. 물에 씻은 김치 한 쪽을 밥 위에 얹으며 구석에 누운 갓 낳은 동생을 바라본다. 대낮과 달리 잠든 얼굴이 영 밉지는 않다. 사내 녀석이라고 아버지 무릎 위에 앉아 잘도 밥을 받아먹는 남동생의 얼굴은 얼마 전의 상황을 까맣게 잊은 듯하다.

세월의 물결은 흘러 그날 태어난 여동생이 서른 후반이 되었다. 유년의 첫 장쯤을 장식한 여름 그날의 기억은 맑은 물속에 잠긴 조약돌처럼 이제라도 손에 잡힐 듯 투명하다. 눈을 감지 않아도 강물 소리는 들리고, 남편이 지금처럼 살갑다면 살아 볼 만하다 했을 귓불 고운 어머니와 따뜻하고 넓은 등을 가진 아버지의 모습이 보인다.

지금도 강변 초가집 마당 한가운데서 제 가족을 거느리고 당당히 날개 짓을 하는 서슬 푸른 장닭 한 마리가 보란 듯이 날 기다려 주기를 꿈꾼다.

윤오월 물빛이 눈부시다.

[조희자]

아름다운 동화책을 읽는 것 같습니다. 남 작가님, 건강 하십시요. 감사합니다.

[데이빗구]

[조희자]

다녀가심 감사드립니다. 아침 저녁 일기차가 심합니다. 감기 조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