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월당 시집 제3권 4-134 사관寺觀 절 구경 13 유현등사遊懸燈寺 현등사에 놀고서
란야최심처蘭若最深處 난야蘭若가 가장 깊고 험준한 곳에 있는데
황량송죽유荒凉松竹幽 거칠고 쓸쓸한 솔・대[松竹]밭이 그윽하네.
석홍추수정石泓秋水淨 깊이 파인 돌팍에는 가을 물이 맑고
사경만연수莎徑晚煙收 잔디 길엔 저녁연기 말끔히 걷혔네.
고불편청안古佛偏青眼 옛 부처 편벽되이 푸른 눈인데
한승역백두閑僧亦白頭 한가한 승도 또한 머리가 희었네.
강화방외도江華方外島 강화江華는 지경 밖의 외딴 섬이라
불필문영주不必問瀛洲 꼭 영주洲를 물을 건 없을 걸세.
►난야蘭若 범어梵語 아란야阿蘭若(aranya)의 준말.
‘고요한 곳’이란 뜻으로 사원寺院(절)을 이른 말.
적정처寂淨處 또는 무쟁처無諍處로 번역되기도 함.
난야산고처蘭若山高處 절간이 산 높은 데 있으니
연하장기중煙霞嶂幾重 아지랑이와 노을 낀 봉우리 그 몇 겹인가?
/<두보杜甫 알진체사선사謁眞諦寺禪師>
리하장강가상산籬下長江家上山 울타리 밑은 큰 강이요 집 뒤는 산인데
산중난야입운단山中蘭若入雲端 산 속 절은 구름 끝에 들었구나.
청명공대산두회淸明共待山頭會 모두 청명이 오기를 기다리다 열린 산 위의 모임이라
일좌승환잡속환一座僧歡雜俗歡 한 자리의 중도 즐겁고 속인도 즐겁네.
/<김수온金守溫 제정부윤산수병題鄭府尹山水屛> 8首
►‘사초 사莎’ 사초莎草(바닷가의 모래땅에서 자라는 풀, 잔디, 향부자)
►고불古佛 오래된 부처.
① 지혜가 뛰어나고 덕이 높은 승려에 대한 존칭.
② 석가모니불 이전에 출현하였다는 과거불過去佛.
③ 불전佛殿에 모셔 둔 오래된 불상.
④나이가 많고 덕망德望이 높은 늙은이.
►청안靑眼↔백안白眼
남을 기쁜 마음으로 대하는 뜻이 드러난 눈초리.
白眼 백안시→ 무시, 냉대,
青眼 청안시→ 호의, 따사로운 눈,
삼국시대 죽림칠현竹林七贤 중 한명인 위魏나라 시인 완적阮籍이 모친상을 당했을 때
지기인 혜강嵇康이 조문을 오자 다정한 검은 눈동자(青眼)로 대하였고
평소 좋아하진 않던 혜강嵇康의 형 혜희嵇喜가 찾아 왔을 때는
속물 취급을 하여 홀대하는 흰 눈(白眼)으로 흘겨보았다.
여기서 무시하거나 홀대한다는 의미의 백안시(白眼)와
따사로운 눈길이나 호의를 뜻하는 청안시(青眼)라는 말이 유래하였다.
/<진서晉書 완적전阮籍傳>
고대 중국에서 青色은 대부분 黑色의 의미였다.
검은 머리를 뜻하는 青鬓,
검은 색 관복을 의미하는 青衫,
검은 눈동자를 말하는 青眼 등.
►영주瀛洲
발해渤海 가운데 3神山 봉래산蓬萊山 ·방장산方丈山 ·영주산瀛洲山이 있어
신선들이 살며 不死藥이 자란다.
瀛洲山은 제주도를 가리키기도 하는데
조선 후기에 김정호(1804-1866)가 편찬한 지리서인
<대동지지大東地志>에 제주의 읍호를 영주瀛州라 하였다.
●현등사懸燈寺/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1556-1618)
운악산심동雲岳山深洞 운악산 깊은 골짜기에
현등사시영懸燈寺始營 현등사를 처음으로 지었네
유인부도성遊人不道姓 노니는 사람은 성을 말하지 않는데
괴조자호명怪鳥自呼名 괴이한 새는 스스로 이름을 부르네
불백천신장沸白天紳壯 용솟음치는 하얀 폭포는 장대하고
횡청지축경橫靑地軸傾 가로 비낀 푸른 산은 지축이 기울었네
은근호계별殷勤虎溪別 은근히 호계에서 헤어지려니
서일만산명西日晚山明 서쪽 해가 저문 산이 밝아오누나/(번역 한상철)
●현등사懸燈寺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리에 있는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 소속 사찰.
현등사는 540년(법흥왕27) 인도승 마라가미가 경기도 가평군 조종면 운악산에 창건한 사찰로
여러 차례 폐사와 중건을 거쳐
2020년 4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의 말사로 이어진다.
►건립 경위 및 변천
현등사懸燈寺는 2020년 4월 현재 대한불교 조계종 제25교구 본사 봉선사(奉先寺)의 말사이다.
<운악산현등사사적雲嶽山懸燈寺事蹟에 따르면 540년(법흥왕27) 인도승 마라가미摩羅訶彌가
불법을 전하기 위해 신라에 왔다가 왕이 절을 창건해주고 산 이름을 ‘운악산’이라 일컬었다고 한다.
당시 사찰의 이름은 전해지지 않으나 이후 898년(효공왕2) 도선道詵이
고려의 도읍을 개경開京으로 정하고
송악산松嶽山 아래 기가 허한 세 군데에 사찰을 창건하였는데
동쪽 땅의 기를 보충하고자 운악산 옛 절터인 현등사 자리에 중창하였다.
1210년(희종6)에 보조국사普照國師가 망일산望日山 원통암圓通菴에서 운악산을 바라보니
불빛이 있어 찾아가니 절터에 관음당이 있었고
그 앞 석등에서 불이 꺼지지 않아 현등사를 중창하게 되었다.
1411년(태종11)에 이르면 함허조사涵虛祖師가 왕실을 위한 원당願堂으로 중창하였고
1763년(영조39) 큰 화재 이후 1811년(순조11)에 취윤就允과 원빈圓彬에 의해 중건되었다.
1811년(순조11) 승당僧堂과 관음전이 소실되고
이듬해 구암龜巖과 취윤과 원빈이 다시 요사채와 극락보전 등을 세웠다.
1891년(고종28) 상궁 하씨가 중수하였고
1893년(고종30) 현등사에서 말년에 머물던 호운浩雲과 우화雨華가 석축을 보수하였다.
1916년 금명錦明이 중수하였으나 6·25전쟁으로 전각 대부분이 소실되었다.
1961년에 이르러 성암省庵이 중수하였고
1984년 극락전을 중수하였다.
1987년 대규모 불사로 보광전·지장전·삼성각 등을 지어 현재의 사세에 이른다.
►현황
'20년 4월 현재 현등사 가람은 一柱門과 不二門을 지나 계단을 오르면 極樂寶을 중심으로 형성된다.
극락보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일주문과 정면으로 마주하고
그 뒤에 정면 5칸, 측면 3칸인 보광전普光殿과 지장전, 삼성각 등이 있다.
가장 높은 곳에는 산신각이 마련되었으며 전각 외에도 삼층석탑과 지진탑地鎭塔
그리고 함허조사의 구형 부도탑이 경내에 있다.
1893년(고종30) 호운과 우화가 보수하였다는 석축은 절 입구와 지진탑 근처에서 볼 수 있다.
►관련 문화재
현등사는 13건 14점의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보물 제1793호 가평 현등사동종加平懸燈寺銅鍾,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63호 현등사삼층석탑懸燈寺三層石塔,
제183호 현등사 목조아미타좌상懸燈寺木造阿彌陀坐像,
제184호 현등사 청동지장보살좌상懸燈寺靑銅地藏菩薩坐像,
제185호 현등사 아미타회상도懸燈寺阿彌陀會上圖,
제193호 현등사 신중도懸燈寺神重圖,
제198호 현등사수월관음도懸燈寺水月觀音圖,
제199호 현등사懸燈寺 함허당득통탑涵虛堂得通塔 및 석등石燈 등이 이에 해당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동포천재금여원형제유현등사同抱川宰金汝源兄弟遊懸燈寺
막막추공활漠漠秋空濶 맑고 투명한 넓은 가을 하늘에
비공향석릉飛筇響石稜 대나무 지팡이 나는 소리 돌 모서리에 메아리치고
산심응유사山深應有寺 산 깊은 곳에 응하는 절 있네
수로정여승樹老靜如僧 늙은 나무의 고요함은 마치 승려와 같고
상엽종전락霜葉鍾前落 서리 맞아 단풍든 잎은 종鐘 앞에 떨어지네]
한금범외흥寒禽梵外興 겨울새는 절 밖에서 기뻐하고
한간수불영閒看繡佛影 한가로이 물위에 수놓아진 부처 그림자 바라보고 있자니
세조련화등細照蓮花燈 그 위로 연꽃 등잔불이 가늘게 비추네
►개설
조선 후기의 문신인 이계耳溪 홍양호洪良浩(1724-1802)가 1745년부터 1747년까지
당시 포천 현감으로 재직하였던 여원汝原 김효대金孝大(1721-1781) 형제와 함께
운악산雲岳山 현등사懸燈寺를 유람하며 느낀 정취를 담은 한시이다.
►구성
홍양호의 문집 <이계집耳溪集> 권卷 3의 <초년습유初年拾遺>에 실려 있다.
<초년습유>는 1760년 37세로 경주부윤慶州府尹으로 있을 때까지의 시를 모은 것으로
<전가사시사田家四詩詞><유민원流民怨> 등을 비롯하여
호남 경시관京試官과 제주 독운어사督運御史로 나갔을 때 지은 시들이 수록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홍양호는 민족 정서를 다양한 필치로 연출하여 조선 후기 한시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인물이다.
홍양호가 이룩한 시적 성취는 18세기 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동포천재김여원 형제유현등사>는 이러한 홍양호의 청년 시절 작품으로
포천의 명소인 현등사의 정취를 아름답게 표현해 낸 작품이다./디지털포천문화대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