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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 탈북 힘들어…통화 한번 하려면 산속에 5시간 숨어 들어가
2012.06.16
중국 공안당국이 탈북자 단속을 강화한 가운데 북한도 최근들어 국경봉쇄 고삐를 바짝 죄고 있어 탈북하기가 힘든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전문매체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북중 국경지역 단속이 강화돼 두만강을 넘는 탈북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라고 14일 보도했다.
함경북도 회령시 주민은 "지금처럼 살벌한 때 중국에 건너가면 도로 잡혀 북한에 돌려 보내진다"며 "탈북하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털어놨다.
3년 전 북한을 떠나온 김 모(38)씨는 "요즘 탈북방조를 하는 사람이 없다"며 "(중국? 북한?) 국경수비대에서는 도강작업을 돕는 브로커들과의 밀착 관계를 차단하고자 한 달마다 근무지를 바꾸고 있다"고 설명했다. 현지 브로커들이 경비대의 얼굴을 익힐 만 하면 다른데로 옮겨지기 때문에 탈북이 더욱 힘들어지고 있다고.
그는 "요즘 같은 봄철이 되면 배고픔을 덜기 위해 중국 농촌을 가고자 하는 북한 주민들이 꽤 많지만 감히 국경을 넘을 엄두를 못낸다"고 덧붙였다. 북한 보위부가 국경일대에서 휴대폰 전화(손전화) 단속도 강화해 주민들은 외부와 통화도 어려운 처지다.
김 씨는 "전화를 한 번 하기 위해서 무려 5시간이나 산속으로 이동해서야 겨우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경일대 산에는 가뭄과 식량난, 자원난이 겹치면서 몸을 숨길만한 나무가 한 그루도 없는 상황. 전화를 한 번 하기 위해서는 5시간이나 산속으로 들어가야 몰래 통화가 가능해 `전투`와 다를 바 없다고 김 씨는 설명했다.
최근 보위부의 단속 강화에도 불구하고 제대를 앞둔 북한 군인들이 탈북자 도강 방조에 도움을 주긴 하지만 지난 4월에 비해 30% 이상 가격이 올랐다고 김 씨는 증언했다
http://news.mk.co.kr/v3/view.php?sc=30000001&cm=%ED%97%A4%EB%93%9C%
EB%9D%BC%EC%9D%B8&year=2012&no=365646&relatedcode=&sID=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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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록강보다 두만강이 탈북 장소로 적합하다 (11)
by 주성하기자 2011/11/03
북한에서 인구밀도별 탈북자가 가장 많은 지역인 두만강가의 함북 무산 전경
또 현재 한국에 와 있는 탈북자들의 70~80%가 국경일대 주민이라 보니 국경 일대에는 가족 중에 한국에 온 사람이 없는 가정이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안쪽에 있는 사람들, 특히 황해도 쪽에 사는 분들은 어떻게 탈북하는지 모릅니다. 국경쪽에 사는 사람들은 중국에 나와서 어떻게 잡히지 않겠는가 이것만 신경 쓰면 되지만 안쪽에 있는 분들은 국경에 가서 어떻게 발을 붙이겠는가 하는 과제가 하나 더 있다고 봐야 합니다.
불쑥 국경에 나와서 탈북하려고 하면 위험 확률이 커집니다. 안쪽에 사시는 분들은 탈북하려면 우선 국경 쪽에 속 터놓고 지내는 가까운 사람을 만들어놓으십시오.
친척이 있다면 더 좋고요. 적극 활용하세요. 가까운 친구나 친척이 있으면 국경 쪽에 있으면 나중에 장사한다고 여행증 떼서 올 수 있고 와서 머무를 곳이 있게 됩니다.
국경 쪽에 거처가 마련되면 중국으로 탈북할 가능성에 대해 타진하십시오. 한국으로 가려 한다는 말은 절대 꺼내지 말고 중국에 친척이 있는데, 도움을 받아야 겠다 또는 먹고 살기 어려워 중국 가서 돈 좀 벌어오고 싶다는 식으로 둘러대는 것이 좋습니다.
탈북할 자금을 좀 마련했다면 돈을 쓰면 안전성이 훨씬 높아집니다. 북쪽에서 뇌물이 안 통하는 곳이 어디 있습니까. 물론 이건 제가 말씀 안 드려도 잘 아실 겁니다. 요새는 북에도 중국 화폐가 많이 퍼져 있기 때문에 도강 이후를 생각해 중국 화폐도 준비하면 더 좋고요.
넘어올 때 국경경비대에 찔러주는 뇌물 액수는 경비대하고 얼마나 잘 아는가에 따라 천양지차입니다. 잘 아는 사이면 50딸라면 되는데 잘 모르는 사이면 500딸라를 부르기도 합니다.
경비대원 중에는 돈까지 받아먹고는 정작 강을 넘어올 때 다른 분대원을 보내 체포하게 하는 나쁜 놈들도 간혹 있으니 경비대원에게 중국에서 돌아오면 크게 덕을 본다는 기대를 많이 심어주십시오.
현재는 탈북이 겨울에 가장 많이 이뤄집니다. 압록강이나 두만강이 보통 12월말부터 3월 중순 경까지 얼어 있는데 이때 가장 많이 넘어옵니다. 얼음 위에는 그냥 뛰어오면 되니깐 말입니다.
하지만 겨울은 중국에 선이 있는 사람들에 알맞습니다. 어느 집에 들어가 몸 녹이고 목적지로 가면 되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아무 연고 없이 넘어오는 사람들은 개인적으로 봄 특히 5월부터 6월 사이와 9~10월 가을에 제일 좋다고 생각합니다.
4월쯤에는 녹았던 얼음이 둥둥 떠내려 오고 강물 수위도 높지만 5월쯤부터는 강물이 그리 깊지 않습니다. 봄가을에는 얼어 죽지 않아도 되고 또 몸을 은신하기도 쉽습니다.
압록강쪽은 탈북 장소로 적합지 않습니다. 대다수가 함경북도 무산, 회령, 온성 이쪽으로 넘어옵니다. 왜냐면 강을 넘어와서 보면 압록강 맞은편에는 한족들이 살기 때문에 말이 안 통합니다. 말이 안통하면 한족들이 신고해서 잡힐 확률이 높습니다.
실제 지난 10여년간 탈북의 역사를 봐도 압록강을 건너 온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이쪽으로 넘어오시려면 미리 ‘어디로 가려 한다’ ‘도와달라’ 이런 정도의 중국어 몇 마디는 배워둘 필요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만강 맞은편 연변은 조선족 자치구이고 특히 두만강 맞은 편 집들은 거의 다 조선족 집들입니다. 조선족들은 한 동포이기 때문에 한족에 비해선 그래도 탈북자들을 도와주려고 하는 편입니다. 말이 통하는 것은 아주 중요한 장점입니다. 뭐 하려고 해도 설명이 통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최근 몇 년 동안 중국은 두만강 변에 철조망을 세우고 있습니다. 그런데 철조망을 세우면 넘어오지 못합니까. 다 넘어옵니다.
일단 강을 건너오면 많은 사람들이 강변의 조선족 집에 들어가 도와달라는 일이 많습니다. 저는 그렇게 하지 말라고 권고하고 싶네요.
두만강 옆에 있는 집들은 벌써 20년 가까이 탈북자들을 치러봤기 때문에 초기에는 불쌍해서 도와도 주고 했지만 이젠 탈북자란 말만 들어도 싫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개중에는 여성을 내륙 안쪽 한족들에게 파는 집도 적지 않습니다.
처음 중국에 오고 연고가 사람이라면 강 옆에 있는 집에 들어가지 말고 될수록 산을 타고 안쪽으로 들어오십시오. 새벽에는 도로를 타고 걸어도 됩니다. 멀리 자동차 불빛이 보이면 재빨리 길옆에 몸을 숨기면 됩니다. 산을 타고 2~3일 들어와서 도움을 청하면 그래도 강옆보다는 안전합니다.
제가 5,6월이나 가을에 탈북하라고 말씀드린 이유는 이때 강물도 줄어들어 넘기 쉽다는 이유도 있지만 중국에 와서 일자리를 구하기 쉽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가을철에는 중국에서도 일손이 크게 필요하기 때문에 탈북자들을 눅게 부려먹겠다 이런 타산하는 집들이 있습니다.
문제는 이제부터입니다. 그런데 벌써 제 앞에 차례진 시간이 다 지났군요. 다음 시간에 중국에 들어와서, 또 농촌에서 일자리를 찾으면 어떻게 할 것이냐 이 부분에 대해 말씀드리려 합니다. 관심 있으신 분들 다음 시간 놓치지 말고 꼭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지금까지 서울에서 주성하였습니다.
http://blog.donga.com/nambukstory/archives/165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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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창희 기자의 북중변경 나루와 다리 <2> 두만강 발원지
'노젓는 뱃사공'은 오간데 없고 빈 낚시터만 국경 지켜
2007-10-11 19:44
백두산 밀림 속 두만강 최상류에 위치한 조어대(釣魚臺·일명 김일성 낚시터) 전경.
중국과 북한의 국경수비대가 3m 정도 떨어진 채 마주보며 총을 메고 경계를 서는 곳이다
북·중 국경 표지인 18호 국계비 인근의 두만강 발원샘.
본지 박창희 기자가 발원샘의 도랑에 양다리를 걸치고 서 있다.
중국과 북한 땅에 한발씩을 디딘 셈이다
http://www.pusannews.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700&key=20071012.2203118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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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아)
2006.11.01 통권 566 호 (p194 ~ 199)
[현장르포]
북중 국경지대에서 만난 북한 마약상
“돈 되는 물건은 마약뿐, 구매자는 한국인…국가도 하는데 나라고 왜 못하나”
김형덕 남북문제 평론가
9월24일 검찰은 중국 단둥(丹東)에서 인천항을 통해 히로뽕 1.8㎏을 밀반입해 유통시키려 한 혐의로 유모(46)씨 등 탈북자 4명을 구속 기소하고 히로뽕을 모두 압수했다고 밝혔다. 현지 마약총책인 박모씨는 북한 신의주에 거주하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게 검찰의 발표. 북한산 마약이 심각한 국제 문제가 된 것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1994년 탈북해 국회의원 정책보좌관을 지낸 김형덕씨가 지난 9월 북중 국경지대에서 만난 한 마약상의 사례를 통해 북한산 마약의 실태와 유통경로를 들여다본다.
팡촨의 중국측 전망대에서 바라본 러시아와 북한은 고요하다 못해 적막했다. 바로 그 지점에서 훈춘, 투먼(圖們), 허룽(和龍), 룽징(龍井)을 거치는 두만강 상류로 향하는 여정이 시작됐다.
길에서 만난 국경지역 주민들은 한결같이 최근 2~3년 새 북한 주민의 불법월경이나 탈북이 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었다고 말했다. 1995년 대기근 이전 수준이라는 것이었다. 실제로 필자의 눈에도 탈북자는 현저히 줄어든 것이 역력해 보였다. 2004년 이전만 해도 북중 국경지대 (중국의) 농촌지역에서 암암리에 수소문을 하면 탈북주민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었지만, 이번에는 힘들었다.
반면 북한 주민이 당국의 공식허가를 받고 중국을 방문하는 경우는 늘어난 듯했다. 최근 북한의 친척을 방문하고 돌아온 조선족들은 북한의 실정에 대해 한마디로 “많이 개방됐다”고 말했다. 시장이 활성화해 장사문화가 발달하면서, 중국에 친척이 있음을 입증하는 편지나 서류를 구비하고 약간의 돈을 내면 중국방문을 허가받을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친척이 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요식 절차일 뿐, 관건은 뇌물을 어느 정도 바치는가와 가족 중에 남한으로 넘어간 탈북자가 있는지 여부라고 했다.
압록강을 사이에 두고 혜산과 마주한 창바이현은 북중 국경지대의 그 어느 도시보다도 북한을 가까이에서 볼 수 있다. 빨래하러 나온 북한 주민과 직접 대화가 가능할 정도.
강변을 지켜보던 필자의 카메라에 재미있는 광경이 포착됐다. 3인조로 근무 중이던 북한 병사 중 한 명이 갑자기 무기를 동료에게 맡기고 옷을 벗은 채 중국측으로 건너와 조선족 주민이 건네는 아이스크림을 받아가는 게 아닌가. 옆에 있던 한 조선족 사내는 “아이스크림을 건네는 조선족은 밀수꾼이고, 물건을 통과시켜주는 북측 군인들이 원하는 것을 사다가 전해주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낮에 근무 중인 병사가 국경을 넘어와 물건을 받아갈 정도라면 야간에 밀수품을 넘겨주는 일은 전혀 어렵지 않을 터였다.
강 옆의 집 앞에는 트랙터 타이어와 널빤지, 밧줄을 얼기설기 엮어 만든 보트가 세워져 있었다. 밤에 사람이나 물건을 북한쪽에서 가져오거나 내보낼 때 사용한다고 했다. 그 현장을 내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저녁식사를 마치고 어둠이 깃들자 다시 압록강으로 나갔다. 강기슭에서 남녀로 보이는 두 사람이 북쪽과 휴대전화로 통화하고 있었다. 강 건너 밀수품을 보낼 북측 초소지점과 시간 등을 상의하는 내용이었다. 그 가운데 한 남자가 나에게 다가왔다.
내가 무얼 하고 있느냐고 묻자 그는 “밀수품을 가져오고 있다”고 태연스럽게 답했다. 그러면서 내게 “한국인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자 자신은 북쪽 사람이라며 접근했다. 그렇지만 콧수염을 길게 기르고 중국인들이 선호하는 검은색 점퍼와 앞이 긴 끈 없는 검은색 구두를 신은 모습이 영락없는 중국인이었다. 내가 다시 “진짜 북한인이냐?”고 묻자, 그는 가로등 밑으로 나를 이끌고 가서 자신의 신분증을 보여줬다. 분명 북한 사람이었다.
그는 자신이 중국 체류기한을 넘겨 불법체류 중이라고 했다. 또한 북한사람처럼 보이면 중국인은 물론 조선족마저 무시하기 때문에 중국인처럼 보이는 게 좋다고 했다. 무엇을 밀수하는지 묻자 “돈이 된다면 무엇이든 다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면서 “뭐 요구되는(필요한) 것 있냐”고 물었다. 필자는 MP3 플레이어의 녹음단추를 조용히 눌렀다.
“빌린 돈 갚으려면 ‘약장사’ 불가피”
필자가 관심을 보이자 그는 “지금은 작업(밀수) 중이니 끝내고 나서 자세히 말해주겠다”고 했다. 일이 끝나는 대로 내 숙소로 오겠다는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난 후 약속한 시간에 정확히 그는 호텔에 나타났다.
그의 공식적인 중국여행 목적은 옌볜의 모 도시에 거주하는 삼촌과 친척 방문. 그게 벌써 1년 전이었다는 것. 물론 실제 목적은 돈벌이였다. 약간의 물건을 강을 통해 밀수했지만 장사는 뜻대로 되지 않아 체류기한을 훨씬 넘긴 지금까지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주요 장사품목은 유화나 고전화(古傳畵), 도자기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물건을 사는 고객은 대부분 한국인이지만 조선족 브로커가 중개하기 때문에 직접 만날 기회는 많지 않다고 했다. 북한 밀무역상이라면 누구나 남한 사람들과 직접 거래하기를 원하지만 그게 좀처럼 쉽지 않다는 이야기였다. 내가 “오늘 건너온 물건은 뭐냐”고 단도직입적으로 묻자 내 신분을 확실히 알기 전에는 말할 수 없다고 했다. 여권을 보여주고 북한 출신임을 알려주자 그제야 그도 마음을 열었다. 그가 내보인 통행증은 그가 북한 정부기관 직원(우리로 치면 공무원)임을 보여줬다.
그는 가져온 물건이 ‘약’이라고 했다. 확인해보니 그가 말한 약이란 고체 형태의 메스암페타민이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히로뽕. 처음에는 산삼이나 보약인 줄 알았던 필자는 마약이란 사실을 알고 적잖게 놀랐다. 그가 왜 이런 위험한 물건에 손을 대게 됐는지 궁금해졌다.
“처음엔 장사를 해볼 요량으로 넘어왔지만, 어디 뜻대로 되나? 중국으로 오면서 빌린 돈의 이자는 눈덩이처럼 불어나지, 이럴 수도 저럴 수도 없고 보면 돈 되는 물건을 찾게 되는데, 북한에서 쉽게 구할 수 있고 갖고 나오면 목돈이 될 만한 품목 중 으뜸이 약이야.”
이번에 그가 가져온 것은 히로뽕으로 제조하는 중간단계의 약물로, 품질이 고급으로 나오면 중국 돈으로 5만위안(한화 600만원), 품질이 낮은 것으로 판정되면 3만위안(한화 360만원)을 받기로 돼 있다고 했다. 거래장소는 옌지. 구매자는 한국인이지만 중간에 조선족 브로커가 있단다. 브로커를 제치고 단독으로(직접) 거래하고 싶지만, 그건 목숨을 건 도박이라고 했다. 이번 일이 워낙 위험한 일이라 친구에게 며칠에 한 번씩 자신에게 전화하라고 했단다. 만일 갑자기 전화를 안 받고 연락이 두절되면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알려달라고 당부했다는 것이다.
그는 돈을 벌려면 마약밀수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잘라 말했다. 이런 일을 하는 사람이 자신뿐인 것도 아니고, 중국을 드나들며 장사하는 북한 사람들에게 목돈을 만들 수 있는 품목은 마약뿐이라는 건 상식에 가깝다고도 했다. 지금까지 진 빚 8만위안(한화 960만원)만 갚을 수 있다면 약을 버리고 싶다고도 했다.
그는 화제를 돌렸다. 북한의 배급사정은 부정기적으로나마 이어지고 있지만, 여전히 식량의 절대량이 부족하다고 했다. 엄청난 탄압에도 불구하고 중국에 왔다간 사람들을 중심으로 기독교에 귀의한 사람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한 시간 반 남짓의 대화를 마치고 나는 그와 어깨동무를 한 채 사진을 찍었다. 그러고는 이튿날 만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물건은 쉽게 구한다”
이튿날 창바이현 시외버스 터미널에서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는 작은 검은색 가방과 포장용 테이프로 여러 차례 휘감은 누런색 포장박스를 들고 있었다. 예의 그 ‘물건’이었다.
그는 옌지까지 차를 렌트해 갈 생각이었다. 안전을 위해서라면 1500위안 정도의 렌트 비용은 감수할 수 있다는 자세였다. 나는 대중교통이 승용차보다 오히려 더 안전할 수 있다며 버스로 기차역까지 가자고 제안했다. 기차역까지 130km, 거기서 옌지까지는 다시 기차를 타고 300~400km를 더 가야 한다.
그에게 “북에도 마약 복용자나 중독자가 있느냐”고 묻자 그는 “아직은 드물다”고 했다. 다만 몇몇 ‘놀새’(남한의 오렌지족에 해당)가 복용하는 것으로 들었다고 했다. “약을 누가 제조하느냐”고 묻자 정부기관 차원에서 해외에 밀수하는 약은 각 지방 제약회사에서 만들고, 개인 차원의 밀매품은 제약회사에서 기술을 배운 개인이 제조한다고 했다.
정부기관은 주로 공해상에서 일본쪽 조직들과 거래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예전에 마약을 제조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던 함경남도 나진의 한 제약공장은 국제적인 문제가 되어 폐쇄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 공장 출신들이 개인적으로 기계를 설치해 다시 약을 제조하고 있다는 것. ‘정부도 하는데 왜 개인은 안 되나’ 하는 것이 약장수(마약밀매업자)들 생각이라고 그는 말했다. 혜산에만 가도 마약을 구입하기가 그다지 어렵지 않고, 다만 중국측에서 구매자를 찾는 것이 어렵다고 했다. 이번에 자신이 찾은 거래자도 6개월 이상 수소문한 끝에 비로소 만났다고 했다.
버스 안에서도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가정 이야기며 직업과 군경력까지 구구절절한 사연을 들었다. “이제라도 다른 길을 찾아볼 생각은 없냐”고 묻자 그는 그럼 자신이 한국으로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했다. 엄청난 빚 때문에 어차피 북한으로 돌아갈 수는 없게 됐고 중국에서는 달리 할 일도 없으니, 차라리 한국에 가서 새 삶을 찾아보겠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에게 한국에서의 삶도 그리 쉽지 않을 것이라고, 특히 그러자면 어떤 일이 있어도 마약 장사만은 그만두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마약범죄에 대해 단호하기는 미국, 일본뿐 아니라 중국이나 한국도 마찬가지며 특히 중국 정부는 마약사범에 대해 총살을 원칙으로 할 만큼 강경하고, 한국 정부도 마약범죄 전과가 있는 탈북자라면 망명을 허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설명도 해주었다. ‘총살’이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오자 그의 다리가 부들부들 떨리는 것이 보였다. 그는 분명 이런 일을 처음 하는 사람이었다.
한국에 드리운 북한산 마약의 그림자
어느새 버스는 쑹장허(宋江河) 기차역에 도착했다. 기차표를 산 다음 그에게 다시 한번 마약장사를 그만두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내겐 그에게 새로운 선택을 제공할 힘이 없었다. 안타까웠다. 최종 구매자라는 한국인을 만나보고 싶었지만, 위험할 것 같아 그와의 동행을 이쯤에서 끝내기로 마음먹었다. 때마침 도착한 기차를 타면서 그와 작별했다.
그와의 만남을 뒤로하고 퉁화(通化)를 거쳐 지린성 지안시 소재 광개토왕릉을 관광하는 것을 끝으로 귀국길에 올랐다. 원래는 압록강 하류인 단둥까지 돌아보고자 했지만 문득 빨리 서울로 돌아가고 싶었다. 북한에 흘러들기 시작한 자본주의의 물결, 먹고 살 것을 찾아 국경을 넘은 사람들이 마약장사에까지 손대게 된 현실을 전하고 싶었다. 북한산 마약이 국경을 넘고 중국 전역을 흘러다니는 현실에서, 한국 역시 안전지대일 수 없음을 한시라도 빨리 전하고 싶어서였다.
http://shindonga.donga.com/docs/magazine/shin/2006/11/07/200611070500017/200611070500017_1.html
2012년
두만강을 넘는 탈북자가 거의 없는 상황
탈북자들의 70~80%가 국경일대 주민
2006년
최근 2~3년 새 북한 주민의 불법월경이나 탈북이 보기 어려울 정도로 줄었다
위 찌라시 기사 내용들의 어디까지가 진실이고 어느 부분이 거짓인지를
알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하여튼, 요즘 탈북자수가 격감하고 있는 모양입니다.
물론, 그 이유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지요.
북중의 단속에도 있겠고.....북한경제 사정의 호전에도 있겠지요.
장사한다고 여행증 떼서 올 수 있고
북한이라는 나라는 참 도깨비 같은 나라라는 생각이 듭니다.
남한 반공교육에 의하면, 북한은 철저한 통제사회라서 자유롭게
여행은 커녕 이전의 자유가 없다고 하더니만.....
여행증을 간단히 끊어 타국인 중국으로 여행을 할 수도 있는 모양입니다.
그리고....
장사하겠다고 남의 나라를 간다는 말은.....
북한 내에서 정해진 일자리가 없는 백수이거나....또는
일자리가 당국에 의해 강제로 강요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인데...
반공교육에 의하면.....북한이라는 나라에서는
소위 말하는 "혈통"에 의해 직업도 강제로 배치되는 그런 사회가 아닌가요?
그런데 자기 멋대로 일자리가 없는데....장사를 하겠다고 중국에 가겠다니요?
뭔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합니다.
도대체 무엇이 진실일까요?
첫댓글 압록강 하구인 신의주와 단동사이 압록강, 중국사람들은 매일같이 아침에 몇십명씩 신의주쪽까지 수영하면서 왔다갔다 합니다. 압록강 상류쪽 혜산에는 발걷고 시냇물 건너듯이 건너면 얼마든지 왔다 갔다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국경에 우리나라처럼 철조망이 있는것도 아니고,무장한 군인이 철통같이 지키는 초소가 있는것도 아닙니다.
진짜 도저히 북한 사회가 힘들어서 탈출하려고 맘만 먹으면 중국쪽으로 나오는 것은 식은죽 먹기입니다.
저 찌라시 얘기는 중국정부가 외국인 통제를-특히 개독 통제- 강화하는 까닭에, 개독들의 기획탈북이 이제는 통하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것이겠지요
좋은 정보 감사합니다.
마약-나라도 하는데- 라고 말하는 마약상의 야그는 거의 날조 인듯 하다
미국의 말대로 북이 마약을 제조 하여 국제밀수출 한다고 가정 하드라도 --물론 완전한 모략이지만-
개인이 히로뽕의 원료를 조달하여 간단한 시설을 갖추고 히로뽕을 제조하여 밀매 한다는 건 한국에서는 가능하지만
북에서는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다,
찌라시 들이 북을 비난할때 만든 소설은 북의 사회 구조나 배경이 한국과 유사하다 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