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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10월 20일 성령강림절 후 스물두 번째 주일예배
성경: 엡4:25-5:2절(신315)
제목: 새사람의 새 생활 (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수년 전에 하버드 대학교에서 교육이 철저하게 실패하고 있다고 그 대학의 어떤 총장의 한탄을 읽어 본 적이 있습니다. 서울대가 우리나라를 망치는 주범이니, 서울대를 폐지하자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는 현대의 높은 교육이 사람들을 윤리적으로 만드는 데에 실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왜 이럴까요? 사람은 배운 진리를 행할 능력이 없으며, 그것을 행하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4:25-5:2)을 통해 그 방법을 알아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윤리의 명령들을 행할 수 있기를 원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윤리적 명령(율법)을 행하는 방법입니다.
오늘 본문은 주로 하나님의 윤리적인 명령(율법)들인 일곱 문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의 윤리적 명령은 세상이나 타 종교의 윤리적 명령들과 거의 비슷합니다.
그러나 그들 사이에 아주 중요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오늘 본문은 잘 보여 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이 ‘그런즉(그러므로)’로 시작하여 모든 명령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성령을 통하여 이미 하셨거나, 하시고 있거나, 앞으로 하실 ‘하나님의 일(구원)’에 대한 ‘직접법의 말씀’(1-3장, 4:1-24절)에 근거하게 하며, 또한 각 명령의 동기(이유)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특히 ‘그런즉(그러므로)’(25)와 각 명령의 동기(이유)들은 ‘그리스도를 배웠던 결과로 우리가 옛사람을 벗어버렸고 새사람을 입었다’(4:20-24)라는 믿는 우리에 대한 진리(증거)를 가리키며, 그것을 반복한 것입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에 따라 진리의 의와 거룩함으로 재창조된 새사람’(4:24)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새사람’은 하나님의 복음의 진리로 그의 형상대로 재창조되어, 만물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와 한 몸(교회), 약속의 성령을 받은 성전, 하나님의 아들, 마귀와 죄로부터 율법 언약적으로 해방된 의인과 거룩한 성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고(4:18), 성령도 없이 자신의 육체의 능력으로만 사는 옛사람(이방인)과 달리 새사람은 스스로 행하지 않고 하나님의 생명(능력)으로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고후3:4-5절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 같은 확신이 있으니,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느니라(무엇이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기에는 우리 자신으로부터 우리(능력)는 충분하지 않다. 오직 우리의 능력은 하나님으로부터이다).” 이것은 그리스도(복음)를 통하여 믿는 우리에게 충만한 능력을 주시는 하나님에 대한 바울(우리)의 확신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바울은 옛 언약의 윤리적인 율법과 새 언약의 윤리적 율법은 동일하지만, 각 언약의 윤리적 율법을 행하는 방법의 차이, 즉 자신의 능력으로 하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느냐의 차이를 설명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율법주의의 이단에 빠지게 되며, 믿는 우리에게 새사람의 의롭고 거룩한 생명(경건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게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 새사람의 새로운 삶입니다.
첫째의 문장입니다(25).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라)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라.”
여기의 명령들은 “그러므로 거짓을 버리고(라)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입니다. 여기서 ‘버리고(라)’는 단호한 결단을 의미하는 과거분사 명령이며, ‘말하라’는 계속을 의미하는 현재 명령형입니다.
‘거짓’은 옛사람의 첫째 특징이며, ‘참된 것(진리, 진실)’은 새사람의 첫째 특징입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버리는 최고의 방법은 진리를 말하는 것이기에 바울은 부정명령과 그것에 반대되는 긍정명령을 이렇게 함께(짝하여) 명령합니다.
이 명령들의 동기(이유)는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되기 때문이다”입니다. 주의 복음에 의하여 우리는 ‘주의 몸으로 서로 지체이기 때문’(4:1-16)에 다른 지체인 이웃에게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주님과 우리 자신을 속이는 어리석은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된 새사람으로서 거짓을 버리고 우리의 지체인 이웃에게 진리를 말하기 바랍니다.
둘째의 문장입니다(26-27). “분을 내어도(내라) 죄를 짓지 말며(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라)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여기서 ‘분을 내어라’의 명령은 ‘의로운 분노는 낼 수 있다’라는 문자적 의미, 분을 낼 수 있겠느냐의 의문사 명령으로 ‘분을 낼 수 없다’라는 의미, 그리고 ‘분을 낸다고 해도’라는 조건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분을 낼 수 없다는 의문사 명령으로 이해합니다. 약1:20절입니다. “사람이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라.” 그런데도 어떤 이유로 분이 일어났을 때 ‘죄를 짓지 말라’는 것이며, 특히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라’는 것입니다(26). 유대인에게 해가 지는 때가 하루의 끝이 아니라 시작이므로 ‘해가 지도록’은 ‘새날이 오도록’입니다.
이 명령들의 일반적 동기는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27)는 것입니다. 여기서 ‘틈’은 마귀가 거짓(속임수)으로 우리를 지배할 기회를 의미합니다.
우리 새사람은 주의 복음에 의해서 마귀의 율법적(합법적)인 지배로부터 영원히 해방(자유)되었습니다. 즉 주님의 구속으로 우리는 그의 영원한 소유(몸의 지체)가 되었습니다. 이것이 우리에 대한 복음의 진리(증거)인데, 거짓, 특히 분노의 죄를 계속 지으면, 우리와 율법 언약적으로 전혀 상관이 없는 마귀가 복음의 진리와 반대되는 거짓의 속임수로 우리를 지배할 틈을 갖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것을 막기 위하여 이 명령들을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셋째의 문장입니다(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라),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여기서
여기의 명령들은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라).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입니다. 여기서 ‘도둑질하는 자’는 직업적인 도둑이 아니라 모든 종류의 부당한 착복을 하는 자를 가리키며, ‘수고하여(코피아오)’는 육체가 피곤할 정도로 열심히 일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당시에 초대교회는 노예와 같은 가난한 자들이 신자가 되었기에 여전히 도둑질하는 성도들이 있었습니다(고전6:10). 그래서 바울은 이런 명령들을 한 것입니다.
이 명령들의 동기는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입니다. 여기서 ‘가난한 자’와 우리는 새사람으로서 모든 것을 공유하는 지체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사도신경에서 ‘성도의 교제’를 믿는다고 고백하는 의미입니다.
넷째의 문장입니다(29).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데로 선한 말을 하여(라)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여기의 명령들은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라), 선한 말을 하여(라)”입니다. 이것은 새사람이 된 성도의 언어생활에 대한 권면입니다.
여기서 ‘더러운 말’은 부패한 말, 또는 무익한 말로서 다른 지체에 해를 끼치고, 분쟁을 일으키는 말을 의미합니다. ‘선한 말’은 더러운 말의 반대로서 그리스도의 몸(교회)을 세우는 데 필요한(소용되는) 말을 의미합니다.
이 명령들의 동기는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되기 위하여)’ 그리고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하기 위하여)’ 입니다. 여기서 ‘덕을 세우는데’로 번역된 ‘오이코도멘’은 ‘오이코스(집)’과 ‘데모(세우다)’의 합성어로서 집을 세우다, 즉 하나님의 성전(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을 의미합니다(4:12, 16, 2:20-22).
그리고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하기 위하여)’는 우리의 선한 말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지체인 듣는 자들에게 흘러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서로에게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4:16)임을 알고 더러운 말을 버리고 덕을 세우는 말로 듣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은혜를 끼치게 하시기 바랍니다.
다섯째의 문장입니다(30).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여기의 명령은 ‘(그리고)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입니다.
여기서 우리말 성경은 생략하였지만, 접속사 ‘그리고(카이)’로 시작하여 이것은(30a) 앞에 있는 부정적 명령들, 즉 거짓, 분, 도적질, 그리고 더러운 말을 하지 말라는 명령들의 일반적 동기(이유) 역할을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죄악들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케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명령의 동기는 ‘그 안에서 너희가 구원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받았기 때문이다’입니다. 여기서 ‘그 안에서’는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을 의미한데, 이것은 ‘하나님 또는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이는 복음으로 주 하나님과 만물의 머리가 되신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내신 약속(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 안에 영원한 거처를 정하셨기 때문입니다(요14:23). 그리고 ‘구원의 날’은 주님의 재림으로 세상에 대한 최후의 심판을 통하여 우리 구원을 완성하는 ‘주의 날’을 가리킵니다.
여기서 ‘인치심’은 우리가 복음을 듣고 믿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는 것인데,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소유(아들, 기업)가 되었다는 의미이며,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구원의 날까지 그 소유됨을 보증하신다는 말입니다. 1:13-14절입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 하심이라.” 성도 여러분,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을 근심하게 하지 마시고 오히려 성령님을 더 기쁘게 하시기 바랍니다.
여섯째의 문장입니다(31-32).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버려지게 하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되게) 하라.” 여기서 ‘버리고(버려지게 하라)’는 부정과거 명령으로 단호한 결단을 강조하며,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하게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 되게 하라’는 형용사들과 분사로서 현재 명령인 ‘되게 하라’의 주동사를 수식하기에 현재 계속되게 하라는 명령의 의미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런데 ‘버려지게 하라’와 ‘너희는 되게 하라(기네스테)’가 신적 수동형 명령이기에 이것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성령을 통한 하나님의 행위가 우선이다는 것을 시사합니다. 즉 우리는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의 몸(교회)의 머리가 되신 주님이 성령의 능력을 통하여 이 명령들이 믿는 우리에게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이것이 새 언약의 축복입니다.
여기의 명령들은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버려지게 하라), 서로 친절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되게) 하라” 입니다.
모든 악독으로 노하며 분을 내고 고함치며 비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려지게 하라는 부정적 명령에 대한 긍정적 명령은 ‘서로 친절(인자)과 불쌍히 여김(긍휼), 그리고 서로 용서가 되게 하라’(32a)는 것입니다. 여기서 서로 친절(인자)과 불쌍히 여김(긍휼)은 하나 된 지체로서 아픔과 기쁨을 공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특히 우리말 성경에 ‘서로 용서가 되게 하라(카리조메노이)’는 원래 원문에는 ‘너희는 너희 자신들에게 은혜가 되게 하라(베풀어지게 하라)’ 입니다.
우리는 우리말 성경의 번역보다 원문을 더 따르고 싶습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친절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은혜(용서)가 베풀어지게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우리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도 조건 없는 은혜(용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명령들의 동기(이유)는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용서하셨기 때문이다)”(32b)입니다. 여기서 우리말 성경은 접속사 ‘카도스’를 ‘같이’로 번역하였지만 ‘왜냐하면 ... 때문이다’라고 원문대로 이해하고자 합니다. 이는 서로에게나 자신에게 우리의 은혜(용서)가 베풀어지는 것이 이것(32b)에 대한 증거(열매)이기 때문입니다(마18:21-32). 특히 마6:14-15절입니다.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이처럼 우리가 은혜(용서)를 베풀지 않으면 자기 손해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자로서 이 명령들을 믿음으로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일곱째의 결론적 요약으로 새 계명, 즉 사랑하라는 문장입니다(5:1-2).
먼저, 5:1절의 명령과 동기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을 받는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라).” 여기서 ‘그러므로’는 오늘 본문의 결론을 나타냅니다.
우리는 십자가 복음의 진리로 하나님을 따라 재창조된 새사람, 즉 그의 사랑을 받은 자녀(아들)들이기에 하나님의 사랑을 본받는 자가 되라는 명령입니다. 롬5: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이제, 5:2절의 명령과 동기입니다(5:2).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여기서 ‘향기로운 제물’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즉 그의 뜻(구속 언약)에 순종한 제물이며, ‘희생제물’은 창조(율법) 언약에 따라 우리를 대신하여 하나님의 최후 심판으로 드리는 제물이라는 의미입니다.
5:2절에서 명령은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이며, 그 동기는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셨고,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하나님께 드리셨던 것같이(이는 ... 때문이다)”라는 종속 접속사의 절입니다. 여기서 ‘사랑하셨다’와 ‘드리셨다’는 과거의 결정적인 그의 십자가를 가리키는 부정과거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아들)이신 그리스도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입니다. 여기서 ‘사랑 가운데서’는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이기에 우리가 그의 몸(교회)이라는 연합의 사실을 의미합니다(1:23, 4:16, 요15:1-10).
이 명령의 동기인 ‘이는 그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다’를 우리를 위한 그의 대속의 죽음에 대한 말씀, 즉 “이는 그가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향기로운 제물과 희생제물로 드리셨기 때문이다”를 다시 반복하여 “너희는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라는 명령을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형상으로 재창조된 그의 사랑 받은 자녀들이며, 그리스도가 십자가의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하나님 아버지를 본받는 자녀들이 되시며 사랑 안에서 행하시기 바랍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의 윤리적 명령들을 행하지 않는 것은 육체(옛사람)의 일이며(갈5:19), 그들을 행하는 것은 오직 성령의 열매(갈5:22)이며,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성화의 구원입니다(4:15, 롬8:29). 이 명령들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율법’이면서 동시에 ‘복음의 새 언약’, 즉 주님이 성령의 능력으로 그의 몸인 우리를 통해서 하실 ‘하나님의 일(성화와 영화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것들을 스스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머리이신 주님이 그의 몸의 지체인 우리를 통하여 성령의 능력으로 행하시는 것입니다(4:16, 갈2:20).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는 그의 방법입니다. 요14:13절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내게 구하면 내가 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라.”
성도 여러분, 영원히 산 자이신 주님은 천지가 흔들려도 아버지께 영광을 드리시기 위하여 그의 몸의 지체인 우리에게 새 언약대로 하실 것입니다. 자기 몸(우리)을 돌보지 않는 머리는 죽은 자이기 때문입니다. 새사람으로서 우리 주님을 믿어 순종하사 진리(율법)의 의와 거룩함의 열매를 풍성하게 나타나게 하시기 바랍니다.
찬송 436장을 부르신 후에 다같이 기도하며 축도로 예배를 마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