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_박청환
전등사 범종
강화도 전등사에
범종 하나 있습니다
중국에서 태어나
일본군 병기창에 놓였다가
광복 후 옮겨진
3개 국어로 소리 낸다는 그 종
한 평 남짓 나무 감옥에 갇혀
세월의 먼지 뒤집어 쓴 채
끄억, 끄억,
속울음 토해내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습니다
경기도 광주 나눔의 집에
여인 하나 있습니다
열일곱 꽃다운 나이 빨래하다 붙들려가
대만, 싱가폴, 베트남 떠돌다
광복 후 돌아온
무려 4개 국어로 운다는 그녀
열 평 남짓 세상 감옥에 갇혀
꺼억, 꺼억,
속울음 토해내지만
아무도 들어주는 이 없습니다
석현아, 원모야!
석현아, 원모야!
내가 철도 들어왔을 때 너희는 겨우 여섯 살 다섯 살 이었더구나
그 긴 세월 동안 우리 일터는, 아니 세상은 어찌 그리 요지부동인지
이 땅에 이름 불러 주어야 할 죽음이 너무 많구나
선배가 물려줄 일터, 어른이 물려줄 세상이 이래선 안 되는 것인데
비용절감과 인력감축이라는 저들의 장부에
캄캄한 새벽 두 시 25,000볼트 고압선 아래 노동자 안전은 없었구나
열차 감시원 한 명 아끼는 것이 너희 목숨값보다 중하더냐
말없이 동료들 챙기며 누구보다 따뜻했던 석현아!
현장에서 흘리는 땀방울이 좋다며 기술원 책상 스스로 박차고 나온 원모야!
일을 사랑하고 노동을 귀히 여기던 청춘들아!
한창 푸르른 너희에게 저 검은 리무진이 웬말이냐!
석현아, 원모야!
구로역 9번선에 또 일하러 간다
너희가 일하던, 너희가 웃던, 너희를 앗아간 구로역 9번선에
불안의 배낭 속 슬픔을 구겨 넣고 공구를 챙겨 들고
끊어진 희망을 이으러
캄캄한 그곳으로 간다
다시는 또 다른 정석현 또 다른 윤원모를 만들지 않겠다는 결의를 품고
피를 토하며 간다
아들아, 오빠야, 동생아, 형님아, 후배야, 선배야, 친구야, 동료야, 그리고 숭고한 노동의 동지야
'죽지 않고 일하고 싶다'는 구호가 필요치 않는 그곳에서
부디
편히 잠드시라
웃음
당신, 오늘
웃었다지요
며느리한테 똥 기저귀 내밀며
나 이제 어떡하냐면서
울지 않고
웃었다지요
활짝 따라 웃은 며느리
돌아서서
울었다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