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작(扁鵲)은 발해군(渤海郡) 정현(鄭縣) 출신으로 성은 진(秦)씨이며 이름은 월인(越人)이다.
젊은 시절 남의 집 빈객을 모시는 사장(舍長)으로 일하던 월인은
장산군(長桑君)이라는 노인에게 의술(醫術)의 비방(秘方)을 얻어 천하의 명의가 되었다.
그 뒤부터 월인은 의원(醫員)이 되어 여러 나라로 다니며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쳐주었다.
그의 진맥은 신기(神技)에 가까웠으며, 그의 손길이 닿은 환자는 숨이 다 끊어졌다가도 다시 살아났다.
월인에게 ‘편작’ 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조나라에 갔을 때부터였는데,
원래 편작은 옛날 황제(黃帝)시대 때의 명의로 알려졌던 의원의 이름이었다.
편작이 괵나라에 갔을 때 태자가 방금 죽었다고 하였다.
그는 그 나라에서 의술을 좀 안다고 하는 중서자(中庶子)를 만나 태자가 어떻게 죽었는지 자세히 물었다.
자신이 직접 태자의 죽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중서자는 편작에게 물어봐도 소용없는 일이라며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러나 편작은 고집을 세워 태자의 시신을 보고자 하였다. 두 사람은 종일토록 싸웠다.
드디어 해가 떨어질 무렵, 편작은 하늘을 보며 탄식하였다.
“그대가 알고 있는 의술이란 대나무 구멍으로 하늘을 엿보는 것과 같으며, 작은 틈새로 무늬를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나는 맥을 짚어보거나 얼굴빛을 살피거나 소리를 듣고 형체를 비춰보는 일을 하지 않고도 능히 병을 알아낼 수가 있습니다.
나는 진찰하지 않고 먼 곳에서 전해 듣는 말만으로도 진단할 수가 있습니다.
내 말이 믿기지 않는다면 그대는 어서 태자에게 가서 다시 진찰을 해보도록 하십시오.
틀림없이 태자의 귀에서는 소리가 날 것이고, 코는 벌름거릴 것입니다.
또한 두 다리를 어루만져 사타구니 사이를 더듬어 보면 아직도 따뜻한 온기가 있을 것입니다.”
중서자는 편작의 말을 한 번 믿어보기로 하였다.
편작은 곧 태자가 누워있는 곳으로 안내되었다.
“태자는 피가 거꾸로 치솟아 죽은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태자는 아직 죽지 않았습니다.”
편작은 곧 제자 자양(子陽)을 시켜 침을 숫돌에 갈게 하였다. 그리고 손수 침을 놓자, 잠시 후 태자는 눈을 떴다.
편작은 다시 제자 자표(子豹)를 시켜 고약과 약제를 만들어 태자의 겨드랑이 밑에 번갈아 붙이게 하였다.
그러자 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앉게 되었다.
다시 음양을 조절하여 탕약을 복용시키자 20일쯤 후에는 태자의 건강이 예전처럼 거뜬히 회복되었다.
이렇게 되자 세상 사람들은 ‘편작이야말로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명의’라고 칭송이 자자하였다.
그러자 편작이 담담하게 말하였다.
“죽은 사람은 살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다만 살 수 있는 사람을 일어나게 했을 뿐입니다.”
편작은 다시 제(齊)나라로 떠났다. 제나라 환후(桓侯)가 그를 빈객으로 맞아 들였다.
그런데 편작이 보니 환후는 병을 앓고 있었다.
“피부에 질환이 있습니다. 당장 치료하지 않으면 병이 깊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환후는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고 있었다.
“무어요? 과인처럼 건강한 체질도 없을 것이오. 과인에겐 병이 없습니다.”
“건강을 과신해선 안 됩니다.”
편작은 환후가 너무 강하게 자신의 병을 부인하는 바람에 더 이상 치료를 권하지 못하고 일단 그 자리에서 물러나왔다.
“편작이 너무 욕심이 많군. 병이 없는 사람을 병이 있다고 하여 이득이나 취하려 하다니.” 환후가 신하들 앞에서 한 말이었다.
5일이 지난 후 다시 편작은 환후를 만나 말하였다.
“이제 피부의 병이 혈맥으로 침투하였습니다. 곧 치료하지 않으면 깊어질 것입니다.”
“과인에겐 병이 없다고 하질 않았소?” 환후가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그 뒤 다시 5일이 지나서 편작이 환후를 찾아가 말하였다.
“이제 혈맥에 침투한 병은 위장까지 번졌습니다. 곧 치료하지 않으면 병세가 더욱 깊어질 것입니다.”
환후는 대답하지 않았다. 자신에겐 아무런 증상도 나타나지 않았으므로 편작의 말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편작이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씩이나 병을 거론하자 환후도 은근히 걱정이 되어, 전 같지 않게 신하들과 말도 하지 않았다.
다시 5일이 지나서 편작은 환후를 만나본 뒤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물러나와 도망을 쳤다.
환후가 신하들에게서 그 소식을 전해 들었다.
“편작이 도망을 쳤단 말이오? 어서 달려가 왜 도망을 쳤는지 그 이유를 알아오시오.”
환후의 명을 받고 신하가 달려가 편작을 붙들고 도망치는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편작이 대답하였다.
“병이 피부에 있을 때는 탕약과 바르는 약으로 치료 할 수가 있었습니다.
혈맥에 있을 때는 쇠침이나 석침으로 치료가 가능하였습니다.
그것이 위에 이르렀을 때에는 술을 졸여 만든 약으로 치료를 할 수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병이 골수로 들어간 상태이기 때문에, 나로서도 더 이상 어찌할 도리가 없어 도망가는 것입니다.”
편작이 도망간 지 5일 만에 환후는 병이 깊어졌다. 그리고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죽었다.
-《인물로 읽는 사기》-
첫댓글 천운같은 세번의 기회를
다 놓치고 때늦은 후회만,
건강할땐 생전 안아플줄 알지만
그건 잠시일뿐. 모든건 고장나는게
정해진 순서입니다,
조금 덜 과 더 의 차이만 날뿐이지요.
초기에 쉽게 고칠 수 있는 병도
오래되면 불치의 병이 될 수 있는데,
불행하게도 자신의 건강을 과신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쟎나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