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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루니통신 6/스위스․프랑스 자유여행 후기/190507]
《4월 12일 28일만의 귀국 이후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간다. 뒤늦게 스위스와 프랑스 자유여행 후기를 쓴다. 별것도 아니지만 제법 장황하다. 혹시 이런 여행을 계획하고 있는 친구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나로선 한꺼번에 몰아쓰는 일기인 셈이다. 그래도 명색이 이름에 ‘기록 록(錄)자가 들어있는데, 뭔가 흔적은 남겨놓아야 한다는 ‘택도 없는 의무감’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남는 것은 사진이나 글인데, 이렇게 바쁜 세상에 사는 우리들, 그때는 신나서 사진도 찍고 글도 쓸 터이지만, 언제 한번 찬찬히 들여다보기나 할 짬이 있을 것인가. 그저 다 ‘자기만족(self-satisfication)’에 다름아닐 터. 200자 원고지로 160여장이 되어 부득이 상,중,하로 나눠 올린다.》
휴우-, 드디어 집과 나라를 떠난 지 28일만에 安着이다. 4월 12일 오전 8시, 인천공항 2터미널에 내리니 “참말로”(최근 돌아가신 우리 어머니의 18번이다) 안심이다. 물론 나의 유일한 자유여행 ‘빠끔이 가이드’ 아내가 옆에 있으니까 100% 두렵거나 외롭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형편없이 小心한 나로서는 여행 내내 걱정이 많이 되었던 까닭이다. 이제 그 後記를 쓰고 싶지 않아도 쓰지 않을 도리가 없다. 출발하기 전부터 사방에서 ‘멋진 후기를 기대한다’는 ‘무언의 압박’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먼저 告白부터 하자. 멀쩡했던 신체적 상황이 졸지에 요실금과 변비 환자가 되는 바람에 정신이 혼미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전립선비대증 수술을 받은 지 한 달, 좋아진 것 같아 전혀 걱정하지 않았고, 변비는 평소 그렇게 심한 적이 없었건만, 웬열? 여행 내내 나를 민망하게 괴롭힐 줄이야. 흐흐. 하반신의 ‘앞과 뒤’가 부실하니, 이 노릇을 어찌하랴. 나의 37년간 근무한 직장 정년 퇴직기념으로 8개월 전부터 이 프로젝트를 위하여 하나에서 열까지 혼자서 준비한 아내에게 참말로 面目이 서지 않았지만, 평생 옆지기가 아니었던가? 세상에 이보다 더 편한 상대가 어디에 있을 것인가? 숙소에 들어오면 바지와 속옷 빨기에 바빴으니, 오 마이 갓!이 따로 없었다. 흐흐
일단 3월 15일(금) 첫날부터 시작하여 마지막 날까지 요일별로 일정을 정리하여 큰 줄거리를 일목요연하게 적은 후, 그 순서대로 외국의 산천경개, 역사적인 현장과 세계사 그리고 그림, 조각, 음악, 문학 등 예술방면의 상식과 교양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게 좋을 듯하다.
①3월 15일(금) 프랑스 스트라스부르 1박(aROK 호텔)
쁘띠뜨 프랑스, 노트르담 대성당, 구텐베르크광장→
②16(토)~17일(일) 스위스 루체른 2박(IBIS Buget 호텔)
크루즈, 리기산 등정, 목조 카펠교, 빈사의 사자상, 빙하공원→
③18(월)~20일(수) 그린델발트 3박(전통가옥 샬레)
융프라우 산악열차 등정, 대설원 하이킹, 뮤렌 청정마을, 피르스트 정상 글라이더, 케이블카→
④21일(목) 인터라켄 1박(Walter’s 하우스)
하더쿨룸 →
⑤22일(금) 체르마트 1박(퇴슈 알펜 부젯 룸스)
마테호른, 하이킹 →
⑥23일(토) 베른 1박(Bern 77호스텔)
몽트뢰, 시용성→
⑦24일(일) 제네바(NH호텔)
레만호 크루즈→
⑧25(월)~27일(수) 니스 3박(RESIDE PRONADE 호텔)
샤갈․마티스박물관, 깐느, 안티베, 망통, 모나코, 에즈빌리지→
⑨28(목)~29일(금) 마르세이유 2박(Les Volets Bleus Vieux-Port) 노트르담 대성당, 샤토 이프→
⑩3월 30일~4월 1일(토) 엑상 프로방스 3박(CASA 아파트) 세잔느 아틀리에, 미라보광장, 버스투어, 낭베스 와이너리→
⑪4월 2(화)~3일(수) 아비뇽 2박(MAISON JEAN CHAPELLE) ‘아비뇽유수’의 교황청, 부러진 다리, 아를, 원형투기장, 고흐의 단골커피집→
⑫4(목)~10일(수) 파리 7박(조선족 운영 민박, MAIS 하우스)
베르사이유궁전과 정원, 루브르․오르세 박물관, 피카소․로댕박물관, 에펠탑, 바토 무슈, 몽생 미쉘, 옹프뢰, 에트르타, 현대미술관, 오랑주 박물관, 몽마르트 언덕․사클레 쾨르성당, 몽쥬약국, 생 제임스․아크네 명품 쇼핑→
⑬4월 11일(목) 파리 CDG공항 출발→
⑭4월 12일(금) 오전 7시 15분 인천공항(ICN) 도착
3월15일(금) 오전 9시 45분. 인천2공항 대한항공과 연계하는 에어프랑스편으로 파리를 향해 출발. 장장 12시간(시차 8시간) 후 우리는 파리 샤를 드골공항(CDG)에 내리다. 국산영화 서너 편을 내리 보아도 아직도 멀었다. 정말 오 마이 갓이다! 내처 테제베(TGV)로 독일-스위스와 국경지역에 있는 스트라스부르(STRASBOUGH)역 앞 ‘아록(A-ROK)호텔’에 짐을 풀다. 빵빵한 캐리어 3개, 포터로 나섰지만 만만찮다. 20여일간 해먹을 주․부식이 들어있기에 한없이 무겁기만. 그렇다고 어찌 툴툴이스머프가 되랴. 감지덕지, 고마워할 따름이다. 호텔 이름이 나의 별명 ‘알록이’를 닮은 듯하여 기분이 삼삼했다. 굳이 호텔리어에게 한 마디 했다. “Your hotel’s name takes after my nickname 알록” 뻘쭘하던 그 친구, 양쪽 어깨를 으쓱하며 웃는다. 이 도시는 프랑스의 숱한 도시 중 처음으로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의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다. 그만큼 작지만 유서 깊고 아름답고 예쁜 도시이다. 모두들 기억하시리라. 알퐁스 도데의 ‘마지막 수업’이 쓰여진 배경도시이다.
문득 최근 국내에서 방영된 ‘말모이’라는 영화가 떠올랐다. 한 나라의 고유한 언어를 지키기 위하여 희생하고 투쟁했던 인물들, 그들을 생각하면 어찌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옛 알사스-로렌지역. 강 주위로 조성된 오래된 목조건물들이 모인 ‘쁘띠뜨(Petite) 프랑스’와 ‘노트르담(Notre Dam) 대성당’ 그리고 ‘구텐베르크(Gutenberg. 1468년 졸) 광장’ 등을 시나브로, 어슬렁어슬렁 산책만 해도 기분이 마구마구 좋아진다. 깨끗한 길, 맑은 하늘, 유람선을 타도 좋으리. 모처럼 한갓지게 외국에 나와 손을 쥐며 걷던 우리 부부, 약속이나 한 듯 서로 손을 꽉 쥔다. 기분이 째진다는 共感이리라. 2년 전 동유럽 5개국을 회갑기념으로 고등학교 친구 12쌍과 함께 돈 적이 있지만 ‘이놈의’ 나라들은 어떻게 된 것이, 개인집이나 교회, 성당들의 건축역사가 툭하면 300~400년이란다. 후손들의 관광수입을 위하여 유지․관리․보수를 잘 해도 너무 잘한 듯하다. 문득 미세먼지로 골치를 썩고 있는 우리나라 하늘을 생각하니 우울하다. 몇 시간 운하를 따라 하이킹을 했건만 눈곱만큼도 피곤하지 않다. 노트르담 성당, 엄청 대규모에 역사나 스토리가 장난이 아니다.
구텐베르크동상 앞에 서다. 이 인간이 누구던가. 1455년 성경 42행을 찍어내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로 공인받은 사람, 중학교 때 그렇게 배웠건만, 천만의 말씀. 세계 최초의 금속활자는 대한민국이 먼저인 것을. 1972년 프랑스 국립도서관에서 박병선(1928~2011) 박사가「직지심체요절」을 발견할 때까지의 이야기였던 것을. 1377년 청주 흥덕사라는 절에서 찍은 상․하권 중 하권만 현존하고 있다. 박 박사가 세계 최초로 공인받기까지 한 투쟁도 눈물겹다. 문화애국자가 따로 없다. 그 분은 세계가 인정한 ‘直指의 代母’가 되었다. 그 결과,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에 당당히 등재되었다. 구텐베르크에게 말을 건다. 내가 바로 멀리 ‘기록의 나라’에서 온 한국인이라고. ‘先手’를 빼앗긴 그는 원통해 할까. 이 도시는 내일 스위스 바젤을 거쳐 루체른으로 가기 위한 길목(관문)인 셈이다. 이곳 사람들은 체구(등치)가 아주 크다. 아무래도 독일이 인근이다보니 게르만족의 피가 흐르는 때문일 듯하다. 한국에서 가지고 온 누룽지를 끓여 먹으며 일박을 하다.
3월 16일(토) 이튿날 유레일패스로 바젤을 거쳐 루체른(RUCERN)에 도착하다. ‘IBIS Buget’라는 호텔을 구글지도로 찾다가 거추장스러운 캐리어 때문에 택시를 탔는데, 알고보니 걷는다 해도 얼마 안 되는 코앞이다. 어쩔 것인가. 이곳은 ‘산들의 여왕’이라 불리는 ‘리기산’을 오르려 들르는 전초기지. 이곳에서는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다리 ‘카펠교’를 걸어보아야 한다. 그런데 엊그제 알게 된 자랑스러운 역사적 사실이 있다.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1919년 8월 1-9일 이곳에서 개최된 ‘만국사회당대회’에 조소앙, 이관용을 파견하여 한국 독립의 정당성을 호소했다는 것이다. 그 결과, 25개 국가가 ‘한국 민족의 독립을 위한 결의서’를 채택했으며, 임시정부 기관지인 ‘독립신문’에도 실렸다한다. 영어․프랑스어․독일어본 결의서가 현존하고 있는데, 이 결의서에는 “한국인에게는 명백한 민족자결의 권리가 있다. 일본이 대한민국을 강제지배하고 자결권을 침해하는 데 항의한다”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1986년 정용대 님에 의해 암스테르담 국가사회문서실에서 원본이 발견되었고, 재불 사학자 이장규 님이 관련자료들을 찾아내 알려지게 된 것이다. 무엇보다 역사적인 곳을 오게 돼 반갑고 뜻깊다. 그 당시 어떻게 이 먼 곳을 찾았을까. 열악했던 환경의 임시정부 외교전이 눈물겹고 새삼 놀랍다. 또 하나, 더 알게 된 사실은, 1960년대 독일로 돈 벌러 간 우리의 광부들이 가장 먼저 정착한 곳이 루체른이란다. 하지만 희한한 것은 해외에서 한국인끼리 서로 속이고 속는 詐欺가 판을 친다는 것. 여기에서도 예외가 아니어서 한국인에 대한 평판이 아주 나쁘다고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부터 리기산(Mt. RIGI. 해발 1798m)을 가기 위한 유람선을 1시간여 탔다. 모차르트의 외가동네를 찾을 때 탔던 유람선과 다름없다. 인근 강변의 고만고만한, 그림같은 진갈색(어쩌면 하나같이 똑같을까) 지붕색깔의 마을들을 구경하며 우리는 모처럼 忙中閑을 한껏 즐기다. 말로만 듣던 산악열차를 처음 탔다. 정상인 리키쿨룸역에는 한번쯤 자보고 싶은 예쁜 호텔이 있고, 3월 중순인 데도 만년설이다. 그보다 알프스산맥 눈 쌓인 연봉들이 壯觀이다. 눈이 다 ‘씨-원’해지는 느낌이다. 역과 역 사이 하이킹(트레킹)하는 맛이 쏠쏠하다. 이곳도 감격하기에 바쁜데 내일모레 가는 융프라우와 마테호른은 어느 정도일까, 상상이 안된다. 저 멀리 보이는 호수와 그 주변의 마을들, 동화의 나라가 따로 없다. 내려오는 길은 케이블카를 탈 수 있다. 리기산을 찾는 한국인이 많은 모양, 안내문에 여러 나라 글자와 함께 ‘환영합니다’ 한글 표기가 반갑다. 돌아오는 길, 한국인 청년 2명을 만났다. 한 달을 목표로 유럽을 도는 젊은이들, 기술고시 합격을 하고 연수원에 들어가기 전에 죽이 맞았다는 연부역강한 친구들이다. 이 청년들이 기특하여 선창가에서 커피와 크로쌍을 사주다. 그중에 한 친구는 모교인 성균관대 후배여서 더욱 반가웠다.
3월 18일(월). 드디어 융프라우로 가는 관문인 그린델발트(Grindelwald). 그야말로 조용한 산속 마을이다. 숙소인 샬레(Chalet. 스위스 전통목조주택)에 도착, 내일이면 철도를 타고 융프라우요흐(Jungfraujoch. 해발 3454m)에 오른다. 우리가 아는 융프라우는 해발 4158m이다. 맨처음 온통 암벽산에 터널을 뚫어 정상까지 ‘톱니바퀴 철도’를 운행하려고 생각한 사람은 누구인가? 그것도 1896년에? 1893년 철도왕 ‘첼러’의 아이디어가 기어코 실현이 된 것은 착공 16년만인 1912년. 지금으로부터 107년 전. 놀랍다. 인간의 도전정신의 끝은 어디일까? 기적miracle이다. 참으로 기발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애칭 그래도 ‘Top of Europe’(유럽의 지붕)이다. 종착역에 내리니 숨이 막힌다. “Breathtaking moments shall not be forgotten” 훅, 와닿는 광고카피가 아닌가. 어찌 이런 압도적인(overwhelming) 대자연의 풍광이 잊힐 리가 있겠는가? 그저 어안이 벙벙할 뿐이다. 실제 눈으로 보고도 믿기 힘들다. 알프스산맥의 대표적인 봉우리인 스위스의 융프라우와 마테호른, 프랑스의 몽블랑(Mong Blanc)을 순전히 文明의 利器로 오를 수 있게 된 것은 바로 ‘人間의 勝利’가 아니고 무엇이랴. 感慨無量. 눈을 감다가, 百聞不如一見 사진을 찍다가, 그 높은 雪山에서 一望無際 하이킹을 두어 시간 하는 감격에 젖다. 3km 정도를 아내와 같이 걷다. 아내는 트레킹의 달인, 순식간에 몇 백m나 앞서 간다.
아무도 밟지 않는 雪原의 눈길. 발자국이 생기는 순간이다. 문득, 백범 김구 선생이 즐겨 썼다는 漢詩가 떠오른다. 서산대사의 작품이라던가. “눈길을 걸을 때 함부로 걷지 마라. 오늘 내 발자국이 마침내 뒷사람에겐 이정표가 되리니”(踏雪野中去 不須胡亂行 今日我行蹟 遂作後人程). 셰계 모든 나라의 스키어들이 다 모인 듯하다. 스키의 천국이다. 숫제 눈이 부시다. 알록달록 총천연색의 스키복. 이들은 아예 스키화를 산 아래 평지에서도 신고 다닌다. 얼마나 신명이 날까. 인간은 순식간에 한 마디 새가 되어 창공을 날기도 한다. 이런 別世界가 이렇게 엄연히 存在하거늘. TV로, 사진으로, 영화속 한 장면으로 보다가 ‘조선 촌놈’ 완전히 기가 질리다. 럴수, 럴수, 이럴 수가! 누가 이 꼭대기에 천문대같은 멋드러진 건물을 지었을까? 의문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협궤열차가 아니다. 궤도 중앙에 있는 톱니바퀴가 推動을 하는 걸까? 물이 풍부하니 수력발전은 남아돌 터이니 電氣의 힘으로 가능한 것일까? 이건 숫제 중국의 기암괴산․절벽․잔도들과 또다른 차원이다. 국내에서도 구입할 수 있는 ‘융프라우 VIP패스’는 어딘들 무사통과. one day나 two, three day는 선택사항. 간편한 시스템, 역시 세계적인 관광지답다.
이튿날, 淸淨마을의 대명사인 뮈렌(Murren)의 산책도 즐거웠거니와 휘르스트(First) 정상까지 케이블카로 올라 가서 전망대인 절벽유리길을 벌벌 기어 맨 끄트머리에서 찍은 사진 한 장, 최고의 수확이다. 중국 장가계 등의 유리잔도 공포가 되살아났다. 그리고 신라면(VIP패스 무료) 하나에 맥주 한 잔, 이 째지게 좋은 기분을 어떻게 표현할까. 나는 아지 모게라(알지 못하겠다). 아내와 함께 한 마리 새처럼 창공을 난다. 글라이더와 짚라인. 내 생애, 이런 짜릿하고 특별한 경험(Special Experience)을 해 보다니. 이런 행운을 안겨준 아내가 고마워 쥔 손을 더 꽉 쥐어본다.
3월 21일(목) 인터라켄에서 하루 묵다. 하더쿨름으로 오르는 등산열차가 수리 중이어서 걸어서 오르다. 깔끔한 숙소의 주인아저씨와 말이 통하지 않아도 아무 상관이 없다. 아내의 건강이 심상찮아 중도포기하고 숙소로 돌아와 쉬다. 걱정이 너무 되다. 이러다 모든 일정이 엉망이 되는 게 아닌지, 이제 막 시작인데. 오늘 튠(Tune)호수 유람도 끝이다. 한숨 눈을 붙이더니 컨디션이 회복된 모양. 휴우- 다행이다.
3월 22일(금) 말로만 듣던 마테호른을 오르기 위해 체르마트에 가다. 전기차만 다니는 공해 없는 소읍, 과연 국제적인 관광지답다. 리기산에는 한국인과 중국인들이 제법 있었는데, 이곳은 한 명도 보이지 않는다. 고르너그라트(Gornegrat) 전망대에 오르다. 세계에서 가장 높은 곳의 기념품샵에서는 치즈와 초코릿 그리고 스위스 특제품인 시계가 즐비하다. 역시 엊그제처럼 그 꼭대기에서 한두 정거장 하이킹(우리는 트레킹이라 한다)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걸어보지 않은 사람은 알지 못하는 희열에 가슴이 벅차다. 농심라면을 먹는 외국인들도 많다. 한국이 자랑스러웠다. 5-6월에는 야생화 등이 활짝 피고 호수를 걷는 재미가 그만이라고 한다. 1865년 영국의 탐험가 휨러가 이미 해발 4478m 마테호른을 처음 올랐다고 한다. 시간과 돈, 여유만 된다면 10여일간의 스위스 자유여행, 무조건 강추다. 부부끼리는 더 환영이다. 사진 몇 장에 그 감격 올 리 만무하다. 프랑스의 몽블랑은 언제 오를까, 이 정도에서 만족하고 베른으로 향하다.
3월 23일(토) 베른에서 유러패스로 로잔을 거쳐 몽트뢰(Montreaux)를 가다. 열차가 실핏줄처럼 구석구석 뻗쳐 있다. 마치 시내버스를 타는 듯하다. 재즈 페스티벌의 성지로 알려진 몽트뢰는 작년 우리나라에서도 히트친 ‘보헤미안 랩소디’의 주인공 프레디 머큐리가 가장 사랑했던 도시. 영국 가수 머큐리는 5인조 록밴드 퀸의 리드 싱어로 명성을 크게 떨쳤다. 45세인 1991년 에이즈로 투병 중 사망, 이곳에서 작곡작업을 많이 했다는데, 아름다운 레만호수를 향하여 오른쪽을 번쩍 치켜들고 있는 동상이 인상적이다. 동상앞에는 인파로 북적인다. 해마다 9월 머큐리 생일이 되면 전세계 팬들이 모여 생일파티를 해준다고 한다. 사진 찍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우리 부부도 인증샷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알고 보니, 오드리 헵번과 찰리 채플린도 이 주변마을들을 너무 사랑하여 오랫동안 가족들과 거주했다고 한다. 빅토르 위고, 어네스트 헤밍웨이, 에펠탑을 만든 에펠 등이 특히 사랑한 도시이다. 12세기경 세워진 시옹성(Chateau de Chillon)은 한번쯤 돌아볼만하다. 깨끗한 레만호를 따라 우리는 또 걷는다.
4주 여행 내내 하루평균 2만보(최대 3만보)를 걸었으니 지독한 ‘뚜벅이 여행’이다. ‘오늘은 얼마나 걸었나’ 손목에 차고 있는 ‘핏빗’의 기록을 보는 재미도 있다. 시옹성은 유럽의 북부와 남부를 잇근 관문역할을 하며 상인이나 여행객들에게 비싼 통행세를 받았다한다. 입장료를 받는데, 60세가 넘은 시니어라며 2프랑을 깎아준다. 3000원 안팎이지만 기분이 묘하다. 16세기 중반부터는 군사요새와 병기창, 지하감옥으로 사용됐으며, 영국의 시인 바이런(Byron)이 ‘시옹성의 죄수’라는 시를 써 유명한 곳인데, 지하기둥에 바이런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로잔에서 몽트뢰까지는 산비탈을 깎아 만든 포도밭이 즐비하다. 여름엔 온통 푸른 포도잎이 장관을 이뤄 이것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상상만 해도 걷는 맛이 있을 듯하다. 베른에서는 장미공원에 올라 도시 전체를 조망해야 한다.
첫댓글 카톡에서 맛볼수 없는 차분한 마음으로 후기를 읽으며 여행에 합류해보네.
地名 등만 읽어도 머리가 뱅뱅~도네이~ㅎ
아무튼 수경당의 치밀한 계획과 용기에 박수를 보내며 존경스럽네요~
<건축역사가 툭하면 300~400년이란다.>
ㅎㅎㅎ
유럽에서 신도시라 하면 17세기쯤 조성된 도시를 일컫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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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동네에선 4,000m 정도의 산은 명함은 커녕 이름도 얻지 못한단다....." 와 유사한 라임?이라고나 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