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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새 하늘과 새 땅(묵시 21,1-22,5)
'새 하늘과 새 땅'은 요한묵시록에서 요한이 본 모든 환시의 표상들을 종합하는 상징어이다. 또한 요한묵시록을 쓴 요한이 이어서 저술한 요한복음서에서 열쇠말이 되고 있는 '영원한 생명'의 모티브이기도 하다. 마르코, 마태오, 루카 등 공관복음사가들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메시지를 '하느님 나라'/ '하늘 나라'로 요약하여 소개하였지만, 요한은 '영원한 생명'으로 소개하였는데, 이 메시지 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이미지가 선명하게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그 중심은 '새 예루살렘'이다. 예수님께서 정화시키신 낡은 예루살렘의 이미지는 예언자들의 메시아 도래를 알아듣지 못한 우매함과 율법에 대한 과도한 집착 그리고 동물의 시체를 불에 태워 속죄를 기원하는 철 지난 번제의 관습으로 가득 차 있었는데, 이제 '새 하늘과 새 땅'은 성령의 현존으로 활기찬 신자들의 공동 생활과 가난한 이들의 복음화를 이룩해 가는 파스카 과업의 본산으로서 '새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새 하늘과 새 땅' 그리고 '영원한 생명'의 현실이 펼쳐지는 것이다.
39.1. 새 예루살렘(묵시 21,1-4)
인류가 죄를 지음으로써 창조계는 멸망과 죽음이라는 벌을 받게 되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하늘과 땅이 그 타락하기 쉬운 성질을 낡은 옷처럼 벗어 버리고 새롭게 될 때(카시오도루스, 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것들을 다시 세우실 것이다(카시오도루스). 이 재생은 세상의 본질이 소멸하고 다른 본질로 대체되는 식이 아닐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보다는 불이 쉽게 썩는 것들을 태워 버려 이제는 죽지 않는 몸이 된 육신에 어울리는 변모된 본질만을 남겨 놓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이제 새롭게 된 사람들에게 적합하게 변모된 이 새 하늘과 새 땅 안에서 영혼은 본디의 온전한 생태로 회복되고 육신은 본디의 힘을 되찾는다(아우구스티누스). 그때에는 악은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인간의 삶에도 거친 파란과 흔들림이 더 이상 없을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또 그때에는 거룩한 은총으로 창조된 도성이 나타날 것이다. 이 새로운 예루살렘은 태초부터 ‘내려오고’ 있었다. 성령을 통해 그 도성의 주민이 되는 성도들이 지상에 늘 있어 왔기 때문이다(아우구스티누스). 이 천상 예루살렘은 모세의 시대에 성막으로 예시되었으며(이레네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스라엘 땅의 도성 예루살렘은 그것의 예표였다. 의인들이 타락하지 않기 위해 그곳에서 단련을 받았기 때문이다(이레네우스). 그러나 마지막 심판 때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은 너무나도 굉장한 광휘로 빛나 새 예루살렘에 관한 모든 예시는 성도들이 받은 영적 축복 앞에서 사라져 버릴 것이다(아우구스티누스, 오이쿠메니우스). 이 새로운 예루살렘은 거룩함과 의로움 안에서 주님과 결합될(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성도들의 복된 운명이다(오이쿠메니우스). 그곳에는 삼위일체께서 거하시며 다스리신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당신의 성전이 된 이들에게는 하느님이 곧 영원한 축복의 보상으로 주어지실 것이기 때문이다(아프링기우스).
교회가 부활 후에 축복을 누리면(아를의 카이사리우스) 모든 고통과 죽음은 끝날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고통 없는 곳에는 슬픔도 없고(테르툴리아누스), 죽음 없는 곳에는 악마도 없다(오리게네스). 성도의 몸이 썩지 않게 되었을 때(베다), 그들은 영원한 임금을 바라봄이 그들 마음의 양식이 되는(베다), 형언할 길 없는 기쁨에 들게 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39.2.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묵시 21,5-8)
사도 요한이 요한묵시록의 저술을 마치고 기록한 요한복음서에 소개한 예수님의 복음 선포 메시지는 '영원한 생명'라고 언급하였다. 이 상징어 안에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의미하는 창조적 전망, 교회의 역사성과 사회성이 녹아들어 있다. '영원한 생명'이라는 메시지에는 요한복음이 전제하는 예수님의 선재성과 초월성 그리고 인격성이 녹아들어 있는데, 이 두 가지 지평(창조적 전망, 역사성, 사회성 + 선재성, 초월성, 인격성)을 종합하여 소개한 이가 브라질의 신학자 레오나르도 보프(1938~ )이다. 그는 '교회의 창세기'(Ecclesiogenesis)라는 책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라틴 아메리카 교회에서 생겨난 가난한 이들의 기초 공동체 현상을 분석하면서, 로마화된 제도 교회가 비처 바라보지 못한 교회적 현실을 '새 하늘과 새 땅'과 '영원한 생명'이라는 두 메시지를 종합하여 소개하였다.
교회는 완성된 제도로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초대교회의 역사에서 볼 수 있듯이, 역사 속에서 신앙 공동체가 삶과 믿음 안에서 출현하고 성장하는 과정임을 보프는 강조하였다. 그야말로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시는 성령" 안에서 가난과 억압, 저항과 희망이라는 사회 역사적 조건 하에서 이 척박한 현실을 살아내는 신앙 공동체의 체험을 신학자로서 정리해 낸 것이다. 여기서는 '천 년 통치'와 '새 하늘과 새 땅'이라는 묵시적 표상을 반영하듯이, 교회의 역동성과 구원 역사를 거시적인 안목으로 바라본다. 가난한 이들이 이루는 작은 공동체들이 여전히 제도 교회와의 긴장어린 갈등 속에서도 성령의 이끄심을 성찰해 온 체험에 바탕하여, 교회가 나아가야 할 개혁의 방향 그리고 특히 진정한 복음화의 방식으로 이루어져야 할 파스카 과업을 제안하는 것이다.
‘진리’께서 진실을 말씀하시며 지금 여기서 만물 안에서 성도들의 재생을 실제로 이루시어(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들은 모든 죄와 고통에서 벗어나 광휘로 빛난다(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무한하신 하느님의 말씀에는 거짓이라고는 없으며 그 말씀은 미래에 대한 어떤 의심도 불식시킨다(프리마시우스). 뿐만 아니라 “다 이루어졌다”고 말씀하시는 ‘진리’는 세상의 창조주시자 세상을 완성하는 분이시다(베다). 그분은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시고, 그분의 섭리는 최초의 피조물로부터 최후의 피조물에게까지 미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바로 이분이 아주 갑자기 만물을 완성에 이르게 하실 분이시다(아프링기우스).
아직 완성에 이르는 길에 있는 이들에게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주는 성령의 비를 거저 내리신다(프리마시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 길에서 세례를 통해 죄를 용서받기 원하는 사람들(아를의 카이사리우스)에게는 새 예루살렘이라는 본향에서 넘칠 만큼 풍성한 영적인 비가 내릴 것이다(프리마시우스). 현세의 어떤 고통도 성도들의 미래의 삶과 비교할 수 없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굳건히 계속 선행에 힘쓰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아들들이 되어 아버지의 자애를 누릴 것이다(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죄 속에 남아서 덕을 변조하여 사악한 가짜로 만드는 자들(오이쿠메니우스)은 불 못이라는 고통스러운 진노의 벌을 받을 것이다(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우리를 그런 유산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려고,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축복에 대한 소망과 고통에 대한 두려움을 통해 약속된 축복을 얻도록 때로는 엄한 분노로, 때로는 친절로, 온갖 방식으로 우리를 좨치신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느님께서 우리를 의지의 나약함으로부터(오이쿠메니우스) 특히 종교적 위선이라는 지극히 혐오스러운 거짓말로부터 지켜 주시도록(베다), 그리하여 우리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받는 이리 없도록 기도하자(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39.3.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묵시 21,9-27)
요한이 천상 예루살렘에 관한 환시를 본다. 그리스도의 피 안에서 형성되고 약혼자가 된(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교회는 언제나 하느님의 아들들을 낳는다(베다). 하느님의 아들들은 하느님의 영적인 광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산다(오이쿠메니우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산 위에 세워졌으며(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첫 번째 부활 때 모습을 드러낼 것인데(빅토리누스), 하느님에 의해 영광스럽게 될 때 더욱 훤히 그 모습을 드러낼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리스도의 몸은 세상의 빛(프리마시우스)이고 그 마음과 믿음이 순수하지만(베다), 그 영광은 자기 안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도성은 생명을 주는, 순수하고 바래지 않는 교회의 광휘(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이신 그리스도의 빛을 받는 도성이다.
그리스도는 또한 이 영광스러운 도성의 성벽이요 성문이시다. 그분을 통해 우리의 선조들과 사도들이 이 도성으로 들어갔으며(아프링기우스), 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그 도성의 성벽과 성문이 되었다(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처음에는 천사들의 도움을 받아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했고(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지금은 교회의 교사들이 사도들의 선포를 이어 간다(베다). 온 세상에 전해진(아프링기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베다) 거룩한 삼위일체에 관한 이 선포(오이쿠메니우스)는 세상의 죄를 씻는 세례라는 영적 바다 안에 굳건히 서 있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느님의 도성에서는 주님의 육화에 대한 믿음으로 만물을 잰다(아프링기우스). 모든 성도는 하느님의 ‘지혜’이신 그분(프리마시우스) 안에 튼튼히 세워져 보호받으며 지혜로워진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베다). 이런 완벽함 안에 있는 성도들은 천사와 같아질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그분께서 취하신 온화하신 동정녀의 육신 안에서 시들지 않는 생명과 지혜를 누릴 것이다(아프링기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들은 성령의 온갖 선물을 받아 빛날 것이며(아프링기우스, 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 빛은 옛 계약의 영광을 능가할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하느님의 도성은 온갖 보석의 덕을 지닐 것인데, 열두 사도가 온갖 영적인 덕을 지녔었고(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모든 성도의 영혼도 그렇게 될 것이기(베다) 때문이다. 그 도성의 광휘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 도성의 영광은 곧 그 도성에게 그것을 주신 그리스도의 영광이기 때문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베다). 구약성경은 이 광휘의 그림자일 뿐이었다(오이쿠메니우스). 성도들은 그들의 덕에 따라 조금씩 다른 영광을 받겠지만(아프링기우스, 프리마시우스), 모두가 유리처럼 순수해질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자격이 없다고 여겨질 이는 아무도 없을 것이다(프리마시우스). 축복받은 거처를 하느님 안에서 완전하게 소유하고 있는(프리마시우스, 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거룩한 도성은 또한 하느님의 성전도 될 터인데(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교회가 모든 존재와 모든 지식과 모든 사랑을 소유하게 되도록 삼위일체 가운데 한 분께서 육화하셨기(오이쿠메니우스) 때문이다. 형언할 길 없는 그리스도의 빛을 통해(프리마시우스) 우리 인성의 어둠은 그리스도의 인성 안에서 빛이 될 것이다(아프링기우스). 그리스도께서는 그 도성에서 당신의 성도들에게 그들이 세상에서 겪은 고통을 보상해 주실 것이다(빅토리누스). 그곳에서 그리스도는 영원한 ‘생명’이 되실 것이다(프리마시우스). 그곳에서는 아브라함에게 주어졌던 약속(빅토리누스)이 완전하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 도성에는 어떤 죄인도 이단자도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 천상의 그 도성에서는 보이는 모든 것이 사랑받으며, 사랑받는 것은 찬미받기 때문이다(프리마시우스).
39.4. 하느님의 다스림은 빛과 생명이다(묵시 2,1-5)
하느님의 강은 하늘의 권능들인 천사들 가운데를 흐르는 성령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 강이 지금 교회 안에서 흐르고 있다. 세례로 씻기는 이들을 성령께서 깨끗하게 해 주시기 때문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이 생명의 샘물은 거룩한 삼위일체만이 유일한 임금이심을 고백하게 하며(히에로니무스), 이 왕권은 세례의 모든 거룩함이 흘러나오는 원천인 구원자의 육화를 통해 드러난다(히에로니무스, 아프링기우스). 그리스도의 은총은 강물처럼 성도들에게 영원히 넘쳐흐르며(오이쿠메니우스) 그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데려간다(프리마시우스). 두 성경은 아버지로부터 나와 아들을 통하여 흐르는 이 성령의 강에 대해(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증언하고 있다(히에로니무스, 아프링기우스).
두 성경 안에는 한 나무가 심어져 있으며 그 나무는 그리스도이시다(히에로니무스, 아프링기우스, 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성경을 읽는 이들은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하여 이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을 수 있다. 성경의 거룩한 말씀(히에로니무스)들은 우리 구원의 완성에 대해 알려주며(아프링기우스) 그리스도의 십자가 나무 열매를 따 먹도록 우리를 인도하기 때문이다(아를의 카이사리우스). 그리스도께서는 지칠 줄 모르는 관대함(오이쿠메니우스, 프리마시우스)으로 끊임없이 당신과 성령을 주시며, 그리하여 성도들은 더없이 복된 불멸을 얻고(프리마시우스), 나무에 달린 잎들처럼(오이쿠메니우스) 그분께서 취하신 육을 통해 그분의 신성에 참여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렇게 해서 성도들 또한 생명 나무가 된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들은 어떤 죄의 얼룩으로도 더럽혀지지 않을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그리스도의 얼굴을 보는 기쁨을 누릴 것이기 때문이다(아프링기우스). 하나이신 신성의 영광이 고백되는 곳(프리마시우스)에서는 악마에게 속한 것은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그곳에서 성도들은 하느님 앞에 살며(오이쿠메니우스), 사도들이 산 위에서 그분을 보았듯이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믿음에 대한 상은 하느님을 보는 것이며(프리마시우스), 하느님을 보는 것은 최고의 선이고(베다), 항구적인 비추임을 받는 것이며(오이쿠메니우스, 카이사리아의 안드레아스), 영원한 안식이요 모든 약속의 완벽한 완성(베다)이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