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난히 따뜻했던 올해 3월에 ‘한티가는 길’을 걸을 때 마지막으로 ‘한티가는 길‘에서 가장 높은 곳인 숯 가마터에 올라왔을 때는 다른 곳에 비해 이곳은 여전한 겨울이었다. 그런 탓에 4월 중순 봄이 본격적으로 찾아왔을 즈음에 다시 올라올 것이라고 생각하고 내려갔다. 4월초순 끝무렵에 다시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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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로 가는 버스편이 올해 새롭게 생긴 이후로는 거의 차를 몰고 올라가지 않는다. 버스를 타고 올라가는 한티가는 길차창 밖 풍경은 늘 나에게 새로운 살아있는 그림으로 다가온다.
지하철 3호선 종점인 칠곡 경북대 병원역사로 내려오면 억사 계단을 내려서는 몇 안되는 사람들로부터 누가 한티에 가는 것인지를 웬만하면 가늠할 수 있다. 또한 요즘은 지하철 역사에서 내려와 큰 길로 빠져나와 횡단보도를 건너 한티행 9시 50분 버스를 기다리다 보면 의외로 처음 한티성지를 찾아오는, 특히 나이드신 분들이 적지 않다. 이 분들은 대부분 횡단보도로를 건너오자마자 버스 정류장에 서 있는 본인에게 "여기가 한티성지 가는 버스 타는 곳 맞지요?"라고 조심스럽게 묻는다. 그리고 어느 듯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를 타고 나면 이 분들의 얼굴에는 분명 설레임이 담겨져 있다. 당신 스스로 한티에 오고 싶었음을........ 먼훗날 나의 모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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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자 성당 앞 성모상 뜰에도 이제 연두색 잔디 순이 옅게 올라오고 있었다.
순례자 성당에서 미사. 이 날도 대구권역이 아닌 외지에서 찾아본 분들이 적지 않다. 오또 관장신부님께서 찾아온 이들에게 내내 하시는 말씀이 있다. 입당성가 이후 찾아온 이들을 일일히 가리키며 어디에서 오셨는지를, 그리고 오신 사연을 일일이 묻는다. 특히 멀리서 오신 분들의 사연과 함께 잠시 이런저런 얘기하다 나누다보면 어떤 때는 10여분이 훌쩍 흘렀지만 여전히 미사는 겨우 시작해서 본기도 전에 와 있다. ^^ 또한 여기에 더해 오또 신부님께서는 한티성지에 대해서 설명하시며 "이 곳은 순교자들이 살고, 죽고, 묻힌 곳입니다."라는 성당 안의 그림사진 속의 문구를 방문한 이들과 같이 읽고 이 곳 저 곳을 설명해주시기도..... 여러분들께서 지금 사시는 곳에 다시 돌아가시면 한티순교성지에 대해서 꼭 이렇게 주위 사람들에게 설명해 주라고 당부하신다. 어느 듯 이렇게 되면 거의 20분이 더 지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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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사 후 한티성지 내에서 먼저 겸손의 길을 따라 걷는다. 지난 사순시기동안 스스로에게 물었던 단어는 '교만과 겸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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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듯 한티 성지도 진달래가 한창. 무명순교자, 당신들의 피가 어느 듯 땅에 스며들어 어느 듯 소박한 진분홍꽃들로 피어나 있음을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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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이 유별나게 꽃샘추위가 거의 없이 따뜻했지만 한티성지 내는 여전히 4월이 되어서야 비로소 봄의 연두 색을 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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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번 묘역 앞을 지나가며 잠시 오늘 오또 신부님의 미사를 마치면서 마지막 말씀을 대신하셨던 한티 회보 4월호 속의 시 한편을 다시 기억해 본다.
제비꽃을 밟을까 노심초사하여
잔디밭을 지나 순례의 길에 나섰다.
27번 묘역을 지날 무렵
어디선가 구슬픈 새소리가 들리고
핏빛 진달래도 따라 피었다.
세간에서는 한 번도 들어보지 못한
그 소리, 보지 못한 그 꽃, 그 돌이끼가 숲에 있었다.
죽음을 따라 걷는 그 길은
침묵과 고요만이 주인이었다.
나는 순례자.
멀리서 가까이서 바라다 보이는 산벚꽃과 흰구름들.
피정이라는 집에 이르는데는
갑년(甲年)의 시간이 필요했다.
오늘 밤은 별이 뜨리라. <피정은 집이다 / 김상환, 한티회보 4월호 첫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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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의 이름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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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내의 길로 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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숯가마터 인근에 개별꽃이 피어있다.
한티재 아래 숯가마터에 올라서다. 휴~
이 곳 순교자들이 이 곳에 숨어들어와 살면서 혹독한 한겨울을 보내고 난 뒤 4월 즈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따뜻해진 날씨로 인해 ‘이제는 살만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아울러 당신들께서도 해마다 부활을 이맘 때 맞이하며 마냥 기뻐하지 않았을까? 마치 ’두메꽃‘ 노래 속의 ’값없는 꽃‘처럼 숨어살다가 이 꽃에 묻히셨음을......
외딸고 높은 산 골짜구니에 살고 싶어라
한송이 꽃으로 살고 싶어라
벌 나비 그림자 비치지 않는 첩첩 산중에
값 없는 꽃으로 살고 싶어라
햇님만 내님만 보신다면야 평생 이대로
숨어 숨어서 피고 싶어라 <최민순 신부 / 두메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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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실성당에서 한티성지를 향해 출발하는 것이 아닌, 한티성지로부터 가실성당으로 내려가는 길은 나로서는 내내 무명 순교자들이 대축일날 신나무골을 찾아가던 그 마음을 헤아리며 걷는다. 그리고 어느 듯 걷는 가운데 그들이 남겨두었던 당신들의 얼로부터 무언의 위로와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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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절상 보름 정도 늦는 한티에서도 봄의 대명사, 벚꽃 꽃망울이 맺히기 시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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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을 따라 걸어내려가다. 신나무골로 향하기 시작하는 이 곳은 짚신을 신고 신나무골 대축일 미사를 위해 내려가던 당신들의 흔적을 150여년이 흐른 지금, 이 길 위에서 우리 신앙의 어설픈 후손들은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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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길 옆으로는 작은 물길이 같이 내려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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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길 계곡 그 옆에 유난히 노란 두메꽃들이 한꺼번에 눈에 들어왔다. 괭이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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괭이눈 맞은 편에는 산괴불주머니 꽃들도 피어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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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오솔길을 따라 천천히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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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재를 지나 내려가는 길은 어느 듯 벚꽃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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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나무 숲길을 따라 올랐다가 득명리 마을도로로 내려서는 가운데 계곡물을 건너며 계곡 주변을 바라보다. 봄은 하나, 둘씩 쌓여져 시나브로 다가와 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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득명리 방턱골 칠곡 3번 버스 종점을 지나 대구식당 앞을 지나가며 벚꽃 터널 아래를 거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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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문으로 들어가는 길도 벛꽃 엔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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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산산성 진남문에 도착하다. 물 한모금 마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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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남문에서 남원리 공소로 내려가기 전, 지난 오름길의 저녁무렵 보게된 산수유 나무를 한 달 후인 오늘 낮에 다시 들여다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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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리로 내려가는 길. 자갈길이어서 내내 삭막했지만 오늘은 웬지 위에서 내려다보는 먼산의 풍경이 곁들여져 제법 '한티가는 길'속의 한 부분으로 바뀌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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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원리 공소에 이르다. 신앙공동체와 생활공동체이기도 했던 공소. 작은 교회와 같이 살아가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 속 것들을 기꺼이 내어 놓았던 그리스도교 초대교회의 모습이 분명 초기 한국교회의 공소 속에서도 있지 않았을까? 세월이 흘러 소공동체 활동이 요즘도 각 교회 공동체 안에서 열려있지만 각 공동체의 삶과 신앙은 훨씬 풍족해진 질과 양에 비해 아이러니하게 갈등과 분리를 연출하고 있음을...... 어설픈 우리 삶과 신앙의 현주소를 대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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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 큰 쉼터가 되어주는 남원공소 아랫 마을의 마을 정자와 큰 보호수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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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 논과 밭에도 봄이 스며들어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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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사 옆의 꽃나무. 소 축사가 있는 곳이어서 이 곳을 지날 때마다 약간의 분뇨 냄새를 맡게 되지만, 오늘 만큼은 봄꽃의 기운이 거북한 냄새를 넘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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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당신의 파밭에 유채꽃 몇 그루를 심어놓았다. 덕분에 한티가는 길 객은 작은 봄의 행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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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 정자 쉼터로 가는 길에 흰 제비꽃을 만났다. 여러색의 제비꽃들중에서 흰 제비꽃은 유별나게 다가온다. 소박함과 함께 파란 하늘 속의 작은 흰구름과 같은 느낌이 늘 그들에게 담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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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각정 쉼터로 내려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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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꽃길을 미소로 걷다. 청산농원으로 내려가는 봄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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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에 흩날려 내린 벚꽃비가 계곡물을 따라 내려와 쉬고 있다. 이들이 가는 곳은 어디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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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수변공원의 봄 햇살이 호수를 따라 건너 나에게 다가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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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명으로 내려서는 계단... 동명성당이 멀지 않았음을.... 동명성당 도착 후 동명면사무소 앞에서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다.
1주일후, 4월 13일 한티성지 내의 한창인 봄이 더 궁금해서 다시 한티로 올라왔다. 1주일 전 맺어있는 벚꽃 꽃망울이 웬지 1주일후면 한창일 듯 해서 그냥 궁금해서 집을 나섰다. 그런데 아직 한창에서 3~4일 조금 못 미친 듯....^^ 그러나 나름대로 한티에서 벚꽃 상춘객이 될 수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이 날도 역시 아직 하나 더, 산벚꽃 필 때의 올해 봄의 한티 풍경도 봐야 되는데... 라고 혼자 중얼거리다. 산벚꽃과 신록이 어우러진 4월말의 한티가 그냥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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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수난 성지주일, 성주간이 시작되는 바로 전날이었던 만큼 당신의 십자가 아래에 다시 서다. 그리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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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순시기 보라색 제비꽃. 오늘 피어있는 보라색 꽃이 성주간 성금요일을 예고하고 있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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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 당신들 아래에 양지꽃들이 말없이 피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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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 가를로 공소회장 앞에 서다. 당신께서 삶을 일구었던 밭에서 뜻하지 않은 날 돌아가시던 그 날을 머리 속에서 거슬러 올라가보다. 그리고 당신이 묻히신 그 자리에 지금은 노랗게 지천으로 피어있는 작은, 값없는 두메꽃들을 통해 당신을 바라보고 인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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솜나물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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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의 흔적이 묵은 꽃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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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번 순교자 묘역 부근에서 할미꽃을 발견하다. 흰백발이어서 白頭翁(백두옹)으로 불리는 할미꽃. 그리워 찾아간 세 딸을 보지 못하고 겨울 눈속에 묻혔던 할미가 새롭게 태어났다는 할미꽃의 슬픈 이야기. 오늘은 150여년전 이 곳에서 그냥 죽고 묻혔던 무명 순교자의 아픔이 이 할미꽃의 사연과 같지 않을까? 당신들께서 지금 새롭게 피어나 있음을 생각해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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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로 들어서는 입구 4월 중순은 벛꽃길. 이 입구 꽃길로 인해 한티재로 올라가고 내려오는 차들이 문득 성지 입구의 길을 따라 주차장으로 적지 않게 내려오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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벚나무 가지에 홀로 피어난 벚꽃 망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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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마을 억새마을 옛공소터. 억새마을 재조성 공사로 재현된 초가집은 사라졌지만 그 자리는 여전히 2019년 두메골의 봄이 들어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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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티성지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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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께서 만들어주신 봄과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
첫댓글 감사합니다.
정겨운 시선을 많이 배울 수 있는 걸음입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