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당겨 쓰는 일
김주안 글/이현정 그림 | 소야주니어 | 2024년 01월 05일
책소개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상’을 받으며 동시로 문단에 데뷔한 김주안 시인의 첫 동시집이다. 소재의 선택과 새로운 언어 조합이 돋보이는 참신한 동시 52편이 수록되어 있다. 쉽게 읽히면서도 반전이 있는 동시들은 어린이 독자들의 시선을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저학년부터 고학년까지 함께 읽을 수 있는 동시들에는 이야기가 담겨 있고, 상상력이 담겨 있다. 문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신인의 첫 동시집은 다음 작품집을 기대하게 만드는 책이다.
글 : 김주안
김주안 시인은 충청북도 청주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김현주.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아동복지학을 공부했다. 2022년 한국작가회의 「내일을 여는 작가」 동시부문에 당선되어 시를 쓰기 시작했다. 한국동시문학회, 한국작가회의, 충북작가회, 푸른아동청소년문학회 등에서 활동하고 있다. 매일 매일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즐거운 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림 : 이현정
바다와 커피, 음악 그리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카툰 및 일러스트 작가. 대학에서는 프랑스 문학을 전공했다. 강릉, 양양 등 로컬의 특별한 매력이 느껴지는 소재로 일러스트 작업을 하며 다양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기획하여 운영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그림 에세이 『카페인 강릉』과 컬러링북 『왜 머무느냐고 묻거든』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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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감 씨앗 / 김주안
반을 잘라봤다
씨앗 속에 뭐가 있나 보려고
작지만 보인다
단감나무 한 그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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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당겨쓰는 일 / 김주안
겨우내
따뜻한 비닐하우스에서 모종을 키운다
상추, 쑥갓, 고추, 오이
씨 뿌리고 물 주며
자식처럼 길러낸다
미리 봄을 당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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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별이 되다 / 김주안
우리는 그 친구를 크리스털이라고 불렀어
학교 가는 골목길 나무 대문 집 늙은 개
크리스털은 밤마다 컹컹 소원을 빌었지
수정아~그만 짖고 얼른 자라
시끄럽다 수정아~ 동네 사람들 다 깨겠다
크리스털이 밤하늘 별이 되고 싶다는 기도 소리라는 걸 우리는 다 안다
바람이 불던 어느 날
높은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컹컹컹 하늘을 향해 짖었지
바람은 부드럽게 크리스털을 감싸 안고
남쪽 하늘 오리온자리 옆에 앉혀주었대
하늘의 벼리 된 크리스털이 보고 싶을 때마다
그 별을 올려다보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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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놀이 / 김주안
고구마 밭에 들어선 아빠가
줄기 하나를 쑥 뽑았다
여름의 뜨거운 햇살과 장마를 이겨내고
파란 하늘 아래 줄지어 나오는 고구마
굵은 것 중간 것 가는 것
고구마 줄 세워
세상에서 제일 긴 기차를 만든다
타세요 타세요!
흙속에 놀던 벌레들
바람에 날려 온 감나무 이파리
풀벌레 소리까지 태우고
고구마 기차가 출발한다
어느새 저녁노을도
슬그머니 기차에 올라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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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리뷰
달팽이가 지나간 자리에는 흔적이 남고, 모래밭을 걸어가면 발자국이 남는다. 자국이나 흔적은 무언가가 지나가고 난 뒤에 새롭게 생성되는 세계이다. 우리의 시선이 문학작품을 지나고 나면, 자국보다 흔적보다 더 짙은 세계가 남는다. 그 남겨진 세계는 문학작품이 깊을수록, 그 작품이 새롭고 특별할수록 우리에게 더 진하고 특별해진다. 김주안 시인의 첫 동시집 ‘시간을 당겨 쓰는 일’을 우리 시선이 지나간 자리에는 이야기가 남는다. 짧은 시가 지나갔을 뿐인데, 재미있는 상상이 남고, 이야기가 머무르고, 또 다른 곳으로 향하는 시선이 남는다.
“반을 잘라봤다 / 씨앗 속에 뭐가 있나 보려고 // 작지만 보인다 / 단감나무 한 그루” 〈단감씨앗〉 전문
단감을 먹고 남은 씨앗, 호기심에 반을 잘랐더니 그 속에 담겨 있는 작은 씨앗 알갱이. 동시는 거기에 머물지만, 씨앗의 모양이 그림으로 남고, 그 씨앗 하나가 땅에 떨어져 싹이 나고, 나무로 자라는 긴 시간의 여정이 이야기로 남는다. 동시가 자국으로 남긴 이야기는 매우 진하다. 뭐든 파릇하면 다 돈이 되는 모종가게를 만난 후에 봄날의 주말농장을 떠올리게 되고(꽃다지), 채소들이 사라진 밭에 ‘혹시?’라는 물음만 던졌을 뿐인데, 어딘가에 있는 두더지는 이미 전세계 유일무이한 유기농두더지로 태어난다(유기농 두더지). 껍데기 뿐인 마늘을 만났더니, 매운 마늘 깐다고 거실에 펼쳐놓고 장난치는 아이들의 모습이 떠오른다(마늘).
김주안 시인의 시집에 자국으로 남아있는 깊은 세계, 다양한 이야기들을 만나다보면, 동시집 읽는 행복이 얼마나 큰 지 새삼 느끼게 된다. ‘동시 한 편 읽는 마음 온 누리를 밝게 한다’는 동시의날 슬로건처럼, 온 누리에 가득 채워질 이야기들이 꾹꾹 눌러 잘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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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평
김주안의 동시집 『시간을 당겨 쓰는 일』은 틸틸과 미틸 남매가 크리스마스 전야에 파랑새를 찾아 떠났다가 집으로 돌아와 자신들이 집에서 기르던 비둘기가 바로 그 파랑새였음을 깨닫는 여정과 닮았다. 망원경으로 별을 찾다가 현미경으로 내면에 있는 별의 조각을 발견하는 여정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 이도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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