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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례의 할아버지들
信天함석헌
우방도 적도 아닌 미국
금년은 미국이 나라를 세운지 200주년이 되는 해라 해서 곳곳에서 미국 이야기가 많습니다. 이 기회에 미국이란 어떤 나라냐 하는 것을 한번 생각해 보기로 합니다.
개인으로도 남을 바로 알려면 나를 바로 알아야 하고, 나를 바로 알려면 남을 바로 알아야 하듯이, 나라로도, 내 나라를 바로 아는 국민이 아니고는 남의 나라를 바로 알 수가 없고 남의 나라를 바로 아는 국민이 아니고는 내 나라를 바로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바로 아는 길은 서로 사랑하는 것 밖에 없습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더 깊이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지극히 높은 나라, 곧 너와 내가 하나인 지경에까지 가게 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반드시 고운 말과 이로운 물건으로 주고받으며, 서로 죽자 사자 하는 것 이 아닙니다. 그것은 도리어 옅은 감정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보다도 나와 너의 차별을 아니 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깊은 정신적인 것을 찾음이 없이는 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 서 예수께서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했고, 공자님은 “君子는 周而不比(주이불비)하고 小人은 比而不周(비이불주)”라 의젓한 이는 두루하고 끼리끼리 하지 아니하며 덜된 사람은 끼리끼리 하고 두루 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같은 뜻을 죠지 폭스라는 사람은 좀 더 알아듣기 쉽도록 “각 사람의 속에 있는 하나님의 것에 서로 대답해 주라”고 했습니다.
지금 세계를 휩쓰는 것은 이와 정반대의 바람입니다. 어느 개인도 어느 국민도, 서로 다 내편이냐 그렇지 않으면 대적이냐 하는 눈초리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고는 개인끼리도, 나라끼리도, 서로 알 수는 없고, 알지 못하니 서로 의심하고 미워할 수밖에 없고, 그러니 身外皆敵(신외개적)이라, 온 세상이 서로 다 내 원수니 세계가 어지러운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내가 믿는 교리나 의식을 따르면 다 선한 사람이라 하고, 그것을 따르지 않으면 덮어놓고 악한 놈이라 한다면, 그것은 세상을 건지는 참 종교가 아닙니다.
내 명령을 따라오면 좋은 국민이라 하고 내 말과 다른 의견을 가지는 사람은 무조건 허락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나라를 위하는 정치가 아닙니다.
내 그림, 내 시,내 노래만 좋다 하고 남의 그림, 남의 시, 남의 노래는 다 더럽다 한다면, 그것은 정말 예술이 뭔지 모르는 더러운 마음입니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든 것은 의심이나 미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서로 믿어 주고 알아주는 마음이요, 서로 경쟁하고 혼자하려는 버릇이 아니라 서로 협동하고 서로 나누는 버릇입니다. 사랑은 이해를 낳고, 이해는 협동을 낳아, 보다 더 힘 있고. 보다 더 아름답고, 보다 더 뜻있는 것에 이르게 합니다.
그러기 때문에 미국은 우리 우방이다 하는 눈으로 보아도 잘못이요, 적국이다 하는 눈으로 보아도 잘못입니다. 그래서는 참 미국의 모습은 못 봅니다. 우리가 미국을 위해 있는 나라가 아니듯이 미국은 우리 위해 있는 나라가 아닙니다. 모든 개인 모든 나라는 전체안에 있어서만 제 노릇을 할 수 있고 남을 위 할 수가 있습니다. 이웃은 자아의 또 다른 하나의 몸이요, 이웃 나라는「그 나라」의 또 다른 하나의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구경하는 심리도 잘못된 태도입니다. 관광이 성행하는 것은 문명의 타락입니다. 그것은 여가를 잘못 쓰는 데서 나온 것 입니다.
미국이 만일 200돐 기념의 가지가지 행사를 준비 했을 때 한낱 구경시킴으로 자랑하기 위해서 했다면 제 조상을 모욕하는 어리석은 국민입니다. 또 보러가는 사람이 그것을 구경하기 위해 갔다면 그것도 역시 제 나라와 남의 나라를 모욕하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역사 창조의 힘들고 거룩한 행동에 구경의 심리가 들어갈 여지가 없습니다.
구경을 즐기는 심리는 의무에서 면제됨을 얻자는 심리입니다. 그러나 의무에 어찌 쉬는 시간이 있을 수 있습니까? 가장 구경스럽다는 명승고적은 다 선조의 피 땀이 어린 곳입니다. 그것을 구경으로 내 놓는 국민도 어리석은 국민이요, 구경하는 국민도 나라 모르는 어리석은 국민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관광국책이란 아주 더러운 배금주의입니다. 배금주의는 개인으로나 국민 전체로나 결국 인격을 팔게 됩니다. 관광에 매춘이 따르는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만 아니라 구경은 전쟁과 통합니다. 관광은 종합적인 사치 행동인데 사치하려면 대공업 하지 않을 수 없고, 대공업하면 전쟁은 피할 수 없습니다. 문명이란 것이 결국 사치입니다. 이제라도 각 나라 국민이 사치하기를 그친다면 전쟁은 없어질 것입니다.
自由의 나라, 建國精神
남의 나라를 알려 하면 반드시 먼저 그 건국정신부터 보아야 합니다. 참나무는 도토리 에서 나온 것이요, 박넝쿨은 박씨에서 나온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알려면 백두산 천지 가에부터 가야하고, 기독교 문화를 알려면 메소포타미아의 우르지방에부터 가서 아브람의 자취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미국의 탄생을 알려면 어딜 가야 하나? 물을 것 없이 뉴잉글랜드 매사추세츠 주의 바닷가 플리머스 바위 등에 가서 「순례의 할아버지들」의 자취를 찾아야 합니다. 1776 년 독립선언을 했던 것을 크게 여겨 그것을 기념하여서 200년이라 하지만 그것은 말하자면 도토리가 이제 싹이나 굳은 땅을 들치고 올라온 것을 말하는 것이지만, 정 말 그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그 도토리 이 땅에 떨어져 들어가 아구를 트던 이야기입니다. 그것은 독립기념일 보다도 156년이나 더 전인 1620년의 일입니다.
사람들은 아마 미국이라 하면 맨 먼저 달러를 생각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계의 경제를 주장하는 것은 미국의 달러인 것을 누가 모르겠습니까? 우리도 미국의 경제 원조를 얻어서 어려움을 면했고, 아직도 나라의 존망을 생각할 때는 달러의 보유액을 가자고 그것을 헤아리려는 사람까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만이 아니고 세계에 그 원조를 받지 않는 나라가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미국을 우선 황금의 나라로 알려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오렌지는 어떤 나무냐 묻는데 대해 노란 과일이 듬뿍 달린 나무라 대답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노란 과일이 달린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으로 어찌 그 나무의 특성을 알 수 있습니까? 황금이 미국의 간데마다 그 존재를 나타내는 빛은 될지언정 그것이 탄생 겨우 200년에 세계 역사에 앞장을 서게 된 그 까닭의 설명은 못됩니다.
또 혹은 막강한 무력을 가진 나라라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도 사실입니다. 인류 역사상 무서운 핵무기를 먼저 만들어 써서 세계의 간담이 서늘하게 만든 것도 미국이요, 현재도 그것을 가장 많이 가지고 세계의 도처에 그 기지를 가지고 있어 많은 나라를 그 산하에 가지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인류 전체를 그 독재 밑에 넣으려고 악을 쓰는 공산 세력과 결러대어 냉전이건 열전이건 데탕트건 이 상태로나마 세계의 질서를 유지해 가는 것이 미국의 군사력임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공산 편에서는 또 이와는 정 반대의 소리를 하겠지만 그것은 잠깐 보류해 둡시다.) 그러니 미국은 무력의 나라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산이란 무엇이냐 하는 물음에 대해 높고 험한 바위의 솟은 것이라 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사실은 사실이지만 그것이 어찌 모세로 하여금 여호와를 만나게 하고 석가모니로 하여금 부처의 진리를 깨닫게 한 산을 알려주는 말이 될 수 있겠습니까? 군사력이 미국의 무서움은 될 수 있을지언정, 그 황금과 그 무력 때문에 시비를 듣는 데도 불구하고, 세계 각 나라의 큰 학자가 모두 그리 가고 놀라운 재주를 가진 예술가들이 그리 모여드는 까닭의 설명은 못됩니다.
사실 그러고 보면 미국은 학문 예술의 연총(淵叢)이라고 하고 싶어집니다. 제2차 세계대전 전까지만 해도 학문 예술의 중심은 유럽이었지 미국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한번 터지자 세계의 유명한 학자 예술가가 마치 폭풍 날에 모든 새가 늙은나무 가지 속에 숨듯 모두 미국으로 피란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이날껏 나이 어리고 경험이 적은 나라라, 깊이가 없는 문화라 깔보이던 나라가 일약하여서 모든 권위를 한 몸에 가지고 있는 노대국이 돼버렸습니다. 이제 이 우주 시대에 있어서 그 연구로나 기술로나 응용 실현의 역량에 있어서나 소련 하나를 내놓고는 어떤 나라도 거기 경쟁할 나라가 없습니다.
이 까닭을 뭐라 설명할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자유」라는 말이 있을 뿐입니다. 미국은 자유의 나라입니다.
순례의 할아버지들
우리가 미국을 알기 위해 플리머스에 가자했던 것은 이것을 보기 위하여서 한 말이었습니다. 순례의 할아버지들이란 영국에서 탈출해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왜 탈출 했던가 자유, 특히 신앙의 자유를 위해서 입니다. 때는 크롬웰이 혁명을 하고 있던 때입니다. 당시 영국은 귀족들의 호사(豪奢)로 극도로 썩어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신앙심 깊은 사람들 중에서 그것을 한번 쓸어버리고 나라를 건지자는 운동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엄격한 도덕 생활로 그것을 실현하려 했으므로 그 일파를 청교도라 불렀습니다. 크롬웰은 그 지도자였습니다. 그가 칼을 뽑아들고 의회에서 의원들을 내쫓고 시편을 높이 노래하며 싸움터로 나가던 그 군대 이야기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옷깃을 바로잡게 하는 장관이었습니다마는, 본래 도덕 적 혁명이 칼로 완성될 이가 없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민중들이 일어나 임금의 목을 자르고 왕정을 그만두고 공화정치를 하기 시작했지만 얼마 못가서 그것도 잘못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불철저에 불만을 품는 극단파가 일어나서 국교교회에 나가기를 거부하고 자기네끼리 자유로 모여 예배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을 탄압하고 모욕해서 분리파라, 혹은 독립파라 했습니다. 그 탄압이 지독했으므로 일시 홀란드로 피란하였다가 마침내 뜻을 결단하고 친척과 조국을 다 내버리고 자유로 양심대로 신앙하는 생활을 하기 위해 신대륙으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때는 1620년 초겨울이었습니다. 홀란드의 리든을 출항을 했는데, 기선이 발명되기 전인 때라 180톤 가량의 돛단배 목선으로 떠났는데, 그 배 이름을 메이플라워라 했고, 그 목적을 아메리카에 순례로 간다고 했었습니다. 분리파 사람들의 가족은 남녀 합하여 약 백명 가량이었고 그 수의 약 배되는 다른 사람들이 같이 탔었는데 도중에 풍랑이 심하고 병나고 하여서 약 절반 되는 사람이 죽고 66일의 고된 항해 후 그해 12월 26일 크리스마스 이튿날 밤 플리머스에 도착했을 때는 102명 이었습니다. 어름이 어는 바위 등에 발을 올려놓자 그들은 우리가 이제 각각 헤어져가면 우리 본래의 공동 목적을 또 잊어버리고 각자 개인 행동하기 쉬우니 헤어지기 전에 하나님 앞에 약속을 하자 의논하고 같이 엎디어 기도하고 맹약을 맺었습니다. 그것이 유명한〈메이플라워 맹약(Mayflower Compact)〉인데 이것을 미국헌법의 시작이라고 합니다. 그와 같이해서 그것이 신대륙에 생긴 맨 처음의 정착 식민단입니다. 맹약에 서명한 사람이 여자는 제외하고 남자 41명이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들을 불러서 그저 “먼저 온 이들(Old Comer)이라고만 했는데 200년이 지난 후 1820년에 “순례의 할아버지 들”’ (Pilgrim Fathers) 라는 이름이 시작됐습니다.
새 문명, 새 씨의 종자
순례의 할아버지들의 정신을 이해하기 위하여는 인류 역사 전체를 돌이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인류의 문명은 시작된 지 오랩니다. 동양은 잠깐 내놓고 서양에서 본다면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에서 시작이 되어 팔레스타인, 페르시아, 그리스, 로마를 거처 유럽에까지 이르는데 6,7천년 세월이 들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발달도 많이 했지만 처음부터 크게 잘못된 것이 있었습니다. 사람 사이에 차별을 두어 높고 낮고를 가린 것과, 강한 것이 약한 것을 억누르고 빼앗아 먹기 시작한 것입니다. 지금은 오래 되었으므로 처음부터 본성이 그런 것으로 알고 있지만 사람은 결코 본성이 그런 것 아닙니다. 일찍부터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그것을 가르쳐 주려 애써온 어진 이들이 있습니다. 모든 종교는 다 이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일단 조직된 사회생활을 하기 시작한 다음부터 지배자들은 그것을 들으려 하지 않고 계급적 압박과 전쟁을 버리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중세까지를 오면 문명은 상당히 발달했는데도 불구하고, 그것은 마치 문둥이같이 겉으로는 멀쩡하나 속은 썩은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고쳐 보려고 일어난 것이 15세기이래의 신생운동 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래 동안을 두고 참혹한 탄압과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 조금 전 신대륙이 발견되고 가지가지의 과학의 발명이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유와 평등과 평화를 믿는 많은 사람들이 유럽으로부터 신대륙으로 도망해 갔습니다. 이제 순례의 할아버지들이란 그러한 사람들 중의 한 단체입니다. 이들이 좀 더 철저한 것은 그 뜻이 강하고 생각을 치밀하게 계획적으로 하되 개인적이 아니고 단체적으로 한 일입니다. 말하자면 역사의식이 그만큼 깊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을 새 문명의 정설분자로 스스로를 택한 것입니다. 옛날 뉴잉글랜드 지방의 묘지에 가면 이러한 묘비명을 흔히 볼 수 있었다 합니다.
As you are now, so once was I:
As I am now, you soon will be;
Prepare to die and follow me.
「네가 지금 그렇듯이 나도 일찍 그러했노라.
내가 지금 이렇듯이 너도 머지 않아 그렇게 되리라.
죽을 준비를 하고 나를 따라오라.」
한 둘만 아니고 꼭 같이 이렇게 새긴 비석이 많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정신을 짐작할 수 있지 않습니까? 이들은 모두 탈출자들입니다. 소돔 고모라를 탈출하듯이 장차 망할 곳을 벗어나는 것입니다. 나는 기독교를 믿는지 70년이 되면서도 “나를 따라 오라!” 하신 예수의 말씀의 뜻을 깊이 느껴 보기를 이 시를 읽고나서야 했습니다. 이것은 죽은 사람이 산사람 보고 하는 말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은 감히 누구 보고 나를 따라오라 할 수 없습니다. 한 순간 후에 어떻게 될 것을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자기를 따르라 장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보면 이들 순례의 할아버지들은 죽기 전부터 죽을 준비를 하고 있던 사람들입니다. 무엇 위해? 자유 위해서입니다. 그렇게 볼 때에 “제 목숨을 얻으려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해 제 목숨을 잃는 자는 얻는다”하며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정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한 말씀의 뜻을 조금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는 죽기 전에 벌써 죽고, 죽었으므로, 이미 부활해 가지고 있었던 이입니다. 죽기 전에 스스로 죽을 준비를 하는 사람, 그가 자유 아니면 누가 자유이겠습니까? 누가 그의 자유를 뺏을 수 있습니까? “ 자유를 주시옵소서 아니면 죽음을 주시옵소서” 한 것은 헨리 파트리크의 입이 아니었습니다. 벌써 156년 전에 나온 부르짖음이었습니다.
끔찍한 종교 재판,종교 전쟁의 의미는 많은 사람이 죽고 죽이고 한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술틀에서 쥐어짬을 입어 빠져나가는 포도즙같이 7000년 구문명의 죄악의 유럽에서 빠져나가는 소수의 탈출자에 있었습니다. 그것이 새 문명을 한번 일으켜 보자는 새 씨의 종자였습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스물여섯에 남의 나라 스승의 입에서 처음 듣고 이날까지 잊지 못하며, 한것이 없어 부끄럽기는 합니다마는, 아마 이 이야기가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이 모양만큼도 못됐을 것입니다. 흰 머리털을 쓰고 재판정에 서면서도 터럭 끝만큼도 부끄럼을 느끼지 않는 것은 이 플리머스의 성자들 때문입니다. 내 속에 들어 있는 낡은 문명의 찌꺼기를 짜내어 하나님이 본래 주신 자유 평등 평화의 본 모습을 들어 낼 수 있다면 이보다 천백배 되는 부끄러운 고난이라도 당해보고 싶습니다. 아멘!
이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속에 혼의 기뻐서 하는 부르짖음을 듣는 한편, 우리 어른들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사실은 원망을 해서는 아니 되는 줄을 압니다마는) 왜 이 좋은 이야기를 내게 좀 해주지 않았던가? 교육은 뭘하는 것으로 알았던가? 좀 더 일찍 들었더라면 좀 더 자랐을지도 모르지!
이와 같은 느낌을 가진 것이 또 한 번 있습니다. 내가 났던 곳에서 바라뵈는 50리 밖에 용골산이 서 있었는데 서른이 넘을 때까지 그 산 위에 용골산성이 있고 그것이 임경업장군이 쌓은 것이라는 것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것이 장군이 의주부군으로 와있으며 청나라가 침 입 하는 것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라는 것과, 난장(亂杖)에 맞아 이슬로 사라지기 위해 봉천에서부터 호송이 되어 압록강을 건넜을 때, 남녀노소가 나가 말머리를 붙안고 “우리 사또님 오신다. 우리 사또님 오신다” 했다는 기록을 읽었을 때 나는 감히 못할 말로 “이런 이야기도 하나 아니해준다면 무엇을 가르치고 무엇을 기르잔 말인가?” 한 일이 있습니다.
순례족 덮어누른 황금족
역사의 근본 원리는 탈출입니다. 필그림 파더만이 아니라 끊임없는 탈출입니다. 탈출해서만 썩어짐을 면하고 빠져 죽음을 면하여 새 역사를 지을 수 있습니다. 아브람도 탈출자요, 모세도 탈출자요, 단군도 탈출자입니다. 삼천단부(三千團部) 거느리고 태백산에 내렸다는 것은 어디서 탈출해온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부여 사람들도 스스로 피란자라고 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맹자가 전국시대에 나서, 사람을 불쌍히 여길 줄 모르고 학대 하 는 군벌, 군주들을 보고 “숲을 위해 새를 몰아주는 것은 새매요, 소를 위해 고기를 몰아주는 것은 달(獺)이요, 탕무(湯武)를 위해 백성을 몰아주는 것은 걸주(桀紂)”라고 했습니다. 自 유의 상봉은 항상 몰아주는 짐승이 있어서만 올라갈 수 있습니다.
천지 창조 때부터 지어놓기는 하면서도 남북아메리카 대륙을 1492년까지 역사의 무대에서 감추어 두었다가, 멸망받기로 결정되어 있는 군주들, 귀족들,성직자라는 것들을 시켜 가진 수단으로 단련하여 순금같이 정화된 소수의 혼들을 몰아 그 구악이 물들지 않은 처녀 대륙에 보내어 한번 마음대로 새 경륜을 할 수 있게 했으니 그 얼마나 뜻 깊고 맛 있는 일입니까?
그러나 오묘하고 경탄할 것이 그것만인 줄 아십니까? 동북방의 뉴잉글랜드에 순례의 할아버지들을 드려 보내는 역사는 그와 대각적인 서남 지방에는 또 정반대의 탈출자들을 드려 보냈습니다. 본래 식민지 신개척지에는 서로 반대되는 두 종류의 인간이 가는 법입니다. 낡은 집에서 구속을 받기 싫어 탈출하는 데서는 마찬가지지만 그 마음보와 겨누는 것은 정반대입니다.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부지런히 선을 할 생각을 하는 것은 순(舜)의 무리요, 새벽부터 일어나 부지런히 이(利)를 얻기를 힘쓰는 것은 투(妬)의 무리” 라는 말이 있습니다마는 인류는 빛깔로 가를 것 아니라 선이냐 이냐로 갈라야 합니다. 순례의 할아버지가 순의 무리라면 서남방 금광꾼 목화 농사꾼은 투(妬)의 무리였습니다. 그들의 겨누는 것은 오직 황금이었습니다. 그 황금을 얻기 위해 아프리카에 가서 인간을 짐승처럼 사냥해다가 쇠사슬로 묶어 종으로 부린 것은 그들 돈벌이꾼 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의 충돌은 운명적이었습니다. 마치 한번 실지로 실험 해보라는 듯이 버리고 나온 낡은 문명을 간단하게 표본화 하여 대립 시켰습니다.
그러나 언제나 인심유위(人心惟危)요 道心惟微(도심유미)입니다. 인간은 약합니다. 황금족은 순례족을 덮어 눌렀습니다. 그것이, 적어도 외양으로는, 오늘의 미국입니다.
나는 미국과 소련은 인간 역사에서 독특한 의미를 가진다고 봅니다. 다른 나라는 다 신화, 전통, 미신에 얽혀, 사정에 따라 전개되어 오는 나라들인데, 이 두 나라만은 인간이 의식적으로 생각하여 자기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실현해 보자고(적어도 공적으로는) 일어난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성패는 인류 전체의 관심거리입니다. 그런데 지금 형편으로는 둘이 다 실패입니다. 미국도 제 이상에 충실치 못해 제국주의라는 말을 듣고, 소련도 본래 공산주의의 주장을 내 버리고 역시 해묵은 국가주의의 종이 돼버렸습니다. 이제 이 두 나라 가 서로 대립하여 세계를 지배하려 하고 있는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그 씨름이 의미하는 것은 다시 새로운 탈출의 강요 아닐까? 그러나 이번은 그것이 전구적(全球的)인 성격의 것이라는데 전에 것과 비할 수 없이 크고 심각한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우주 시대에 들었다고 합니다.
Prepare to die and follow me!〈죽을 준비하고 나를 따르라!〉
200돌을 맞은 미국 사람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미국은 국민은 있으나 민족은 없습니다. 불과 200년에 민족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국민은 훌륭하게 국민입니다. 세계 각 민족, 각 나라, 각가지 전통, 문화, 풍속 속에서 각가지 층의 사람을 모아 놓고 불과 200년에 무엇으로도 부술 수 없는 국민을 만들었습니다. 자연 조건이 도움이 된 것은 부인할 수는 없으나, 역시 사람의 일에는 사람이 주 요소입니다. 임금이란 우상을 두지 않은 것, 귀족이란 미신을 허락치 않은 것, 그리고 순전히 씨의 나라를 세우려한 것은 어질고 장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미국은 타락한 것을 부인하기 못할 것입니다. 누구보다도 그들의 자녀들이 그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나는 히피들의 고발을 옳다고 들어 주는 사람입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초기만 해도 미국은 스스로 자유의 기수로 자임하는 기색이 보였는데 적어도 그 중엽 이후부터는 스스로 그것을 포기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미국의 소생(蘇生)(Greening of America)를 말하는 사람이 그 첫 허두에 미국은 기업 국가로 전락했다고 고백했습니다. 미제국주의라는 비난을 들어도 변명할 여지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워터게이트와 월남패전에서 희망을 보여 주는 것이 있습니다. 그만한 대국으로서, 그만한 물력을 가지면서, 비록 사정에 몰려서 했다고는 하더라도, 능히 패전을 하는 것은 속에 역시 물질이나 명예보다도 더 철저히 여기는 것이 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실 승전 보다는 패전을 능히 행하는 데 큰 것이 있습니다.
다른 말은 빌 것 없이 그들의 선조의 유언을 빌어 200년 축하의 말로 삼습니다.
Prepare to die and follow me!
씨알의 소리 1976. 7 55호
저작집; 7- 235
전집; 5- 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