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부르는 애국가는 마음을 절절하게 한다.
경상도 진동에 살던 17살 소녀 남이는 어느날 일본군의 손에 끌려 배를 타고 캄보디아 위안소에 오게 된다. 할머니의 삶은 처참함 그자체다. 어린나이에 고향에서 친구들과 뛰어다니며 놀던 그때가 그립다. 고향의 가족이 그립다.
1942년 일제강점기 일본은 전쟁이 한창이었다. 아시아 곳곳을 점령하며 그것에 위안소를 설치하고 어린 소녀들을 고통속에 살게했다. 해방이 될무렵 남이는 고향으로 돌아오려고 했지만 일본군 하나가 자신이 책임질테니 가지말라고 설득한다. 그선택이 할머니는 고향땅에 55년만에 밟게 되고 혼자서 위안부라는 신분을 숨기며 밀림속에서 일본군 아이를 낳고 숨어서 7-8년을 살았던 것이다. 어차피 책임지지도 않을 거면 왜 고향에 가지 못하게 했을까? 원망스럽다. 자신은 전쟁이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가 가족을 꾸리며 살았다고 하는데.. 남이는 끝까지 남아 모든 것을 숨긴채 캄보디아에서 가족을 만들었다.
그리운 그곳, 고향, 가족을 뒤늦게 찾았지만 고향도 가족도 찾기 쉽지 않다.
고향땅을 밟은 남이는 자신의 원래 이름 나미가 아닌 남이를 알게 되고 가족을 만나지만 부모님은 돌아가셨다. 끝내 보지 못하고 돌아가신 부모님을 생각할때 불효한 생각에 눈물이 한없이 쏟아진다. 눈을 감으면 선명하게 떠오르는 고향의 모습이 시간이 지났음에도 변하지 않았다.
힘없는 국가, 나라를 잃은 민족의 처지를 나미, 남이할머니를 통해 처절했던 지난날을 보여주었다.
버티고 참고 살아오신 이남이 할머니께 감사드리고 지금은 고인이 되셨지만 그곳에서는 평안하시기를..
아직 살아계신 할머니 9분을 위해 일본은 진심어린 사과를 해야된다.
한사람의 인생을 송두째 빼앗은 일본은 반성과 사과와 그분들께 배상해야한다.
#꼬꼬무
#이남이할머니
#캄보디아
#위안부할머니
#일본은 자국민 위안부를 동원하지 않은 이유는
자신의 누이, 동생 같아서 사기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식민지인 우리나라 여성들을 위안부에 동원된 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