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랑꼴릭 메두사 외 1편
정숙자
메두사는 천 개의 눈과 천 개의 손을 가진 부처만큼이나 많은 머리를 가졌지만, 허억~
천수천안. 그 부처가 부러울 따름이다
머리는 하나만으로도 수천수만의 현안을 끌 수 있으나 정작 행동력은 손이 아닌가
무슨 소용이랴. 손이 한 벌이라 황금의 시간들도 한 줄기로 흐르고 마는구나
메두사에게 천 개의 손이 있다면
하루가 비록 짧을지라도
가로세로 엮을 것을,
메두사는 오늘도 많은 눈 열렸건만 하는 거라곤 그 눈들을 껌벅거리는 일… 뿐
해가 벌써 기우는데 메두사의 머리들은 공중에 매달려 검은 포도송이가 되어가는 것이다
이슬 프로젝트-38
신과 벌// 바람 사이 걸어 다닌다. 몸보다 멀리 뜻으로 살아 숨 쉰다. 사랑과 손톱까지도 엄연히 존재한다. 심장과 눈과 귀와 깃, 온전히… 우리 곁에.
꿀벌은 늘 빼앗기지만 정신만은 그에게 남는다. 꿀벌 외에 어떤 종도 그를 대체하지 못한다. 그것으로 족하다. 솜털 하나 흩트리지 않고… 머물 동안.
고통은 일상이다. 습관>거기서 풀린다. 숙독>거기서 얻는다. 탓하지 않음. 혈관 가득 채워주신 맑음 푸름 의지하며 매만지며 고마워하며… 이런 것이.
발가락에 적신호 흥건할 때면 대지의 말이겠거니. 어느 날 문득 초원이 펼쳐지면 바람의 위로이려니. 꿀벌은 저항 안 하고 투정도 버림… 오직 난다.
또 한 번 햇빛 짓눌리는 풋-봄. 이는 각별히 주어지는 ‘존재 증명이야’ 수용한다. 그는 낢의 이유가 꿀이 아니라 꽃들의 수정에 있음을… 왼다. 산다.
정숙자 시인 (1952.09.16~2024.12.10)
1952년 전북 김제에서 출생, 동국대 교육대학원 철학 전공
1988년 『문학정신』으로 등단, 시집 『공검 & 굴원』 『액체계단 살아남은 니체들』 『뿌리 깊은 달』 등
산문집 『행복음자리표』 『밝은음자리표』, 김삿갓문학상, 동국문학상, 질마재문학상 등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