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 마리아! 가지 말아요!”
워리는 각본에도 성경에도 없는 소리를 질렀다.
이 뜻밖의 대사에 얽힌 순진성과 진실성이야말로…….
〈가이드 포스트>라는 잡지 속에 다음과 같은 실화가 담겨 있었다.
어느 작은 동네였다. 벌써 옛날에 있었던 사건이지만, 그 사건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그날 밤을 잊지 못한다.
그때 워리는 9살. 실은 4학년이어야 했는데 2학년이었다. 지적 능력이 다소 뒤떨어지는 소년이었다. 그러나 2학년 꼬마 친구들의 사랑을 받는 워리이기도 했다. 키가 커서 게임할 때마다 이기므로, 꼬마들은 워리를 항시 빼놓았다. 그래서 언제나 웃음과 도움으로 꼬마들을 쫓아다녔다.
그해도 성탄절이 가까워지자, 워리는 퉁소를 든 목동이 되는 것이 소원이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워리에게 더 중요한 역(役)을 맡겼다. 여관집 주인역이었다. 선생님은 워리가 요셉과 마리아에게 “아니오”라고 말하면 연극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성탄절이 오고, 교회에는 수많은 관객들이 모여들었다. 드디어 마리아와 요셉이 여관으로 오고 있었다. 그리고 요셉은 여관집 문을 힘 있게 두드렸다.
“워리!”
여관집 주인이 나왔다.
“무엇을 원하시오?”
“머무를 방을 구합니다.”
“없소. 여관은 모두 찼소. 딴 곳을 찾아보오.”
“주인! 우리는 멀리서 왔습니다. 아내는 출산할 날이 찼고, 쉬어야 할 곳이 필요합니다.”
이때였다. 워리는 마리아를 오래 쳐다보았다. 말도 없이 오래 쳐다보았다. 무대 뒤에서 대사를 읽어 주던 선생님은 큰 야단이 났다. 대사를 잊은 줄 알고 자꾸 읽어 주었다.
마리아를 쳐다보던 워리는 각본대로 “안 돼요. 가버려요”라고 대답했다. 요셉과 마리아는 슬픈 듯이 뒤로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
이때였다.
각본에 워리는 안방에 들어가야 했으나, 워리는 문간에 서서, 걱정과 눈물로 마리아와 요셉이 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러다 워리는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
물론 그것은 각본에도 성경에도 없는 소리였다.
“오, 마리아! 가지 말아요. 마리아를 데리고 돌아와요.”
얼굴에 미소를 활짝 띤 여관집 주인, 워리!
“내 안방을 써요. 내 방에서 쉬란 말이에요.”
어떤 이는 연극을 망쳤다고 하지만, 이 장면을 지켜본 수많은 관중들은 가장 뜻깊은 크리스마스 연극을 보았다고 이야기했다.
어른들이 어린 아이들에게서 배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사물을 바라보는 순진성과 진실성은 특별히 오늘의 우리 세계에 필요한 것이 아닐까? 각본과 스케줄에 얽매어 사는 현대인들이 순간적으로 나타나는 마음의 요구에 얼마나 잘 순종하고 있는지?
무엇이 삶을 아름답게 하는가
김득중
삼민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