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문화유산 (325) / 이탈리아
치렌토·발로 디 디아노 국립공원, 파에스툼과 벨리아 고고 유적지
(Cilento and Vallo di Diano National Park with the Archeological sites of Paestum and Velia, and the Certosa di Padula; 1998)
캄파니아(Campania) 주 살레르노[Province of Salerno]에 속하는 치렌토(Cilento)와 그 일대 지역은 선사시대에서 중세시대까지 주요 무역로로서 문화적・정치적 교류의 중심지였다. 동서로 뻗은 3개의 산맥을 따라 있는 신전과 주거지는 당시의 역사적 발전을 생생하게 증언하는 탁월한 문화 경관이다. 이 지역은 그리스 식민 도시들인 마그나 그라이키아(Magna Graecia)와 토착민인 에트루리아 인・루카니아 인이 세운 도시들 사이의 경계 지역에 있다. 고대부터 주요 도시였던 파에스툼(Paestum)과 벨리아(Velia)의 유적도 이곳에서 발견되어 고대에 이루어진 문화 교류를 증언하고 있다.
치렌토 지역은 선사시대와 중세에 동서로 뻗어 있는 산맥의 등성이를 이용하여 보기 드문 방식으로 문화・정치・상업이 교류한 교통로였다. 아드리아 해와 티레니아 해 사이에서 중요한 지역이었던 치렌토는 우수한 문화 경관을 보여 주고 있다. 치렌토 국립공원은 본래 티레니아 해로 흘러 내려가는 강들 중 몇 개의 계곡에 의해 갈라진 산악 지역이다.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이곳에서는 250,000년 전 최초로 호모 에렉투스(Homo erectus)가 해안가 동굴에서 살았다고 한다. 중석기시대에는 이 지역으로 네안데르탈 인들이 들어와 여러 곳에서 무스테리안(Mousterian)기의 가공 유물을 남겼다. 네안데르탈 인에 이어 호모 사피엔스 사피엔스(Homo sapiens sapiens)가 초기 구석기시대와 중석기시대에 계절에 따라 이곳에 움막을 짓고 살았다. 토양과 기후가 좋아 신석기시대에 정착 농경이 도입되었다. 리파리 제도[Lipari Islands]에서 발견된 흑요석을 통해 이즈음 해상 무역이 시작되었음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루카니아 해안을 따라 비교적 좋은 항구들에서 이런 무역이 촉진되었고, 강의 계곡을 따라 지형적으로 교통로가 생긴 것임이 분명하다. 신석기 주거지는 국립공원 지역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 가우도 문화[Gaudo Culture]는 보다 진보한 지중해 문화가 이탈리아 반도로 진입하는 데 있어서의 치렌토가 어떤 특별한 역할을 했는지 정의하는데 도움을 준다. 가우도 문화는 루카니아와 칼라브리아를 넘어 광범위하게 퍼져 있던 신석기 문화이다. 청동기 및 철기시대에 소규모 집단의 전사들과 상인들이 이 지역으로 이주해 들어왔다. 이에 대응하여 흩어져 있던 이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큰 민족 집단을 형성하여 최초의 도시형 사회 경제 구조가 만들어졌다. 북부에서 소개된 이동식 유목이 기원전 제2천년기 초에 성공적으로 자리를 잡았으며, 인간의 주거에 특히 내륙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 기원전 제2천년기 말에 미케네와의 무역이 늘어나고, 청동기 말의 세련된 문화와 기술이 그리스에 소개되었다. 미케네의 붕괴로 동지중해와의 무역이 크게 쇠퇴하면서 반도 안에서의 무역이 활발해져 치렌토도 역시 북부 이탈리아의 에트루리아 문화와 중요한 경계를 이루게 되었다. 기원전 9~기원전 7세기에 볼로냐 지방으로부터 전사 계급 사회, 즉 빌라노반 문화가 들어와 퍼졌으며 여러 가지 경관에 흔적을 남기게 되었다. 그리스 식민지 건설이 기원전 7세기 말에 시작되어 치렌토 북부의 아그로폴리(Agropoli)와 ‘포세이돈의 도시’, 즉 로마의 파에스툼에 해안 무역 거주지가 세워졌다. 엘레아(Elea; Velia)는 기원전 540년에 세워져 고대 세계에 가장 영향력 있는 교육 중심지가 되었다. 정신세계의 독자성과 영원성을 토대로 한 엘레아 학파는 크세노파네스[Xenophanes of Colophon]에 의해 설립되었으며, 후에는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와 제논이 이끌어 갔다. 특히 천문학과 의학에 있어 경험적 방법의 발달로 유명하다. 기원전 5세기 말에 그리스 생활양식을 따르던 힉소스 왕이 이끄는 내륙의 루카니아 인이 엘레아를 제외하고 그리스의 해안 도시 동맹을 무너뜨렸다. 이때 엘레아는 지중해를 둘러싼 다른 그리스 식민지들과 상업적으로 연결될 수 있도록 제외하였다. 새로운 도시 문화가 성장하고 새로운 마을들이 많이 건설되었으며, 넓은 삼림 지역은 농경을 목적으로 또는 올리브나무와 포도나무를 심기 위해 벌목되었다. 이 지역은 기원전 3세기 말엽에 로마의 영토로 어쩔 수 없이 합병되었다. 치렌토를 가로지르던 고대의 도로 체계를 밀어 내고 로마 인들은 주요 도로망을 건설하였고, 그 결과 내륙의 도시들은 그 중요성을 잃게 되었다. 서로마제국이 약화되고 도로와 다리가 파손되고 나서야 이전의 소통 체계와 주거지가 다시 그 모습을 되찾게 되었다. 중세의 봉건시대의 성과 종교의 토대가 세워지고 이전 로마의 테두리 안에서 그리스와 루카니아 인 마을이 다시 살아나면서 그 경관이 오늘날까지 존속되고 있다 가장 주목할 만한 고고학적 유적지는 그리스 도시인 ‘포세이돈의 도시’ 파에스툼 유적지이다. 도시의 성곽 안쪽에 남북으로 난 거리 카르도 막시무스(Cardo Maximus)와 ‘신성한 길[Sacred Way]’ 사이에는 특별한 공공건물들이 다수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뛰어난 것이 헤라(Hera) 신전, 케레스(Ceres) 신전, 포세이돈(Poseidon) 신전이다. 그 중 헤라 신전이 가장 오래되었고, 이곳의 다른 신전들처럼 도리아 양식이다. 케레스 신전은[아마도 아테나에게 헌납된] 기원전 500년경에 건설되었다. 파에스툼 신전의 규모는 가장 작지만 공간 사용과 비율은 헤라 신전보다 더 탁월하다. 포세이돈 신전의 건축가는 기원전 5세기 중반부터 아테네에 있는 포세이돈 신전에서 영향을 받았음이 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의 아고라 위쪽에 지어진 로마의 광장 유적지가 발굴되었으며 현재 전시 중이다. 이 널찍한 노천 공간은 회의실[bouleuterion], 법정[curia], 그리고 지붕 있는 시장[macellum]으로 밝혀진 공공건물들로 둘러싸여 있다. 엘레아[벨리아]에는 별로 남아 있는 것이 많지 않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이 웅장한 로사 문[Porta Rosa]이며, 그리스의 아치형 문으로 가장 오래되고 가장 완벽한 예이다. 다른 볼 만한 것들 중에는 기원전 6세기부터 있었던 아크로폴리스의 위풍당당한 방어벽과 아름답게 포장된 도로와 몇 개의 신전 유적지가 있다. 포카이아 인들이 해안 지역을 버리고 떠나자 벨리아에 남아 있던 주민들은 내륙에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였다. 노비 벨리아(Novi Velia)는 치렌토 중세 마을의 전형으로서 구릉의 꼭대기에 전략적인 방어 지역과 산등성이를 따라 고대의 교통로에 건설되었다. 집들은 중앙의 성이나 망루 주변으로 모여 있으며, 다른 두드러진 특징으로는 교회와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 건물들 중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발로 디 디아노의 파둘라(Padula)에 있는 체르토사 디 산로렌초(Certosa di San Lorenzo) 수도원이다. 1306년에 건립되기 시작했지만 현재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바로크 양식으로서 17, 18세기에 지어졌다. |
첫댓글 아무리 보아도 인류 문화의 중심은 지중해 주변 인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