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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임(赴任)
임무를 받아 근무할 곳으로 간다는 뜻으로, 공직자가 임명을 받아 새로 맡겨진 자리에 감을 말한다.
赴 : 다다를 부(走/2)
任 : 맡길 임(亻/4)
(유의어)
착임(着任)
목민심서 12편의 제1편은 부임(赴任)이다. 목민관인 지방관은 요즘처럼 국민투표로 선출하는 제도가 아니라 국왕이 직접 임명했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기 전인 1995년 이전에는 도지사, 시장, 군수 등을 모두 정부에서 임명했으니 그때와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목민관은 임금의 명을 받고 현지에 부임했다.
1편(부임)에는 6개 조항이 있다. 첫 번째 조항은 바로 임금의 임명 절차인 제배(除拜)다. 제배는 임명장을 받는 일을 뜻한다. 임금이 제수(除授)해준다고 해서 ‘제배’는 ‘제수’와 같은 의미로 사용했다.
옛날이나 지금 모두 목민관인 지방관에 임명을 받으려면 지방관을 하고 싶은 사람이 당연히 엽관운동을 벌인다. 선거를 통해 지방관이 되는 요즘으로 보면 선거운동을 통해서 자기를 뽑아달라고 애걸복걸하는 것과 같이 자기를 임명해줄 것을 바라는 엽관운동을 하는 것이 일반적인 사례였다.
목민심서 48권 중 제1편 제1조항인 ‘제배’에서 다산의 주장은 역시 색다른 주장으로 첫 줄을 기록했다. “다른 벼슬이야 하고 싶으니 임명해 달라고 요구할 수 있으나, 목민관인 지방관만은 시켜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
목민관이 얼마나 중요하고 그 임무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한마디로 설명해주는 내용이다. 중앙이나 지방을 가리지 않고 모든 벼슬아치는 목민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중앙 공무원은 공무원이라고 말하지만 지방을 책임지는 공무원은 목민관이라고 부른다.
지금은 중앙이나 지방 공무원은 모두가 차이 없는 공무원이다. 하지만 조선시대 지방에는 목민관 한 사람만 관(官)이고 나머지는 모두 아전들이 실무 행정을 집행하고 있었다. 즉, 목민관만이 정식 공무원이라 할 수 있다.
목민관은 원님이나 수령(守令)이라고 부른다. 현령, 현감, 부사, 목사 등 지역의 크고 작음에 따라 혹은 그 지역의 중요도에 따라 직급의 차이는 있었다. 모두 맡은 지역의 입법, 사법, 행정 3권을 행사하는 권한이 있으니 그에 따른 책임도 막중했다.
중앙 공무원인 벼슬아치들이야 맡은 직무만 성실하게 수행하면 별 탈이 없겠지만, 수령만은 권한이 막강한 만큼 그에 따른 책임도 크다.
수령은 만백성을 주재하니 정치상 온갖 중요한 기능을 수행함으로 대소의 차이가 있을 뿐 천하국가를 다스리는 일과 같은 임무다. 따라서 목민관은 모두 제후(諸侯)와 같다.
다산은 목민관에 대해 한 나라의 제후, 곧 임금과 같은 임무를 수행하는 위치라고 설명했다. 그렇게 중요한 자리고 책임이 무거운 직책인 만큼 수령만은 본인이 직접 시켜달라고 요구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을 가장 먼저 언급했다.
목민관은 재주와 능력이 뛰어나다고 인정받은 사람 중 중앙 중신 등에 의해 추천을 받은 사람만 임명해야 한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다만 다산은 예외적으로 자천에 의한 임명의 길을 열어놨다. 다만 한 고을을 맡아 백성들을 편안하게 이끌 확실한 자신이 있고 주변으로부터 그 능력을 인정받는 경우만 해당된다고 했다.
🔘 부탁하지 말고, 고마워하지 말고, 거절하기.
목민관은 능력이 안 되면 부탁하지 말고 임명된다고 해도 자식과 부모에게 사랑을 베풀지 못하니 고마워하지도 말아야 하며 능력이 안 된다고 생각하면 반드시 거절하라는 내용이다.
정리하면 다산은 목민관이야말로 자신이 직접 하고 싶다고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자격을 갖춘 능력자가 추천을 통해 임명돼야 막중한 책임을 완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신중하게 인물을 골라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제배에서 다산이 특별하게 언급했던 내용이 있다. 중앙에서 임명 절차가 이뤄지면 부임 전 해당 고을에 부임 사실을 알려준다.
이때 부임 시 발생하는 교통비, 동원 인력 등 모든 비용을 중앙에서 지급한다. 이 때문에 해당 관청에 부임 준비를 할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미리 전하면 백성들이 크게 환대할 것이라고 했다.
그동안 많은 수령들은 모든 비용을 중앙정부에서 담당해줬음에도 상습적으로 부임 준비를 해당 고을에 맡겼다. 이 과정에서 개인 착복이 있었음은 물론이다.
그런 것에 구애받지 않았을 때 비로소 목민관으로서 위엄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이 다산의 생각이었다. “목민관의 위엄은 청렴에서 나온다.” 다산이 남긴 명언 중 하나다.
두 번째 조항은 치장(治裝)이다. 목민관에 임명돼 부임하면서 어떤 옷을 입고, 어떤 말을 타고 가야 하는지에 대한 얘기다.
다산은 부임을 위해 떠날 때 의복은 평상시 입던 대로 하고 말이나 가마 등 꾸밈 또한 평상시와 꼭 같도록 하라고 했다.
백성에 대한 애정은 절약해서 쓰는 데 있다. 절약해서 쓰려면 검소해야 한다. 검소하게 생활할 수 있어야 청렴해지고 청렴한 뒤라야 자애로울 수 있으니, 검소한 생활이 목민하는 데 가장 힘써야 할 일이다.
愛民之本, 在於節用. 節用之本, 在於儉. 儉而後能廉, 廉而後能慈, 儉者, 牧民之首務也.
다산은 옛날의 어진 목민관들이 얼마나 검소했는지를 열거했다. 대표적인 예를 하나 들어보면 다음과 같다.
뒷날 참판 벼슬을 지냈던 유의라는 분이 충청도 홍주(지금의 홍성) 목사로 재직할 때 일이다. 찢어진 갓과 성긴 도포에 찌든 색깔의 띠를 두르고 조랑말을 탔으며 이부자리는 남루하고 요나 베개도 없었다.
이런 모습으로 위엄을 세우자 가벼운 형벌 한번 시행하지 않았으나 간사하고 교활한 무리들이 숨을 죽였다. 그때 나(다산)는 홍주목 예하 벼슬인 금정찰방으로 있어서 직접 목격했던 일이다.
또 다산은 “이불이나 침구, 솜옷 이외에 책 한 수레를 싣고 간다면 맑은 선비의 소지품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임지에 책을 한 수레 갖고 가는 목민관, 얼마나 멋진 목민관인가.
사조(辭朝)와 계행(啓行)이라는 조항도 빼놓을 수 없다. 사조란 임명된 관원이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올리는 절차다. 사조를 설명하면서 다산은 자신의 경험담 하나를 적어놨다.
정조 21년인 1797년 여름, 자신이 곡산도호부사로 임명을 받고 임금에게 하직인사를 올릴 때다.
임금이, “내가 특별명령으로 너를 임명했으니 가서 잘해 나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도록 하라.”는 당부 말씀에 등에 땀이 줄줄 흘렀다는 이야기를 숨기지 않고 기록했다.
계행이란 부임하는 행차를 가리키는 말이다. “부임하는 길에는 무엇보다도 엄하고 온화해 과묵하기를 마치 말 못하는 사람처럼 처신하라(啓行在路, 亦唯莊和簡默, 似不能言者)”고 했다.
다산은 좋은 벼슬에 올랐다고 경솔하거나 건방 떠는 일이 없이 위엄이 있지만 온화한 모습과 과묵한 태도를 취해야 한다고 권했다.
부임편 다섯 번째 조항은 상관(上官)이다. 상관이란 취임과 같은 말로 임명을 받아 맡은 지역에 부임해 목민관으로 취임하는 일이다.
맨 먼저 지킬 일은 취임 날짜를 미리 예정하거나 날짜를 택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도착하는 날 취임하면 되지, 날짜를 미리 예정하고 취임식을 거행해 실속 없는 허세를 부리지 말라는 뜻이다.
취임하면 곧바로 하급 관리들의 참알(새로 벼슬을 받은 중하급 관원들이 상급 관청을 방문해 인사하는 의식)을 받아 소속원과 인사를 통해 그들과 소통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했다.
관리들과 인사를 마치고 나서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다산은 한 고을 지도자인 목민관이 어떤 자세와 어떤 마음가짐을 지녀야 할 것인가를 명확히 제시했다.
참알하고 관리들이 물러가면 백성을 보살펴줄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너그럽고 엄숙하고 간결하고 치밀하게 규모를 미리 정해야 한다. 오직 그 당시 형편에 가장 적합한 내용으로 정하고 굳게 스스로 지켜나가야 한다.
또 다산은 고을의 공자묘(孔子廟)인 향교(鄕校)를 참배하는 일로 ‘상관’의 업무를 마무리해야 한다고 했다.
⏹ 목민심서(牧民心書)
부임(赴任) 육조(六曹) : 취임
제배(除拜) : 스스로 직위를 얻으려고 하지 않는다.
제배(除拜)란 관리가 벼슬자리에 임명되는 것을 말한다.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이 제배(除拜)다.
다산이 제배(除拜)에서 핵심적으로 말하고자 하는 바는 '애써 목민관의 벼슬을 구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지도자의 자리를 스스로 구하지 말라고 한다.
인간의 두드러진 본성 중의 하나는 우월감에 대한 열망이다. 남보다 더 나은 위치에 있기를 소망하는 것은 인간의 본능이다. 따라서, 사람들은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를 원한다. 나아가, 어떻게든 지도자의 자리에 올라 보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기도 한다.
그런데 다산은 '스스로 애써서 목민관의 벼슬을 구해서는 안된다.' 라고 말한다. 이 말은 목민관의 자리는 그만큼 책임이 막중하므로, 자기만족을 위해 자리를 구해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목민관은 덕망과 위엄을 함께 갖추어야 하며, 굳은 의지와 총명함도 있어야 한다. 이런 자질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목민관의 벼슬에 오르게 되면,백성들은 고통 당하게 되며. 백성들의 원망으로 그 재앙이 자손들에게까지 미치게 된다. 그러므로 스스로 청하여 목민관의 벼슬을 구해서는 안된다.
🔘 봉사와 희생의 자리
다산의 이 말은 오늘날의 지도자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
지도자는 자신의 욕망의 충족이 아니라. 대중의 필요를 충족시켜 주어야 할 사람이다.
지도자의 자리는 출세나 성공을 위한 자리가 아니라, 봉사와 희생의 자리가 되어야 한다.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기 전까지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고, 자신이 성장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지도자가 되는 순간, 자신을 위해 살기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헌신하며 다른 사람을 성장시키는 일을 핵심 과제로 삼아야 하는 것이다.
기업의 지도자도 마찬가지다. GE의 잭 웰치 회장이, “어떤 CEO는 최고 지도자가 된 날이 자신의 인생에서 최고의 정점에 오른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임을 명심해야 합니다.”라고 한 것도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것은 자신의 만족을 위함이 아니라, 바로 그날부터 구성원의 삶을 향상시킬 막중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이처럼 지도자의 임무는 자신이 하고 싶다고 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것이다. 준비된 사람만이 그 자리에 나갈 수 있다. 빈 수레로는 물건을 찰 수 없듯이, 준비도 되기 전에 자리에 오르게 되면 좋은 결과를 얻지 못한다.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기 전에 온갖 고난과 역경을 통해서 훈련되고 단련된 사람이 자신의 그런 책임을 가지고 국민과 사회에 봉사하고자 하는 것이 지도자의 자리다. 지도자의 자리는 자신을 위해 훈련받는 자리가 아니라. 그동안 훈련한 것을 가지고 서비스하는 자리인 것이다.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지도자로 나섰다가 많은 사람들에게 피해를 입히고 자신은 창피만 당하고 마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그런데 실제 현실에서 보면, 서로 지도자를 하겠다고 나선다.
대중이나 국민을 위해서 더 열심히 봉사하고 희생하겠다는 의지와 표현이라기 보다는 지도자의 자리가 주는 부수적인 이익 때문이다. 그런 이익의 대표적인 것이 재물이나 돈이다.
지도자의 자리는 출세의 도구가 아니며, 돈과 같은 것을 직위의 잉여 가치로 누리는 자리도 아니라는 것이 다신의 제배(除拜)의 의미다.
선거에서 당선된 어떤 정치인이, ‘당선되고 보니 돈을 주겠다는 사람이 줄을 섰더라.‘는 말을 했다. 이제는 지도자에 대한 이런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기업의 지도자에게도 오로지 돈을 벌기 위해서라면 기업을 하지 말라는 말을 한다. 돈을 많이 벌고 싶은 욕망만으로 사업을 해서는 안되며, 그런 마음으로 사업을 해서는 성공할 수도 없다는 것이 성공한 기업 지도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돈을 버는 것이 주목적인 기업도 그러할진대, 하물며 정치 지도자가 돈을 위해서 지도자의 자리를 구하는 것은 전혀 맞지 않는 일이다.
중국의 가전업체인 하이얼의 장루이민의 회장은 경업보국(敬業報國)의 이상을 품고 경영한다고 한다. 경업보국이란 기업을 살려 나라에 보답하다는 뜻이다.
그가 ‘다국적 기업과의 경쟁에서 중국 기업이 모두 실패한다면, 하이얼은 가장 마지막으로 쓰러지는 기업의 되고 싶다.’라고 한 말속에서 지도자로서의 책임감과 비장한 결의를 읽어볼 수 있다.
정치든, 경제든 지도자는 대중과 국민을 먼저 생각해 한다는 것이 지도자의 자리를 스스로 구하지 말라는 뜻이다.
🔘 올바른 지도자 상
다산은 목민의 첫머리에서 지금까지의 지도자 상(像)을 바꿀 것을 권고하고 있다.
자기의 이기적 만족을 위해 지도자의 자리를 구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피터의 원리’에 지배당하기 쉽다. 피터의 원리란 조직 내에서 일하는 사람은 자신의 무능력의 수준에 도달할 때까지 승진하려는 경향이 있다는 의미이다.
즉, 사람들은 지도자의 위치에 오르기까지는 죽으라고 열심히 일하는데, 이것은 그 자리에 오르려는 욕망이 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렇게 해서 자리에 오르고 나면 그때부터는 내리막길이다.
직위의 꿀맛에 취하고 어떻게든 자리를 유지하려고 하다 보니, 도무지 그동안 보여줬던 실적이 나타나지 않으며, 자신의 안위(安危)에만 관심이 집중되어 버린다. 이처럼,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는 순간이 되는 경구가 많다는 것이 피터의 원리다.
소위 ‘100미터 미인’도 이와 비슷한 사람이다. 먼 발치에서 보았을 때, 즉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 전에는 저 사람이 지도자가 되면 잘할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막상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면 실망스럽기 짝이 없는 지도자가 100미터 미인으로 전락하는 이유는 다산이 밝힌 그대로다.
자신의 만족을 위해 준비되지 않은 사람이 스스로 지도자의 자리를 구하고, 그로 인한 부수적 이익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지도자가 무능한 피터나 100미터 미인이 되지 않기 위해서는 자신을 위해 지도자의 자리에 나서고자 하는 본능을 부단히 거부해야 한다. 이만큼 지도자의 자리는 어려운 자리다.
사람이 자신을 위해 살기 포기한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마르틴 루터 킨 목사가 의미 있는 말을 했다. “사람들이 당신을 지도자로 선정하면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당신이 그런 요청을 받으면 노(no)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다신의 말과 같은 뜻이다. 지도자는 자기가 해보겠다고 나설 자리가 아니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그릇을 인정하고 평가해 주면, 기꺼이 자신을 희생시킬 마음의 준비를 하고 나사는 것이 지도자의 자리라는 뜻이다.
⏹ 목민심서 부임(赴任) 6조 / 제1조 제배(除拜)
🔘 他官可求, 牧民之官, 不可求也。
다른 관직은 구해도 좋으나, 목민의 관직은 구해서는 안된다.
事上曰民, 牧民曰士。士者, 仕也, 仕者, 皆牧民者也。
위를 섬기는 자를 민(民)이라 하고, 민을 다스리는 자를 사(士)라 한다. 사(士)란 벼슬살이하는(仕) 것이니, 벼슬살이하는 자는 모두 백성을 다스리는 자들이다.
然京官, 或以供奉爲職, 或以典守, 爲任, 小心謹愼, 庶無罪悔。
그러나 경관(京官)은 혹 왕을 받들어 모시는 것을 직분으로 삼기도 하고, 혹 맡아서 지키는 것을 소임으로 삼기도 하니, 조심하고 근신(謹愼)하면 아마도 죄 되거나 뉘우칠 일은 없을 것이다.
唯守令者, 萬民之宰, 一日萬機, 具體而微, 與爲天下國家者, 大小雖殊, 其位實同。斯豈可求者乎。
오직 수령(守令)만은 만민을 다스리는 자이니, 하루에 만 가지 일을 처리함이 마치 천하 국가를 다스리는 군왕과도 같아서, 그것의 크고 작음만 다를 뿐, 그 처지는 실로 같은 것이다. 이를 어찌 스스로 구할 수 있겠는가.
古者, 上公地方百里, 侯伯七十里, 子男五十里, 不能五十者, 謂之附庸, 皆諸侯也。
옛날에 상공(上公)은 지방이 100리, 후백(侯伯)은 70리, 자남(子男)은 50리였으며, 50리가 못 되면 부용(附庸)이라 일렀는데, 그들은 모두 제후(諸侯)이다.
今大州其地準上公, 中邑準俟伯, 下邑準子男, 殘小者, 如附庸, 其爵名雖殊, 其職則古諸侯也。
이제 큰 주(州)는 그 지방이 상공과 맞먹고, 중읍은 후백과 맞먹으며, 하읍은 자(子) 남(男)과 맞먹고, 잔소(殘小)한 읍은 부용과 같으니, 그 벼슬 이름은 다를망정 그 직책은 옛날 제후의 바로 그것이다.
古之諸侯, 有相焉, 有三卿焉, 大夫百官具焉, 各治其事, 其爲侯也不難。
옛날 제후들에게는 정승이 있고, 삼경(三卿)이 있으며, 대부(大夫)와 백관이 갖추어져 있어서, 제각기 그 일을 처리해 나갔기 때문에 제후 노릇하기 어렵지 않았다.
今之守令, 孑然孤立乎萬民之上, 以姦民三人, 爲之佐, 以猾吏六七十人, 爲之輔, 麤豪者數人, 爲幕賓, 悖戾者十人, 爲僕爲隷。
오늘날의 수령은 홀로 만민의 위에 우뚝 서서 간사한 백성 세 사람을 좌(佐)로 삼고, 간사한 아전 60~70명을 보(輔)로 삼으며, 사나운 자 몇 사람을 막빈(幕賓)으로 삼고, 패악한 무리 10명을 복례(僕隷)로 삼았다.
相與朋比固結, 以掩蔽一夫之聰明, 欺詐舞弄, 以虐萬民。
이들은 서로 끼리끼리 뭉치어 수령 한 사람의 총명을 가리우고, 사기와 농간을 일삼아서 만백성을 못살게 한다.
然且古之諸侯, 父傳子承, 世世襲位。
그런데 옛날 제후들은, 아비가 아들에게 그 지위를 물려주어, 대대로 그 자리를 승습(承襲)하였다.
臣民得罪者, 或終身不調, 或歷世不振, 其名義至重。
그래서 신민이 죄를 지으면 혹 종신토록 등용되지 못하거나, 더러는 여러 대가 되어도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어, 그 명분과 의리가 지극히 소중하였다.
故雖有惡人, 不敢不畏服。
그러므로 비록 악한 자가 있더라도, 감히 복종하지 않을 수 없었다.
今之守令, 其久者或至二朞, 不然者數月而遞, 其爲物也, 如逆旅之過客。
오늘날의 수령은 오래 가야 혹 2년이요, 그렇지 않으면 몇 달 만에 바뀌니, 그것은 마치 여관에 지나가는 과객과도 같다.
而彼爲佐爲輔爲幕賓爲僕隷者, 皆父傳子承, 如古之世卿焉。
저 좌(佐), 보(輔), 막빈, 복례(僕隷) 따위들은 옛날 세습(世襲)하는 경상(卿相)들처럼 그 직을 아비가 아들에게 물려준다.
主客之勢旣殊, 久暫之權又懸, 非有君臣大義, 天地定分。
주객의 처지가 이미 다르고 권한은 오래 사는 사람과 잠깐 다녀가는 사람이 아주 다른데, 그들에게 군신의 대의와 천지의 정분(定分)이 있을 리 없다.
其得罪者, 逃而避之, 客去而主人還家, 其安富自若, 又何畏焉。
비록 죄를 저지른 자가 있더라도 도피하였다가 손인 수령이 떠난 뒤에 주인인 좌(佐), 보(輔), 막빈들은 집으로 돌아와서, 예나 다름없이 안녕과 부를 누리게 되니, 무엇을 또 두려워할 것이 있겠는가.
故守令之難, 百倍於公侯, 斯豈可求者乎。
그러므로 수령 노릇의 어려움은 공후(公侯)보다도 백 배나 더하니, 이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雖有德, 不威不能焉, 雖有志, 不明不能焉。
비록 덕망을 갖추었다 하더라도 위엄이 없으면 하기 어렵고, 비록 하고 싶은 뜻이 있다 하더라도 밝지 못하면 하지 못한다.
凡不能者, 民受其害, 毒痡顚連, 人非鬼責, 殃流苗裔, 斯豈可求者乎。
무릇 그런 능력이 없는 자가 수령이 되면 백성들은 그 해를 입어 곤궁하고 고통스러우며, 사람이 비난하고 귀신이 책망하여 재앙이 자손들에게까지 미칠 것이니, 이 어찌 구할 수 있는 것이겠는가.
〇今武人躬謁銓官, 乞爲守令, 習久成俗, 恬不知恥。
〇오늘날 무관(武官)들이 몸소 전관(銓官)에게 청탁하여 수령되기를 빌어 얻는 버릇이 한 풍습으로 되어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
其才諝之能與不能, 求之者, 旣不自揣, 聽之者, 亦不考問, 斯固非矣。
그 재주와 슬기로써 그 직책을 감당할 수 있느냐 없느냐에 대해서는, 구하는 사람도 스스로의 실력을 헤아리지 않고, 들어 주는 자도 또한 다시 더 묻고자 하지도 않으니, 이는 진실로 잘못된 일이다.
文臣爲玉堂銀臺者, 有乞郡之法。
문신(文臣)으로 옥당(玉堂)이나 은대(銀臺)가 된 이는, 부모의 봉양을 위해 고을살이를 청하는 법이 있다.
下以其孝誠乞之, 上以其孝理許之, 習久成俗, 以爲當然。
아래에서는 부모에의 효성 때문에 청하고 위에서는 그 효도 때문에 허락하는데, 그것이 풍습이 되어서 당연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然虞夏殷周之世, 必無此事。
그러나 중국의 고대 우(虞), 하(夏), 은(殷), 주(周)의 세대에 있어서도, 이런 일은 결코 없었던 것이다.
夫家貧親老, 菽水難繼者, 其私情, 誠亦矜惻。
대체로 집은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었으되, 끼니도 잇기 어려운 것은 그 사정으로 보아서는 진실로 딱한 일이기는 하다.
然天地公理, 有爲官擇人, 無爲人擇官。
그러나 천지의 공리(公理)로 말하면 벼슬을 위해서 사람을 고르는 것이요, 사람을 위해서 벼슬을 고르는 법은 없다.
爲一家之養, 求萬民之牧, 可乎。
한 집안의 봉양을 위하여, 만민의 수령이 되기를 구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는가.
爲人臣者, 乞征萬民, 以養我父母, 非理也; 爲人君者, 許征萬民, 以養爾父母, 非理也。
남의 신하된 이가 만민에게 거두어다가, 내 부모 봉양하기를 바라는 것은, 이치에 당치 않은 일이요, 남의 임금된 이가 만민에게 거두어다가, 네 부모를 봉양하라 허락하는 것도 이치에 당치 않은 일이다.
若有懷才抱道之人, 自揣其器, 可以牧民, 則上書自薦, 乞治一郡可也。
만약, 재주를 가지고 도(道)를 지닌 사람이, 스스로 제 능력을 헤아려 보아 목민(牧民)할 만하면, 글을 올려 자신을 천거하여, 한 군을 다스리기를 청하는 것은 좋다.
徒以家貧親老, 菽水難繼爲辭, 而乞得一郡, 非理也。
그저 집이 가난하고 어버이는 늙었는데, 봉양이 어려움을 핑계 삼아, 한 군을 빌어 얻는 것은 이치에 당치 않다.
古者, 蓋有經幄之臣, 素負民望者, 偶一乞郡, 朝廷遣此人, 不慮其不能, 郡民得此人, 胥欣而胥悅。
옛날에는 경연(經筵)에 참석하는 신하로서 본래 백성들의 신망을 받고 있던 이가 어쩌다가 한 군을 빌어 얻기를 바랄 때는, 조정에서는 그 사람을 보내되, 그가 능하지 못하리라고 염려하지도 아니하고, 군민들도 이 사람 얻는 것을 모두 좋아하고 기뻐하였다.
後之人無才無德者, 援此爲例, 其家不貧, 菽水不匱者, 亦皆冒沒乞郡, 非禮也。必不可蹈也。
그런데 후세에 재주도 덕망도 없는 자가 이를 끌어대어 전례로 삼아, 집은 가난하지도 않고 부모 봉양이 어렵지도 않은 자가 또한 모두 염치없이 고을살이를 구하니 예(禮)가 아니다. 기필코 이런 예의 뒤를 밟아서는 안 된다.
退溪荅李剛而書曰; 甘旨之闕, 雖人子之所深憂者, 今人每以榮養藉口, 而受無義之祿, 與乞墦間而充甘旨, 無以異也。
퇴계(退溪)가 이강이(李剛而)에게 보내는 답서(答書)에서 이렇게 말하였다. “맛있는 음식이 없으면 남의 자식으로서 큰 걱정거리가 되겠지만, 요새 사람들은 매양영양(榮養)을 빙자하여 의롭지 못한 국록(國祿)을 받고 있으니 이는 공동묘지에서 제사 음식을 빌어다가 봉양에 쓰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〇又曰; 毛義, 奉檄而喜, 張奉美之, 此別是一說。蓋毛公本有高退之志, 爲養親而屈意, 故美之。若以非義得而喜之, 則奉將唾之而去矣。
〇또 말하였다. “모의(毛義)가 수령의 임명을 받고서 기뻐하자 장봉(張奉)은 이를 아름답게 여겼는데, 이는 다른 하나의 설(說)인 것이다. 모공(毛公)은 본래 고상히 숨을 뜻을 가졌으나, 부모 봉양을 위해 뜻을 굽힌 까닭에 이를 아름답게 여겼던 것이다. 만일 의롭지 못한 수령의 임명을 얻고서 기뻐했다면 장봉은 침을 뱉고 갔을 것이다.”
〇案才短家富, 而乞郡以養親者, 非不義乎。如有吏才, 雖自薦可也。
〇살피건대, 재주는 부족하고 집은 넉넉한데도 고을살이를 구하여 어버이 봉양을 핑계하는 것은 어찌 불의(不義)가 아니겠는가? 만일 백성을 다스릴 재주가 있다면 비록 자천(自薦)해도 좋을 것이다.
後漢耿純, 請治一郡, 盡力自效, 上笑曰; 卿乃欲以治民自效。遂拜東郡太守。
후한(後漢) 때 경순(耿純)이 한 군을 다스려 있는 힘을 다하여 스스로 능력을 바치기를 청하였더니, 임금은 웃으면서, “경이 백성을 다스려 능력을 바치고자 하는군.” 하고, 드디어 동군 태수(東郡太守)에 임명하였다.
唐李抱眞, 願將一州以自試, 初授潞州, 復徙懷州, 八年居官, 百姓安逸。
당(唐)나라 때, 이포진(李抱眞)이 한 주(州)를 맡아서 스스로 시험해 보기를 원하여, 처음에 노주(潞州)에 임명되었고, 다시 회주(懷州)로 옮겨 8년 동안 백성을 다스리매 백성이 편안하게 되었다.
🔘 除拜之初, 財不可濫施也。
임명된 처음에, 재물을 함부로 나누어 주어서는 안된다.
守令俸祿, 無不排月, 細剖其數, 無不排日。
수령의 봉록은 달로 배정되지 않음이 없고, 그 매달의 액수를 자세히 분석해 보면 날로 배정되지 않음이 없다.
凡引月引日, 以用其財者, 皆非其財而用之者也。
무릇 달을 당기거나 날을 당겨서 재물을 쓰는 것은 모두 써서는 안 될 재물을 쓰게 되는 셈이다.
凡非其財而用之者, 貪之兆也。
써서는 안 될 재물을 쓰는 것은 탐욕할 조짐이다.
守令未到而遞者, 皆不得與分其俸。
수령이 도임하기 전에 갈리는 자는 봉록 분배에 참여할 수 없다.
身未離京, 何爲而用彼邑之財乎。
자신이 아직 서울을 떠나지 않았는데 어떻게 그 고을 재물을 쓸 수 있겠는가.
其不得已者施之, 餘不可濫也。
부득이한 자에게는 주되, 그 외에는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
〇今守令辭朝之日, 掖隷院隷, 大殿別監, 政院使令, 討索例錢, 名之曰 闕內行下。
〇이제 부임하는 수령이 임금에게 하직하는 날에 액례(掖隷) - 대전별감(大殿別監) - 원례(院隷)- 정원사령(政院使令) - 들이 예전(例錢)을 내라고 하는데, 명목은 궐내행하(闕內行下)라 한다.
多者數百兩, 少者五六十兩。
많으면 수백 냥이요, 적어도 50~60냥은 된다.
蔭官武官及寒遠之人, 或所施不滿其欲, 此輩公肆詬罵, 或執衣袂, 窘辱罔狀。
음관(蔭官)이나 무관이나 문벌이 높지 못한 시골 사람으로서, 그들에게 주는 돈이 제 욕심에 차지 않을 때는, 이들이 드러내 놓고 욕지거리하며, 옷소매를 끌어 당기기도 하니 형언할 수 없는 창피를 당하게 된다.
先朝嘗嚴禁, 政院爲之酌定其數, 令不得加減。
선조(先朝)에는 일찍이 이를 엄금하여, 승정원(承政院)에서 그 액수를 참작하여 정하고 가감하지 못하게 하였다.
雖其詬罵少息, 其徵索無異貢額, 大非禮也。
욕지거리는 조금 줄어들었으나 그 거두고 토색하는 것은 공물(貢物)의 정액(正額)과 다름이 없으니, 크게 예(禮)가 아니다.
夫朝廷爲民遣牧, 當戒其節用以愛民, 先縱掖隷院隷, 討索無名之錢, 以防其挾娼會飮, 彈箏擪笛之用, 斯何禮也。
대체로 조정에서 백성을 위하여 수령을 보낼 때에는 비용을 절약하여 백성을 사랑하도록 타일러야 할 것인데, 먼저 액례(掖隷)와 원례(院隷)를 풀어놓아 명목 없는 돈을 토색하여, 기생을 끼고 모여서 술추렴하거나 거문고를 타고 저(笛)를 불며 노는 비용에 충당하게 하니, 이는 어떤 예(禮)인가.
近臣督之曰; 爾得腴邑, 將食民膏, 其餉內隷。
근신(近臣)은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에게 독촉하기를, “그대는 풍부한 고을을 얻어 백성의 고혈(膏血)을 먹을 것이니 내례(內隷)를 대접하라.”
非禮也, 牧臣順之曰; 我得腴邑, 將食民膏, 何辭此費。非禮也。
함은 예가 아니며, 수령은 이에 순응하여, “내가 풍부한 고을을 얻어 백성의 고혈을 먹을 것이니 그런 비용쯤 어찌 사양하랴.” 함도 예가 아니다.
況邑例萬殊, 闕內行下之錢, 或有自民庫取用者, 若是者, 非縱隷以剝民乎。
더구나 고을의 관례는 각가지로 달라서, 궐내행하(闕內行下)를 민고(民庫)에서 가져다 쓰는 수가 있으니, 이런 짓들은 액례와 원례를 풀어놓아 백성을 박탈하는 것이 아닌가.
雖然, 此事宜自朝廷禁斷, 其出牧者, 唯有考例二字, 循常酬應而已, 將奈之何。
그렇지만 이 일은 조정에서 엄금해야 할 것이지만, 수령이 되어 지방으로 나가는 사람도 전례를 따르기만 하여 예사로 수응해 줄 따름이니, 이를 장차 어찌해야 할까.
〇窮交貧族, 姑嫂姊妹, 或有求者, 不可不應, 然帖子之末, 書之曰; 上官後十日覓納。十日程者, 限十日, 五日程者限五日, 度無事上官, 然後施行。 以付邸吏, 京主人。
〇궁한 친구, 가난한 친족, 고모, 형수와 제수, 누이들 중에서 도움을 바라는 자가 있으면 응하지 않을 수 없지만, 체자(帖子) 끝에, “부임한 후 10일 만에 찾으라.” 라서 써서, - 임지가 10일 길이면 10일로 한정하고, 5일 길이면 5일로 정하되 무사히 부임한 후에 시행한다. -저리(邸吏) - 경주인(京主人) - 에게 준다.
其情境不急者, 竝以溫言留約, 上官後一兩月內, 自官輸送邸債, 不可多負也。
그 정경이 급하지 않은 자에게는 아울러 좋은 말로 약속하되, 부임한 후 한두 달 안으로 관청에서 보내겠다 하고, 저채(邸債)는 많이 져서는 안된다.
若是者, 亦須先給帖子, 書之曰; 某宅錢幾兩。 使之安心傾信。
이런 경우에는 모름지기 체자(帖子)를 먼저 주어 - 뉘댁 돈 몇 냥이라고 쓴다. - 믿고 안심하도록 해 주어야 할 것이다.
🔘 邸報下送之初, 其可省弊者, 省之。
저보(邸報)를 내려보내는 처음에 폐단을 덜 만한 것은 덜어야 한다.
新迎禮節, 一曰, 支裝封進; 二曰, 衙舍修理; 三曰, 旗幟迎接; 四曰, 風約待候, 卽坊里之任。; 五曰, 中路問安, 其弊或有可省者。
신영(新迎)하는 예절에, 첫째 지장(支裝)을 봉해 바치는 일, 둘째 관아 사택을 수리하는 일, 셋째 각종 기치(旗幟)를 들고 영접하는 일, 넷째 풍헌(風憲), 약정(約正) - 곧 방리(坊里)의 소임이다. - 들이 문안드리는 일, 다섯째 중도에서 문안드리는 일인데 그 폐단 중에는 생략해도 될 것이 더러 있다.
〇邸吏告遣人, 牧傳令于本邑公兄曰; 吏房戶長等, 支裝物種, 酒脯之外。竝勿封進, 衙舍修理, 待分付擧行, 上官日。境上旗幟, 只令旗二雙, 以門卒奉持, 卽使令, 他皆除減。毋論邑與外村, 一箇軍卒, 切勿知委。自下討索者, 另行嚴禁。外村風憲約正及千把摠哨官旗牌官之等, 竝勿知委。中路問安, 惟趁半程一次, 起送物種, 竝勿封進。
저리(邸吏)가 고을에 사람을 보내겠다고 고하면, 수령은 그 고을 공형(公兄), 이방(吏房), 호장(戶長) 등에게 이렇게 전령(傳令)해야 할 것이다. “지장하는 물건의 종류는 술과 마른 고기 외에는 아무 것도 보내지 말 것. 관아 청사의 수리는 분부를 받고 거행할 것. 도임하는 날에는 고을 경계선에서의 기치(旗幟)로는 영기(令旗) 두 쌍만 문졸(門卒) 사령이 받들어 잡도록 하고, 다른 것은 모두 없앨 것. 읍과 외촌을 막론하고 군졸 하나에게라도 절대로 알리지 말 것. 밑에서 제 마음대로 토색질하는 것은 각별히 엄금할 것. 외촌 풍헌(風憲), 약정(約正) 및 천총(千摠), 파총(把摠), 초관(哨官), 기패관(旗牌官)들에게는 절대로 알리지 말 것. 중도 문안은 서울에서 반쯤 되는 곳에서 한 차례 하되 물품은 모두 바치지 말 것이다.”
〇古者, 支裝之物, 鞍具衣資紙幣膳物, 厥數夥然, 此新迎之禮貌也。受此禮物, 以散親戚, 古之道也。此雖美風, 中世以來, 郡邑凋弊, 凡事務從節約, 故曰支裝可省。
옛날에 지장(支裝)하는 물건에는 안장, 의복감, 종이, 반찬 등 그 수효가 많았는데, 이는 신영하는 예절이었다. 이 예물을 받으면 친척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옛날 도리였다. 이런 일이 아름다운 풍습이기는 하지만, 중세 이래로 군읍의 재정은 마르고 피폐해져서, 모든 일은 절약하기에 힘써야 하므로 지장(支裝)은 생략해야 한다고 한 것이다.
〇衙舍修理, 則紙物浩費, 役民役僧, 其弊多端, 待我上官, 量宜修理, 可也。
관아 청사의 수리에는 종이를 많이 낭비하고, 백성과 승려들을 부역 시킴으로써 그 폐단이 적지 않기 때문에 도임 후 형편을 보아서 수리하는 것이 좋다.
〇新迎旗幟, 例捉束伍軍使之奉持, 其入邑者, 遲留浹旬, 其不入邑者, 私有徵斂, 若値農時, 益爲民弊, 不可以不念也。
신영(新迎)하는 기치(旗幟)는 으레 속오군(束伍軍)을 잡아다가 받들어 잡도록 하는데, 읍에 들어오는 자는 수십 일씩 묵고, 읍에 들어오지 않는 자는 사사로이 징렴(徵斂)함이 있어, 농사철을 당하면 더욱 백성들의 폐해가 되니 유의하지 않아서는 안 된다.
〇凡村氓入邑遲留, 皆爲民弊。故風約將官之等, 亦可省也。
무릇 촌백성들이 읍에 와서 머물게 되면 민폐가 된다. 그러므로 풍헌, 약정, 장관(將官)들이 문안드리는 일은 생략하는 것이 좋다.
〇新迎之初, 邑吏問安之伻, 絡繹不絶, 畢竟其往來浮費, 皆出民力。
신영(新迎)하는 처음에는 고을 아전의 문안드리는 하인들이 잇달아 끊이지 않는데, 필경 그들이 왕래하는 비용은 모두 백성들에게서 나온다.
上官之後, 門隷卽使令, 憑藉爲說, 徵於村里, 或稱動鈴, 卽白手求乞之名, 或稱釣鯤, 卽佩酒求乞之名, 或於契房村爲之, 詳見下, 或於海島山村爲之。
도임한 후에는, 문례(門隷; 사령使令)는 그것을 빙자하여 마을에서 비용을 징수하되, 혹 이를 동령(動鈴; 빈손으로 구걸한다)이라고도 하고, 혹은 조곤(釣鯤; 곧 술병을 차고 구걸한다는 뜻)이라고도 하며, 혹 계방촌(契房村)에서 하기도 하고, 혹은 섬 안에나 산촌에서도 한다.
故問安之伻, 不可數也。
그러므로 문안드리는 하인이 잦아서는 안 된다.
茶山筆談云; 新迎騶從之中, 其最無用者, 吏房之吏也。我之赴任, 欲奉母携妻, 與之偕行, 則吏房不可少也, 若我翩然獨行, 吏房豈不贅哉。
다산필담(茶山筆談)에는 이렇게 말하였다. “신영하는 추종(騶從) 중에서 가장 쓸모없는 사람은 이방(吏房)이란 아전이다. 내가 부임할 때 어머니를 모시고 아내를 데리고 함께 가려 한다면 이방이 없어도 안 되지만, 만일 나 혼자 간다면, 이방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〇邸報下送之初, 傳令曰; 官今獨行, 務要簡省。新迎吏房, 切勿上來, 但於境上迎候。唯刑吏一人, 兼廚吏, 卽所云監嘗, 館吏, 卽行次工房, 通引一人, 卽侍童, 侍奴二人, 卽及唱, 騶從二人, 卽驅從房子, 皁隷三人, 卽使令, 可卽上來, 除此以外, 無敢亂動。
저보(邸報)를 내려보내는 처음에 이렇게 전령하여야 할 것이다. “본관은 이제 혼자 떠나니 모든 절차에 간략하고 생략하기에 힘쓰라. 신영하는 이방은 절대로 올라오지 말고 다만 경계에 나와 기다리라. 형리(刑吏) 1인이 주리(厨吏) (이른바 감상(監嘗)이다)를 겸하고, 관리(館吏; 행차공방行次工房), 통인(通引; 시동侍童) 1인, 시노(侍奴; 급창及唱) 2인, 추종(騶從; 추종방자(騶從房子) 2인, 조례(皁隷; 사령(使令) 3인은 곧 올라와도 좋으나, 이외의 사람들은 함부로 움직이지 말라.”
〇若我事情, 不可簡省, 須增人數, 以少爲貴。
만약 자기 사정이 간략히 하고 생략할 수 없다면, 모름지기 수를 늘리더라도 적을수록 좋다.
🔘 新迎刷馬之錢, 旣受公賜, 又收民賦, 是匿君之惠而掠民財, 不可爲也。
신영(新迎)하는 쇄마(刷馬)의 비용을 이미 국비로 타고, 다시 백성에게서 거둬 들인다면, 이는 임금의 은혜를 감추고 백성들의 재물을 빼앗는 짓이니, 그래서는 안된다.
按續大典; 外官迎送刷馬, 計道里定數。見戶典外官供給條。
속대전(續大典)을 보면, “외관(外官)를 맞이하고 보내는 데 쓰이는 쇄마(刷馬)는 이수(道里)를 헤아려서 마리 수를 정한다.” 하였다. 호전(戶典) 외관공급조(外官供給條)에 보인다.
西關北關二路之外, 皆有刷馬, 州府二十匹, 郡縣十五匹, 爲元定之數。
서관(西關), 북관(北關) 두 도 이외에는 모두 쇄마가 있는데 주(州), 부(府)는 20필, 군(郡), 현(縣)은 15필이 원래 정해진 수이다.
而又以上中下道分三等, 又以大中小邑分三等, 其遠而大者, 加至六匹, 其近而小者, 或加二匹, 京畿有減。
또 상, 중, 하도(道)로 3등분하고, 또 대, 중, 소로 읍을 3등분하여, 멀고 큰 데는 6필까지를 더 주고, 가깝고 작은 데는 2필을 더 주되, 경기 지방은 오히려 그 수를 감한다.
西關之博川以西, 北關之洪原以北, 皆給驛馬。見兵典驛馬條。
서관의 박천(博川) 서쪽과 북관의 홍원(洪原) 북쪽에는 모두 역마(驛馬)를 준다. 병전(兵典) 역마조(驛馬條)에 보인다.
凡刷馬之價, 始皆給米, 均役以來, 三南沿邑, 以錢代給, 見大典。
무릇 쇄마의 값을 처음에는 모두 쌀로 주었는데, 균역법(均役法) 시행 이래로 삼남(三南)의 연해읍(沿海邑)은 돈으로 대체하니, 대전(大典)에 보인다.
多者四百餘兩, 少者三百餘兩。
많은 경우에는 4백여 냥이나 되고, 적은 경우에는 3백 냥이 되었다.
立法之初, 朝廷慮迎送之時, 或以刷馬侵民, 畫給此錢, 以防其雇。
이 법을 마련하던 처음에는 조정에서 맞이하고 보낼 때 혹시 쇄마(刷馬)를 핑계로 백성을 침탈(侵奪)할까 염려하여, 이 쇄마전(刷馬錢)을 주어 그 거두어 들이는 버릇을 막은 것이다.
今新舊官交遞之時, 新舊官刷馬之錢, 又徵於民間, 或視公賜加倍, 或與公賜相準, 習久成俗, 恬不知恥, 大非禮也。舊官之行無公賜。
이제 신,구관이 교체할 때 신,구관의 쇄마전을 민간에서 거두되 혹 국비의 갑절이 되기도 하고, 혹 국비와 맞먹기도 하는 것이 하나의 풍습이 되어 있어, 이를 조금도 부끄럽게 여기는 기색이 없으니, 이는 실로 예(禮)가 아니다. 구관이 갈 때에는 국비가 없다.
君爲民憂, 賜我以馬, 匿君之惠, 又漁民貨, 所謂葛伯食之, 又不以祭也。
군왕은 백성들의 걱정을 덜기 위해서 나에게 말을 주는데, 군왕의 은혜는 감추고, 또다시 백성들의 재물을 약탈하니 소위 ‘갈백(葛伯)이 주는 것을 잘라 먹고 또 제사를 지내지 않는다’는 것과 같다.
新官刷馬之錢, 必自鄕廳發令, 非新官之罪也。
신관(新官)의 쇄마전은 반드시 향청(鄕廳)에서 발령하니 신관의 죄는 아니다.
然及其上官之後, 不以此錢還給民間, 是新官食之也。
그러나 도임한 후로 이 돈을 민간에 도로 돌려주지 않는다면, 이는 신관이 먹은 셈이 된다.
收者非我, 食者伊誰。尙可以逭其咎乎。
거두어들인 것은 내가 아니지만, 먹은 자는 누구일까. 그런데도 그 허물을 피할 수 있겠는가?
旣不可食, 無寧早下一令, 以之明此心於萬民乎。
이미 먹어서는 안 될 바에야 차라리 일찍 영을 내려 이 마음을 만민에게 밝히는 것이 좋지 않겠는가.
邸報下送之日, 別下傳令於公兄曰;
저보(邸報)를 내려보내는 날에는, 따로 공형(公兄)에게 이렇게 전령을 내려야 할 것이다.
新迎夫刷價, 似於令前, 業已收斂, 然旣有公家之畫給, 又何收斂於民間。
신영의 부쇄가(夫刷價)는 영을 받지 않고 이미 거두었을 것 같으나, 벌써 국비로 지급되었으니 또다시 민간에서 거두어 낼 필요가 있겠는가.
然旣斂之物, 還給民間, 則中間消融, 亦可慮也。
그러나 이미 거둔 돈을 민간에 다시 돌려주자면 중간에서 없어질 걱정이 또 있다.
諸里賦役之中, 毋論軍錢稅錢, 必有數月內當納之物, 夫刷價已納者, 當以此移施。
여러 동리의 부역(賦役) 중에서 군전(軍錢)이나 세전(稅錢)을 막론하고, 반드시 몇 달 안에 바쳐야 할 돈이 있을 것이니, 부쇄가(夫刷價)를 이미 바친 자는 이로써 충당하도록 한다.
就其當納之中, 計除此數, 勿復來納, 誠合事宜。
마땅히 바쳐야 할 것 중에서 그 액수만큼은 제하고, 다시 바치는 일이 없게 하는 것이 실로 사리에 맞다.
須以此意, 自鄕廳發令, 一一曉喩, 使各知悉。
모름지기 이 뜻을 향청(鄕廳)에서 영을 내려 일일이 일러 주어 각각 알도록 하라.
〇若其交遞在京, 而邑不及知, 則令曰; 新迎夫刷價, 旣有公家之畫給, 又何收斂於民間乎。愼勿收斂。不可添一字。
〇만약 신,구 수령의 교체가 서울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에, 본읍에서 미처 알지 못하면 이렇게 영을 내려야 할 것이다. “신영의 부쇄가(夫刷價)는 국비로 지급되었으니, 또다시 민간에서 거두어 들일 것이 있겠는가. 삼가 거두어 들이지 말도록 하라.” 한 자도 더 보태서는 안된다.
〇凡新官初出, 萬民想望風采, 當此之時, 此令下去, 則歡聲如雷, 歌頌先作。
무릇 신관(新官)이 처음 나타나면 백성이 그 풍채를 상상하고 기대할 것이니, 이러한 때에 이런 영이 내려가면 환호성이 우레와 같고, 칭송하는 노래가 먼저 일어날 것이다.
威生於廉, 奸猾慴伏, 發號施令, 民莫不順, 嗟乎。
위엄은 청렴에서 나오는 것이니 간악하고 교활한 무리들은 겁을 낼 것이며, 영을 내리고 시행함에 백성들은 따르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所捨者三百兩錢, 以三百兩錢, 買此歡聲, 不亦善乎。
아! 버리는 것은 3백 냥인데 3백 냥으로 이렇듯 환호성을 사는 것이 또한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上下數百年, 縱橫四千里, 上官之前, 終無能發此令者。非人人皆不廉也。
상하로 따져서 수백 년이요, 종횡으로 따져서 4천 리인데, 도임하기 전에 이런 영을 내린 사람이 하나도 없다. 이는 수령으로 나가는 사람마다 모두 청렴하지 않아서가 아닐 것이다.
未經事者, 不知此例, 旣上官, 認爲當然, 故莫之能焉。自我爲首, 倡此義聲, 不亦快乎。
일을 겪어보지 않은 사람은 이런 예(例)를 모르고, 도임한 후에는 이 일이 당연하다고 여기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는 것이다. 나부터 먼저 이 의로운 영을 내린다면 또한 통쾌하지 않겠는가.
〇邑例萬殊。衙舍修理, 日傘雙轎等猥瑣名目, 亦或與夫刷價, 同時收斂, 問於邸吏, 邑例若然, 宜亦竝擧。
고을의 관례는 만 가지로 다르다. 관아 청사를 수리한다거나 일산(日傘)이니 쌍교(雙轎)니 하는 것들의 자질구레한 명목으로 또한 부쇄가(夫刷價)와 함께 거두어들인 것들이 있을 것이니, 저리(邸吏)에게 물어서 고을의 관례가 과연 그렇다면 이 문제도 함께 다루는 것이 좋다.
▶️ 赴(다다를 부, 갈 부)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달아날 주(走; 달아나다)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동시(同時)에 서두르다의 뜻을 나타내기 위한 卜(복, 부)으로 이루어져서, 서둘러 가다의 뜻을 나타낸다. ❷형성문자로 赴자는 ‘나아가다’나 ‘다다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赴자는 走(달릴 주)자와 卜(점 복)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卜자는 ‘점괘’라는 뜻이 있지만, 여기에서는 ‘복→부’로의 발음역할만을 하고 있다. 赴자는 사람이 앞으로 달려가거나 나아가는 것을 뜻하기 위해 走자의 의미를 응용한 글자이다. 본래 금문에서는 又(또 우)자도 있어서 어떠한 목적지에 다다랐다는 뜻을 표현했었지만, 지금은 생략되었다. 그래서 赴(부)는 ①다다르다 ②나아가다, 향하여 가다 ③힘쓰다 ④달려가다 ⑤들어가다 ⑥넘어지다 ⑦알리다, 가서 알리다 ⑧부고(訃告)하다(사람의 죽음을 알리다) ⑨부고(訃告; 사람의 죽음을 알림)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임무를 받아 근무할 곳으로 감을 부임(赴任), 구원하러 감을 부원(赴援), 과거를 보러 감을 부거(赴擧), 과거에 응시함을 부시(赴試), 공역을 치름 또는 사사로이 서로 일을 도와서 수고함을 부역(赴役), 위급한 기미가 있음을 보아 빨리 달려 감을 부기(赴幾), 죄인이 귀양살이하는 곳에 다달음을 부배(赴配), 전쟁에 참가하러 나감을 부전(赴戰), 사람이 죽은 것을 알리는 통지를 부고(赴古), 사람의 죽음을 알리는 일을 부고(赴告), 근친이 상을 당하여 상가로 갈 때 동구나 상가 대문을 들어서면서 곡하는 일을 부곡(赴哭), 좋은 자리로 옮기는 부임을 미부(美赴), 용기 있게 달려감을 용부(勇赴), 즐겁게 달려감을 낙부(樂赴), 때가 지난 뒤 나중에 다다름을 추부(追赴), 새로 부임함을 신부(新赴), 끊는 물이나 뜨거운 불도 헤아리지 않고 뛰어든다 함이니 목숨을 걸고 하는 아주 어렵고 힘든 고욕이나 수난을 이르는 말을 부탕도화(赴湯蹈火) 등에 쓰인다.
▶️ 任(맡길 임/맞을 임)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壬(임; 짐을 짊어지고 있는 모양)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사람(人)이 짐을 지듯이 책임을 진다는 뜻으로 맡기다를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任자는 '맡기다'나 '(책임을)지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任자는 人(사람 인)자와 壬(천간 임)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壬자는 실을 묶어 보관하던 도구를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모양자 역할로 쓰였다. 任자의 갑골문을 보면 마치 사람이 등에 壬자를 짊어지고 있는 듯한 모습이다. 任자는 이렇게 등에 무언가를 짊어진 모습에서 '맡기다'나 '맡다'라는 뜻을 표현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任자는 주로 어떠한 직책을 '맡고 있다'나 '부담'이나 '짐'과 같은 뜻으로 쓰인다. 그래서 任(임)은 (1)임무(任務) 또는 소임(所任) (2)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맡기다, 주다 ②능하다, 잘하다 ③공을 세우다 ④배다, 임신하다 ⑤맞다, 당하다 ⑥책임을 맡다, 지다 ⑦견디다, 감내하다 ⑧보증하다 ⑨비뚤어지다, 굽다 ⑩마음대로 하다 ⑪미쁘다(믿음성이 있다) ⑫당해내다 ⑬맡은 일, 책무(責務) ⑭짐, 부담(負擔) ⑮보따리 ⑯재능(才能), 재주 ⑰협기(俠氣), 사나이의 기개(氣槪) ⑱임지(任地: 임무를 받아 근무하는 곳) ⑲마음대로, 멋대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맡길 위(委), 맡길 탁(托), 맡길 예(預),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면할 면(免)이다. 용례로는 임무를 맡아보는 일정한 기한을 임기(任期), 관직에 명함 또는 직무를 맡김을 임명(任命), 어떤 사람이 책임을 지고 맡은 일을 임무(任務), 자기 의사대로 하는 일을 임의(任意), 어떤 단체의 운영이나 감독하는 일을 맡아 처리하는 사람을 임원(任員), 직무를 맡겨 등용함을 임용(任用), 관원이 부임하는 곳을 임지(任地), 믿고 일을 맡기는 일을 신임(信任), 도맡아 해야 할 임무를 책임(責任), 맡은 자리에 나아가 임무를 봄을 취임(就任), 임무를 받아 근무할 곳으로 감을 부임(赴任), 맡아보던 일자리를 그만 두고 물러남을 사임(辭任), 관직에서 물러남을 퇴임(退任), 어떤 일을 책임지워 맡김을 위임(委任), 관직 같은 데에 새로 임명됨을 신임(新任), 맡은 바 임무에서 떠남을 이임(離任), 임소에 도착함을 착임(着任), 앞서 맡아보던 사람의 뒤를 이어 맡아보는 직무나 임무를 후임(後任), 학급이나 학과목을 책임을 지고 맡아 봄을 담임(擔任), 일정한 직무를 늘 계속하여 맡음 또는 맡은 사람을 상임(常任), 책임은 중하고 길은 멀다는 말을 임중도원(任重道遠), 오직 인품과 능력만을 보고 사람을 임용한다는 말을 임인유현(任人唯賢), 현자에게 일을 맡김에 두 마음을 갖지 말라는 뜻으로 한 번 맡긴 이상 끝까지 밀어주라는 말을 임현물이(任賢勿貳) 등에 쓰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