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박찬호가 홈런을 쳤다. 이번 홈런이 미국진출 통산3호라고 하는데 현재 박찬호의 소속팀이 투수도 타석에 들어서는 메이저리그, 그 중에서도 내셔널리그라서 가능한 장면. 우리나라에서는 지명타자제도를 도입하고 있기 때문에 투수가 타격을 한다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설령 선수들이 투수와 타격, 양쪽에서 재능을 갖고 있다고 해도 투수의 보호라던가 하는 문제가 있어 그런 재능을 발휘할 기회조차 갖지 못한다. 야구를 좀 봤다 싶은 팬들에 의해 이승엽이나 이대호가 투수로 입단을 했고 봉중근이 고교시절 최고의 타자였다는 등의 얘기가 재미 삼아 흘러나올 뿐이다.
몇 년 전부터 우리나라는 고교야구에서도 지명타자제를 도입했기 때문에 이제는 학생야구에서도 투타만능선수는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지만 조금만 기억을 거슬러보면 과거 7~80년대에는 타격도 강한 투수, 투수이면서 4번 타자를 치는 선수들의 모습은 어지간한 팀에서 흔히 볼 수 있었던 풍경이었다.
투타 만능 스타라고 하면 아련하게 떠오르는 두명의 이름이 있다. 지금은 학교명이 선린인터넷고로 바뀐 옛 야구명문 선린상고 시절의 박노준과 김건우가 그들.
히어로즈의 단장을 하다가 올해 SBS의 야구해설로 돌아온 박노준, 그리고 작년까지 Xports에서 해설을 하다가 지금은 강동구에서 유소년 야구지도에 전념하고 있는 김건우라는 이름에 젊은 야구팬들이 갖는 느낌은 그저 해설로 익숙한 옛 프로야구선수 정도겠지만 올드팬들에게는 마치 아날로그 시대를 다시 떠오르게 해주는 추억의 이름인 것이다.
프로야구가 시작되기 직전이었던 1981년의 봉황대기 결승전. 지금의 사직구장 만큼이나 열광적이었던 당시의 고교야구팬들은 그 해의 최강팀의 자리를 놓고 다투던 경북고와 선린상고의 대결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었다.
전년도 선동열과의 대결에서 완승을 거두면서 일약 고교최고스타로 떠올랐던 박노준, 그리고 우승으로 끝난 니카라과 청소년대회 네덜란드전에서 우리나라 선수로는 국제대회 최초로 노히트노런을 달성했던 김건우. 이들은 선린상고에서 마운드를 분담하던 에이스들이면서 타석에서도 3-4번에 포진되어 있던 고교최고의 강타자들이기도 했다.
3번 박노준의 정교한 타격과 4번 김건우의 호쾌한 장타력, 용케 그들을 피해간다고 해도 고교 대표급들이었던 조영일, 이경재, 김웅대 등의 강타자들이 즐비하게 이어지면서 비록 봄에 벌어진 청룡기 결승에서 경북고에게 연장승부를 내준 기억이 있긴 하지만 두 에이스가 지키는 마운드, 그리고 막강타선의 선린상이 이번에도 패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적어도 시합 중에 박노준의 부상으로 병원으로 후송되기 전까지 말이다.
박노준은 1회말 승리를 확신하는 3점째의 득점을 위해 홈으로 뛰어들다가 발목이 엉키면서 부러지는 중상을 입고 병원으로 후송된다. 전날 천안북일과의 4강전에서 김건우가 완투를 했고 결승을 책임져야 할 투수는 힘을 비축해둔 박노준이었는데 그런 박노준이 경기를 더 이상 뛸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초 1~2이닝을 던질 요량으로 일단 선발로 등판했던 김건우는 박노준의 이탈이후 전략을 바꿔 힘을 안배하면서 벌어놓은 점수를 지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유중일, 권택재, 최무영, 홍순호로 이어지는 타선의 경북고도 그렇게 호락호락한 팀이 아니었다. 선발이었던 성준을 구원한 문병권의 특이한 언더핸드폼에 선린타선이 중반전 이후 고전을 면치못했고 반면 경북고는 야금야금 점수를 얻어내면서 결국 문병권의 종료직전 결승타로 6-4 역전승을 거두고 만다.
경기가 끝난 후 박노준의 부상상태와 김건우의 투혼은 큰 화제가 되었다. 초반에 실려나간 박노준이나 그 짐을 떠맡은 김건우는 승리를 얻지 못한 대신에 온 국민의 마음을 사로잡는 비운의 스타로 발돋움하게 되었던 것.
프로에 입단해서 김건우는 신인상을 받으면서 MBC청룡의 에이스로 활약했지만 불의의 교통사고로 마운드에 서지 못했고 야수로 전향한 후에도 또다시 치명적인 부상을 입으면서 결국 선수생활을 마감했다. OB베어스에 기대 속에 입단했던 박노준도 해태와 쌍방울을 거치면서 투수로, 타자로, 많은 활약을 했지만 역시 선수시절 내내 크고 작은 부상에 시달리면서 최고의 자리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고교야구의 별들이었던 그들의 프로 통산기록은 지금에 와서 보면 평범하기 그지없다. 이제 박노준, 김건우라는 이름은 다른 이유로 알려질지 몰라도 선수로서의 기억은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다. 마치 그들의 시대에 열광의 무대였던 고교야구가 지금은 변방의 야구장에서 초라하게 그들만의 경기로 전락하는 것처럼 말이다.
잊혀져 가는 희대의 야구천재, 박노준과 김건우를 기억하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청춘과 낭만의 시대를 추억할 자격이 있는 올드 야구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