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을 쓴 지 오래다.
노트북이나 태블릿은 내 손에 쉽게 익지 않는다.
아무래도 책상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려야 작업하는 것 같아진다.
광주를 오가거나 여행 중에 노트북이 필요할 것 같아 샀지만,
광주와 동강에 기어이 한결이한테 작은 수건 상자만한 PC를 사 달라한다.
듀얼 모니터까지 설치하니 노트북은 뜸해진다.
어느 날 노트북을 켜니 구동이 되지 않는다.
충전을 충분히 시켜도 마찬가지다.
바보한테도 백수의 모습이 아닌 듯하여 챙겨 순천 서비스센터로 간다.
키오스크 앞에서 접수를 하고 잠깐 기다리니 금방 부른다.
스마트폰 쪽은 대기번호가 길다.
친절한 수리 기사가 켜니 바탕화면이 보인다.
갑자기 얼굴이 화끈해진다.
이놈이 집에서는 고집을 피우고 전문가 앞에서는 지레 자동으로 알아차리는 건 아닌가?
어이가 없다.
기사는 변명하는 날 보면서 위로하는 말투다.
덮개를 열면 전원이 켜지게 되어있지만 방전이 완료된 후에는 전원버튼을 눌러줘야 한다고 한다.
어느 것이 전원 버튼이냐니 오른쪽 위의 작은 까만 버튼을 알려준다.
결국 아무 일이 없다고 가지고 가란다.
괜히 멀티 USB 만 물어보고 나온다.
돌아가는 길에 별량 첨산이나 오를까 하는데 시간여유가 많다.
동주한테 전화를 하니 안받더니 다시 와서는 농협이니 집쪽으로 오란다.
정원 앞 동주 집앞 너른 주차장에 오서 전화하니 더 기다리란다.
버스 정류장에 앉아 스마트폰을 보고 있는데
얼굴이 좋은 동주가 길 건너에서 손을 흔든다.
가까이 찻집에 가 카모마일을 주문한다.
며칠 전부터 생각이 나 전화하려했는데 왔다며 반긴다.
그는 한춤과 그림과 영어공부를 하면서 돈 안되는 일만 한다고 한다.
난 마을학교에서 아이들 산에 데리고 다니기도 한다고 한다.
아이들 애기도 하고 가족 애기도 한다.
어느 덧 5시가 가까워진다.
바보가 전화해 벌교 프로그램에서 저녁을 먹고 온다고 하며 혼자 먹으라 한다.
옆에서 듣던 동주가 밥 먹고 가라지만 일어난다.
또 오라고 한다.
부지런히 운전해 별량 첨산 아래 주차장에 도착하니 5시 10분이다.
보슬비가 내린다.
앞쪽 새로 생긴 조립식 집에 노부부가 바깥에서 불을 피우고 있다가 날 쳐다본다.
5시 40분 쯤이 일몰이다.
오르막을 쉬지 않고 오르니 금방 땀이 난다.
보슬비는 오락가락 한다.
암벽 아래를 지나며 순천 쪽으로 조망이 열리는데 앵무산 앞 순천만은 흐릿하다.
20여분 만에 정상에 도착한다.
바람이 서늘하게 불지만 더워 점퍼를 벗는다.
서쪽 하늘의 구름 띠 아래가 붉다. 제석산 동쪽 산록은 골프장 불이 꽃처럼 훤하다.
두방산 줄기와 제석산 사이 벌교 전동산일까? 그 위로 해가 구름사이에서 내려온다.
여자만을 보자고 바위 위로 내려간다.
흐릿하다.
땀이 식자 돌아와 옷을 들고 내려온다.
어둡기 전에 내려오자고 서두르니 6시가 되지 않아 주차장에 닿는다.
돌아와 땀을 씻고 혼자 밥을 먹으며 냉장고에서 소주와 맥주를 꺼내온다.